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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와 강도
요10:7-11
요절: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지난 시간에는 목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배웠습니다. 목자가 양무리에게 가면 하나님께서 목자에게 양문을 열어 주십니다.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불러서 하나씩 자기에게 나오게 합니다. 목자는 각각 양의 이름을 다 알고 있습니다. 양들이 다 모여지면 앞장서서 목초로 이끌고 갑니다. 영생의 샘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1-6절을 좀 더 부각시킵니다. 가르침이 좀 더 강력합니다. 7-8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바로 앞 절인 6절에 보면 종교지도자들은 이 예수님의 비유를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즉 너희 바리새인들은 “도둑이요 강도다”라고 말씀을 하셨으나, 이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도둑과 강도가 된 가짜 목사, 혹은 가짜 목자는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자기기만의 경로를 거쳤기 때문에 이미 마음이 아스팔트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있습니다. 양심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비슷한, 그러나 다른 비유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시지 않고 계속해서 가르치신 이유는 청자 중에 그래도 예수님의 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양으로 통하는 문“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누구든지 양에게 가려면 꼭 예수님을 통해서 가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큰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 목자와 양 사이에 예수님이 서 계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목자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양에게 가야 합니다.
이 원칙을 무시하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종속관계나 불건전한 관계가 형성되는데 이것은 영적인 음란입니다. 목자는 양들로부터 필요 이상의 신뢰와 존경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자는 강도요 도둑이 됩니다. 목자는 양을 대할 때마다 양의 문이신 예수님께서 양을 지키시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고, 양의 마음이나 물질을 빼앗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양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빼앗는 자는 예수님에 속한 것을 도둑질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런 강도와 같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선한 목자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자와 강도는 전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도는 자신이 선한 목자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양을 죽이고 그의 살을 먹으면서, 자신이 양을 위하여 죽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제가 18년간 있었던 하이델베르크 유비에프(UBF)라는 단체입니다.
그런데 또한 신기한 것은 양들은 자신이 목자들에 의해 잡혀먹히고 있으면서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도둑과 강도들을 신뢰하며 존경하고 따릅니다. 세뇌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이것이 유비에프, 신천지, 통일교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모순되고 약한 존재이므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에게 매우 분명하고 험한 비판을 했음에도 이들은 자신을 선한 목자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에 이단이나 통일교에 다니는 사람은 정말로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러한 단체에 18년간을 있으면서 전 삶을 바쳤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모순입니까?
9-10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내가 문이니: 9절에서는 다시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하십니다. 즉 예수님은 양이 하나님께로 가는 통로요, 영생의 통로입니다. 누구든지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통해야 합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그는 사람들에게 단지 예수님만 가리키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분입니다!” “여기에만 진리와 영생이 있습니다!”
인간은 진정한 의미에서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자신이 예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한 인간을 끝까지 책임을 질 수도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이니 나의 말을 들으라“라고 하는 것은 사단의 말입니다. 그러나 유비에프와 같은 이단 단체에서는 회원은 인간 목자의 말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목자의 말에 불순종하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심어줍니다. 이들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둑이요, 강도입니다. 그들은 사단의 종들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한국 사람들은 특히 자기의식이 약해서 타인에게 의존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남의 말을 잘 듣고, 쉽게 마음을 줍니다. 타인이 나에게 모든 것을 해주는 것처럼 행동하면 마음이 약해져서 그를 신뢰하게 됩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love bombing이라고 합니다. 사랑으로 폭격을 해서 그 사람의 정신을 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단 단체가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그들은 한 사람의 마음을 전적으로 사서 자신을 100% 신뢰하게 만들기 까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합니다. 매일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밥을 사주고, 그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해결해 줍니다. 그 양이 센타(교회)에 나오면 그가 인생을 통해서 그때까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칭찬과 인정과 사랑을 받습니다. 시쳇말로 기절을 할 정도로 사랑을 받습니다. 그 사람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그 양은 언젠가는, 그들이 분명히 하나님의 천사라는 것과 그들의 사랑을 100% 확신하고, 그들을 100% 신뢰하게 되어서 드디어는 그들에게 자신을 내어 줍니다. 그들은 바로 이때를 기다립니다. 이때가 되면 그들은 비로소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며, 이 양을 그들 자신의 노예로 삼습니다. 그 양은 이것이 그들의 수법이라는 것을 죽을 때까지 모르며,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다시 양을 사냥하러 나갑니다. 이렇게 해서 이단은 번성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 양이 중도에 하차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목자들은 큰 상처를 받고 그 양 뒤에서 욕설을 합니다: „그동안 그렇게 섬겨 주었는데!“ "그렇게 많이 받아먹고서 가는 파렴치한 사람이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목자 사랑의 정체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을 사랑이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자기가 없어야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주고서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바라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기 자신을 죄인들에게 내어주신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이용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한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주시는 분입니다. 유비에프인들은 사랑을 해본 적도 없으며 사랑의 능력도 없는 자들입니다.
한국의 한 성경읽기 선교회(유비에프) 목자가 미국에 여행을 가서 교주 이사무엘(이창우)이 있는 시카고 센타를 들렸습니다. 그는 이창우에게 단지 인사를 하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모 의과대학의 재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사무엘은 그를 보고 욕심이 생겨서 그를 시카고에 붙들어 두고자 여권과 비행기표를 빼앗았습니다.
그 학생은 너무도 생각지 못하게 당한 일이라, 심한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가 도저히 집에 돌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자 자살을 시도했으나 적시에 적발이 되어 죽음을 면했습니다. 그래도 이창우는 그를 한국에 보내지 않고 훈련을 시킨다는 명목으로 센타에서 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이 일이 있자 이창우는 기동력을 발휘해서 사망신고와 함께 즉시 죽은 자에 대한 모든 자취를 없애 버렸습니다. 자신이 그 학생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증거 인멸을 시킨 것입니다. 그래도 문제가 밖으로 알려지자 이창우는 죽은 애의 아버지에게 강제해서 성명을 발표하게 시켰습니다: 그 아버지는 “자기 애는 원래 심리적인 문제가 있어서 자살을 했으므로 죽은 아들이 잘못했다”는 그를 공개적으로 올렸습니다. 그 아버지는 한국 유비에프의 지도자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본다면 아버지로서 죽은 아들의 원수를 갚아 주어야 하는데, 죽은 아들을 정신병자로 만들었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이사무엘은 도둑과 강도의 괴수입니다. 그가 한 불쌍한 양을 먹으려고 했으나, 그 양이 먼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목자요 선교사로 자칭하는 이들은 양들을 먹는 자들이며, 이미 그들 스스로도 영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만 멸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삼킬만한 양을 찾고자 매일 캠퍼스로, 학생 기숙사를 만면에 거짓 웃음을 띠며 우는 사자처럼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스스로는 선한 목자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양을 잡아먹고자 그 양에게 온갖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나중에 먹을 양을 생각하면, 자신의 일시적인 희생이 희생으로 생각되지 않는 법입니다.
UBF(대학생 성경읽기 선교회)에서는 요한복음 10장을 매우 자주 공부합니다. 그리고 공부할 때마다 은혜를 받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선한 목자가 될 것을 다짐합니다. 그리고 자신들만이 선한 목자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일반 교회의 목사들은 삯군 목자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만이 진정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가장 좋은 말씀도 자신을 황홀하게 하는 환각제로 사용됩니다.
이렇게 괴상한 일은 기독교 2000년 역사에 없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위선적인 괴물이 되었을까요? 그들은 전 세계에 선교사를 보내어 선량한 사람들을 그들과 같은 괴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신문에 선전을 합니다: 우리 단체가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했다! 그리고 기독교 단체에서 이것을 그대로 믿고 선전까지 해줍니다.
사람은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양을 먹기 시작합니다. 양을 먹으며 자신의 배를 불리면서도 자신은 예수님처럼 양을 위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배를 불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무엇이 양을 먹는 행위일까요?
이것은 양들을 통해 자신이 영광을 받고 양들에게는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양의 숫자를 통해 영광을 받습니다. 누가 열심히 전도해서 양을 하나 물어오면 주위로부터 매우 큰 칭찬과 인정을 받습니다. 그가 양을 잘 섬겨서 양이 그를 절대적으로 복종과 충성을 하게 되면, 그의 명예는 더욱 커집니다. 양들이 그를 마치 하나님처럼 복종하고 신뢰하면 그는 최고의 목자가 됩니다. 더욱 악한 목자는 양들에게 끊임없이 무리한 헌금을 요구하여 그 돈을 자기 생각대로 사용합니다.
목자는 자신의 양에게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으므로 양을 마음대로 부립니다. 아무하고나 결혼을 하라고 하면, 결혼을 하고, 당장에 회사를 그만두고 집을 팔고 선교사로 나가라고 하면 나갑니다. 부모를 속이고 배신하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라고 하면 그대로 하며, 남을 때리라고 하면 때립니다. 아내(남편)와 이혼을 하라고 하면 아내(남편)를 버립니다. 물론 이러한 것은 매일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일을 시키기 전에 철저하게 준비를 하여 당사자를 세뇌시킵니다. 이러한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즉각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충성된 종으로 갈채를 받습니다. 이렇게 이 단체는 서로 수많은 칭찬과 인정을 해주며, 자신들만이 진정한 신자들이라는 환상에 빠져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겔34:3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미3:2-3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선지자들이 그 악한 목자들에게 이렇게 경고를 했을 때에 이들은 그 경고가 자신에게 해당한다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선한 목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바리새인의 문제요 유비에프의 문제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진정한 선한 목자는 어떤 분입니까?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십니다. 이사무엘처럼 양을 자살하게끔 만들지 않습니다. 생명을 주실 뿐만이 아니라 넘치도록 주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그뿐만이 아니라 선한 목자는 양을 살리고자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습니다. 양들을 위해 자신이 철저히 희생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절대로 남을 위해 죽을 만큼 순수하게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죄인이며 이기적입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예수님께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거꾸로 생각해서 예수님께 바치려고 합니다. 신에게 바치는 종교는 이방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물질과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신데 우리가 드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목숨까지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을 때에, 우리는 자발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며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의 표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우연히 안타까운 글을 발견 펌합니다 .
안타깝다는것은 어떤 말인지요? 님이 주장하는것이 무엇인지 저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겟네요
님은 기독교인인가요? 안티인가요?
안티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무숲님이 아마 UBF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발견한듯합니다. 그래서 가져오신게 아닌가 합니다.
이 글을 쓰신 분, 아직도 철창 안에 갇혀있네요. 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나무숲님은 안티기독교인이십니다. 나무숲님이 쓰신 예전글을 보시면 UBF에 대한 문제점을 들추어 내시려고 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아마 이글도 그들의 맹신이 어느정도인지 또 얼마나 문제인지 우리들에게 보여줄려고 가져온 글이라고 판단되어집니다. ^^
착한 목자는 무슨 목적으로 양들을 돌보는가?
양고기와 양털을 얻기 위해서이다. 착한 목자는 절대로 양들의 친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