됫박 유종인
어느
날 화단에 버려진 낡은 됫박 하날 주웠지요
모서리가
깨지고 옆구리가 터진 걸
겨우
철사로 옭아매 썼던 날도 한참인 듯했지요
나는
눈에 익은 이 옹색한 애물을 가만 주워들었지요
사월의
화단은
야단을
맞고 쫓겨나온 꽃들의 주둥이가 댓발인데
허술한
됫박은 아직도 뱃구레가 홀쭉했지요
도둑고양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 가난을
나무는
제 몸을 내줄 때 얼마나 마뜩치 않았을까요
그러나
사월의 됫박을 들고 오월의 꽃밭에 들어섰을 때
나는
이 낡은 오지랖도
볼우물이
터지도록 인심을 옮겨 담던 선량(善良)인 걸 떠올렸지요
허술하고
미욱한 대로
계절을
놓친 봄꽃들은 아직 이마가 뜨거웠기에
그
화사한 절명(絶命)을 고봉으로 주워 담아 반그늘에 부려주고요
어느
날은, 느닷없는 천뢰(天籟)의 말씀인 우박을 퍼 담아
겨울을
모르는 꽃밭 귀퉁이에 구메밥처럼 넣어주고요
연못의
금붕어들에게 천천히 녹여먹으라 생색을 냈지요
허술한
대로 이 몸 한 됫박한테도
여독이
생기는 뿌듯한 하루였지요
유종인 시인
1968년 인천 출생
시립인천전문대학 문헌정보학과를 졸업.
1996년 「문예 중앙」에 시 '화문석' 외 9편이 당선.
2002년「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03년「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
시집 <아껴 먹는 슬픔> <교우록> < 수수밭 전별기>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