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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갱촌
지하에서 싸우는 사람들
한 설 야
탄광기술공업학교 학생들은 개학한 다음다음날부터 매일 열두 시부터 굴속에 들어가서 네 시에 나오기로 되었다. 즉 오전에는 학과를 배우고 오후에는 실지로 채탄(採炭)하기로 된 것이다.
재수도 물론 전연 예상 못 한 것은 아니나 정작 오고 보니 그 예상과도 어긋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는 이것이 전문학교니만치 첫째 대궐 같은 교사와 그리고 사각모를 생각하였고 그것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학생다운 공상을 빚었었다.
그는 다음으로 해방된 조선을 생각하고 이 세 나라에서 얻어질 자기의 장래를 생각하였다. 왜놈들 때에는 천하없이 날고 기어도 언제든지 그 아래에 눌려서 놈들의 뒷바라지나 하는 데 지나지 않았으나 이제는 제 재주와 성심만 있으면 얼마든지 드날릴 수 있는 것이다.
더욱 재수는 ‘기술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말에 신이 나서 이 학교에 지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와보니 학교 교사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채광 사무실 삼층 좁은 칸이 그들의 학교였다.
또 선생들은 재수가 상상하던 놀라운 학자들이 아니고 이 탄광에 근무하는 사무원들이었다.
사각모 같은 것은 애당초 이야기도 있는 성싶지 않고 교복도 없었다. 기숙사도 광부 사택의 맨 꽁지에 있는 초라한 집이요, 식사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재수뿐 아니라 학생들 중에는 벌써 환멸 비슷한 것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 온 학생들은 거개 중학을 마쳐서 다른 벌이를 하자면 결코 할 수 없는 그런 처지들은 아니었다.
또 비록 그들의 가정이 구차하다 하더라도 어쨌든 중학을 졸업했으니까 그래도 남들보다 유여한 처지라 아니할 수 없는 터이다.
그런데 개학하자 댓바람에 여느 광부와 같이 굴속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이다. 노동자의 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이 탄광의 뚱뚱한 광장은(그는 교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였다.
“진정한 기술, 즉 산 기술은 책에서 배워지는 것이 아니오. 실지에서 닦아져야 그 기술은 제 살이 되고 피가 될 수 있소. 그러나 그렇다고 실지만에 치중하고 학술을 소홀히 해서도 그 기술은 발전 못 하오. 그려기 때문에 기술과 실지를 가장 잘 조화하고 통일하는 데서 진정한 기술의 발전이 있을 수 있소. 이런 의미에서 동무들은 이 탄광에서 가장 은혜받은 자리에 있소.”
하고 교장은 한참 학생들을 내려다보다가 조금 상기한 얼굴로
“나도 이 탄광에서 노동하던 사람이오만 지금 우리가 선 이 땅 밑에서는 이 탄광에서 십 년, 이십 년을 노동한 동무들이 여전히 석탄을 파고 있소. 거의 사람의 형용을 잃고 검둥이같이 되어서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살 속에는 귀중한 경험이 있소. 놀라운 보배가 들어 있소.”
하고 또 잠시 말을 쉬었다.
“그러나 우리 광부 동무들은 왜놈 아래에서는 물론, 오늘에 있어서도 졸지에 학술을 ˙배울 수 없소. 즉 글로써 기술을 배울 수 없는 것이요. 그들이 만일 그것을 배울 수 었다면 오늘보다 훨씬 능률을 올릴 것이오. 그러면 그들 자신에게도 행복이려니와 동시에 나라에도 그만치 이익이 될 것이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졸연히 안되는 것이오. 다만 지금 글도 배우고 또 실지로 기술도 닦을 수 있는 것은 여기 모인 여러 동무들뿐이오. 내가 지금 말한 바 이 탄광에서 동무들이 가장 은혜받았다는 이유는 실로 여기 있는 것이오. 여기서 동무들은 각오를 새로이 해야 하겠소. 조선의 모든 문제는――더욱 변혁기의 조선의 모든 문제는 인재가 결정하는 것이며 인재는 기술이 결정하는 거요. 크나 작으나 기술이 없는 인재라는 것은 없는 법이오. 동무들 중에는 혹시 지하 노동을 꺼린다든지 무섭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소만 새 조선의 일꾼은 이 지하도를 뚫고 나가는 정신, 즉 고난과 싸우는 정신과 실천이 절대 필요한 거요. 그러나 이 귀중한 정신은 결코 책상 위에서 생겨지는 것은 아니오. 실지로 일하고 싸우는 데서만 이것은 가져질 수 있는 것이오. 동무들은 지하 작업을 꺼리고 무서워하기보다 먼저 싸우시오. 그러면 반드시 구구한 생각이 물러가고 승리가 올 것이오. 싸우기도 전에 무섭다구 생각한다든지 기피하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 백기를 드는 거요. 패퇴하는 거란 말이오. 그러나 이 학교의 교문을 들어온 동무들은 이미 한 개의 승리를 스스로 가진 것이오. 앞으로 둘, 셋 아니 백천의 승리를 가져야 하오. 지하에서 싸우시오. 싸우는 데서만 승리는 올 것이오.”
교장의 훈시는 학생으로 하여금 적지 않은 반성을 가지게 하였다. 굴속에 들어가야 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었다.
또 하긴 남이 좀처럼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세상을 몸소 겪어 보리라는 호기심도 그들에게는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것뿐이었다. 어떤 학생은 이제 올 지하생활보다 자기 집을 먼저 생각하였다. 그들의 집은 대개 그럭저럭 먹어 갈 수는 있는 형편들이었다. 또 어디 가서 아랫도리 사무원쯤 되자면 될 수도 있는 터이었다.
그리고 말들은 안 하나 속으로 ‘굴속에 들어가 봐서 정 무엇하면 집으로 되돌아가지’ 하고 빠질 구멍을 생각하는 사람도 바이없지는 않았다.
얼마 전에 혼담이 있을 때 저편이 소학밖애 나오지 못한 여자라 해서 ‘그래도 중학이야 나와야지’ 하고 그 혼담을 제 손으로 막고 온 명호라는 학생은 속으로 ‘이제 중학생 장가는 영 틀리나 부다’ 하고 그 나이 때에 가장 많이 머리를 쓰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하였다.
재수는 무엇인지 모르게 아직도 속이 후련치 못했다. 일평생을 남의 소작인으로 살아온 아버지나 한창 젊은 나이에 벌써 손에 악마디가 지리만치 고생살이에 이골이 난 아내의 기대를 저버린 것 같은 생각이 적이 가슴에 걸려서 내려가지 않았다.
개학하던 날 밤 기숙사에 모인 학생들은 많으나 적으나 서글픈 빛이 보였고 푸념 비슷한 소리를 아니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중 제일 나이 먹고 또 일찍부터 이 탄광 주물공장(鑄物工場)에서 일하던 성춘이란 노학생만이 우리가 우선 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말하고 그것은 신성한 노동 속에서 반드시 생겨질 것이니 이것을 견디어 가지 못하는 것은 결국 시대에서――一새 조선에서 뒤떨어지고, 패퇴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사람도 없는 대신 삐어지게 나서서 찬성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일치한 생각은 사각모 쓰는 것이었다.
“내일 교장 선생에게 요구…… 요구라기보다 청원하기로 합시다.”
하는 것이 학생들의 공통된 희망이었다. 성춘이도 물론 동감이었다.
남달리 굴속에서 싸우려는 이 학생들이야말로 새 조선 학생의 표본이요, 우두머리가 되어야 하니 사각모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성춘이도 생각했던 것이다.
성춘은 주물공장에서 쇳물을 부어내고 새 기계를 만들어 낼 때마다 자기의 기술이 부족한 것을 한탄하였다.
증기로 돌리던 기계를 전기로 돌리는 기계로 고쳐 만들어만 내면 이 탄광에서만도 일 년에 석탄 일만 오천 톤이 뜨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주물공창에서는 일심 청력으로 이 전동기 제작에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성춘이는 바로 엊그제까지 그 직장에 있었다. 그러다가 기술학과 되는 바람에 맨 선참으로 이 학교에 지원하였다. 물론 의젓하고 끌끌한 전문학교 학생을 그 자신의 신상에 그려 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다음날 성춘은 학생들을 대표해서 교장 선생에게 그것을 청원하였다.
“학생들 소원이 모다 그렇습니다.”
하고 사각모 쓸 것을 진정하자 교장은
“하하하 알았어, 알았어!”
하고 말귀 빠르게 받아 가지고 우선우선한 눈으로 쇠불림에 거멓게 거스른 성춘을 보며 사람좋은 얼굴을 크게 터뜨렸다.
성춘은 돌아 나와서 학생들에게 그 보고를 하고 그리고 이제는 당분간 다름 말은 더 꺼내지 말고 공부와 채광에 고스란히 힘을 쓰자고 말하였다.
“우리가 남다른 결심을 가지고 이 학교로 들어온 이상 여느 학생들의 모범으로 되어야 할 것이니 소소한 문제를 가지고 이러니저러니 하는 건 그만둡시다.”
하는 성춘의 말에 아무도 반대하는 기색이 없었다. 다만 재수가
“선생은 새로 안 온대우?”
하고 물어서 성춘은
“선생은 아직 그만해도 돼요. 왜놈의 머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학자, 기술자보다 지금의 우리 선생들이 외려 나아요” 하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물론 이것으로 학생들 속에 까닭없이 서리어지고 있는 한가닥 서글픔이 졸지에 죄다 가시어지지는 못했다.
학생들은 아침에 교실에서 내려와 바로 굴속으로 들어가는 인차(人車)를 타러 갔다. 승강장은 고대 채광 사무실 동편에 있었다.
“굴속은 대체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학생들은 모두 이런 호기심 비슷한 일종의 공포심을 누르고 있었다.
어차피 들어가게 생기고 보니 어느덧 그 굴속이 그들의 육신과 퍽 가까운 거리에 놓여져 보였다. 용기가 났다.
“어디 특별한 사람이 있으랴!”
하며 승강장 문안에 들어설 때 재수는 의외로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을 깨달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어둠이 가까워 올 것을 상상하며 걸어가던 재수의 눈앞이 별안간 상상과는 달리 환하게 밝아지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짧은 낭하 맞은편 벽에 빛깔도 새로운 눈에 익은 사진이 재수의 시선에 아니 차라리 가슴에 와서 칵 안긴 것이다.
늘 보던 그 얼굴이다. 그러나 볼 때마다 새로운 얼굴이다. 모든 조선 사람의 맘을 부챗살처럼 한데 모아 잡아 주는 너그럽고 따사로운 그 양자가 오늘은 차라리 부모인 듯 동기인 듯 정답게 보였다.
낭하는 그 초상화 한 장 때문에 더할 수 없이 명랑하였다. 재수는 무연한 가운데서 기운이 났다. 기쁨이 드솟았다.
재수는 맨 뒤에 떨어져 한동안 그 초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이 탄광 마을에 왔을 때 맨 먼저 눈에 띈 것은 공장 벽에 굵다랗게 씌어진 표어들이었다. 재수는 한 줄 한 줄 죄다 읽어 보았다.
이런 산골에까지 그나마 그 어디보다도 크고 뚜렷한 글씨로 씌어진 표어――조선을 다시 팔아먹으려는 민족의 원수 이승만을 때리는 구호가 맨 먼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김 장군 만세! 산업과 생산의 부흥과 건설, 노동범령 지지 만세! 이런 것이 어느 건물에도 빛나는 구슬처럼 노리개처럼 달려 있었다. 지붕에까지 씌어 있었다.
높다란 전차 차고의 커다란 입구 좌우에 두 줄로 표어가 내리쓰이고 그 안으로 자그만씩한 전차가 그득 들어 있는 것이 바라보이고 또 그 부근에 전깃줄이 사슬느러미처럼 늘어져 있는 것을 볼 때 재수는
“야, 참말 공장지대 같구나. 손으로 석탄을 파먹던 시대가 지나가고 전기로 파내는 새 시대가 왔구나.” .
하고 못내 감탄하였다.
동시에 근대 국가로서 새로 출발한 해방 조선을 또한 느꼈다. 이제부터의 조선은 전기와 기계가 사람의 생활과 외착 없이 어우러져야 하리라 싶었다.
탄광이라니 그저 옛날 모양으로 굴을 파고 삼태기로 남아 내는 그런 근경을 그려보던 그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이건 전판이 으리으리하고 다리가 꼬이눈 전기와 기계와 철선으로 엉클어진 어마어마한 판국이다.
그 초상화를 바라보는 순간 그 모든 광경이 재수 자신에게 한결 더 가까이 달려와 보이고 크게 보이고 똑똑히 보여졌다. 재수는 좀더 용기가 났다. 설사 글속에 들어갔다가 굴이 무너진다 할지라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뱃심이 슬며시 생겼다.
“설마한들 죽기야 하랴.”
이렇게 입 속으로 중열거리며 재수는 바로 이마 위에 의젓이 올려다보이는 그 초상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수위가 앉아 있는 조그만 창 앞에 섰다. 학생들이 모두 우구구 그 앞엑 몰려서서 수학 선생의 설명과 주의를 듣고 있었다.
이 선생은 탄광에 경험이 많을 뿐 아니라 본시 이 탄광에 있다가 대학메 다녔고 만주 탄광에도 가 있다가 조국의 탄광이 그리워 다시 돌아온 사람으로 수학의 천재요, 더욱 지질학, 측량학에 들어서는 조선서 누구라고 불리우는 사람이다. 이 김 선생은 광부들의 목패 걸린 빙빙 돌릴 수 있는 팔모퉁을 가리키며 학생들에게 수학 풀 듯 설명하였다.
“이 굴속으로 들어갈 때는 반드시 제 목패를 제가 들어가는 일터를 표시한 자리에 이렇게 걸어 놓고 들어가야 하오. 그래야 혹시 무슨 사고가 있더라도 이 목패를 찾아보고 여기서 곧바로 그 사람에게 알릴 수 있고 또˙굴속에서 사고가 생기면 그곳에 누가 있는 줄 곧 알게 되오. 그리고 저녁에 나올 때도 저마끔 제 목패를 벗겨가지고 가게 되었는데 시간이 넘도록 벗겨 가지 않으면 그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을 알고 곧 거기 알아볼 수 있소.”
하면서 그 팔보퉁을 빙빙 돌려 보였다. 그 퉁에는 순서 정연하게 갱내 각 일터 이름이 씌어 있고 그 아래에 광부들의 목패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다음으로 김 선생은 그 일터 이름을 하나씩 가리키며
“이 채탄이란 것은 석탄을 파내는 것이고 이 갱도 수리라는 것은 굴을 수리하는 것이고 개착이라는 것은 혹은 글진(掘進)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석탄을 파나가다가 암석이 나지면 남포질을 해서 암석을 뚫어 내는 것이고 풍갱이란 것은 바람 들어오는 굴이고 인도승회(人道乘廻)라는 것은 석탄 구루마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고 펌프라는 것은 갱도내의 물을 퍼내는 것이고 차도(車道)라는 것은 차가 다니는 길을 어르는 것이고 운탄 조수라는 것은 석탄 실을 때 거들어 주는 것을 이르는 것으로 그 일터마다 소요되는 일꾼이 있어서 언제든지 작업하고 있소.”
그 설명이 필한 다음 학생들은 목욕간처럼 된 탈의장에 들어가서 옷을 벗어 조그만 장 속에 넣고 검은 작업복을 바꾸어 입었다,
그리고 꼭때기에셔 앞젠비까지 딱딱한 종이 판대기가 붙은 갱내 모자를 쓰고 전등을 멜 때에 쓰는 가죽 멜진을 메고 다음 칸으로 갔다.
탈의장 다음 칸에는 숱한 전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납작한 축전지에 달린 고무 호스 끝에 나팔 형으로 된 조그만 전등이 딜려 있었다.
학생들은 그 축전지를 가죽 멜진에 달아 옆구리에 차고 고무줄에 달린 전등을 모자 앞 딱딱한 종이 판대기에 끼었다.’
그래서 저마끔 이마 앞에 밝은 눈 하나씩 달아 가지고 등산장(登山杖)을 짚고 나서니 마치 무장한 군인처럼 기운이 났다. 서로 돌아보고 웃으며 지하도로 접어들었다.
들어갈수록 길은 어두워졌다. 그러다가 조금 희미한 빛이 보이더니 인차 차도가 앞에 나타났다.
무섭게 큰 백 마력 모터가 있고 거기에 커다란 강철 물레가 붙어 있고 그 물레에는 강철선으로 꼰 굵다란 동앗줄이 칭칭 감져져 있었다. 그리고 그 동앗줄 끝에 사람이 타는 인차가 달려 있었다.
인차는 지금 갱도 대목에까지 감겨 올라와 있었다. 이 차토는 20도 경사로 내리놓였는데 그 굴속 도간도간에 희미한 전등이 달려 있으나 그도 얼마 아니고 저 아래는 새까만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학생들은 김 선생이 시키는 대로 인차 걸상에 올라앉았다. 그 걸상 맨 앞줄에는 먹을 물을 담은 석유통을 든 늙수그레한 사람이 앉고 그 뒷줄부터 여러 줄로 나뉘어 김 선생과 학생들이 앉았다.
맨 앞에 앉은 사람은 앞채에 달린 집게 같은 것을 참고 있는데 필시 차장인 듯하였다.
동앗줄이 끊어져 나가며 인차가 아래로 내리꼰질 경우에 이 집게 같은 것을 꼭 쥐면 인차 앞 전에 달린 기역자로 생긴 안전장치가 방아 대가리처럼 아래로 떨어지면서 궤도 복판에 가로채운 쇠빗장에 걸려 차가 멈추게 되는 것이었다.
재수는 김 선생에게서 그 얘기를 듣다가 부지불각에 반가운 듯이
“그럼 선생님 인차는 아주 안전하군요?”
하고 물었다. 한즉 김 선생은
“그렇지. 저 안전장치가 떨어지면 빗장에 걸리게 마련인데 이 빗장이 내려가면서 촘촘 있으니까 설사 내리꼰지는 바람에 빗장 한둘이 튀어나간다 하더라도 결국은 어느 빗장에든지 안전장치가 걸리게 되거든.”
하고 설명해 주어서 더욱 안심되었다.
이때 포터 운전수가 스위치를 넣으니까 그 유착스럽게 큰 모터가 위잉하는 뱃심 좋은 소리를 내며 물레가 돌고 따라서 강철 동앗줄이 술술 풀리기 시작하며 인차가 아래로 내리굴렀다.
인차 바퀴와 궤도가 갈리는 소리가 몹시 요란하고 아츠라웠다. 어떤 때는 무엇이 금시 터지는 듯이 짝 하고 또 어면 때는 인차가 궤도에서 튀어나갈 듯이 몹시 흔들렸다. 그리고 터널 천정은 두텁게 시멘트를 발랐는데도 불구하고 장마철이라 물이 슴새어 비 오듯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학생들에게는 적이 염려가 되었다. 이 튼튼한 시멘트 벽에서 물이 샐 쯤 해서는 동발로만 괸 굴속은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장마가 심하면 으레 비 오듯 물이 떨어지지만 뭐 아무 상관 없어.”
하고 김 선생이 말하는데 차소리가 몹시 요란해서 뒤에 앉은 사람들은 선생의 손짓을 보고 어림으로 알아채고는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렇게 물이 샐 말이면 한창 장마철에는 이 굴속이 어찌 될까 하는 생각들을 한 것이다.
“굴속은 어디나 모다 이렇게 시멘트로 바른 완전한 터널일 리는 없지요.”
하고 김 선생 곁에 앉은 재수가 물었다.
“그럼 이건 인차가 다니는 굴이거든. 원판 석탄을 파는 굴은 발목으로 동발만 들였어. 파고는 동발을 들이고 또 파고 동발을 헐고 석탄을 파고 하면서 파나가거든. 그래서 다 파면 결국 그 굴은 그걸로 폐굴이 되어 버리거든.”
하고 선생이 설명하는데 재수는 그 외에도 묻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으나 더 묻지 않았다.
이제 닥다려 보면 으레 알려질 것이요, 또 어차피 당해 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굴 어귀에 띄엄띄엄 달렸던 전등도 이제는 없어져서 굴속은 아주 까마귀 나라가 되고 다만 사람물의 이마에 달린 전등만이 암흑 속에 둥그런 광선을 던지고 있을 뿐 앞도 뒤도 캄캄하였다. 또 지금 전깃불이 비치던 곳도 차가 내려가는 데 따라 이내 어둠 삼켜 버렸다. 다만 이마에 달린 희미한 전등만이 앞으로 달려드는 새까만 어둠을 갈라먹으면서 내리달렸다. 그것은 흡사 먹고 먹이는 한 개의 싸움을 상상케 하였다.
‘인제 몇 미터나 내려왔을까? 얼마나 내려가야 차가 서려나.’
하고 생각하는 한편에서 조금씩 더 무섬증이 생겼다. 내려갈수록 깊은 어둠이 사람을 빨아당기듯 몸이 오슬거렸다. 차가 이따금 절커덕 하고 된소리를 내면 모두 콧날이 시큰하였다.
이윽고 차는 섰다. 그러나 아직 설 자리에 채 멎지 못해서 차장인 듯한 늙은이가 굴속 전벽에 친 노끈을 힘을 주어 채쳤다. 운전수에게 알리는 신호였다. 한즉 다시 움직이며 잠시 내려가다가 다시 섰다. 오백팔십 미터의 굴을 다 내려온 것이다. 거기서 모두들 내렸다.
“요전에 시찰하러 온 양반들이 이까지 와서 벌벌 떨고 있기에 그만 선발로 드루 돌아 나가게 했어. 학생 동무들 도루 나가고 싶은 사람 없소.”
하고 김 선생이 희미한 전등 속에서 싱긋이 웃었다.
그러니까 학생들은 도리어 뱃심이 생겼다.
‘있다가 죽더라도…….’
하는 생각까지 한 사람이 있었다.
“갱내 사무소는 이따가 나갈 때에 들러 보기로 하고 우선 굴부터 봅시다.”
선생이 이렇게 말하며 앞서서 굴로 인도하였다.
굴은 낮고 험하였다. 어떤 동발에는 일면으로 곰팡이가 두텁게 덮이고 어떤 곰팡이는 마치 흰 버섯처럼 삐죽이 내리드리워 있었다.
그리고 굴이 낮아서 노상 허리를 꾸부리거나 목을 한편으로 삐두름하게 젖히고 다녀야 하였다. 길바닥은 진창과 물창이 질벅거리고 게다가 철길이 놓여 있어서 걷기가 몹시 거북하였다.
그래서 길을 골라 디딜 것만 생각하노라고 부지중 허리를 펴면 동발에 머리를 찧고 머리를 쪼일까 천정을 두리번거리노라면 아랫도리를 살피지 못해서 발을 곱디디고 쓰러지려 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곤경을 겪을수록 무섬증이 엷어졌다. 그리고 어서 굴속에서 일하는 광부들을 만나고 싶었다.
“대체 석탄은 어떻게 파는 걸까.”
하고 새 굴로 잡아들 때마다 두리번거리나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맨 첨으로 만난 것이 갱도를 수리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무토막을 그득 잘라 놓고 그 위에 늘어져 한숨 돌리고들 있었다.
“동무들 수고하시오.”
하고 선생이 말하자 학생들도 따라서
“수고들 하십니다.”
하고 인사하였다. 그 순간 그들은 알 수 없는 감격을 깨달았다. 그들이 결코 자기들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으로 보여지지 않았다. 이 탄광 연탄부에 오래 근무한 성춘이는 맨 뒤에 떨어져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잠시 하였다.
“동무들 수고하시오: ”
하고 학생들에게로 달려갔다.
하고 학생들에게로 달려갔다.
갱내는 몹시 무더웠다. 모두 땀이 잔등에 휘주근히 배었다.
김 선생은 등산장 대가리로 이따마큼씩 굴속 전벽을 톡톡 두드려 보았다. 그 소리로 굴속의 지질을 가리고 탄맥을 알아내는 것인가 보다고 생각하니 그 간단한 동작이 학생들에게 이상한 매력을 주었다.
굴속 여기저기서는 모터를 놓고 갱내에 괴는 물을 뽑아서 한데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인 물을 다시 큰 기계로 땅 위에 뽑아 버리게 되어 있었다. 그 물 푸는 펑펑 소리가 들려 왔다.
굴을 가다 가다 거적문 또는 널문을 막아 놓았는데 그 문을 여닫는 때마다 어디선지 짜―― 하는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갱내 바람이 움직이는 소리였다.
그러나 소리뿐이요, 바람이 몸에 닿지 않아서 학생들은 이것이 무슨 소린가 하고 처음은 가슴이 쩔렁하였다. 어디가 무너져 내리지나 않나 하는 지나친 생각을 한 학생도 있었다.
“선생님 저게 무슨 소럽니까?”
바로 선생 곁에서 가던 맨˙키 큰 득수라는 학생이 물었다. 득수는 허우대가 크니만치 제일 천정에 머리도 많이 찧고 발도 여러 번 곱디뎠다. 또 워낙 겁기도 제일 많았다.
“그게 바람 소리요.”
하고 선생은 덤덤히 대담하였다.
“바람 소리요! 땅 속에서 무슨 바람 소리가 이리 요란할까요?”
학생들은 암만해도 의아하였다:
“지상에서 기계로 줄곧 바람을 뽑아내기 때문에 굴속의 바람이 쉬지 않고 흘러가거든. 그런데 그것이 사이사이 저 가름문에 막혔다가 그 문을 여닫는 때 진 한데서 옅은 데로 급히 흘러가니까 소리가 요란히 들리는 거요.”
하고 선생은 계속해서 또 설명하였다.
“만일 이 바람의 유통이 없으면 이 안의 사람은 살 수 없소. 그러기 때문에 저 이 바람을 뽑아 올리는 기계를 돌리는 설비로 지상에 육백오십 킬로의 발전 기계가 설치되어 있고 또 여덟 개의 증기기관이 있소. 즉 전기기관에 고장이 생기면 증기기관을 돌려 쓸 수 있게 되어 있지요. 만일 두 시간을 계속해서 바람이 돌지 않는다면 굴속의 사람은 질식해 버리니까 두 가지 기계를 놓아 절대 안전을 보장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절대로 위험한 일은 없소.”
학생들은 다시금 그 무섭게 거창한 발전 창치와 또는 기차 기관보다 몇 배씩 더 큰 증기기관이 어마어마하게 놓여 있는 증기기관실을 생각하였다. 또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생각하였다. 그러며 그 순간 알 수 없는 감사를 그 기계와 노동자들에게 보내었다.
학생들은 처음으로 석탄 파는 사람들을 만났다.
몸에서 땀이 철철 흐르는데 석탄가루가 씌워서 전신만신이 까맣게 되어 있었다. 어떤 데서는 아랫도리까지 발가벗어 버리고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은 굴속 전벽이 석탄인지 흙인지 알 수 없게 그저 꺼멓게만 보이는데 광부들은 용하게 석탄만을 뽈괭이로 찍어 헤치었다. 검은 먼지가 뻔질 떠올랐다. 숨이 막힐 듯하였다. 그렇건만 광부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파놓은 석탄은 가래로 도로꼬에 파 싣기도 하고 어떤 데서는 지게로 져나르기도 하였다. 그래서는 갱내에서 석탄을 실어 내는 스키프라는 석탄차가 있는 데까지 운반해 가곤 하였다.
이윽고 학생들은 석탄을 실어올리는 찻길에 이르렀다. 사십오 도의 급경사로 된 조금 넓은 길이 학생들 앞에 나다났다. 낙숫물을 받은 진창 속의 궤도가 마치 성난 뱀처럼 길바닥을 거머물고 늘어져 있었다.
“차 운전 마시오.”
하고 김 선생이 갱도 어귀에서 검은 굴 밑을 향하여 소리치고 잠시 지나서 또 한 번
“차 운전 말라구요.”
하고 소리친 다음, 앞에 서서 그 굴로 접어들어 아래로 내려갔다.
천정에서는 낙숫물이 비 오듯 내리고 길은 몹시 철벅거려서 학생들은 궤도를 붙들고 침목에 발을 단단히 걸어가면서 거의 기다시피 하지 않으면 내려갈 수 없었다.
왼편은 스커프가 내려가는 길이요, 바른편은 올라가는 길인데 굴이 좁아서 차 다닐 때는 사람이 오르내리기가 마냥 위험하였다.
학생들은 한참 내려가다가 선생이 안내하는 대로 이내 또 곁 굴로 삐어져 들어갔다. 곁 굴은 모두 수평이어서 기어 다닐 필요는 없었다.
이따마큼 광부들 삼사 명 또는 오륙 명씩 섭슬려서 석탄을 파고 나르고 하였다.
검은 굴속, 더구나 먼지가 뽀얗게 떠도는 가운데서 검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전깃불에 비쳐 마치 흑연처럼 문탁하게 빛났다.
그런 중에서 사람보다 더 윤기 있게 번쩍이는 것은 무연탄 덩이였다. 뿔괭이 끝에서 커다랗게 뚝 떨어쳐 내릴 때 그것은 마치 무슨 보석처럼 아름다운 광채를 내며 번쩍하였다.
“무엇이 그렇게 빛날까.”
하고 재수가 한 덩이 집어다 보니 역시 무연탄이었다.
하나 빛깔만은 보석에 진배없었다.
‘흑진주!’
재수는 이렇게 생각해 보고 또
‘검은 금강석!’
하고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 보석 아닌 보석은 이제까지 왜놈들의 것이었다. 왜놈들은 이 보석 빨아먹을 것을 또한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보석을 파는 데 조선 노동자를 노예와 같이 혹사할 것을 잊지 않았다.
노동자들에게 하루 열두 시간 내지 열네 시간 노동을 강요하였다.
그리고도 부족해서 강도 전쟁 말기에는 노동자가 한 번 글속에 들어가면 일주일씩이나 붙박아 놓고 일을 시켰다. 노동자들은 석탄가루 속에서 한 끼에 주먹밥 한 덩이씩 먹었다. 노동자들은 굴속 아무데나 늘어져 잠자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다가 요행 굴 밖으로 나가게 되면 모두 맑은 공기에 취하듯 나자빠졌다. 그런 일을 몇 번 거듭하면 영락없이 골병이 들었다. 그러면 천행으로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시 노동은 할 수 없는 병신이 될 수밖에 執었다.
그러고도 왜놈들은 조선 노동자들에게 일본 노동자의 절반 삯전밖에 주지 않았다. 하늘이 알제 받아도 조선 노동자는 하루 일 원을 넘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보석을 우리의 손으로 파서 우리의 살림에 쓰는 것이다.
“이것을 한 덩이라도 더 파서 더 많이 연탄을 만들어 내어야 기차는 한 뺌이라도 더 달리계 되고 한 시간이라도 더 빨리 구를 수 있는 것이다.”
하고 개학하던 날 교장 선생이 말하던 것을 재수는 다시금 기억하였다. 또 교장 선생은 이렇게 말을 달았다.
“교통은 사람으로 치면 혈맥과 같다. 그러기 때문에 왜놈들이 조선을 노략할 때 맨 먼저 손을 댄 것이 철도다. 운수 기관이다. 놈들은 맨 먼저 철도를 잡고 항만을 잡고 전신 전화, 우편 기관과 등대까지 잡아 버렸다. 그러나 오늘은 이 중요한 모든 혈맥과 신경이 모두 우리의 것으로 되었다. 이 모든 시설들이 우리의 손에서 돌고 있다. 이것을 돌리는 데는 석탄이 없으면 안 된다. 석탄은 국가의 밥이다.”
이런 말이 새삼스레 살에 박혔다. 재수는 여기서 좀더 자기의 결심을 다지었다.
땀이 연신 흘렀다. 이 굴속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밤낮 어느 때고 이렇게 더웠다. 그러나 바람이 흘러서 어떤 데는 선선하기도 하였다.
앞에서 가던 김 선생이 별안간 주춤 서더니 허리를 꾸부리고 아래를 이윽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앞에 큰 굴이 펑 뚫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나무토 막을 이리저리 건너지로고 그 위에 동발을 들었는데 또 전선이 여러 줄씩 그리로 지나가서 감전이나 될까 봐 그러나 하고 학생들은 궁금히 뒤에 떨어져 바라보고 있었다.
김 선생은 앞으로 몸을 수그린 채 뒤로 손짓을 하며 위험하니 가까이 오지 말라 알려 주었다. 그리고 한참 더 기웃거리고 있더니 다시 돌아서 딴 길로 접어들었다. 새로 접어든 길도 좁고 낮고 험하였다. 학생들은 석탄을 파 싣고 있는 도로꼬를 넘어 가파른 비탈을 돋우 밟아 올라갔다. 얼마 뒤에 또 평탄한 새 굴이 나지긴 했으나 어디가 어딘지 하마 알아낼 묘리가 없었다. 거미줄 같은 굴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려니까 갈라잡이만 없으면 밤낯 헤발아쳐도 나가는 길은 종시 찾을 성싶지 않았다.
“김 선생 대체 어떻게 이 길을 구별해 냅니까. 우린 어느 길이 어느 길인지…… 어디로 가면 나가고 어디로 가면 들어가는지 통 알 수 없군요.”
하고 재수가 선생에게 말하였다.
“그게 그렇게 쉽사리 알려질 말이면 땅 속의 경험이란 그리 대수로울 게 없게. 이 속에서 생활해 봐야 이 땅 속을 알게 되는 거요. 이 속이 한 개 자기의 세계로 되어야 방향도 알려지고 살맛도 알려지는 거요. 또 그때라야 동무들은 좋은 일꾼으로 될 수 있고 기술자로 될 수 있소.”
하고 선생은 빙긋이 웃다가
“만일 동무들이 이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겠소. 그럼 덮어놓고 바람이 안기는 쪽으로만 찾아가시오. 그럼 나중은 굴 밖으로 나가게 되오. 즉 기계로 한편에서 바람을 뽑으니까 딴 편에서 바람이 들어오거든. 그러니까 바람 안기는 데로만 가면 그 바람 들어오는 구멍 어귀로 나가게 될 것 아니오.”
하고 설명해 주었다. 그담부터 학생들은 바람 흐르는 방향을 몸으로 감각해 보려 하였다.
이윽고 풍갱(風坑)에 이르렀다.
이 굴 역시 탄도(炭道)와 같이 급경사인데 천정 여기저기서 윗물이 낙숫물처럼 내리고 바닥은 철벅거리는 진창이다. 그러나 지상에서 억세게 바람을 빨아올리는 덕에 이 굴은 그 어디보다도 선선하였다.
천정은 역시 낮고 경사가 심한데 바닥까지 질고 고르지 못해서 엎디어 손으로 걷잡고 발로 더듬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나 이 길은 석탄차가 다니지 않으므로 차에 다칠 걱정은 없었다.
기인 풍갱 아래위는 새까만 어둠이 입을 벌리고 반딧불 같은 이십여 개의 전등불을 삼키려 하는데 전등은 전등대로 그 어둠을 길라젖히면서 사람을 비쳐 주고 있었다. 큰 어둠과 작은 밝음의 처참한 싸움을 연상하게 하였다. 학생들은 뻔질나게 한참 기어 내려갔다.
“선생, 여기가 지상에서 몇 미터나 됩니까?”
하고 재수가 물으니까 선생은 “그렇지……”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아마 지상에서 삼백 미터나 될 거요. 직경으로 말이오” 하고 선생은 대담하였다.
“무던히 내려왔군요. 직경으로 삼백 미터면…… 그런데 여기가 지상으로 치면 어느 만침 될까요? 예서 바루 꼿꼿이 올라간다면 말입니다.”
하고 재수가 다시 물으니까 김 선생은 잠시 멈춰 서서 천정을 쳐다보며 생각하다가
“그렇지, 여기가 본 사무실 남쪽 산밑쯤 될 테지. 그러니까 여기서 남으로 나가면 바로 제4갱 (第四坑)으로 나갈 거요.”
그리고 선생은 풍갱에서 곁 굴로 삐어져 들어갔다.
갱도 수선하는 사람들이 목재를 메고 다니고 물 뽑는 모터 소리가 펑펑 하고 들려 왔다. 사람 사는 곳 같았다. 인간의 삶이 여기서 움실거리는 것을 느꼈다. 어디서도 인간은 살 수 있는 것이라 싶었다. 차츰 무서운 생각이 덜하여졌다.
그러나 불시에 바깥을 생각하니 지금 지하 삼백 미터 굴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또 일편으로는 어서 나가고 싶은 맘과 나가서 큰 탐험이나 갔다 온 것처럼 자랑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럴 판에 어디서 하늘땅이 짝 짜개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굴속을 빨끈 뒤집어 놓을 듯이 사납게 굴러왔다. 그 무서운 소리는 한참 꼬리를 끌고 굴속 굽이굽이로 찾아갔다. 학생들은 부지중 몸을 쭁그리고 귀를 막았다. 가슴이 쩔렁 내려앉으며 도가니 속같이 끓었다.
‘이게 필시 무슨 변이 났구나. 우리 나갈 길이 막혀 버리지나 않았나.’
하고 학생들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무 말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저 모두들 김 선생만 하늘같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 무서운 소리가 다 지나간 뒤에도 귀는 멍멍하니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잠시 뒤에 김 선생이 :
“그게 무슨 소린지 알겠소?”
하고 일부러 심평 좋게 씨무룩하며
“그게 굴속에서 남포질하는 소리요. 석탄을 파나가다가 암석이 나지면 남포로 그것을 깨뜨려 버려야 하니까.”
하는데 재수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아서 머리를 흔들고 멍하니 김 선생을 쳐다보았다. 귓속을 좀 파보았으면 싶었으나 귓전까지 땀이 흐르고 석탄가루가 씌웠는데 또 손이 어지러워서 그런대로 연신 도리만 흔들고 있었다.
“동무들도 이제 저걸 해야 하오. 한두 번 해보면 재미가 나오.”
하고 선생이 말을 해서 그제야 모두 맘을 놓았다.
그 무서운 소리를 겪은 뒤 재수는 도리어 무섬증이 물러가는 것을 깨달았다. 갱 내가 오히려 너무 조용한 것 같았다. 조금 더 무엇이 떠들썩 고아 댔으면 싶기도 하였다. 유량한 관현악을 한바탕 벅적 울려 댔으면 그 소리소리가 굴속으로 잘도 돌아다닐 것이라 싶었다.
“성춘 동무, 노래나 한마디 부르라구.”
하고 재수가 그를 보며 웃으니까 성춘이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서슴없이 한마디 불렀다. 오래도록 그 요란한 주물공장 기계 소리와 싸우면서 노래를 해오던 성춘의 성대는 놀랄 만치 우렁차고 아름다웠다.
다른 학생들도 어쩐지 마음이 거뜬해졌다. 무섬증이 점점 가시어졌다. 무섬을 겪어야 무섬이 물러가는 것이요, 무섬을 맴돌면 언제든지 그 무섬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아직 열두 시도 못 되었는데 광부들은 어느새 점심을 먹기 시작하였다. 나무토막에 또는 펌프와 모터 위에 제마끔 걸터앉아 그 검은 먼지 내리는 속에서 무슨 고량 진미나 같이 맛나게들 먹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볼 때 재수는 조금 더 맘이 안존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속에서 인간의 생횔이라는 것을 보는 것이 어쩐지 맘이 탐탐하였다. 굴과 생활이 결코 저마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합치고 얼리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점심 먹는 사람을 보고도
“수고들 하시오.”
하고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하였다. 광부들의 눈과 전등이 유난히 번쩍이었다˛
어떤 데서는 광부들이 벌써 점심을 마치고 동발에 비뚜름히 기대어 도간도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바깥 같으면 지금 식후 일미인 담배들을 피워 뭏고 지껄이고들 있을 것인데 이 안에서는 폭발을 염려해서 절대 담배는 못 피는 것이다.
재수는 그 이야기판에 끼여서 광부들의 감상을 듣고 싶었다. 처음 굴속에 들어왔을 때 무섬증이 안 나더냐, 며칠이나 겪으니까 그것이 없어지더냐, 무섬증이 없어졌다 하더라도 굴속과 바깥이 꼭 같이 생각될 수 있겠느냐, 아니 혹시 이 안이 도리어 벅같보다 더 대견하진 않으냐 하는 따위를 묻고 싶었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물을 필요가 없는 말일 것 같을 뿐 아니라 오히려 묻는 것이 수치인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재수는 어쩐지 그 광부들 곁에 붙어 앉아서 다정한 이야기라도 해보고 싶었다. 무언지 모르게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아 조곰 쉽시다. 이만하면 오늘 견학은 무던하오. 이제 감상들이나 이야기하소.”
김 선생이 등산장으로 벽을 똑똑 두드려 가며 그 소리를 끼웃이 듣고 나서 학생들을 돌아보며 다시
“하루에,너무 많이 다니면 다음날에 지장이 생기니까…… 늘 다니는 사람도 굴속을 종일 다니면 그날 밥은 뻐근해서 걸을 수 없거든…… 자 그 나무토막 위에들 앉으시오.”
하고 자기도 앉았다.
학생들도 삐익 둘러앉아 쉬었다.
“자아, 이게 담배 못 펴울 일이 걱정 아닌가.”
성춘이가 그러니까 모두 동감이라는 듯이 침을 삼켰다.
“이 안에선 불은 절대 금물이오. 그러지 않아도 아주 드물게나마 가스가 발생하는 일이 있는데 그때는 위험해서 남포도 튀우지 못하오. 물론 작업을 시작하기 세 시간 전에 가스가 발생하지 않을 것인가 굴속을 미리 검사하고 또 부단히 위험에 대한 예방을 하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불은 절대로 사용해서 안되오.”
하고 김 선생이 주의를 주었다.
“담배는 금물이지만 술은 괜찮아. 제육 인주를 받쳐 먹으면 극상 더할 나위 없구.”
하고 잔잔간이나 하는 성춘이가 말하고 이어 술과 제육이 탄독(炭毒)을 치는 데 제일 좋다고 발을 달았다.
“술 담배 취미 따위가 다 뭐요. 이제 굴속에서 일해 보면 밖에서 일하는 것보다 도리어 재미가 나지요. 새 불을 뚫고 앞을 막는 바위를 찢어젖히고 없어졌던 탄맥을 다시 잡고 올리뚫고 내리파고 하는데서 그야말로 정열적인 흥미를 느끼게 되오. 더욱이 이 탄광은 포켓식 단층이 되어서 엾어졌다가는 새로 나지고 또 없어지고 해서 이걸 찾아내는 것이 한 개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처럼 기쁜 일로 되어 있소. 그러기 이 속에서 일을 하는 거지…… 일본 어떤 탄광엘 가보면 그야말로 쥐굴 같은 데를 기어들어가고 기어나고 하는데 천생 목욕이란 구경도 못 해서 아주 진짜 흑인이지요. 자식까지 애시에 검둥이를 낳으니까 더 말할 게 있소. 그렇건만 거게서도 일하는 사람이 있거든.”
하고 김 선생은 잠시 말을 쉬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러나 여기는 거기다 대면 꽃이우. 더욱이 노동법령이 실시된 이후부터 광부들은 신이 나서 너희들 지식을 조아파는 사람만 일한다더냐, 우리도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할 게니 보아라 하듯이 능률이 버쩍버쩍 올라가고 있수. 왜놈시대에는 한 사람이 하루 한 톤 육칠백쯤 팠는데 해방 후에는 두 톤 오륙백까지 올리는 사람이 있소. 동무들도 그런 결심을 가져야 하오. 그런데 그 결심은 내가 여기서 선전한다고 해서 생길 것이 아니고 동무들이 몸소 일하는 데서 자연히 생기게 될 거요. 또 그렇게 생긴 결심이래야 그게 원판 진짜란 말이오.”
그리고 김 선생은 또 앞에 서서 걸어갔다.
“선생, 이 석탄이란 아마도 사람에게 그라지 해가 안 되나 부지요. 그러게 이 속에서 십 년, 이십 년을 노동해도 견디어 내지요.”
하고 성춘이가 물었다.
“그렇지요. 이 석탄 속에 유황분이 있어서 사람 몸에 좋다구 하오.”
“모다 살게 마련이군요.”
하고 재수가 선생의 말을 받아 가지고 빙긋이 웃었다.
학생들은 다시 풍갱으로 돌아 나갔다. 그러나 이제는 아까처럼 겁이 나지 않았다. 김 선생이 그 급경사의 길을 재빠르게 걸어 올라가는데 학생들은 손으로 땅을 짚다시피 해가며 다급히 그 뒤를 따라 올라갔다.
“선생! 이제 돌아 나가는 길입니까?”
누구의 소리인지는 몰라도 반가운 듯한 소리다. 그리구 그는 선생의 대답도 기다릴 사이 없이
“조곰 더 내려가 볼걸…….”
하고 혼잣말모양으로 중얼거렸다.
무언지 모르게 모두 기분이 가벼워졌다. 광부들을 만날 때마다 왼으로 김사한 마음이 들었고 동발이며 철길이며 하는 보이는 모든 것이 한결같이 대견해 보였다.
그 어둡고 무덤던 굴속이 점점 그들의 육신에 가까워 오는 것 같았다.
학생들은 갱도를 돌고 돌아 갱내 사무실 앞에 이르렀다. 거기서 조금 더 나가면 차도가 있고 그 종점에서 인차를 타면 잠시 후에 다시 밝은 세상을 구경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이제 인간 세상이 바로 머리 위에 와 있는 것이다.
갱내 사무소라야 그것은 석탄 속에 지은 조그만 널집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출입문 위에 붙은 표어가 전깃불에 비칠 때 재수는 소스라쳐 놀랐다. 아니 눈이 번쩍 뜨여졌다.
“여기에도 이런 글발이 붙었는가!”
하는 생각이 펀뜻 들었다.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어쩐지 역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 건설을 위하여 모든 곤란을 극복하자!……
첫 글자만 보아도 무슨 소린지 알 만치 많이 본 글발이건만 재수는 한 번 더 소리를 내어 그것을 읽어 보았다. 읽으면서도 이런 땅굴 속에서 이런 글발을 보는 것은 어쩐지 꿈속 같았다.
왜놈들이 조선 사람들을 빨아먹던 감옥같이 무서운 이 굴속에 오늘은 조선 글을 ――그나마 항쇄족쇄에 얽혀 있던 노동자의 손으로 의젓이 써붙인 것이다. 재수는 한 번 더 그 표어를 훑어보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는 두 동무가 있었다. 반가이 맞아 주었다.
실내에도 표어가 여럿 붙어 있었다. 더욱 거기 붙어 있는 5개조의 노동 규율은 다만 규칙일 뿐이 아니라 진실로 그것은 민주 조선의 주력권으로 건설의 진두에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의 거룩한 약속이요 마음의 구호인 것이다. 재수는 여러 번 거듭 그것을 읽어 보았다.
인차를 내려 보내 달라고 김 선생이 운전수에게 전화를 걸어 놓고 사무실을 나갔다. 학생들도 따라 나갔다. 잠시 걸어오는 사이에 인차가 벌써 내려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턱대고 기뻤다.
늙은 차장이 역시 앞 결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빙긋이 웃으면서 잘들 구경했소?”
하고 인사하였다. 그리고 또 웬만한 사람들은 이만침만 내려와두 오금이 꼬이고 한기가 들어서 벌벌 떨면서 애걸복걸하다시피 하고 돌아들 나가더란 말과 그러나 세상에는 고생과 싸우며 지하에서도 밝은 세계를 찾는 씩씩한 사람도 없으란 법은 없다는 말을 덧붙여 말하였다.
학생들은 밖에 나가 탈의장에 흙과 검대기투성이로 된 작업복과 신발을 벗어던지고 목욕탕으로 점병점벙 뛰어들어갔다. 물의 온도도 생각할 사이 없이 맨 첫손에 뛰어든 학생이 왜가리 소리 같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엉겁결에 껑충 뛰어 나오는 바람에 처음으로 모두들 뱃속에서 나오는 웃음을 터쳤다. 목욕물이 몹시 뜨거웠던 것이다. 학생들은 오늘 오른 석탄 검대기는 물론 오래 묵은 때까지 말끔 벗겼다. 서로들 번갈아 가며 때를 밀어 주기도 하였다.
날씨는 몹시 더웠으나 기분은 산뜻하였다.
그날 저녁은 미상불 누구나 피곤하였다. 건건이 없느니 찌개가 없느니 하는 소리도 없이 후닥닥 밥을 처조기고 나서 학과 복습하는 시늉만 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코들을 골았다.
재수는 맨 나중까지 남아서 공부하다가 편지 몇 장 쓰려고 책을 덮었다. 그러나 곧 펀지를 쓰지 못하고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집 생각이 그처럼 못 견디게 애틋한 것은 아니나 그래도 그만 집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도 노상 없지는 않았다. 지금 돌아간다 하더라도 원시 밥벌이터를 못 잡을 것도 아니었다.
어디라고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으나 땅속보다 밝게 살 곳이 응당 있을 조반석죽이나마 제집에서 통근할 일터가 더 좋을 성싶었다.
첫째 면인민 위원회에서도 요전에 사람을 정리한 연후 아직까지 새 사람을 다 바꿔 들이지 못한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 웬만치 줄을 밟으면 그 자리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도 들은 일이 있었다.
재수의 집은 대대로 이름 없는 소작인이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는 이를 악물고 허리띠를 졸라메어 가면서 재수를 중학교까지 보냈다.
재수의 아버지는 재수 어릴 적에 우차를 몰고 읍에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길에 순사를 만났는데 이놈은 덮어놓고 재수의 아버지를 모주 먹은 돼지처럼 후두들겨 패었다. 무슨 이유인지 처음엔 물론 알지 못했다. 파출소에 끌려가서야 밤에 초롱없이 우차를 몰고 다닌다는 데 그 이유가 있는 것을 알았다. 왜놈 순사놈과 조선인 손사놈이 마침 졸리던 판에 잘되었다는 듯이 번갈아 가면서 재수의 아버지를 박차고 쥐어박고 하여 허리 괴춤에 끼웠던 곰방대까지 부러졌다.
그래서 그 이후 재수의 아버지는 더 한 번 재수를 잘 길러서 이 설치를 하려고 앙심을 먹었다. 그러나 재수가 중학에 다녀도 순사놈들은 청결할 때마다 나와시 툭하면 뺨을 치고 욕지거리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재수가 중학을 졸업해도 변변한 일자리 하나 얻어 생길 바 만무한 건 고사하고 보국대로 몇 차례씩이나 끌려 나가더니 나중은 징용에 걸렸다. 중학까지 마친 천금 맞잡이 소중한 자식을 빼앗기게 된 그의 아버지는 그만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무리해도 이 화단을 면해 낼 도리가 없으리라고 생각하며 간이 콩알만큼 되어있는 판에 재수가 그만 들고 빼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혼자 속으로 ‘죽기보다 까무러치는 게 낫다’ 하고 속으로 은근히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 대신 그 아버지가 날마다 놈들에게 꿀려가서 얻어맞고 결국은 보국대로 끌려 나갔다. 보국대도 유반부동이었다. 재수 아버지가 끌려 나간 비행장에서는 도망하다 들키기만 하면 느닷없이 총살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매일 고역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이놈들이 어떻게 일을 몰아 세우는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미처 씻을 겨를이 없었고 또 씻을 수건조차 없어서 어지러운 손등으로만 내내 땀을 받아내고 씻어 내었다. 그래 그것이 원인이 돠어 종시 눈병이 나서 거의 폐안이 되다시피 되었다.
그래도 왜놈들은 재수의 아버지를 놓아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 팔월 십오일에야 들여보냈다.
그 뒤 며칠 만에 재수가 돌이왔을 때 아버지는 눈이 대뜸 뜨이노라고 심봉사만치나 기뻐하였지만 실상인즉 뒷말 성택이가 놀러 올 적마다 “그게 재수냐?” 하고 물을 만치 눈이 어두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아머지의 눈은 해방의 기쁨 속에서 요행 조금씩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봄에 실시된 토지개혁으로 하어 꿈도 못 꾸던 굴죽 같은 천수답에 두루장 상전까지 섬겨서 까마득한 선대로부터 내려오던 소작인의 이름을 첨으로 벗었고 그래서 그 땅을 부여안고 뺨을 비빌 듯이 좋아하고 설치는 통에 그럭저럭 눈이 거의 다 나아 버렸다.
이제 내 땅이 생겼으니 더 잘 가꿔야겠다고 마을에 나갔다가도 오줌똥이 마려우면 으레 진둥 걸음을 쳐와서 자기 집 뒷간으로 들어가고 밭갈이를 나서면 아직도 눈이 시원치 않건만 언제나 재수나 재수의 형님 앞에 서서 동네 어귀에서부터 벌써 저고리를 벗어 들고 다그치는 아버지였다.
금년 농사를 마련해 놓고 이제 세월만 바라고 있는 터이지만 그래도 재수는 그 아버지의 집을 생각할 때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아버지와 그 가족의 몸에 악마의 그림자처럼 남아 있는 왜놈들이 짓밟아 논 자리며 저며 놓고 오려 놓고 갈라놓고 찢어 논 가지가지 악형의 자취가 재수의 눈에 선히 떠왔다. 신발이 없이 맨발로 다니는 아내가 유리 조각을 밟아서 발을 절룩거리는 것을 보고 온 그다. 호열자가 돈다 해도 주사 한 번 맞아 본 일이 없는 그 집 식구들인 것이다.
그래서 가족들의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풀어 주리라고 마음에 거듭 다짐한 재수였다. 집에서도 응당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제가 가족의 이 심정에 대답할 수 있는가 생각하면 아직은 막연했다. 그런데 집에다 대체 무어라고 편지를 쓸까. 재수가 집을 떠날 때 “그게 대학이라는 거냐, 학비서낀 대준다는 걸 보니 참 놀라운 학교인가 부다” 하고 아들이 별 따러 가는 것처럼 여기고 들썩 고아 대던 아버지였고 “집에서 찾아가면 만나게 해줄까요? 들여놓아 주지 않으면 가두 소용 없지 않아요” 하고 아랫다리가 꼬일 만치 으리으리한 학교로 가는 줄로 알던 아내였다.
그런데 오자바람부터 거림쟁이가 되어서 석탄을 파고 있노라고 섣불리 편지 쓸 수는 없었다. 재수는 여러 가지로 궁리하다가 그저 잘 와서 잘 먹고 공부 잘하노라고 두루뭉설하게 썼다. 그리고 끝으로 한참 생각하다가 일 년이면 졸업하니 그동안 참고 고생하여 달라고 썼다. 그 편지는 아내가 아버지에게 읽어 드릴 것이었다.
편지를 다 쓰고 나니 재수는 마음이 조금 거뜬해졌다. 어차피 꾹 참고 공부를 해야 하리라고 다시금 맘에 다짐두었다.
비록 굴속이라 하더라도 남들도 일하고 있는 터이요, 또 저보다 우주 할아비 같은 선생들도 이 땅속에서 학생과 같이 그 고생을 겪고 있는 것이다. 재수는 어쨌든 좋은 편으로만 생각을 돌리려 하였다.
그러나 실상 아직도 흔들리는 구석이 많았다. 조금 더 견디어 보아서 정 무엇하면 집으로 돌아가지, 달리 직업을 구해 보지 하는 생각이 마치 염낭처럼 한옆에 달려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침부터 붉은 군대 비행기 소리가 탄광 마을 낮은 하늘에 우렁차게 울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학과를 마치고 점심을 먹자 곧 굴로 들어갔다. 어저께보다는 모든 것이 조금 심상해졌다.
그렇게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인차가 절커덕거려도 그건 으레 그런 것이어니만 생각하제 되고 내려갈수록 어둠이 깊어지고 또 어둠이 쫓아오는 굴속도 역시 우레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노상 아주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저께보다는 마냥 덜하였다. 그리고 어제보다 굴속이란 것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무섬을 겪는다는 것은 곧 무섬을 이기는 한 개의 새로운 대답성의 창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제 인민 시간에 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자연을 정복할 뿐 아니라 그것을 고붉처럼 쥐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으로 만들어 내놓아야 하오.”
이 말은 곧 이 무서운 굴을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우리의 떡으로 빚어 놓으란 말일 것이라고 재수는 다시금 생각하였다. 그러고 보니 이 굴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자연히 알려지는 것 같았다. 하많은 직업 중에서 그들은 어찌하여 이 굴속을 택하였을까, 그리고 또 이곳을 수이 떠나려 하지 않을까……
그것은 모르면 몰라도 이것을 정복하여 제 것으로 만드는 창조의 기쁨이 그들을 붙들고 놓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 노동자들더러 만일 진종일 화려한 살롱에 앉아 있으라고 한다면 필시 이런 학정은 없다고 두덜거릴 것이다. 거기에는 그들의 창조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활이 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굴을 고향으로 하는 것이요, 여기에서 향수를 느끼는 것이다.
이윽고 학생들에게는 그들이 석탄을 팔 굴이 지정되었다. 그들을 가르치는 데 필요한 곳을 김 선생이 어저께 돌아다닐 때 미리 보아 두었던 것이다. 등산장 꼭지로 굴속을 두드려 보는 것이 곧 이런 발견을 하기 위해서인 것이니 그걸 두드려 보는 것이 곧 그에게는 음악이요 생활인 것이다. 이것 때문에 이 굴속은 애인과도 같이 매력이 있는 것으로 김 선생께는 생각되었던 것이다.
김 선생은 학생들에게 첫날부터 새로운 체험과 지하의 지식을 주려 하였다. 그것은 실상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채탄은 한 번 보면 그 자리에서 누구나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김 선생은 채단을 하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굴 (掘進)을 실험시키기로 하였다.
“모두들 수건으로 입을 싸메시우.”
하고 김 선생 자신두 임을 싸메고 손수 착암기 스위치를 넣었다. 압착된 공기가 무서운 힘으로 모터를 돌리자 착암기 송곳이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김 선생은 고무래형으로 된 그 송곳 대가리의 두 팔을 두 손으로 단단히 거머쥐고 하복부에 댄 채 굴속 바위에 그것을 들이댔다.
돌이 갈리는 아츠랍고 요란한 소리가 귀를 찔렀다. 돌가루 먼지가 전등 앞에서 회오리바람처럼 춤을 추며 뿌옇게 굴속으로 퍼져 갔다. 숨이 막히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우선 눈앞이 쇠배 보이지 않았다.
김 선생은 잠시 손을 쉬고 “자아 지금 패어진 구멍 속에 물을 넣우시오. 그래야 잘 패어지오” 해서 재수가 쓰라린 눈을 슴벅거리며 수롱의 물을 끼얹었다.
“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오. 자아 누가 해보려우?”
하고 선생이 학생들을 둘러볼 때 재수가
“날 주십시오.”
하고 땀에 젖은 저고리를 벗어던지고 그 송곳을 잡았다.
재수는 그 두 자 가웃이나 되는 암석 뚫는 기다란 송곳을 선생 하던 대로 두 손으로 거머쥐고 바위에 들이댔다. 송곳은 다시 무서운 속도로 돌아갔다. 송곳에서 내뿜기는 탄력 있는 무서운 힘이 재수의 두 손을 뿌리치려 하였다. 재수는 더욱 힘을 주어 송곳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 돌아가는 송곳의 힘과 재수의 뱃속에서 나오는 힘이 서로 이기려고 악을 쓰며 싸워댔다. 재수는 손이 저려났다. 손 뿐 아니라 뼛속까지 발끝까지 저리고 울리는 것을 깨달았다.
재수는 문득 정열적인 싸움을 의식하였다. 그것은 통쾌한 일이었다. 돌가루가 흩날렸다. 굴속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희감해쳤다. 굴속은 더 더워졌다. 학생들은 한 사람, 두 사람씩 위통을 벗어던졌다.
재수의 몸에서는 땀이 물같이 흘러내렸다. 이마에서 내린 땀이 눈을 가렸다.
재수는 문득 아버지의 눈을 생각하였다. 자유와 기쁨을 잃은 지난날의 노예 노동을 생각하였다.
‘왜놈이 그 눈을 멀게 했던 것이다. 제 눈을 저로 부호할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얼마든지 내 눈을 보호할 수 있다. 아무리 일한다 하더라도 내 눈은 멀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니 땀 흐르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만일 지금 왜놈이 곁에 붙어서서 채찍을 들고 있다면 벌써 눈이 쑤시고 앞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제 왜놈은 없다. 완전히 없다. 영원히 없다. 재수는 아직 견딜 만하였다. 그는 무리가 지나가도록 버티고 있었다. 그때 모터가 마치 태엽이 풀린 시제처럼 푸르릉 하며 섰다.
“여보 동무, 그만 하구 다른 동무에게 돌리우.”
김 선생이 그렇게 말하자 성춘이가 꾸지르고 나섰다.
“아니 성춘 동무는 주물공장에 있었으니까 이만한 경험은 있을 거요.”
하고 명호가 다쫓아 나왔으나 그때는 벌써 억센 성춘의 손에서 송곳이 다시 돌아갔다. 본시 성춘은 말이 없는 동무다. 말 대신에 일을 메고 나서는 사람이었다. 재수의 가슴이 뿌연 먼지 속에서 높게 풀럭거리는 것이 보였다. 땀은 아직도 비오듯 솟았다. 그래도 어쩐지 재수는 장쾌하였다.
그 악독한 왜놈들의 가슴에 이 억센 송곳을 박고 돌리는 것처럼 재수는 통쾌하였다. 아버지의 원수를 지금 갚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아내가 찾아와도 이 통쾌한 복수를 보여주지 못할 것은 없었다. 오늘은 검둥이의 생활을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이것은 바로 창조요 기쁨인 것이다.
한 십오 분쯤 되었을까, 그동안에 팔 분 직경의 두 자 길이 구멍이 암석에 뚫어졌다. 그리고 김 선생이 시키는 대로 그 속에 유산 암모니아를 다져 넣고 그 어귀에 뇌관(雷管)을 찌르고 그 끝에 전선을 달아 가지고 거기서 한 백 미터쯤 떨어진 굴로 비켜 갔다.
“귀를 막으시오. 소리가 몹시 요란하오. 어저께 들어 봤지요.”
선생이 그러며 전선을 발전기에 달아 놓고 스위치를 틀자 잠시 뒤에 굴속을 발칵 뒤집어엎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사나운 회오리바람처럼 굴속을 줄달음쳐 왔다.
미처 귀를 막지 못한 사람은 물론 미리 귀를 막고 있은 사람도 귀에서 손을 뗀 뒤까지 아주 청각을 잃은 듯이 귓속이 뗑하기만 하였다. 모두 잠시 텐둥이처럼 멍청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도리어 귓속에서 풍혈이 터진 듯 여러 소리가 징징 울렸다. 마치 머릿속에 박질러 들어 있던 소리소리가 이제사 되흘러 나오는 것 같았다.
재수는 이편저편 귀를 기울여 가면서 손바닥으로 여러 번 두드렸다. 그러며 남포 터진 자리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부지중 머리를 천정에 찧고 허리를 꾸부렸다. 그런즉 이번은 다리가 허전거려졌다. 그러나 어쩐지 재미가 났다.
굴속은 여전히 먼지와 연기로 꽉 차 있었다. 전깃불 속에서 희미하게 바위쪽이 쪼개져 떨어진 것이 보였다.
“자아 가래로 이 버력 (돌멩이 또는 바위 쪼개진 것)을 퍼서 이 곁웅덩이에 처넣으시오. 그리고 한편에서는 지게에 져서 구루마 있는 데까지 나르시오.”
김 선생의 말에 따라 학생들은 손을 갈라 가지고 퍼담고 메우고 나르고 하였다.
재수는 역시 맨 앞에서 가래로 버력을 퍼서 곁웅덩이를 메웠다. 기쁨으로 일하는 것이 가장 자기를 잘 살리는 길인 것을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
만일 이 속에 제 몸을 출렁 던져 버리지 않는다면 이 굴이 자기의 세계로 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재수는 벌써 어느덧 이 굴속에서 일할 재미를 얻었던 것이다. 굴속이 대충 정리된 때에 김 선생은 학과에서 가르치는 포켓형 탄맥에 대해서 실지로 설명해 주었다.
“이 포켓형이란 것은 가다가다 탄맥이 없어져 버리는데 다시 그 근방 지층들을 조사해 보면 그 꿇어진 줄이 어느 만침에 가서 다시 살아 날지를 알게 되오. 그래서 그 줄을 찾아가기 위하여 암석을 뚫고 다시 그 줄을 잡아내는 거요. 동무들의 경험과 지식으로 그것을 발전하게 되는 때, 그리고 새로 어디다가 굴을 파야겠다는 확신이 생길 때 동무들은 결코 이 굴을 버리고 갈 수 없소.”
하고 김 선생이 어저께 가르친 학과를 인용해 가면서 설명하였다.
“그걸 인차 알 수 있을까요?”
하고 재수가 물었다.
“그럼요. 학과를 배우면서 이렇게 매일 실지로 일하면 보통 광부들이 오 년, 십 년을 해서 우 터득하는 것을 일 년이면 넉넉히 알 수 있지요. 아니 단 몇 달에도 알 수 있지요.”
선생이 말하였다.
어느덧 버력은 대강 다 치워 버렸다.
“자아 인제 좀 쉽시다.”
하고 선생이 말해서 재수도 삽을 던지고 그 자루에 걸터앉았다.
“한 사람이 하루 잘 파면 얼마나 팝니까?”
재수가 물었다. 한 번 최고 기록을 내고 싶은 엉뚱한 생각이 어느새 벌써 들었던 것이다.
“그야 사람 나름이지만 대체로 해방 전보다 해방 후에 와서 채탄율이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오. 해방 전은 한 사람이 하루 평균 한 톤 반 조금 남짓이 팠는데 지금은 평균 두 톤을 넘기지요. 그러나 앞으로 조선 탄광에서도 설비의 개선과 아울러 스타하노프 운동 같은 것이 있을 거니까 그때는 굉장한 숫자를 보일 거요. 동무들도 십 년, 이십 년을 여기서 싸운다면 반드시 스타하노프 같은 노동 영웅이…… 아니 그보다 나은 영웅이 될 수 있지요.”
하고 선생이 웃었다.
“아니 이 탄광에는 노동 영웅이 있지 않습니까. 요전 5월 1일에 표창받은 동무 말이에요.
“아니 아직 노동 영웅이랄 건 없지만 모범 노동자로 표창된 동무는 있지요. 바루 여기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그 동무가 일하고 있소. 금년까지 꼭 스물두 해째인데 이 탄광에서는 제일 채탄 능률이 높지요. 이제 동무들도 만나게 될 거요. 거기서 열아홉 해째 되는 동무도 함께 일하고 있소.”
“참 어지간한 친구들이군요.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이십 년이라니.”
“아무렴 그렇구말구. 왜놈 아래에서 이십 년을 겪어 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나는 일이지요.”
하고 선생은 또 이런 말을 부언하였다. 왜놈 시대에는 하루 열두 시간 내지 열네 시간 노동이었다. 그렇건만 언제든지 일본인 노동자보다 절반 삯전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그 강도놈들은 동양 침략 전쟁을 일으킨 이래로는 해군과 현병들이 이 광산에 와서 밤낮없이 노동자를 몰아세웠다. 놈들은 노동자들이 병나거나 죽거나 무서워하지 않았다.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물론 노동자를 늘이지는 않았다. 오로지 노동 강도만을 올리려고 들었다. 한 노동자가 두 사람, 세 사람의 일을 하도록 다그쳤다. 압착기로 기름을 짜듯 노동자들을 며칠씩 붙바이로 굴속에 처몰아 넣고 그들의 노동력을 짜냈다.
그러나 해방되자 노동자들은 용감히 싸웠다. 사무실을 포위하고 노동자에게서 빨아간 돈을 내놓으라고 놈들을 닦아세웠다. 한즉 이 탄광의 책임자이던 해군 소장 이하 잔나비 새끼들이 노동자의 저금 백오십만 원까지 몽땅 긁어먹고 겨우 칠만 원을 뻔뻔스럽게 내놓았다.
노동자들은 격분하였다. 이에 겁을 집어먹은 놈들은 이십칠만 원을 더 내놓고 또 조르니까 삼십칠만 원을 또 더 내놓았다. 그래서 그걸로 우선 퇴직금과 임금을 지불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 왜놈 주계 대좌를 서울 해군부에 끌고 가서 오백만 원을 더 찾아다가 노동자들의 저금 백오십만 원도 전부 받아 내고 그 뒤에도 또 사십만 원을 찾아내어 그것으로 탄광을 노동자의 손으로 계속 경영했던 것이다.
노동자들은 여기서 자기들의 힘을 깨닫고 또 동시에 자기들의 손을, 이 탄광을 왜놈 시대보다 훨씬 나은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결심으로 싸워 왔다.
해방 1주년이 어느덧 발 앞에 왔다. 이 탄광에서는 벌써부터 기념돌격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의 돌격의 목척은 덮어놓고 석탄만 많이 파내는 데 있지 않았다. 왜놈들이 강도 전쟁을 하노라고 언제 기계 수리할 사이도 없었고 또 물자도 부족했던 관계와 그보다도 나중은 공장이고 탄광이고 조선 사람을 망탕 처넣고라도 어떻게 강도 전쟁을 이어 댈까 하는 판이어서 이 탄광도 구새들기 시작한 지 오래다. 그런데 또 지난번 돌격운동으로 전반적 수리에 착수 못 하였다. 그래서 이번 돌격운동은 말하자면 탄광 기계 전부의 수리와 개조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왜놈의 착취에서 지내 늙어빠진 이 탄광을 노동자들의 손으로 다시 젊어지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운동은 이미 개시되었다.
증동기(蒸勤機)를 전동기(電動機)로 고칠 것, 생산비를 절약하여 원가를 내릴 것, 피치가 엾으므로 대용 피치로 연탄을 만들어 내도록 할 것, 우기(雨期)를 앞두고 갱 내외의 펌프를 정리하여 배수 공사를 철저히 할 것, 석탄 운반을 원활히 하고 저단장(貯炭場) 을 원동소(原動所)에 집중시키고 월산 1만 톤을 내기 위하여 한 사람이 매월 11톤 이상을 파도록 할 것, 그 밖에 갱도 수리와 굴진(掘進)에 적극 노력할 것.
이런 것을 목표로 돌격운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고도 노동자들은 자진하여 건축과 수리에 필요한 자갈을 실어 오고 일요일에는 농촌에 가서 농민들을 도와주고 또 수재를 방지하기 위하여 방축 역부쇄도 일부 노동자들을 며칠에 한 번씩 단체 동원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싸여 재수는 어느덧 딴사람같이 변하여졌다. 보통 한 보름 동안 매일 계속해서 굴속에서 일을 해야 공포심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재수는 한 4,5일 지나더니 어느새 벌써 아무렇지도 않았다.
뿐 아니라 학생들은 자진하여 해방기념 돌격운동에 참가하였다. 나라를 위하고 겨레를 위하는 길은 먼데 있지 않았다. 한 가래라도 더 파고 알탄 한 개라도 더 만들어 내는 것이 곧 그 길이었다. 재수는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그는 어느 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입으로 만세 만세를 부르기보다 우선 내가 파낸 석탄을 먹으로 해가지고 또는 잉크로 해가지고 내 머리에 만세를 새기리라. 그래서 필요한 때는 이것을 국기로 해가지고 나 자신에게 흔들어 보이리라.’
그러므로 재수는 반가운 것을 볼 때마다 그 머릿속의 국기가 먼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굴속에서 일하는 광부들을 만날 때마다 그의 머릿속의 국기가 흔들리고 거기서 만세! 소리가 났다. 그는 늘 이렇게 다른 광부들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하였던 것이다.
재수는 지금 저 자신도 나랏일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재수는 어느 날 밤에 탄광 거리를 걸으면서 문득 생각하였다.
저 자신은 단지 강변의 한 알 모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 모래도 별을 볼 수 있고 또 별두 어김없이 이 모래를 비춰 주고 있는 것이다. 재수는하늘을 쳐다보고 별을 세어 보았다. 어릴 적에 별을 보며 ‘별 하나 나 하나’ 하고 세어 보던 생각이 문득 났다.
땅을 내려다보아도 거게 별이 있는 것 같았다. 재수는 어깨를 추며 한참 걸어갔다. 무언지 모르게 슬기가 났다. 그런데 별안간 참말 별이 눈앞 땅에 보였다. 재수는 주춤하고 내려다보았다. 담뱃불이었다. 앞에 가던 누가 버린 모양이었다.
재수는 부지중 그 불을 꼭 밟았다. 그리고 좌우를 휘둘러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굴속은 아니었다. 굴속처럼 불이 위험한 곳은 아니었다. 촌 거리의 집들이 배좁지 않게 띄엄띄엄 보였다. 그러나 지금 불을 밟은 재수의 몸은 여직 굴속에 있었다. 굴속의 재수나 굴 밖의 재수나 재수는 꼭 한 사람이었다.
재수는 불을 밟고 있는 자기의 발을 통하여 나라를 느끼고 겨레를 느꼈다, 그것은 결코 먼데 있지 않았다. 발 앞에 있었다. 아니 제 몸 속에 있었다.
재수는 새로운 기분으로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려고 생각한 지 오래나 실상인즉 바빠서 다잡아 앉아 편지 쓸 사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학교로 가고 굴로 들어가는 것이 일대 중 큰일이었다.
오늘도 하루의 일을 마치고 굴속에서 나와 금시 날 듯이 산뜻한 기분으로 목욕하고 있는데 수위가 와서 “오늘 다섯 시 반에 훈육소에 모이랍니다” 하고 일러서 모두 또 무슨 일 때문일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였다.
“무엇 때문이랍니까? ”
하고 재수가 물었다.
“글쎄, 아마 팔 일오 기념행사에 대한 이야기가 있나 봄디다.”
“팔 일오!”
재수는 순간 감격에 넘쳤다. 날 것 같았다. 목욕에서 나와 물을 씻고 몸과 맘이 함께 더 가벼워졌다. 훨훨 날고 싶다. 다섯 시 반이 오래지 않았다. 오늘도 붉은 군대 비행기는 낮은 하늘을 쏜살같이 날고 있었다. 재수는 부지중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아! 팔 일오!”
그러며 재수는 재빠르게 옷을 걷어입고 승강장을 나섰다. 나올 떼 그는 또 한 번 입구 맞은편 벽에 말없이, 그러나 의젓이 붙어 있는 김 장군의 초상을 탐탐히 쳐다보았다. 그걸 보는 사이 그 언제나와 같이 재수는 기분이 새로워졌다. 변함없이 탐탐한 모습, 믿을 수 있는 얼굴, 재수는 부지중 부르짖었다.
보시오
놀라시오
자랑하시오
우괴들의 전부가 여기 있소
삼천만 겨레가……
오! 우리의 장군!
……
그리고 재수는 저 자신이, 아니 새까만 굴속애서 일하는 동무들의 그 누구나가 모두 그 초상 속에 있는 것을 느꼈다.
8. 15! 이 날 재수가 입결에 부른 노래가 하이얀 반반한 종이에 정성스레 씌어져 기술공업학교 박재수의 이름으로 벽시로 되어 장군 초상 아래엔 얌전히 나붙어 있었다.
-끝-
2017년 3월 1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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