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을 처음 보게 된 것은 어렸을 때 동네
어느 집 마당에서 이루어지던 혼례식에서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축제처럼 즐거워하던 날, 혼주들의 가슴에 동백꽃이 꽂혀있었다.
혼례청 상 위에는 꽃송이가 많이 달린 동백가지가 놓였다. 초록 잎새 사이로 내다보는 붉은 꽃송이는 혼례복을 입은 신부처럼
빛났다. 잎새에 내려앉은 붉은 새가 두리번거리며 노란 꽃술의 눈을 반짝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혼례를 마치면 꽃은 그 집안
아이에게 주어졌다. 기쁨의 깃털로 된 붉은 새머리를 손바닥 안에 만져보고 싶어 그 아이를 맴돌았던 기억이 있다. 어른들이
함박웃음을 웃으니 아이들도 덩달아 콩닥거리던, 마을 전체가 하나가 되던 기쁨의 원체험이 동백꽃 후광이 되었던 게다.
아
파트단지 도심 뒤편 깊은 산사 어둠 내린 절마당 신비감 그득 이달 말 붉게 만개 꽃숲 이룰 듯
부
산 당감동 선암사에 오래된 동백군락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해질 녘에 찾아가는 걸음도 설레인다. 아파트 단지로 되어있는 도심
뒤편에 이런 깊은 산사가 있었던가, 어둠살이 내려앉는 절 마당 고목들의 풍채가 신비하기까지 하다. 백양산 남쪽 기슭의 선암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로 알려져 있다. 산의 비탈을 이용하여 전각들이 자리잡았다. 일주문 앞에서부터 느티나무 고목들이
사천왕처럼 버티고 있다. 높은 계단을 올라 들어서게 되는 선암사 절 마당은 그리 넓다고는 할 수 없는 공간이지만 그윽하고 깊다.
아름드리나무 곁을 걷다 보니 마당은 점점 더 넓어지는 것 같다. 오랜 시간을 살아낸 큰 나무들 속으로 시간의 뜰이 열리기
때문이다. 대웅전 뒤편, 극락전 옆으로 석축과 함께 길게 이어진 동백숲도 어둑한 덩어리로 넓어 보인다.
우리나라
남해안 섬들과 사찰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동백나무는 눈을 덮어쓰고 빨간 꽃송이가 초롱하게 내다보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늦가을부터 겨울 내내 남쪽의 동백은 피고 지다가 봄에 만개하여 늦게는 5월까지도 볼 수 있다. 선암사 동백군락을 낮에 다시 찾았을
때 만난 선암사 신도들은 해마다 이 곳 동백을 본다며 거의 사철 피어있다고 말할 정도다.
동백꽃의 선연한 아름다움에
흠뻑 젖으려고 만개할 즈음이 되면 사람들은 먼 길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 동백 고목이 숲을 이루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선암사 동백군락은 130년 전 당시 주지스님이 500여 그루를 심었다는데 사람들이 한두
그루씩 뽑아가서 이제는 80여 그루만 남아 있다고 한다. 숲 안으로 들어가니 위쪽으로 자라는 굴참나무 낙엽들이 쌓여 발밑이 푹푹
꺼졌다.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 아래를 여유있게 걸을 수 없는 것이 좀 아쉽다.
동백나무 숲에 가보면 동박새를 자주 볼
수 있다. 참새보다도 작은 동박새는 동백꽃의 꿀과 열매 기름을 먹고 살면서 꽃가루받이를 성사시켜주고 서로 도우며 산다.
부산 당감동 선암사 극락전 옆 130년 된 동백나무군락. 촌색시가 볼을 붉히며 웃는 것처럼
홑동백꽃(작은 사진)이 순박하게
피어있다. 사진=박정화
극
락전 마당가에 서서 햇빛을 잘 받는 나무는 순박한 홑꽃 송이를 지금 한창 가지 끝마다 내뿜고 있다. 나무 밑에는 어느새 떨어진
꽃송이들도 있다. 동백나무는 화려했던 꽃이 어느 순간 툭 통째로 떨어져 그 무상함이 불법을 전해주는 듯 하여 절간에 어울리는
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나무 덩치에 비해 꽃송이는 앙증맞다. 안쪽 숲에는 응달이 져서 봉오리로 맺혀있는 것이 많다.
3월 말이나 4월 초에 가보면 온통 붉게 만개한 동백숲을 볼 수 있겠다. 그 때쯤이면 극락전 앞 비스듬히 대웅전 쪽으로 고개를
빠뜨리고 서있는 벚나무 고목에도 꽃이 피어 선암사는 아마 그득한 꽃절이 되고말 게다.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져
흙마당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것을 보고 처연한 슬픔을 노래한 이들도 많지만 반짝이는 두터운 초록 잎과 붉은 꽃잎이 햇볕을 즐기는
것을 보면 동백나무는 행복한 나무다. 남부 지방 사람들이 동백나무 가지를 혼례상에 올려놓았던 것은 한겨울에도 꿋꿋하게 자기 본분을
지키는 동백의 밝은 모습에서 행복을 보았기 때문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