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1. 연화(蓮花)
지문광조(智門光祚)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연꽃이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가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연잎이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물에서 나온 뒤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연잎이니라.”
설두현(雪竇顯)이 송했다.
연꽃과 연잎을 그대에게 알리노니
물에서 나온 뒤가 나오기 전과 어떤가?
강 북쪽, 강 남쪽에서 왕로(王老)1)에게 물어
한 의심 마치고는 또 하나의 의심을 내는구나.
천동각(天童覺)이 송했다.
마른 거북 껍질을 뚫지 말아라.
납자가 입을 열어 간장 심장 다 보였다.
연꽃과 연잎이 나왔는가, 안 나왔는가는
온갖 공부 다하여도 더욱 알기 어렵다.
장령탁(長靈卓)이 송했다.
연꽃과 연잎을 분명히 밝혀서
끝없는 맑은 향기 그대에게 주련다.
손가락 튀길 때에 은하수의 길 안다면
당장에 평지에서 연운(煙雲)2)이 일리라.
1) 남전(南泉)스님의 성이 왕(王)씨이므로
그를 왕로라 했는데 나중에는
유명한 선지식이란 말로 통용되었다.
2) 모두가 무상하여 쉽게 흩어지는 것이니, 허망한 시비.
불감근(佛鑑勤)이 송했다.
향기로운 봉우리가 못 밑의 달에 싸늘하게 비치고
푸른 잎은 가벼이 물 위의 바람에 흔들린다.
나왔는가, 나오지 않았는가를 그대 스스로 보라.
모두가 같은 못 안에 있을 뿐이다.
송원(松源)이 송했다.
물에서 나올 때가 나오지 않을 때와 어떤가?
연꽃과 연잎이 까닭이 있도다.
정광(定光)은 금지(金地)에서 멀리 손짓을 하고
지자(智者)는 강릉(江陵)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천동각(天童覺)이 염하였다.
“신령한 거북에게 괘(卦)도 징조[兆]도 없으니,
빈 껍질을 공연히 두드리지 말라.”
또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총림에서 흔히들 말하기를
‘물에서 나온다 나오지 않는다.
연꽃이다, 연잎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나는 그것이 모두가 뱀을 그리고 발을 달아주는 것으로 안다.
또 어떤 이는
‘입으로 법령을 전하는 것이라’하고
어떤 이는 ‘표주박 자루로 점을 쳐서 헛소문을 듣는다’ 하니,
모두가 끝까지 끊어버린 것은 아니다
나 장로(長蘆)가 여러분에게 드러내리라.
지문은 고집이 없는 사람이요,
오늘 나 장로는 마치
공현(鞏縣)의 차병(茶甁)과 같은 줄 알게 되었다.”
한암승(寒嵓升)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고 이어 설두의 송을 들어 말하였다.
“저 두 노장이 한결같이 똑똑하지 못하니,
한쪽으로 제쳐놓고 이 한암 노인이 그대들에게 주를 내어 주리라.
연꽃과 연잎이 잎새마다 맑은 향기라.
코가 있으되 냄새 맡지 못하고 오직 줄기가 긴 것만 보인다.
이렇게 알면 살찐 선인이 될 것이요,
만일 이렇게 알지 못하면 냉기(冷氣) 없는 끊는 솥이라.
장관(長官)의 왼쪽 이가 아프거늘
문파(門派)의 오른쪽과 유모의 곁에만 뜸질을 하네.”
심문분(心聞賁)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고 이어 그 스님이
다시 동산(洞山)에게
“꽃이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가 어떠합니까?” 하고 묻자,
동산이 답하기를
“초산(楚山) 마루가 거꾸로 섰느니라.” 하였고,
스님이 다시
“물에서 나온 뒤엔 어떠합니까” 한 것을 들어 말하였다.
“지문은 씨앗이 진흙에서 나왔고
동산은 뿌리를 육지에서 뽑았도다.
비록 향기로운 바람이 온 세계에 가득해도
일찍이 피고 진 적이 없음이랴 어찌하랴.”
說話
“연꽃이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蓮花未出水]……”라 함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기 전과 세상에 나오신 뒤요,
“연꽃”과 “연잎”이라 함은
물에서 나오기 전이 곧 물에서 나온 뒤요,
물에서 나온 뒤가 곧 물에서 나오기 전이라는 뜻이다.
설두(雪竇)의 송에서
“강 북쪽[江北]……의심을 내는구나[狐疑]”라고 한 것은
선사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계교를 낸다는 뜻이다.
천동(天童)의 송은
선사(先師)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는 뜻이다.
한암(寒巖)의 상당에서
“연꽃과[蓮花]……줄기가 긴 것만[荷柄長]”이라고 한 것은
세상에 나오심과 세상에 나오시지 않음을
더듬어 찾을 길이 없다는 뜻이요,
“살찐 선인[有肥仙人]”이란
선인이라면 야위었겠으나 세상에 나오시지 않음이
곧 세상에 나오심이기 때문에 살쪘다[肥]고 했다.
“냉기 없는 끓는 가마[無冷鑊湯]”라 함은
업식(業識)을 면치 못했다는 뜻이요,
“장관의[長官]……”라 함은
세상에 나오심과 세상에 나오지 않음 밖에
달리 제2의 것이 없다는 뜻이다.
“장관(長官)……유모의 곁에만[妳傍]”이라 함은
낱낱이 둘이 없어서 말씀마다
구절마다가 단적(端的:분명)하다는 뜻이니,
치아 밖에 노파가 없고 노파 밖에 치아가 없기 때문이다.
장관(長官)은 사람의 이름이다.
심문(心聞)의 상당에서
“초산 마루가 거꾸로 섰다[楚山頭倒卓]”함은
부사의(不思議)한 경지요,
“한수(漢水)는 바야흐로 동쪽으로 흐른다[漢水正東流]”함은
평상의 경지이다.
“씨앗이 진흙에서 나온다[種出淤泥]”함은
사의할 길이 있음[有可思議]이요,
“뿌리를 육지에서 뽑았다[根抽陸地]”함은
불가사의 한 경지이다.
“그러나 일찍이 피고 진 적이 없으니
어쩌랴[爭奈不會開落]”라고 함은
다만 필 줄만 알고 질 줄은 모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세상에 나온다,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하겠는가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