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조, 수잡가 ‘푸른 산중 하에…’
석야 신웅순
초장 : 푸른 산 중하에 조총대 들어메고 설렁설렁 나려오는 저 포수야
중장 : 네 조총대로 날버러지 길짐승 길버러지 날짐승 너새 징경이 황새 촉새 장끼 까투리 노루 사슴 이리 승냥이 범 함부로 탕탕 네 조총대로 다 놓아 잡을지라 도 새벽달 서리치고 지새는 날 밤에 동녘 동대로 짝을 잃고 게오름 게오름 울 고 울고 가는 외기러기는 행여나 놓을세라
종장 : 우리도 아무리 무지하여 산행포수일망정 아니놓삼네
-정경태시조보
푸른 산중하에 조총대 둘러메고 살랑살랑 내려오는 사냥꾼아. 네 총으로 길짐승 날벌레 날짐승 길벌레 독수리 물수리 두루미 황새 촉새 장끼 까투리 노루 사슴 토끼 이리 승냥이 호랑이 네 총으로 함부로 다 쏴 잡을지라도 새벽달 아래 서리 내리는 날 밤 동쪽으로 홀로 짝을 잃고 게오름 게오름 울고가는 저 외기러기는 행여나 쏘지 마라
아무리 무식하여 사냥질이나 할 우리지만 그래도 외기러기에겐 총을 아니 쏩니다.
작자 미상의 장시조이다. 인간이나 짐승이나 이별의 슬픔은 매 한가지이니 아무리 미물이라 한들 짝 잃은 짐승에게는 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조의 종류에 수잡가라는 것이 있다. 시조와 잡가가 뒤섞인 중간 형태로 곡조가 시조 절반, 잡가 절반이다. 시조라 부르기에는 격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잡가라고 부를 수도 없어 '잡가의 으뜸'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명칭이다.
이를 ‘언편 시조’, ‘엇엮음 시조’라고도 한다. 정경태 시조보에는 ‘엮음 지름’로 되어 있다.
‘엇’은 장단에는 변화가 없이 지르는 형태와 순수한 창법에 이질적인 창법이 뒤섞인 형태이고 ‘엮음’은 ‘편’, ‘사설’과 같은 말로 음악적인 리듬이 촘촘하다는 뜻이다. ‘엇엮음시조’는 처음은 높은 소리로 질러내고 창법의 스타일, 장단도 바꾸어 리듬을 촘촘히 엮어가는 시조이다. 이러한 종류의 시조로는 ‘푸른 산중하에’, ‘창을 내고자’ 등이 있다. (신웅순의 『정가이야기』189-190쪽)
장시조와 사설시조는 서로 다른 명칭이다. 장시조는 문학적인 명칭이요 사설시조는 음악적인 명칭이다. 많은 시인들이 위 시조를 장시조라고도하고 사설시조라고 한다.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사설시조는 엮음시조ㆍ편시조 ㆍ주음시조ㆍ습시조 ㆍ좁는시조 등 많은 딴 이름들이 있다. 엇엮음시조의 대가 되며 가곡의 편삭대엽과 비교된다. 가곡의 편은 장단을 연장 하는 예가 많지마는 사설시조에서는 장단연장법이 없고 아무리 가사가 길어도 평시조 의 기본 장단 속에서 소화시킨다. 이 같이 한정된 장단 속에다 많은 가사를 부르게 되 는 까닭으로 한 박 안에 2자 내지 4자까지 불러야하고 그 결과 뻗어나가는 유장한 가 락에서 촘촘한 가락으로 엮어 리듬감이 전혀 달라진다. 즉 사설(엮음)이라 함은 장단 또는 리듬이 촘촘해지는 형태의 음악에 붙인 이름이다. 평ㆍ엇 ㆍ사설은 시조 자수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적 형태 여하에 따라서 결정된다.(정사훈,『국악 대사전』,세광음악출판사,1984,360-361쪽.)
사설시조는 이렇게 엇엮음시조와는 대가 되는 시조이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의 기본 장단에서 많은 가사를 불러야하나 엇엮음시조는 창법 스타일이나 장단도 바꾸어 리듬을 촘촘히 엮어 불려야한다. 사설시조와는 전혀 다른 시조이다.
장시조로 수잡가를 부른다면 맞는 말이나 사설시조로 수잡가(엇엮음시조,엮음지름)를 부른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사설시조가 엇엮음시조가 되어 어불성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문학에서 지금도 장시조를 사설시조라고 부르는 이가 많다. 결국 장시조, 사설시조, 엇엮음시조가 다 같은 명칭이 되어 버리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그러면 다른 명칭과도 계속 혼동이 되어 글을 제대로 쓸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문학에서의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의 명칭은 적당한 용어라고는 볼 수 없다. 단시조, 중시조, 장시조라고 해야 혼선을 피할 수 있다.
위 악보를 비교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시조 문학이라해도 그 뿌리는 시조음악이다. 시조 문학은 시조 음악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 자유시와는 다른 음악성 때문이다. 시조가 하나는 문학이요 하나는 음악인 서로 다른 장르라 해도 시조 논의에 있어서는 태생적으로 서로를 떠날 수 없고 배제할 수가 없다. 용어의 잘못 사용을 허할 수 없는 이유이다.
-가람문학,2022.제43집,194쪽-197쪽.
[출처] 장시조, 수잡가 ‘푸른 산중 하에…’|작성자 석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