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를 통해 육신을 입고 태어나셨고, 팔 일째가 되어 할례받을 날이 되었기에 이름을 지었는데, 가브리엘 천사가 일러준 대로 “예수”라고 이름을 짓습니다(21절). 헬라어로 그대로 발음하면 “이에수스”(Ἰησοῦς)인데,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모든 정결예식을 그대로 지켜 행합니다(22절). 22절에 나오는 “정결예식”이란 말은 레위기 12:1~8에서 기록한 것처럼 아기를 낳았을 때 산모와 아기가 행해야 할 정결예식을 의미합니다. 율법에 기록한 그대로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에게 행하고, 하나님께 첫아들을 드리는 예식을 행합니다. 일종의 “헌아례”(獻兒禮)라고 할 수 있습니다(23절, 24절).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해서 율법에 정한 예식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명하신 대로 행하였습니다.
이렇게 정결예식을 치르러 예루살렘 성전에 갔을 때 두 명의 노인을 만나는데, 그 한 명은 시므온(Simeon)이라는 자였고, 다른 한 명은 안나(Anna)라는 여선지자였습니다. 시므온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었던 자로(26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서 아기 예수님을 보자 아기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알아보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며 기뻐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온 세상과 이방에도 구원을 베푸실 빛이시라는 것을 노래합니다(29절~32절). 안나도 젊은 시절에 과부가 되어 늘 금식하며 기도하던 선지자로 늘 성전에 머물렀던 자인데, 아기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아)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이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분이심을 증거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러한 몇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증거들에 대해 그다지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음이 오히려 의아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영적으로 무디어진 시대였다는 것을 방증(傍證)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시므온과 안나의 증거로 인해 매우 놀라워했습니다(33절). 아기를 잉태하기 전부터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들었던 말씀과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서 천군 천사들이 했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던 것, 그리고 성전에서 시므온과 안나가 하는 증거들을 통해 아기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아)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예식을 마친 후 요셉과 마리아는 갈릴리의 나사렛으로 돌아갑니다(39절). 아마 요셉과 마리아는 곧바로 나사렛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베들레헴으로 갔다가 동방박사들의 방문도 받았을 것이고, 그 이후에 애굽에 피신했던 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야 나사렛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이러한 중간의 일들은 생략하고 나사렛으로 돌아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은 자라가면서 신체적으로도 강해지고, 지혜도 충만했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늘 그 위에 있었습니다(40절).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기에 인간의 성장에 따라 성장해가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겪는 일상들을 다 겪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똑같이 경험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15에서도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동정(同情, sympathize)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숨파테오”(συμπαθέω)라는 단어인데, 공감(共感)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와 똑같이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경험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메시아(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지만, 인간이 해야 할 율법의 의무나 인간의 신체적 성장 등을 그대로 수행하신 분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삶 깊숙이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드리신 진정한 메시아(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그대로 감내(堪耐)하시고 구세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