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22일 모스크바를 공식 방문한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만남은 이번이 40번째.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은 9번째로, 2019년 6월 이후 약 4년 만이다. 이번 방문은 지난 10일 시 주석의 3연임 확정 이후 첫 해외 순방으로, 양국 관계에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이 중국과 정상회담을 갖는 장면/사진출처:크렘린.ru
특히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내놓은 자체 평화안이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할 지, 또 미국이 우려하는 중-러 군사협력이 중국의 대러 무기 제공으로 이어질 지 주목된다. 러시아는 시 주석의 모스크바 방문 일정 발표시, 양국의 군사기술및 경제 협력에 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 외교담당 보좌관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양국 정상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개와 관련해 현재 상황에 대한 평가를 교환할 것"이라며 "중국의 평가는 러시아의 입장과 대부분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또 "군사·기술과 에너지 협력 문제가 분명히 의논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와 미국이 시 주석의 모스크바 방문을 우려하는 눈으로 지켜보는 이유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9일 "우크라이나 분쟁 해결 방안이 시 주석의 모스크바 방문에서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며 "중국의 움직임이 어떤 식으로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미국 측은 숨기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 조정관은 이날 미 폭스뉴스에 출연, "(중국 측이 주장하는) 우크라이나의 휴전은 러시아의 이득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중국의 (중재) 역할을 견제하기도 했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가 베이징의 평화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미국의 우려는 이상하게 보인다"고 지적한 뒤 "그러나 중동의 두 숙적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를 회복시킨 중국의 외교력을 간과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이란의 군사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군대와 싸우는 예멘 내전도 수십 년만에 막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중동과 우크라이나가 처한 상황은 다르다는 게 스트라나.ua의 분석이다.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양국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어 중동에서 외교적 성공을 거뒀으나, 우크라이나의 여건은 그렇지 않다는 것. 중국이 러시아와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나,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중국의 외교적 노력이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키예프와 중국 사이에도 특정 접점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내심 걱정하는 부분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스트라나.ua가 설명하는 중-우크라의 접점은 이렇다.
우선 우크라이나. 지난 2014년(유로마이단 사태) 이후 서방의 지원에 점점 더 의존하다가 2022년 2월부터 완전히 기대는 현실을 우크라이나 엘리트층(여론 주도층)이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견제가 가능한 '균형 외교'를 지향한다. 2014년 이후에도 서방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모스크바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때때로 나오기도 했다. 이제는 러시아를 대체할 새로운 세력으로 중국이 등장했다. 거리는 멀지만,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전 세계적이고, 전쟁 전까지 우크라이나의 주요 대외 무역 파트너도 중국이었다.
전쟁 전, 서방과의 관계가 다소 어려웠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중국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집중 연구했고, 집권여당 '인민의 종'의 대표인 데이비드 아라카미아는 지난 2021년 여름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치세력은 중국 공산당의 경험에서 배울 작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쟁 발발후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단호한 존경심을 늘 표명했다. 중국과 '특별한 관계'를 수립하려는 열망이 여전히 대통령의 마음 속에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이 전후 복구 사업에 참여한다면, 우크라이나에게 대단히 유익한 선택이 된다. 무엇보다도 서방에 대한 완전한 의존 상태에서 탈출할 수 있고, 중국의 지원 자금은 서방과 달리 아무런 조건이 없다.
중국에게도 우크라이나와의 '특별한 관계' 수립은 유럽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투자 관점에서 우선 흥미롭다. 또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경우, 중국과의 대결을 확대하는 유럽에서 중국은 우크라이나라는 '외교적 지렛대'를 확보할 수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독-프랑스 3국 정상들의 모습/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스트라나.ua는 "중국의 외교적 노력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서방진영) 등 각기 이해가 엇갈리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당장 결실을 맺기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면서 "그러나 중국에 대한 기대가 큰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대화를 시작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앞으로 몇 달 동안 전선에서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평화 협상 재개에 대한 (당사자들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하면, 중국이 중재 역할을 할 수 있고, 그 역할은 결정적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시 주석의 모스크바 방문에서 주목되는 또다른 의제는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이다. 양국 정상회담에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드미트리 슈가예프 연방 군사기술협력국장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쇼이구 장관의 중국 파트너인 리상푸(李尙福) 중국 신임 국방부장도 회담에 배석할 경우, 서방 측에 비치는 양국 군사협력의 상징성이 크게 부각될 전망이다. 중국 전인대에서 신임 국무위원 서열 1위에 선출된 리 부장은 2018년 9월 러시아 무기 구매를 이유로 미국 국무부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이 이번 회담에서 대러 무기 제공의 물꼬를 틀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양국 정상은 또 이번 회담에서 중요한 2개의 성명에 서명할 계획이다. △새 시대의 포괄적 협력관계 및 전략적 상호작용의 심화에 대한 공동 성명과 △2030년까지 양국의 경제 협력의 핵심 분야를 발전시킬 계획에 대한 성명이다. 이와 함께 양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10개가 넘는 문서에 합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시 주석과 화상 정상회담을 하는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양국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띄울 준비도 끝났다. 러시아의 로시스카야 가제타(RGRU)와 중국 인민일보에 양국 관계에 대한 정상들의 기고문이 20일 각각 게재된다.
또 중국과 모스크바를 잇는 중국∼유럽 국제화물열차 노선이 지난 16일 신설돼 운항을 시작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베이징 핑구마팡역에서 자동차 부품과 가전제품, 건축 자재, 의류, 가정용품 등을 실은 중국∼유럽 국제화물열차가 러시아로 출발했다. 40피트짜리 컨테이너 55개를 실은 이 열차는 네이멍구 만주리, 러시아 치타와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등을 거쳐 18일 뒤 모스크바에 도착할 예정이다. 중국∼유럽 국제화물열차는 시 주석의 역점 프로젝트인 '일대일로'의 대표적인 육상 실크로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