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사람] “쓸쓸한 죽음 막고 싶은 마음, 제목에 담았어요”
입력 : 2023-04-10 00:01 수정 : 2023-04-10 05:01
[책으로 만난 사람] ‘고독사는 사회적 타살입니다’ 쓴 권종호 경위 18년전 고독사 현장…기억 생생 지자체에 실상 알려도 묵묵부답 지인 조언에 책 집필해 2월 출간 “정확한 통계 위해 기준부터 정립 농촌빈집, 공동주거시설 활용도”
부산 영도경찰서에서 만난 권종호 경위가 자신이 집필한 책 ‘고독사는 사회적 타살입니다’를 들어 보이며 고독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고독사는 사회적 타살입니다’라는 제목은 제가 직접 지었습니다. 혹자는 말이 너무 강하지 않느냐고 했지만 고독사 문제에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걸 강조하려고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부산 영도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에 근무하는 권종호 경위는 최근 언론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미제 사건 범인을 잡아서가 아니다. 경찰 일을 하며 직접 본 고독사 현장과 자신이 생각하는 고독사 해결 방법을 담은 책 <고독사는 사회적 타살입니다>를 펴냈기 때문이다.
그가 고독사에 관심을 둔 계기는 2005년 신고를 받고 나간 변사 사건이었다. 1991년부터 경찰로 일하며 사망 사건으로 출동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 현장은 18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만큼 충격적이었다.
“한여름이었어요. 현장에 도착했더니 문 앞에서부터 생전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나더군요. 문을 여니 방 안은 참혹했습니다.”
가족과 연을 끊고 혼자 살던 노인은 병으로 죽고 한달이 지나서야 밀린 월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에게 발견됐다고 한다. 권 경위 마음을 더 아프게 한 것은 망자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국가유공자라는 것이었다. 국가를 위해 한 몸 바쳤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홀로 맞은 죽음이라니. 권 경위는 고독사라는 단어를 쓰기도 전부터 노인의 쓸쓸한 죽음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권 경위는 2012년부터 행정복지센터부터 시청까지 돌아다니며 고독사에 대해 알렸다. 2020년엔 전국 236개 지방자치단체에 고독사를 막을 방법을 적은 20장 분량 자료를 우편으로 보냈지만 그의 말을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열심히 써서 보내도 다 쓰레기통으로 갔을 겁니다. 제가 교수처럼 전문가도 아니고 지위가 높지도 않으니까요. 고민을 지인에게 얘기하니 책을 써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집필을 시작한 책이 올해 2월 세상에 나왔다. 지난달부터 다양한 매체와 인터뷰를 했고, 언론 관심을 받으니 보건복지부 공무원까지 권 경위 얘기를 들으러 찾아왔다고 한다. 권 경위가 말하는 고독사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고독사로 사망한 사람수를 정확히 통계 내는 게 필요해요. 2021년부터 시행된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는 고독사를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발견되는 죽음’이라고만 정의해요. 일정한 시간이라는 모호한 기준 때문에 고독사가 제대로 집계되지 못하는 거죠. 저는 사망한 지 72시간이 지난 후에 발견된 죽음을 고독사라고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준이 제각각인 지자체와 달리 보건복지부에선 72시간으로 통계를 내고 있어요.”
이에 더해 그는 농촌에 있는 빈집을 공동 주거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을 제안했다.
“부산만 해도 방치된 빈집이 많아요. 이곳을 국가가 관리하는 공동 주거시설로 만들어 외로운 사람끼리 모여 살게 하는 거죠. 노인 건강에 위급한 일이 생겨도 서로 바로 신고해줄 수 있고, 외로움까지 해결되니 일거양득 아니겠어요?”
공동체 생활의 어려움을 묻는 질문엔 권 경위는 이렇게 답했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한집에서 살면 갈등이 생길 수 있죠. 그렇지만 인간의 외로움은 고독사 방지 인공지능(AI) 로봇이 아닌 사람의 온기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부산=황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