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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구천동 계곡 산행
최 순 태
무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는 8월이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났다.
오늘은 계곡이 깊고 물이 좋으며 오묘한 것으로 유명한 무주구천동 산행일이다.
이제까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계곡이라 마음이 설렌다. 산악회 버스 중간 기착지인 현대백화점 앞 출발 시간에 맞추려고 아침 일찍 일어났으나 너무 여유를 부리는 바람에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산악회원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올라 덕유산국립공원 주차장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약 2시간 남짓 달린 끝에 목적지인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산행 전 각자 간단한 몸 풀기 등을 하고 산행에 돌입하였다.
이곳의 날씨는 대구의 기온이 아프리카와 흡사하다 하여 흔히 일컬어지는 대프리카(daefrica)로 불리는 대구의 날씨와 사뭇 달라 약간 서늘하여 외부 온도가 한낮인데도 29℃에 불과하였다. 그늘진 계곡을 옆으로 끼고 물소리를 들으며 최종 목적지인 백련사로 부지런히 걸어 나아갔다.
나를 포함한 4명의 회원은 선발대로 계곡을 따라 끊임없이 펼쳐지는 절경과 곳곳에 자연적으로 생긴 폭포를 감상하며 발걸음도 가볍게 사뿐사뿐 앞으로 행진하였다.
백련사로 올라가는 계곡은 월하탄, 인월담, 사자담, 구월암, 호탄암 등 구천동 33경이 펼쳐지는데 각자 명칭에 걸맞게 스토리텔링(story telling)한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특히, 호탄암은 “호랑이가 산신령의 심부름을 하다가 낙상한 곳” 이라는 해설이 나를 웃음 짓게 하였다.
선두로 출발한 산행 팀에 홍일점인 여성이 있었는데 오늘 처음 만난 분이었다. 부회장님의 말에 따르면 미술계통에서 일하며 현재 대구미술관에서 일하고 있단다. 만나서 반가웠다.
산행 시점을 출발한지 2시간여 만에 마침내 백련사에 도착하였다. 백련사는 오래된 사찰이었으나 6.25 동란 때 모든 전각들이 소실되었고 1962년에 중창(重創)되었다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 사찰로 가던 중 입구 우측에 스님의 부도가 아닌 특이한 부도들을 볼 수 있었다. 궁금하여 부도 앞으로 가서 비문을 보니 대시주자(大施主者) 이정선보살의 모친인 최낙순과 남편인 대영제국 귀족인 더더미어3세 자작(子爵)의 부도였다.
사찰 중창을 앞두고 사찰 측에서 백방으로 후원자를 물색하던 중 당시 제일동포 재력가이던 대시주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많은 돈을 희사하였다.
대시주자의 모친이 돌아가시자 사찰에 부도를 설치하였고, 불사를 할 때 이 곳을 찾은 자작께서 이곳의 풍광에 반해 자기가 죽으면 화장하여 고향인 영국의 자택에 유골의 반을 뿌리고 나머지 반은 백련사에 안치하여 달라고 유언 하였다.
이러한 유언에 따라 사찰 불사 중 자작이 사망하자 현재 위치에 부도를 마련해 장모와 나란히 모셔져 있다. 국적을 초월한 기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해마다 자작을 기리기 위해 영국의 유족들이 찾는다고 하였다.
대웅전 앞에 수령 500여년이 된 돌배나무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서 나무밑 부분이 폭탄을 맞은 듯 텅 비어 앙상하였으나 그 와중에도 왕성한 생명력으로 많은 열매를 맺은 것이 신기하였다.
중창된 사찰의 모습은 여느 절과 마찬가지로 일주문, 사천왕전, 대웅전, 명부전, 삼성각 등이 소재하고 있으나, 대웅전을 참배한 회원의 말을 빌리면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이 있어야 하는데 다른 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충분한 고증을 거쳐 중창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에서 내려와 적당한 장소에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함께 먹는 점심은 꿀맛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잠시 쉬다가 대구로 가는 버스 출발시간에 늦지 않기 위하여 서둘러 하산하였다.
내려오던 길에 6.25 때 희생된 분들을 기리는 구천동수성비를 볼 수 있었다. 그 비석을 보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신 분들의 넋을 마음속으로 기렸다.
등산로 입구에 야영장과 식당들이 밀집해 있었다. 요즈음 매스컴에 연일 보도되는 국립공원 및 유원지의 바가지 상혼과 파라솔 및 평상 대여료 과다가 여기에서도 횡행하고 있었다.
엄연한 국유지를 자신의 토지인양 대여료를 받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러한 일 때문에 여름 피서를 온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고,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
야영지구 인근 계곡에는 막바지 무더위를 식히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 친지,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둥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버스에 등산 배낭을 싫어놓고 밖으로 나와서 회원들과 간단한 하산 행사를 하고 차가 출발하기 전 화장실 등 용무를 보고 대구로 출발하였다.
대구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공무원연금공단 상록아카데미 수필창작반 문우(文友)와 여러 가지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전직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인 문우님이 마지막 봉직하던 학교가 우리 아파트 인근 송현초등학교 라고 말씀하셨다.
전부터 얼굴이 많이 익었다고 생각했는데 누굴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궁금하였다.
집에 도착하여 간단한 짐 정리를 하고 우리 아들들의 졸업앨범을 보는 순간 낮 익은 얼굴을 사진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우리 아들의 교장선생님이었다. 아들은 스승으로 만났고, 아버지인 나는 같은 교실에서 글쓰기를 배우는 수강생으로 교류를 하고 있다니! 참으로 귀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유난히 더운 여름철 찌는 듯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한여름에 다녀온 무주구천동 계곡산행 내내 청량한 계곡물 소리와 산새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껏 치유(heal)한 하루였다.
귀한 인연으로 만난 좋은 사람들과 유쾌한 시간을 보냄은 의미 있는 일이었고, 앞으로 이러한 만남을 계속하고 싶다.
다음 산행이 기다려진다.
첫댓글 무주 구천동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듯한 좋은글 잘 읽었읍니다. 덕분에 앉아서 좋은 산행을 한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것 같습니다.오랫동안 이어 가시기 바라며, 무주 구천동의 맑은물과 울창한 숲이 어울려 장관이라 하루밤 유숙하고픈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생생한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함께한 그날이 즐거웠습니다. 인연은 돌고 도는 모양입니다. 아마도 서른이 넘었을 그들의 가슴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를지 갑자기 두려워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우리의 인연은 그러하답니다. 여섯 사람만 거치면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답니다. 살아가면서 좋은 인연으로 살아감은 행복합니다. 아들의 교장선생님과 문우가 되었으니 남다른 인연입니다. 두분 만나심도 축복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만나는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섬세한 글을 통하여 오래전에 가보았던 무주구천동 계곡을 다시금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계곡의 물소리, 청량한 공기가 다가오는 것만 같습니다. 좋은 인연은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시원한 무주구천동 계곡 산행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글을 읽어면서 무주구천동 산행한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남다른 인연에 대한 글 잘 읽었습니다.
하룻동안의 무주구천동 계곡 산행을 세세하게 그려주셨습니다. 많은 이야기와 인연, 제언도 담겨있군요.. 산행이나 여행 후에 글로 남기려니 참 어렵더군요. 물 흐르듯 써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무주구천동 얘기 잘 읽었습니다. 나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인데 세세한 설명이 간접적으로나마 그 풍경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