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랑방모임은
다섯분이 참석했습니다.
윤혜정 스콜라스티카 수녀님,
김원수마르띠노,
김진숙비아 후원자님,
장순애엘리사벳 후원자님
박필령안젤라 시인님
다섯분이며
식사비는 회비에서
42천원지출
커피는 커피가 좋아에서
이재을 사도요한 지도신부님 참석하셨으며
김진숙비아후원자님이
커피스폰해주셨습니다
장순애엘리사벳후원자님은 2024년과 2025년
2년간 회비 24만원
완납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회비잔액은₩878,781
입니다
회비수지내역은
2.20일 사랑방모임결과 보고할 때 올리겠습니다
오늘 명동글로벌사랑방
말씀 비젼 연중 제6주일 복음말씀
(마르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랑방지도수녀님으로
윤혜정스콜라스티카수녀님이외 또한분 금년부터
김활란도나타 수녀님이
파견되어 오십니다.
사랑방모임 활성화를
위한 취지라 보여집니다.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묵상과 기도
성 바오로 미키는 1564년 무렵 일본 오사카 근처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예수회 소속의 대학을 졸업하고 수사가 된 그는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여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미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 때에 25명의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은 뒤 나카사키로 압송되었고, 1597년 2월 5일에 십자가 위에서 순교하였습니다. 1862년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이 시성되었습니다.
임금 솔로몬이 계약 궤를 성전에 모시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느님께 자신이 드리는 부르짖음과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성전. 이 집에 '내 이름으로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이 곳을 살피시고 그가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어주소서. 종인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이 이 곳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어주소서'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몇 명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떠나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하였습니다.
회상과 성찰
-. 지난 시간을 되돌아 봅니다. 어제 등. 지난 시간 걸어온 길. 자리, 만남, 대화를. 나의 모습과 말, 처신과 행위를 바라봅니다.
-. 사랑과 자비, 진리와 선을 중심으로 나의 허약함과 허물, 그릇됨과 죄와 악습 등을 바라 봅니다. 회개, 개선, 자선을 찾습니다.
-.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 자비하신 그분의 현존을 바라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나의 바람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또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 감사의 마음으로 나의 다짐과 실천의 내용을 기도로 바칩니다.
말씀 묵상
그 무렵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가운데 주님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주 저의 하느님, 당신 종의 기도와 간청을 돌아보시어, 오늘 당신 종이 당신 앞에서 드리는 이 부르짖음과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의 눈을 뜨시고 밤낮으로 이 집을, 곧 당신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이곳을 살피시어, 당신 종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또한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부디 당신께서는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어 주십시오.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1 열왕 8,22-23.27-30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마르 7,1-13
말씀 실천
율법. 법칙과 규정은 정의와 선, 사랑과 자비에 원천을 둡니다. 통상적으로 법과 규정의 글자의 규정에 따라 정도를 걸어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정치 사상 종교 이론 자기 전통 등 특정한 이념에 따라 규정될 경우 법의 '정의와 공정'의 정신을 흔들고 그릇되게 판단하거나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율법에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규정만으로 그가 불결하다고 판단할 수 없고, 그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가 그 일에 참여하는 것을 거절 당하고, 그의 깨끗하지 않은 직업이라는 이유로 그를 죄인으로 판단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 때문에 안식일에 병고에 허덕이는 이를 고쳐서는 안되는 것 등등 율법은 바른 규정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존엄과 인간의 평등을 거스리고, 오히려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려야 하는 사랑의 배려를 거절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각 종교 규범도, 유교 규범도 한쪽의 권한이나 지위에 가진 이들에 대한 절대적 적용으로, 오히려 공정과 사랑을 거스릴 수 있습니다.
율법의 코르반이라는 말로 실제로 부모에게 해드리지 않고서 자기의 자비를 정당화 시킬 수도 있습니다. 전통과 율법이 바르다고 하지만, 그 안에 사랑과 자비, 정의와 공정이 함께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마침 기도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바칩니다.
이재을 신부님
화요일은 말씀의 날입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1-32
'말 한마디가 천량 빚을 갚는다.'고 하였습니다. 금화 천량보다 좋은 말 한 마디가 더 낫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창조주는 하나의 입과 둘의 귀를 만드셨습니다. 듣기는 많이 하되, 말하기는 적게 하라.하였습니다(잠언 10.9). 나의 평화와 자비와 사랑이, 그 말씀으로 나오게 됩니다.
말을 들어야 말을 할 수 있고, 말씀을 들어야 그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그 말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깊이 듣습니다.
말씀에서 '말이 없음' 곧 '침묵'의 말씀이 더 깊을 수가 있고, 그 말씀이 더 넓을 수가 있습니다. 말을 꼭 해야 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도 말을 듣고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침묵 속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과의 대화에서, 그분 앞에 '침묵'을 하면서, 그 묵상을 통해서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천량 빚을 갚는다는 것은, 그 말씀의 가치와 신비와 그 선물을 아는 사람에게서 이루어집니다. 곧 주님의 말씀의 풍요와 선물과 은사를 아는 이가 사용하는 그 말, 말씀에서 상대에게 위안과 즐거움, 기쁨과 감사, 환희와 찬미가 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깊이 헤아리고 곧 그 말씀을 듣는 이는, 천량 빚을 갚은 말을 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은 말씀을 통해서 내적인 사랑의 빛을 통하여 함께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이를 통해서 그 말씀이 흘러 나옵니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을 침묵 속에서 듣는 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병 병자들을 고치고 나서도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마르 1,43), 병고에 시달리는 많은 이들으로 고쳐주시고도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셨습니다(마르 3,1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는 따로 비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마르 4,3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그리스도, 메시아임을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습니다(마르 8,30).
우리가 침묵하고, 말씀을 얼마간 쉬는 것은 진정한 말, 그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말씀은 사람에게 선과 정의를, 사랑과 자비, 공정과 평화를 위한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법을 위해서 입니다. 그런 좋은 말을 하기 위해서 그 말씀을 침묵하고, 성찰하고, 그 말씀의 신비를 깨닫습니다. 말씀의 사랑과 참됨과 평화의 길을 깨닫는 이는 그 말씀을 전하십시오. 그러나 침묵과 쉼의 시간에서 그 말씀을 식별하십시오.
화요일은 말씀의 날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머무르는 이가 주님의 제자입니다.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합니다. 주님의 말씀의 제자는 그 말씀이 그 참 빛을 통해서 스스로 자유로워지고 그 자유에서 위안과 즐거움, 기쁨과 감사를 만납니다. 그 안에서 말하는 이는 모두에게 기쁨이 되고 찬미가 되게 합니다.
주님, 오늘 당신의 말씀을 '말의 쉼' 속에서 그 침묵 속에서 듣게 하소서. 그 말씀의 깊은 신비를 알고 감사하면서 또 말씀을 전하는 제자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