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59]‘복수피전復讐피戰’을 다짐한 '특별한' 하루
자라나는 벼와 섞여 있으면 잘 구별이 되지 않는 ‘피(한자로 직稷이)’라는 잡초가 있다. 먹을 게 없을 때는 ‘피죽을 끓여 먹었다’니까 잡초라 하면 안되겠지만, 벼의 생장에 엄청 방해가 되는 대표적으로 ‘나쁜 작물’이다. 예전엔 모를 심어놓고 두 달쯤 되면 너나 없이 ‘피사리(피를 뽑는 일)’에 나서곤 했다. 지금이야 제초제 효능이 막강해 거의 안 보이는데, 웬일인지, 우리논에 ‘많아도 너무 많아’(어느 개그맨의 18번이던가?) 사람을 숫제 돌게 했다. 아예 ‘피의 씨’를 뿌려놓은 듯(못자리?) 했다. 방제防除시기(모를 심어놓고 사나흘 후 물을 찰랑찰랑 대놓은 상태에서 ‘마세트’(피 죽이는 특효 제초제)를 듬뿍 뿌렸더라면 ‘박멸撲滅’이 됐을 터인데, 이럴 줄은 생각도 못한 초보 농사꾼에게 치명타를 안긴 것이다. 작년, 재작년에도 많은 편이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을 안한 것이다. 이 노릇을 어찌 할고?
주변의 시선이고 뭐고 내버려둘 수 있지만, 벼가 피에 눌려 클 수가 없으니 수확은 당연히 절감될 것이 뻔하고, 미관상 보기에 너무 안좋다. 혼자서 뽑기는 불가능, 외국인 노동자 놉(일꾼)을 처음으로 얻었다. 농협이 알선해준 덕분에 그래도 쉽게 얻은 셈이다. 연일 장마로 날씨가 흐린 게 작업하기엔 좋았다. 어제 아침 말도 안통하는 ‘베트남 젊은이’ 두 명과 7시 30분부터 시작된 피사리가 오후 4시 40분까지 8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들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는 게, 피가 많아도 너무 많았기에 거들어야 했다. 어떻게 주인이 지시만 해놓고 손을 놓고 있겠는가. 간신히 우쑥우쑥 자란 피들은 제거할 수 있었지만, 눈에 잘 안띄었던 피가 자라면 또다시 ‘피밭’ ‘피논’이 될 게 뻔하다. 지독한 놈들이다. 논 가운데를 들어가보니, 정말로 ‘피반 벼반’이 아니고 피가 벼보다 더 많았다. 그러니 어떻게 사방팔방 포위된 벼가 숨을 쉬며 크겠는가? ‘물반 고기반’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으나,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왜 하필이면 우리논에만 이렇게 많은 피가? 울고 싶었다. 고함이라도, 성질이라도 내고 싶었다. 그러거나말거나 손도 대기 싫었지만, 지나가는 농민들이 한마디씩 할 것은 불문가지. 얼마나 게으르면 이렇게 농사를 짓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내는 거의 울 듯이, 아무리 피가 많아도 방치하라고 애원했지만, 나로서는 내비둘 수는 없는 일이어서 생각지도 않은 ‘거금’(일꾼 1인 10만원)을 투자한 것이다. 일이 끝나면 농협계좌로 넣어주면 된다.
피를 뽑아 일일이 밖으로 나올 수도 없어, 그 자리에서 낫으로 밑동가리를 싹뚝 잘라 논바닥에 깔 수 밖에 없었다. 줄기가 잘린 피도 다시 자라나도 할 수 없는 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게 ‘농부農夫의 숙명’이 아니겠는가. 한마디로 ‘재수 옴 붙은 것’이다. 놉들은 점심을 가지고 온다. 단체로 숙식하며 월급제인 모양이다. 우리말을 거의 못하는데 ‘사장님’소리는 잘 한다. 벼 사이에 뛰어다니는 조그만 곤충을 가리키기에 ‘메뚜기’라고 알려주면 몇 번 따라부르게 했다. “튀겨먹으면 맛 있다”고 하니 쉬는 시간에 메뚜기 잡느라 정신이 없다. “몇 살?”이냐고 물으니 알아듣지 못하여 “나이?”하니까 “삼칠칠”이라며 “사장님은?”반문하기에 “육십칠”하니까 “아빠?”라 해 웃었다. 아들뻘인 친구들이 외국에 돈을 벌러 온 것이다. 생각하면 조금 안쓰럽다. 그들에게도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같은 자식들이 있을 터. 오전 오후 새참을 모싯잎 콩편과 음료 그리고 복숭아를 줬더니 고마워해 했다. 이것도 나의 특별한 경험이었다.
피를 뽑으며(아니 잘라 바닥에 깔면서) 드는 맨먼저 든 생각이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경제학 용어이다(솔직히 지금도 나는 무슨 뜻인지, 어느 때 쓰는 말인지 모른다). 숨도 못쉬는 벼들이 너무 안타까운데, 말해 무엇하겠는가? ‘피같은 사람’이 되면 안되겠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몸을 도는 피(한자로 혈血)는 없어선 한시도 못사는데 ‘같은 피’인데도 이렇게 다르다. 내년엔 논 2400평을 임대로 내놓으려 했는데, 이놈의 피를 생각하니 ‘화난 피’가 솟았다. ‘니가 나를 올해 이렇게 골탕을 먹였단 말이지. 내년에는 싸그리 없어주겠어. 내가 한 해 더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른바 ‘복수혈전復讐血戰’이다. 이때의 혈은 ‘피 혈’이 아니고 ‘복수피전’이라고 써야 하니 '복수직전'인가. 복수직전이든 복수피전이든 좋다. 내년에 누가 한번 이기나 붙어보자. 한 봉지에 4000원한다는 마세트 제초제를 벼 심은 후 사나흘 후 넉넉히(3마지기에 4개쯤) 논물에 희석시키면 100% 씨를 아예 없앴다니, 그 꼴 한번 보고 싶다. 이 나쁜 피들아, 너희는 이제 죽었다. 어따 대고 감히 먹지도 못하는 나쁜 작물이 이렇게 판을 치다니? 문득, 우리 사는 세상도 이런 못되고 나쁜 피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닐까?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못을 흐리듯, 작금의 정치에서 망언들을 마구 늘어놓는 ‘토착왜구’들이 피같은 놈들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씁쓸했다.
아무튼, 어제는 내 생애에서 처음으로 논에 들러붙어 꼬박 8시간을 30대 외국 젊은이들과 일을 했다. 아이고, 허리야, 다리야. 죽을 맛이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나같은 백면서생, 책상물림이 어찌하여 이 '고생'을 즐겁게 한단 말인가? 피를 죽이는 효과가 있든없든, 일단은 큰일을 한 셈이다. 스스로 기특한 하루. 너무 힘들어서인지 11시쯤 눈을 붙였는데, 새벽 4시 10분에 깰 것은 또 무엇인가. 젠장. 하루가 길었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 그전날 혼자 4시간 피를 뽑고 어제 중노동한 후유증인지 입술이 부르텄다. 4년만에 처음이다. 흐흐. 오후 8시 이웃집 형수의 보리밥 먹으러 오라는 고마운 전화다. 열무김치와 고구마줄기김치를 담갔다. 내가 좋아하는 오이냉국도 있다. 이런 이웃 덕분에 농촌에 사는 맛이 있다. 몹시 고마웠다.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저녁을 맛있게 먹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