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 한국 가톨릭교회의 맥, 교우촌
사도 3,11-26; 루카 24,35-48 /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2024.4.4.
오늘 복음에 보면,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 나그네 차림의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가 다급히 예루살렘으로 가서 다른 제자들에게 스승의 부활과 발현 소식을 전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각에,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또 나타나셨습니다. 방금 엠마오에서 만났다가 사라지신 후 예루살렘에서 다시 나타나신 예수님을 뵈오면서 그 두 제자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빠름’의 은총을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나머지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그 방에 들어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의 인사를 건네셨습니다(요한 20,19).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벽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동이 자유로운 ‘사무침’의 은총이 제자들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본시 "육체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1코린 15, 44) 라는 사도 바오로의 부활 증언에서 나온 이 용어는 라틴어subtilitas의 번역으로서,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뜻하는 '예민함'으로도 쓰이고, 시공을 초월하는 진리의 보편적 속성을 뜻하는 '사무침'으로도 쓰입니다. 이 두 가지 의미가 모두 영적인 몸의 특성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아무튼 사무침의 은총을 눈앞에서 보게 되자 놀라 마지 않는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는 못박히셨던 손과 발까지 보여주시며 구운 물고기 한 토막까지 잡수어 보이셨습니다(루카 24,40-41).
오늘 독서에서는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확신을 심어 주신 덕분에 사도로서 용기와 믿음을 지니게 된 베드로와 요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전 문 앞에서 걷지 못하던 불구자를 일으켜 세워서 걷게 함은 물론 뛸 수도 있게 해 주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이 기적으로 목격하고 크게 경탄하는 군중을 보며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우리의 힘이나 신심으로 이 사람을 걷게 만들기나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유심히 바라봅니까?”(사도 3,12). 그리고는 청중에게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사도 3,26). 그리하여 그 자리에서 무려 3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사도 2,41).
한국 초대교회의 역사에서도 ‘빠름’과 ‘사무침’의 은총은 놀라운 역사적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교우촌의 개척자로 알려진 신태보 베드로(1769?~1839)는 1795년 무렵에 천진암 강학회 출신 선비로부터 교리를 배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당시 조선에 파견되어 와 있던 유일한 사제 주문모 야고보 신부를 만나서 성체성사를 받기를 염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조정과 유림의 감시망이 워낙 삼엄해서 강완숙 골롬바가 주 신부를 보호해 드리면서 비밀스럽게 다녔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주 신부가 신유년에 치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치며 애통해 했습니다. 낙담한 그는 다시 마음을 다져 먹고, 주 신부로부터 가르침을 직접 받았다는 치명자 가족들을 경기도 용인까지 찾아가 만나서 신앙생활을 하려 했으나, 그곳도 위험해지자 아예 그들 40여 명을 데리고 강원도 산골짜기로 들어간 것이 교우촌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신앙의 확신을 추구하면서 신앙의 자유를 지키려던 동기가 교우촌을 세우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태보 베드로와 치명자 가족들에 의해 강원도 풍수원에서 시작된 교우촌은 한 세대가 흐르기도 전에 그 후 박해를 피해 흩어진 신자들에 의해 전국의 심산유곡에 세워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두고 샤를르 달레(Charles Dallet)는 「조선천주교회사」에서 “박해의 폭풍이 오히려 복음의 씨를 더 멀리 날렸다.”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충청도 청양 다락골 교우촌에서 성장하여 사제가 된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1861)가 미사를 집전하고 고해성사를 주느라고 이 전국 교우촌을 순방하고 남긴 기록에 의하면, 교우촌의 수가 129군데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유박해로 주문모 신부와 명도회를 이끌던 정약종과 강완숙 등 교회 지도자들 50여 명이 치명을 당했고, 잇다른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된 나머지 지도자들도 유배를 당했습니다. 이렇듯 지도부가 와해된 한국의 초대교회에서, 그리고 박해에 따른 아무런 대책이나 지침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오직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행된 이 교우촌 현상은 교우들 간에 의사를 소통할 그 어떠한 연락 수단도 없던 처지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전해진 신앙의 힘으로 ‘빠르게’ 그리고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초월한 ‘사무침’으로 가능했던 기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했기에 백 년에 이르는 박해의 와중에서도 스스로 교우촌에 찾아와 합류하는 이들이 생겨난 덕분에 교세가 늘어나는 기현상까지도 연이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힘이었고, 이것이 한국 천주교회의 뿌리이자 맥입니다.
‘빠름’과 ‘사무침’의 은총으로 나타난 이 교우촌 현상은 한민족 안에서 남녘과 북녘 겨레 모두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신 교회의 고귀한 자산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교우촌이라는 이 역사적 징표는 민족들 안에서 걸어가야 할 파스카 과업의 길에서 우리 교회가 들어야 할 깃발이기도 합니다. 이 역사적 자산을 기억하여 교회적 정체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박해를 이겨낸 순교정신으로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복음화의 못자리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순교자의 후손인 교우 여러분!
천주교 박해 백 년, 민족의 고난 백 년이 지나고 이제 민족 복음화 과업을 순교 정신으로 이룩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교회의 시작인 복음의 씨앗이 특별했고, 교회의 뿌리인 교우촌이 우리 교회 성장의 맥이 되어 주었으니, 교회의 열매인 복음화도 풍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 교회 현실에서 대단히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은 말씀과 성사와 사랑이라는 그리스도 현존의 표지에 충실한 교우촌을 세우는 일입니다. 말씀에 맛들인 교우들이 서로 통공하는 말씀의 교우촌, 성사적 열망에 가득찬 교우들이 서로 연대하는 성사적 실천의 교우촌,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사랑의 교우촌을 세웁시다.
교우 여러분!
이스라엘 동족에게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신앙의 역사를 상기시키고자 했던 베드로의 심정으로 말씀드립니다: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여러분은 순교자의 후손들이고 하느님께서는 신앙의 자유를 지킬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빠름’과 ‘사무침’의 은총을 허락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