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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4-12-12 00:15수정 2024-12-12 09:17
서영교 정도가 정의의 화신인양 설쳐대는 세상그래도 누군가 하나는 버티는 사람 있어야역시 김문수 있어, 그나마 자존심 지켰다
▲ 서영교 의원의 강짜에 가까운 요구에 국무위원 대다수가 일어나 고개 숙이고 있다. 일부는 엉거주춤 일어섰지만, 김문수 장관만은 요지부동의 자세로 일어나지 않았다. ⓒ 서성진 기자
■ 딴 사람도 아니고 서영교 정도에…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의원은 “국무위원들은 국민 앞에 100배 사죄하라”, 목소리를 높였다.
한덕수 총리는 단상 옆으로 이동해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서 의원은 “다른 국무위원들도 국민에게 사죄하라” 요구했다.
그러자 최상목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일어나 모두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하지만 김문수 장관은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 한겨레신문(2024/12/11)
김문수가 사는 법, 그리고 한덕수와 그 일행이 사는 법.
이 두 가지가 확연히 구별된다.
이 둘을 선과 악으로 대조해선 안 될 것이다.
다만, 김문수가 사는 법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덕수 총리와 다른 국무위원들의 선택 역시 그들 나름 소신의 표현임을 존중한다.
■ 권세에 순응하지 않는 소수파
이럼에도 필자가 김문수의 자세를 주목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람은 위험 앞에선 몸을 사리고 겁을 낸다.
이건 나쁜 게 아니다.
안전을 추구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순 없다.
특히 예나 이제나 현존하는 권세에 등을 돌리는 것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그래서 수양대군이 설칠 때 누구나 다 성삼문처럼 살라고 요구할 순 없다.
그러나 권세에《순응하지 않는 소수파》가 있기에 역사는 발전할 수 있었음을 부인할 순 없다.
마틴 루터, 얀 후스 같은 고독한 반항자가 있었기에 종교개혁이 있었다.
종교개혁을《발전》의 역사였다고 전제할 경우 말이다.
그런 이들이 있어 나머지 인간도 덩달아 자긍(自矜)할 수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1950년대 말에 자유당 경찰에 밉보이는 것은 만용이었다.
1970년대에 유신정권에 대드는 것도 위험했다.
대부분은 적당히 순응하며 살았다.
이게 나빴다는 게 아니다.
세태가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데 함석헌, 장준하 같은 인사들은 고독하게 저항했다.
■ 구.역.질.
요즘은 어떤가?
요새 세상에선 누가《에비》인가?
단연 자칭《진보》란 사람들이 오늘의《에비》다.
자존심 없인 살지 못한다는 잘난《지식인》들조차 감히(?)《진보》에 맞서 “나는 그대들에게 반대한다”고 선언하진 않는다.
좌파에 반대했다가는, 요샌 연예인도 못 해 먹고 대학사회에 끼이기도 어렵다고 한다.
설령《진보》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보수다”라고 말하지는 않아야 살기 편하다는 것이다.
왕년엔《우익 권위주의》에 맞춰 살던 친구들까지, 요샌《좌익 권위주의》에 맞춰 산다고 한다.
자신은 좌파는 아니지만, 우파도 아닌 중간 어디쯤 있다는 식으로.
구역질!
■《패션 진보》가 설쳐대는 세상
이 점은 정치인들일수록 심하다.
국민의힘 주류가 그렇다.
그들은 좌파는 될 능력이 없다.
학부 때도 데모 한번 변변히 하지 않고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 열등의식(?) 탓에, 그들은《패션 진보》가 되었다.
강남 노른자위 지역의 일류고를 다니고 일류대를 거쳐, 끗발 직업을 가지게 된 그들.
이들이 오늘의 국민의힘 주류라면《과잉 일반화》일까?
이에 비한다면 김문수 같은 유형은 항상 용기 있는《비(非) 순응주의 소수파》다.
세상 모든 이들이 그처럼 살 필요는 없을 터.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버들가지 형》이 아닌,
《김문수 형》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김문수 나와라!
싸워라!
이겨라!
▲ 서영교 의원의 사과 요구는 군기 잡기 내지는 강짜 부리는 듯했다. 한덕수 총리가 깊이 고개 숙이고 있다. 아마 가슴 속에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배알이 꼬이는 것을 참고 고개 숙였을 것이다. 사태 수습을 위해 몸을 한껏 낮췄을 것이다. ⓒ 서성진 기자
류근일 뉴데일리 논설고문 / 전 조선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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