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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회장님의 카톡에서]
늘 뿌린 대로 거둔다
누구나 요행을 꿈꾸지만 노력이 아닌
뜻밖의 행운만을 기다리는 마음은
욕심일 뿐입니다.
특히 삶이 어려워지면 사람들의
마음에는 한 번의 시도로 큰 재물을
얻으려는 한탕주의와 도박으로
성공하려는 사행심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며 실패하게 되면 다시
일어설 용기까지 잃게 만듭니다.
요행만 바라며 사는 사람은 인생의
발전도, 희망도 없으며 운이 좋아서
일확천금을 얻는다고 해도 결국 파탄의
삶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진리가 있다면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는 마음과 나쁜 것을
심고는 좋은 것을 기대하는 마음도
어리석은 삶의 자세입니다.
근면 성실한 삶을 살아온 이들은 실패로
넘어지더라도 다시 도전 정신으로
일어섭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노력으로 일구어낼 때
인생은 더욱 가치를 얻습니다.
지금 한 톨의 씨앗을 심는다면 언젠가
열매를 맺습니다.
행운은 100퍼센트 노력한 뒤에 남는
것이다. – 랭스턴 콜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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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잠언 11:16)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시편 25:21)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 28:6)
토닥토닥
오늘도 행복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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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 / 변재영
신념의 꽃이 있다. 옥토와 박토를 고집하지 않는다.
논두렁 밭두렁이면 어떠랴. 햇빛 한 줄기 드는 곳이면 쇄석 자갈밭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뼘의 빈 땅만 허락하면 가나안의 복지인 양 바득바득 덩굴손을 뻗어 꽃을 피운다.
인심 넉넉한 외할머니를 닮은 꽃, 담장 위에 노란 별로 뜨는 꽃이 호박꽃이다.
소낙비 한 줄금 긋고 간 아침, 텃밭을 뒤지던 뒤영벌 한 마리가 나를 시간 저편으로 끌고 간다.
유년 시절, 초가집 일색인 동네에 유일한 기와집이 우리 집이다. 땡감나무에 몸을 숨긴 쓰르라미가 목청을 돋우면 담장 위에는 분칠한 듯 노랗게 핀 호박꽃이 맑고 투명한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셨다.
내겐 어머니가 둘이다. 살을 주신 어머니는 내가 일곱 살일 때 병마로 하늘의 별이 되셨고, 지금은 키워주신 새엄마와 다복하게 살고 있다. 내게 어머니란 존재는 포근함도 친숙함도 아니다.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 분은 영원한 그리움이고, 한 분은 갚을 수 없는 고마움이다.
새엄마는 혼기를 놓친 노처녀였다. 겨우 밥걱정이나 면한 살림에 꼬질꼬질한 강아지 넷이 딸린 홀아비에게 생의 전부를 걸만 했을까. 사람들은 쯧쯧 혀를 찼다. 지나칠 정도로 과묵한 새엄마는 실한 엉덩이를 빼면 볼품이 없었다. 우묵주묵한 뱃살, 자유분방한 얼굴에 들창코까지 천하의 박색이었다. 근동에서 미인으로 이름난 어머니가 장미라면 새엄마는 어린 내 눈에도 분명 호박꽃이었다.
부드러운 천성까지 호박을 빼닮은 새엄마는 소처럼 일만 하며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
여름은 호박꽃의 계절이다. 이른 봄, 씨앗을 심으면 숨기척을 내기 무섭게 넝쿨은 가뿐하게 울타리담을 타고 올라 푸짐한 꽃 잔치를 벌인다. 능글맞게 달달 볶는 한낮의 열기도 개숫물 한 바가지이면 족하다. 이기적인 인간에게 햇순을 무참히 꺾인다 해도 절망하거나 요절하지 않는다. 더 많은 줄기를 뻗어 마디마디 열매를 품는다. 잎을 내고 줄기를 뻗는 옹골찬 기상만은 칠월의 태양 볕보다 뜨겁다.
호박꽃은 집념의 꽃이다. 허공이든 장벽이든 가리지 않는다. 표독스런 탱자나무 울타리도 기필코 오르고야마는,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꽃이다. 황무지에 맨몸을 갈면서도 열매를 맺는 게 호박꽃의 운명이라면 각박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것 또한 사람의 몫이 아닐까. 어쩌면 <성실>이라는 단어는 사람보다는 식물에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호박꽃은 내 마음 속에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생명의 꽃이요 환상의 꽃이다.
시골 처녀처럼 수수한 호박꽃은 요염한 장미처럼 별난 미색도 백합 같은 유혹의 향도 없다. 누렇게 익은 열매까지 촌부의 둔부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이쯤되니 <호박꽃도 꽃이냐>고 추녀의 대명사로 내몰려 애꿎은 여심만 박박 긁어 놓는다. 옴팡눈이 대세인 요즘, 짝퉁 장미가 소원인 여인들은 멀쩡한 코에 실리콘을 넣고 눈까풀을 찢고 턱을 깎는다. 하지만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되랴. 외모가 능력이라고 믿는 작금의 씁쓸한 세태를 호박꽃에서 읽는다.
호박꽃을 닮은 새엄마는 넉넉한 잎 속에 몸을 숨긴 애호박처럼 속을 드러내려 애쓰지도 않았다. 단명인 아버지가 속도의 바퀴에 치여 비명횡사하자 할머니는 <서방 잡아먹은 년>이라는 생트집으로 새엄마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마음의 생채기에도 피가 나고 진물이 나는 법. 끄덩이라도 잡히는 날이면 새엄마는 뒤란에 있는 우물가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훔쳤다.
그럴 때면 장독대 옆 담장에 핀 호박꽃이 말없이 그녀의 서러운 한숨을 들어주고 있었다.
호박꽃은 그리움의 꽃이다. 그 속에는 서둘러 떠난 내 어머니가 숨어 계신다. 유년시절, 어머니에게 호박꽃은 삶이고 세월이었다. 구수한 호박잎쌈은 단골메뉴다. 여름 별식으로 호박전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입이 호사를 했다. 배가 허출해지면 맵찬 손으로 뚝딱 만들어주던 얼큰한 애호박 된장찌개며 고소한 부침개, 호박풀떼기의 별미까지 그 부드러운 맛이 지금도 호박꽃에 묻어있다. 꽃샘에 분탕치는 꿀벌을 구금하여 흔들고, 밤이면 반딧불이를 가두어 초롱 밝히던 꼬마도 어느새 은발이 성성하다. 별난 계모슬하에 콩쥐로 자란 새엄마는 우리 집에 와서도 아기를 갖지 않았다. 아버지와의 재혼도 어린 우리 사남매를 보고서야 결정했다는 그 따스한 마음도 지금은 안다. 곱게 늙어가는 새엄마를 통해 호박꽃의 의미를 되새긴다. 결코 외모는 삶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사실, 사람도 청둥호박처럼 당당하게 늙어간다면 쇠락하는 시간에도 행복이 스며있다고 늘그막이 진실 하나를 보탠다.
천대받는 꽃과는 달리 호박의 삶은 고귀하다.
늙어 약이 되고 떡이 되는 게 호박이지 않는가.
황금빛 꽃에 황금빛 열매, 어쩌면 호박에 얽인 전설처럼 황금 종을 만들려는 스님의 넋인지도 모른다. 잘 익은 청둥호박을 열어보라. 담홍색 속살에 알알이 박힌 생명들, 그것은 마치 금붙이 패물을 겹겹이 쟁여놓은 듯 경이롭다. 좌르르 쏟아지는 호박씨를 연주에 꿰면 단발머리 순이, 옥이가 걸고 다니던 유백색 비취 목걸이가 아니겠는가. 어디 금은보화가 흥부의 박속에만 있으랴.
조물주의 섭리 또한 얼마나 지혜로우신가.
꽃이 화려하거나 좋은 향을 가지면 작은 열매를 주고, 꽃이 보잘 것 없으면 크고 넉넉한 열매를 주셨다.
꽃도 열매도 훌륭하다면 금상첨화지만 하찮은 꽃에 열매마저 시원찮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래서일까. 탐스런 오곡도 꽃은 별로다. 벼꽃이 그렇고 꽃콩이 그렇다. 사람들은 장미를 꽃의 여왕으로 입줄에 올리지만
그 열매는 얼마나 초라한가.
꽃을 엑스레이로 촬영하여 연구하는 어느 의학자의 말을 빌리면 엑스레이에 잡힌 호박꽃의 아름다움은 장미보다 훨씬 더 빼어나다고 한다. 내면의 미를 관조했음이리라.
들녘에 황금 알을 낳는 호박꽃에 주목해보라. 연인과의 해후처럼 마음의 응어리가 스르르 풀리고 따스한 훈김이 심장에 별로 박힐 것이다.
몇 덩이의 호박이 대청마루에서 가부좌를 틀고 면벽 수행중이다. 마지막 한 점의 풋내까지 털어내는 숙성의 시간이리라. 나도 이처럼 곱게 익을 수 있을까……... 사람에게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설익은 패기만 믿고 대책 없이 세상에 부딪히다간 좌충우돌로 겉돌기 마련이다. 냉철한 담금질로 자숙의 시간을 거쳐야 어떤 사람과도 화합할 수 있다. 손톱만한 작은 씨앗이 모진 풍상을 이겨내고 바위만 한 결실을 보기까지의 지난한 시간이 곧 내가 달려온 인생역전이 아닐까.
호박꽃의 멋은 누가 뭐래도 진솔함이다.
가식이 없는 꽃은 늘 훤칠한 목을 빼어 당당하게 하늘에 시선을 모은다. 슬픔과 기쁨, 미움과 고마움도 한 심장에서 일색으로 피우는 꽃이 아니던가.
<포용, 관대함>이라는 꽃말처럼 순박한 외모에서부터 믿음과 넉넉함이 묻어난다. 내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 사람은 속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이름 없는 풀꽃도 사랑한 사람이라고, 세상의 비웃음이 주는 고통까지 가슴에 안은 사람이라고..."
빗물에 세수한 호박꽃을 다시 바라본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나이가 들면 외모에도 자유로워지는 걸까.
나잇살이 붙어 두꺼비상이 된 내게 "호박덩이 같다"라고 툭툭 던지는 아내의 퉁마저 칭찬으로 들리니 나도 하릴없이 늙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 제8회 경북일보 청송 객주 문학 대전 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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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
Ancora imparo(안코라 임파로)!
“안코라 임파로!
이태리어로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는 뜻이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그림을 완성한 후 미켈란젤로가 스케치북
한 쪽에 적은 글이다.
당시 87세.
최근 우리의 모든 시간은 정지됐다.
그리고 일상이 사라졌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만나도 경계부터 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마주 앉아 팥빙수를 겁 없이 떠먹던 날이 그립다.
가슴을 끌어 안고 우정을 나누던 날이 또 다시 올 수 있을까?
한숨이 깊어진다.
비로소 나는 배웠다.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한다.
속히 일상의 기적과 함께
기적의 주인공으로 사는 일상을 달라고.
나는 배웠다.
마스크를 써 본 뒤에야
지난 날의 내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너무나 쉽게 말했다.
너무 쉽게 비판하고
너무도 쉽게 조언했다.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경박했다.
나는 배웠다.
‘살아있는 침묵’을 스스로 가지지 못한 사람은
몰락을 통해서만 ‘죽음으로 침묵’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배웠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치인도
성직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대구로 달려간 신혼 1년 차 간호 천사가 가슴을 울렸다.
잠들 곳이 없어 장례식장에서 잠든다는
겁 없는 그들의 이야기에 한없이 부끄러웠다.
따뜻한 더치 커피를 캔에 담아
전달하는 손길들을 보며 살맛 나는 세상을 느꼈다.
이마에 깊이 팬 고글 자국 위에 밴드를 붙이며
싱긋 웃는 웃음이 희망 백신이었다.
나는 배웠다.
작은 돌쩌귀가 문을 움직이듯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저들의 살아있는 행동인것을.
나는 배웠다.
죽음이 영원히 3인칭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언젠가 내게도 닥칠 수 있는
그래서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는 배웠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미생물의 침투에 너무도 쉽게 쓰러질 수 있는 존재임을.
인간이 쌓은 거대한 도성도
바벨탑 무너지듯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런데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악다구니를 퍼붓고 살았으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를 배웠다.
나는 배웠다.
인생의 허들 경기에서
장애물은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라’고 있는 것임을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재정의하고 살아남아 영웅이 될지,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될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닥친 불행과 시련을 운명이 아닌
삶의 한 조각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 때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었다.
나는 배웠다.
까뮈의 ‘페스트’에 등장하는
북아프리카의 항구 오랑은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서로를 향한 불신과 배척,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그게 바로 지옥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배웠다.
어떤 기생충보다
무섭고 무서운 기생충은 ‘대충’이라는 것을.
손 씻기도 대충,
사회적 거리 유지도 대충,
생각도 대충.
이번 사태에도 너무 안이했다.
나는 배워야 한다.
아파도 웃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아니 그게 진정한 인간 승리임을.
나는 기도한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안코라 임파로! (Ancora imparo!)”
평강이 강물처럼 흐르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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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편지
🩸어느 사색가의 글
차 한잔 마시며 뒤돌아보는 시간
그리 모질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바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물처럼 흐르며 살아도 되는 것을...
악 쓰고 소리 지르며
악착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 한마디 참고...,
물 한모금 먼저 건네고...,
잘난 것만 보지 말고..,
못난 것도 보듬으면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 보듯이...
서로 불쌍히 여기며...
원망도 미워도 말고...
용서하며 살걸 그랬어...
세월의 흐름속에 모든것이
잠깐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흐르는 물은 늘 그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왜 나만 모르고 살아 왔을까::?
낙락장송은 말고,
그저 잡목림 근처에
찔레나 되어 살아도 좋을 것을...
근처에 도랑물이 졸졸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감나무 한 그루가 되면
그만이었던 것을...
무엇을 얼마나 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둥바둥 살아 왔는지 몰라...
사랑도 예쁘게 익어야 한다는 것을..
덜 익은 사랑은 쓰고 아프다는 것을..
"예쁜맘"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젊은 날에는 왜 몰랐나 몰라...
감나무의 '홍시'처럼
내가 내 안에서
무르도록 익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프더라도
겨울 감나무 가지 끝에 남아 있다가
마지막 지나는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이 순간처럼
새 봄을 기다리는...
"예쁜맘"으로 살고싶어라.
미움아 배려야...!
서로 이해하며 살아보렴.!
건강이랑...! 사랑이랑...!
행복이랑...! 기쁨이랑...!
오늘은...! 무조건...! 무조건...!
행복이 주렁주렁 ...!
웃음꽃이 피어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소중한 친구에게 주고싶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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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등불 ]
[안 되는 일에
마음을 쓰지 말라]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지만, 근심은 사람의 뼈도 상하게 한다.
마음을 잘 지키는 자가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
마음에서 생명이 나오며, 마음에서 건강도 나오고, 마음에서 성공과 장수도 나오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프면
궁궐도 좋은 줄 모르나 마음이 즐거우면 초가삼간에서도 만족한다.
이러한 마음을 상하게 하는 제일 중요한 적은 심려다.
심려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인생은 고해' 라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매일매일 생기는 근심 거리를 다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게 한다면 마음의 짐이 너무 무거워 견디지 못한다.
소중한 사람이 떠나고,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말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바로 보면 우리는 심려에 빠지지 않는다.
즉, 우리가 잃은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마음은 평화로워 지고 삶의 여유가 생긴다.
이러한 마음이라면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연일 무더위가 계속되는
날씨에 건강 관리 잘하시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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