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서울시가 경계경보를 발령했던 상황을 보면 법과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였다. 북한 접경지역 지자체들도 모두 자체 경보를 발령하지 않았다. 왜 서울시만 오판했을까?
5월31일 서울 시민들이 받은 경계경보 오발령 문자. ⓒ연합뉴스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없다.’ 경계도 작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지난 5월31일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에 실패했다. 서울시는 경계경보를 오발령했다. 시민들은 오발령에 더 불안해했다. 경계를 실패한 사례이다. 경계의 실패는 적의 기습에 대응하지 못한 경우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 대응하여 국민들에게 혼란을 끼치고, 대응 시스템의 허점을 노출한 것도 경계 실패다.
민방위 경보발령-전달 규정에 따르면, 경계경보는 ‘경보발령’과 ‘경보전달’이라는 두 가지 차원으로 진행된다. 서울시가 오발령한 것은 이 두 가지에서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보발령이란 ‘규정에 따라 권한을 가진 자가 경보를 발표하는 행위’를 말한다. 규정에 따르면, 서울시장에게는 임의로 판단해서 경보를 발표할 권한이 없다. 경보전달이란 ‘계통에 따라 경보 상황을 전파하는 행위’를 말한다. 서울시는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계통을 정확하게 따르지 못한 유일한 지자체였다.
일반적으로 경보를 발령해야 할 경우는 전시나 이에 준하는 사태, 적의 침투나 위협, 자연재난과 사회재난 등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민방위방위기본법에 따르면, 서울시장은 자연재난이나 사회재난의 경우에는 경계경보를 판단하고 발령할 권한을 가진다.
북한이 우주 발사체를 발사했을 경우에는 군의 판단이 우선이다. 행정안전부(행안부)가 주무 부서이다. 행안부 장관도 공군 사령관이 요청해야 경보를 발령할 수 있다. 군의 판단이 없이 서울시가 자의적으로 판단해 경계경보를 발령할 수 없다. 국가위기관리 체계에서 군,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협조 시스템이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더라도 지자체의 사무에 ‘재해대책의 수립 및 집행’을 명기하고 있을 뿐이다. 전시나 적의 위협에 대한 대응은 지자체의 권한이 아니다. 통합방위법에 따라서 서울시장이 통합방위사태를 선포하더라도 군이나 경찰의 건의가 있어야 한다.
서울시가 경계경보를 발령했던 당시 상황을 보면 서울시는 분명 법과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를 했다. 북한 접경지역 지자체들도 모두 자체 경보를 발령하지 않았다. 서울시만 왜 오판했을까?
오세훈 시장은 오발령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실무자의 실수로 치부하고 있다. 이번 경계경보의 경우 공군의 요청에 따라 행안부가 경계경보 발령을 내린 것은 절차로 볼 때 문제는 없다. 군은 행안부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에 백령면과 대청면에 경계경보 발령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행안부 중앙통제소는 전국 17개 지자체에 ‘백령면 대청면에 실제 경계경보 발령.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를 발령’이라는 지령 방송을 전파했다.
5월31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경계경보 오발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서울시 경보통제소가 ‘경보 미수신 지역’에 서울시도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령 방송 앞부분에 백령면·대청면이 있으므로 경보 미수신 지역은 당연히 백령면·대청면에 해당하는데 서울시 관계자가 이를 잘못 판단한 것이라는 게 행안부의 입장이다.
여기까지는 서울시 실무자의 실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울시 해명을 보면 실수라기보다는 국가위기관리 체제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문제를 일으킨 본질인 듯 보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북한이 서해상으로 로켓을 발사했을 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가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며, “이번 긴급 문자는 현장 실무자의 과잉 대응이었을 수는 있지만 오발령은 아니었다고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또 서울시는 보도 참고 자료에서 “상황이 정확히 파악되기 전에는 우선 경계경보를 발령하고, 상황 확인 후 해제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라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북한의 실제적 위협이 한반도 영토에 영향을 준 것이 근본적인 위기 본질”이라고 밝혔다.
오 시장의 말대로 ‘북한이 서해상으로 로켓을 발사했을 때’나, 서울시 보도 참고 자료에서 밝힌 바와 같이 ‘상황이 정확히 파악되기 전’에 대비해서 관계 부처와 협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는 관계 부처와 협조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계경보를 내렸기 때문에 서울시의 권한을 넘어서는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고, 결과적으로 오발령을 한 것이다.
경계경보 발령뿐만 아니라 해제도 서울시가 임의로 했다. 군의 요청으로 해제경보를 내릴 권한은 행안부에 있다. 행안부는 5월31일 오전 8시1분 서해 백령·대청 지역에 내려졌던 경계경보를 해제한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경계경보 해제 문자를 발송한 시간은 오전 7시26분이었다. 군이 백령·대청 지역에 내려진 경계경보 해제를 요청하기도 전에 서울시에서 경계경보를 먼저 해제한 것이다.
5월31일 시민단체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오발령과 관련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대응을 규탄했다. ⓒ시사IN 신선영용산 대통령실 위기관리센터는?
규정에 따르면, 오발령이나 심지어 ‘경보 단말 잘못 울림이 발생’한 경우에도 해명 방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경계경보가 오발령이라는 행안부의 지적이 있었으니, 규정에 따라 해명 방송을 하면 된다. 서울시는 오발령을 수용하지 않으면서 서둘러 경보 해제 조처를 했다.
서울시와 행안부가 옥신각신하는 사이 용산 벙커에 있는 대통령실 위기관리센터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위기관리센터가 신속히 정보를 공유하고 부처와 기관 사이에 이견이 발생할 경우 이를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을 굽듯이 하라고 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는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시에는 안보 사안과 관련하여 1차적인 정보를 확보할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법에는 서울시에 안보 관련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관련 부처와 협조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다. 통합방위법에 따르면, 서울시장은 서울시 통합방위협의회 의장이다. 서울시 통합방위협의회 의장은 ‘적의 침투 도발’이라는 위기상황에서 군이나 경찰의 건의를 받아 통합방위사태를 선포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적의 침투 도발’이라는 위기상황에서 통합방위협의회 의장으로서 서울시장의 권한 행사가 관련 부처와 협의 없이 자의적으로 실행되어서는 안 된다. 서울시의 오발령에 대해 점검해야 하는 이유이다.
서울시가 재난이 발생할 경우 경계경보와 위험경보를 제대로 발령할 수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서울시가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연재난이나 사회재난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과잉 대응해도 좋다. 아니 과잉 대응할 수 있도록 오히려 재난 대비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경보전달 체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행안부의 지령 방송을 서울시만 잘못 해석했다는 점이다. 실무자가 경보전달 체계를 평소에 숙지하지 않았다면 이는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서울시 경보통제소 본연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기능적으로 특화되어 있을 경보통제소 관계자가 그런 실수를 한다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지령 방송을 수신한 17개 지자체 중에서 유독 서울시만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잘못 해석한 지령 방송은 ‘경보를 미수신한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를 하라’는 대목이다. ‘민방위경보 발령·전달 규정’에는 ‘경보 전달 장비로 경보가 전달되지 않을 때는 자체 방송설비 또는 통신시설 등을 이용하여 이를 전달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조항은 발령 지역 단말기에서 미수신하면 자체 경보를 하라는 것이다. 지령 방송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으나, 이러한 규정을 숙지한 관계자들이라면 혼란을 일으킬 만한 수준은 아니다.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은, 심지어 북한과 접경하고 있는 지역들까지 정확하게 대응했다. 이 지자체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은 없다.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서울만 과잉 대응?
서울시 관계자는 지령 방송에 의문이 들어서 중앙경보통제소로 문의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전북의 경우는 달랐다. 중앙통제소에 전화했는데 서울시 경우처럼 1통제소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전북은 다시 2통제소에 문의해서 ‘백령도 지역에만 해당하는 국지적인 상황’이라는 답변을 듣고 경계경보를 발령하지 않았다.
실무자의 과잉 대응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서울시의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 서울시에서 경계경보를 발령하는 시스템은 ‘행안부 경계경보→중앙경보통제소 지령 방송→서울시 경보통제소가 수신 후 통합문자 발송 시스템에 문자 내용 등록→서울시 최종 승인→경계경보 문자 발송’의 순서로 작동한다. 서울시 경보통제소가 문자 발송 업무에 착수해서 서울시 관계자의 승인까지 이뤄진 사안이다. 법과 규정에 따르면, 책임자는 서울시장이지만 위임할 수 있다. 서울시장의 위임을 받은 사람이 승인했기 때문에, 승인 요건을 적절히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점검이 필요하다.
서울시는 경계경보를 ‘위급재난문자’로 알렸음에도 경계경보 해제는 ‘안전재난문자’로 발송했다. ‘재난문자 방송 송출기준’에 따르면, 경계경보 발령과 해제는 모두 위급재난문자를 이용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계경보는 경고음이 시끄럽다는 민원이 많이 발생하는 부담스러운 부분을 고려해 (경계경보 해제는) 안전재난문자로 발송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와 함께 아이들이 물에 잠겨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국민들이다. 이태원에서 젊은이들이 희생당한 지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다시 국가위기관리 체계가 오작동하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이런 아픈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현대사회는 다양하고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재해나 재난의 성격도 다양해지고 있으므로 희생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국가위기관리 체계가 오작동한 것을 반성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사이에 안전 시스템을 확고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안전한 서울,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는 군사 안보 영역에서는 군과 중앙정부와 협력하고, 재해·재난과 관련해서는 국가안보 수준에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21세기 현대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서울시민 안보’를 구축해야 한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editor@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