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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투시경] 탄핵정국, 김정은에 오판의 빌미를 주면 안돼
자유일보
정창열
지난 12월 3일 밤 10시 30분 대통령의 긴급 담화 형식으로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이렇게 시작된 탄핵정국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수순(手順)이 잘못됐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가령 12일에 있었던 담화문을 계엄에 앞서 발표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여론에 따라 ‘비상계엄’ 선포 여부를 선택했다면 이런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탄핵정국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김정은에게 대남 정세 오판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야권의 친북적 대북관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野) 6당은 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을 발표했다. 이 소추안은 결론 부분에서 다음 내용을 소추 이유의 하나로 적시했다. ‘소위 가치 외교라는 미명 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한 채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하는 등의 정책을 펼침으로써 동북아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전쟁의 위기를 촉발시켜 국가 안보와 국민 보호 의무를 내팽개쳐 왔다.’
현 정부의 대북 정책 핵심은 민족 공멸을 초래할 수 있는 김정은의 핵 사용을 억지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북한 적대시 정책으로 매도하는 것은 종북 본색을 드러낸 궤변일 뿐이다. 또 한민족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6·25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에게는 내재적 접근론으로 면죄부를 주면서,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원인 제공자에 대한 정당방위 행위의 결과만을 가지고 가혹하게 단죄하려는 모순된 행위다. 그야말로 해괴한 논리인데, 이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2차 소추안에서는 이 내용을 삭제했다.
문제는 이런 대북관을 지닌 야권이 정국을 주도하게 되면, 평화 정착이라는 허울 아래 ‘김정은 바라기’의 친북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은은 이에 편승해 ‘통일대전 내지 영토 완정’의 호기로 삼을 수 있다.
둘째, 김정은이 탄핵정국 상황을 ‘대남혁명 정세의 성숙’으로 오판할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11일 "심각한 통치 위기, 탄핵 위기에 처한 윤석열 괴뢰가 불의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파쇼 독재의 총칼을 국민에게 서슴없이 내대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 온 괴뢰 한국 땅을 아비규환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보도했다. 5일 이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반정부 시위 소식 등을 일절 보도하지 않고 사태를 관망하다가 7일 만에 대남 비난 보도를 재개한 것이다.
모든 생명의 원천인 ‘물’(水), 특히 ‘흐르는 물’(流水)의 가장 큰 덕목(德目)은 자체 정화 작용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배를 뒤집기도 한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 다양한 견해를 표출하고 합의를 통해 자체 정화를 하면서 체제를 건전하게 유지해 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구성원을 불편하게 하는 정권은 교체하거나 퇴출시킨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 나타난 혼란도 이런 정화 작용의 일환이다.
그런데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OMNES PRO UNO)라는 구호 아래 유지되는 북한의 전체주의적 시각으로 볼 때, 대한민국의 탄핵정국은 아비(阿鼻)지옥이자, 규환(叫喚)지옥인 것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대남혁명 정세의 성숙’으로 오판하고 대남 전면 도발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안보 위기 요인을 고려, 이번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등은 북한에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경고해야 한다. 저들이 탄핵 이유에서 주장한 대로 ‘국가 안보와 국민 보호’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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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열 북한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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