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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쉐카이나 월드워십팀(문수제일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온유
문수제일교회 선지자학교
김온유 전도사 작성글
이시대 진정한 개혁을 원하는
패러다임의 전환 시리즈 제 1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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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원하시는 것은 종교적인 제사가 아니라
거룩한 산제사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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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예배의 회복
(시 50:5)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우리는 하나님과 제사로 언약한 언약백성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요 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성령)과 진리(말씀)로 예배할지니라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2절은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는 삶의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롬 12:2) 너희는 1)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2)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3)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성경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롬 2: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우리는 말씀전체를 통해 주님의 뜻을 알수있으므로 먼저 그분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뜻을 성령의 계시와 조명을 통해 알아야 한다.
아래 구절을 통해 종교적으로 살아왔던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비추고 회개하며 묵상하는 가운데 그분의 뜻을 드러내길 원합니다.
크게 확대한 단어들에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예배자에게 필요한 거룩한 단어들입니다
성경에 많은 구절이 있지만 제사와 연관된 구절만 아래 적어놓았습니다
(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 51: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시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호 6:6) 나는 인애(긍휼)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 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막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위 성경 구절을 보시고,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십니까? 마지막 때일수록 우리의 동기와 초점과 우선순위를 회복하라고 주님은 저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다음 아래 성경구절은 종교적인 마음으로 드리는 종교인들의 종교적이고 형식적인 제사를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제사를 드리지 않는 나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우리는 종교의 영을 거부하고 교회 안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빛이 임하면 어두움은 사라집니다 주님과의 친밀함 가운데 그분의 임재로 덮어지고, 그분의 성령이 충만하며 오직 그분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삶 가운데 주님의 자녀로 인쳐질 것이며 그렇게 성령안에서 행하게 될 것입니다.
(갈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아래 구절을 통해 예배에 관한 주님의 마음이 더 드러납니다.
(사 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사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사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 1:13) 헛된 제물(예배)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기도)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 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u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사 1: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식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사 1: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다음 성경구절을 통해 이사야 선지자 말고도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우리의 종교적이고 형식적인 예배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회복하기 원하시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말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위 구절에서와 같이 자신이 주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열납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항상 자기관점이 아니라 주님의 관점, 성경적인 관점에 의해 볼수있는 믿음의 눈을 키우자
(말 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말 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말 1: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말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이런 예배는 주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아니라 바로 마귀에게 드려지는 예배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기 바란다.
(암 5:25)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이말은 너가 정말 나한테 예배드린 적인 있었느냐? 라는 말 충격적인 말씀이다.)
(암 5:26)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기윤과 너희 우상들과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들의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하나님께 영광되지 못하고 자신이 만든 우상 즉 귀신에게 드린 예배가 나와있다 )
(암 5:27)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창4장 가인의 예배를 통해 보아왔지만 반드시 심판이 있기 마련이다.최종적으로는 지옥의판결이겠지만)
모세는 분명히 밝힌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아니라 귀신에게 했다고 말하므로 위의 말을 확증한다.
(신 32: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충격이지 않습니까? 과연 한번구원은 영원한 구원일까요? 단순히 성전안에 거한다고 해서 단순한 성전신앙으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하길 원하십니다.
당신의 예배는 어떤 예배입니까?
단순히 주일에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삶이 예배가 되길 원하신다. 삶속에서 예배자로서 주님의 거룩한 산제물이 되어지고 그분의 사랑과 용서와 마음을 드러내는 내가 메시지 자체가 되고, 그분의 영광을 발하고 드러낼수 있는자를 주님이 이 시대가운데 찾고계신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주일날 거룩한 예배드리는 것도 엉망인 사람들이 많다.)
신약시대에 생명의 성령의 법안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여러분의 삶이 예배자의 모습을 갖추기 원하신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뜻을 이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다고 드려지는 예물과 내 삶이 마귀에게 드려지고 있는것은 아닌가~! 주님이 또한 종교적인 열심과 종교성으로 하나님께 제사드리지 말고 진정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므로 드려지는 중심의 예배를 찾고 계신다.
예배는 두가지 요소는 삶과 예물입니다.
(창 4:5) 가인(삶)과 그의 제물(예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출 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예배자로서 우리는 삶의 주권과 물질의 주권을 주님께 양도하고 그분이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하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단순히 구주가 아니라 주라고 고백할 수있는 산 믿음입니다.
우리는 청지기로써, 피값으로 산자로써 이제는 나의 중심적인 믿음으로 버리고 나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을 위해 사는 삶으로 변화되길 원합니다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패러다임의 전환 두 번째 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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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진리와 원칙들의 단순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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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관계성은 반드시 제가 그린 표를 참조를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회복할 때 비로소 그후에야 진리의 체계와 원칙들이 지식이 아니라 나에게 적용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셨는데
길과 진리가 생명이 되기위해서는 반드시 주님안에 거하며 주님과의 관계가운데 참 진리의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분이 길 자체요 진리 자체가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소리이다
(시 25: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무엇을 하는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는것(존재: 예수닮는것)이다
하나님보다 사역과 일과 은사가 우상되는 것은 우상숭배 죄이다.
사역은 상급에 기초하지만 영생은 관계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은사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그사람의 열매로 천국가는것이다
은사는 뛰어나지만 임재가 없는 것은 죽은것이다.(마7:23)
관계의 중요성
신약의 반이상을 쓴 사도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자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사역)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관계)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요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관계성에 기초하는 것이다.
아는 것은 관계성을 말하는데 주님도 알고 나도 주님을 아는 연합(쌍방)이다.
마치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처럼 말이죠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자유의지)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일 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라(요일 3: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요일 2: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되는 삶은 구원이 유지되는 삶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떨어져나가면 구원은 유지되지 못한다(나눠드린 구원론 프린트1 반드시 참조) - 그분의 은혜로 죄사함으로 얻는 구원을 이루었고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은혜를 베푸시지만, 우리 스스로가 그 보혈의 장막,은혜의 장막에서 벗어나 죄의 종노릇하려하면 주님은 계속 회개하기까지 기다려주시고 공의의한계를 넘어서면 믿는자라도 지옥갈 수 있는것이다 지옥은 주님이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스스로가 자처한 일임을 반드시 기억하라. 주님은 이미 말씀에 약속을 주셨고 산 믿음으로 누구든 다 천국에 가게 만드셨다.
약속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거함이라는 조건이 붙는다(중요)
성경의 모든말씀뿐 아니라 예언도 이원칙이 적용된다.
따라서 그분과 붙어있는 삶, 즉 그분의 말씀안에 거하고, 그분의 사랑안에 거하여 그분의 생명을 공급받아 열매맺는 신앙을 주님은 원하신다,(포도나무와 가지의 비밀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표를 반드시 참조)
그래서 주님이 인정해주시는 자가 되길 원한다,
(마 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고전 8: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성경구절을 살펴봄을 통해서 어떤관계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출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면서(소의피가 아니요 예수피로 인준되며 돌비가 아니라 심비에 성령으로 기록진 신약시대: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는 것은 공통적인 요소(율법의 정신은 절대 폐하여지지 않았다)이며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언약백성임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다음의 관계성도 공통적인 것은 언약 관계안에서 나올수있는 관계성이다
(시 89:3)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표를 참조하시면 쉽게 이해가 될것이다
1.의인(구원론 프린트 참조하시길)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약 2: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약 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신 6:25)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공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롬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2.하나님의 친구
(요 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3.예수님의 신부, 하나님의 신부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신부)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계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요 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요 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4.하나님의 자녀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성령)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5.하나님의 용사, 그리스도의 군사(특전사가 되라.)
(딤후 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2:4) 병사(군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엡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6.예수님의 제자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눅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 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7.하나님의 무익한 종(그러나 우리의 신분 자체는 종이 아니다)
(눅 17: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눅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무익한 종의 고백처럼 겸손함과 말씀이 죽기까지 복종하는 충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주님 보시기에 의인이었지만 죄인의 심령으로 종의 심령으로 겸손함과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나아갔던 바울의 삶이 모범의 예가 될수있을것이다
(눅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주님은 전도를 명령하실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르되가 아니라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한 목적을 잘생각해 보라
(종의 자세는 말씀을 순종하고 복종하는 우리의 자세를 말한다, 전도는 사명이요 당연한 것이다.
또한 내 이웃의 종이 되야 한다.
(벧전 2: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사랑하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종이된다)
(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갈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마귀는 하나님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모르도록 여러분을 미혹시키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은혜의 해인 신약시대에 내가 빼앗겨버린 권리들과 정체성을 되찾아오며 회복하는 가운데 영적고지를 점령해야 한다.그리고 주님의 몸안에서 내자리를 찾아 들어가야 한다 정체성을 알수록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인식할수록 영적전쟁은 그분안에서 더욱 힘을 얻게될것고 여러분안에 주어진 소망을 잃지 않을것이다. 신부들이여..용사들이여..예배자들이여...일어나라. 머리를 들라.
지금은 생명의 성령의 법안에 있고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기록되어지며 그분이 내주하시며, 그분안에서 능력과 힘이 주어지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이 누구인지 먼저 알지못하면(1순위) 절대로 내가 그분 안에서 누구인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순서가 뒤바뀌어도 문제가 생기고 왜곡되어진다.
우리는 주님안에서만 내가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할렐루야
패러다임의 전환 세 번째 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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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자체가 아니라
성전의 주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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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은 항상
동기와 우선순위와 초점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 시대가운데 우리는 정확한 초점을 예수님 그분께 온전히 맞추어야 한다.
그문의 손에 들려진 무엇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그분자체를 구하며 그분께 속한 무엇이 아니라 주님을 목적으로 달려나아가야 한다.
왜냐면 정확한 초점이 없는 자는 바람(환난)이 불때나 자기와 이익이 맞지 않을때는 타락한 인간의 속성상 넘어지고, 무너지고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시 1: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환난)에 나는 겨와 같도다
(요 6: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 이구절은 요6장 생명의 떡설교(가버나움)를 하시고 그를 따랐던 수많은 무리들, 아니 그의 제자중에서 많은 이들이 떠나가면서 주님이 하신말씀이다: 믿음의 요구가 그들의 이익과 맞지 않음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교회, 좋은 지도자, 신앙좋은 가족안에 있으면서 느끼는 구원의 안정감속에 기만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구원은 개별성을 띠는 것이다.
(겔 18: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좋은 교회에 가야 복을 받고, 좋은 영적지도자를 만나야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을 한다. 물론 좋은교회와 지도자를 통한 역사들은 우리의 믿음을 천국으로 끌고 가기에 많은 유익과 도움이 되지만, 나와 주님과의 관계가 맺어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포도나무와 가지비유)
마치 눅15장에 잃어버린 탕자비유에 나오는 큰아들은 내가 아버지 집에 있다고생각했지만 아버지와의 참 사랑의 관계가 단절된 교회안의 진정한 탕자임을 확인해 볼수가 있을것이다.
작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자 다음은 큰아들의 반응이다.
(눅 15: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눅 15: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이것이 참 순종으로 맺어진 관계인가? 이것은 율법적인 순종이다
이처럼 형식적인 순종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 요구하시는 관계는 하나님과의 연합이다. 참사랑과 감사로 이루어지는 복음적인 순종밀이다.
아무튼 말세 교회 안에 큰 아들같은 많은 탕자들이 있다.
작은 아들같은 탕자는 오히려 더 빨리 깨닫고 돌아오기라도 하지만 미지근한 신앙의 소유자인 큰아들은 더욱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는것이다
(계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직분이 높거나 오랫동안 신앙생활 했던 사람 중에 이런부류의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 시간 구원론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데 이 모든 것이 구원론에 오류가 있고 사람의 계명과 전통적인 교리로 인해 많이 초점과 동기와 우선순위들이 왜곡되어져 있다.
다음구절을 보자
(렘 7: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믿는자들)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렘 7: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렘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성전 중심 사상안에서 성전에서 주님의 뜻과 마음도 모른채 형식적이고 외식적이며 종교적인 제사를 드리고 있으면서, 즉 주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으면서 이것이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언약궤가 있는 성전이라 생각함으로 늘 언약궤(임재와 영광)가 있다고 생각함으로 구원의 안정감속에서 기만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레미아가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본문에 자신의 뜻을 보여주신다
(렘 7: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렘 7: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렘 7:7)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할것이다
우리를 주님을 섬기는 예배자로 부르셨다.
(출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그예배가 무엇인지는 첫 번째 패러다임에서 다루었다. 주님은 5절부터 자신의 뜻을 보여주신다.
너희들이 구할것은 성전이 아니라 성전안의 하나님이며 너희들은 성전안에서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무엇을 예배드리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것을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사실을 주님은 알기 원하신다.
계속해서 다음절에 예배를 드리러 온 그들의 삶의 단면들을 적나라하게 보이신다
(렘 7: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렘 7: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렘 7: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렘 7: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은 주님의 십계명을 철저히 어겼으며
십계명을 주신 동기와 그분의 뜻도 깨닫지 못했다.
레위기에서 말한 성결과 거룩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백성뿐아니라 제사장까지도... 오늘날의 현실처럼
마치 출애굽시대 이스라엘 백성처럼 말이다
(신 29:2)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신 29:3)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신 29: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다음 구절에서 이런말씀을 한다.
(렘 7: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
이 구절은 바로 삼상4장 언약궤를 빼앗긴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삼상 4: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삼상 4:4)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삼상 4: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삼상 4:6)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삼상 4: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삼상 4: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삼상 4: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삼상 4: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삼상 4: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언약궤 , 곧 증거궤 , 곧 법궤가 전쟁 중에 있으면 당연히 전쟁에서 승리할 줄 알았는데 그 언약궤마져 빼앗기고 만것이다,
우리는 중요한 계시와 진리를 만나게 된다.
주님의 뜻이 보이는가?~!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주님의 임재가 있어야 한다
언약궤가 진정한 언약궤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의 임재와 영광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건물이 화려하고 크고 웅장한 교회는 많지만
얼마나 주님의 임재가 없는가~!
단순히 성경공부, 제자양성반, 성가대 등 교회의 요소를 갖춘 것 같지만
임재가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주님은 황폐한 갈릴리 땅을 걸으셨지만
주님의 임재로 그땅이 영화로운 땅이 되었다.
바로 주님이 걸으셨기 때문이다.
언약궤는 바라볼때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언약궤는 바라보고 따라갈 때(진정한 순종)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언약궤가 성령의 역사로 나와 연관되어지며 그속에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그분안에 거하면서 말씀에 순종할 때 가능해진다.
언약궤를 자체가 아니라 언약궤를 바라볼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귀중한 교훈을 주님은 주신다.
초점은 역시 주님 그분 자체이다.
초점은 그분의 임재다.
언약궤는 그 안에 십계명돌판과 만나와 싹난지팡이가 있음을 통해 그것들이 주는 의미를 새기면서 우리가 그것들을 교훈삼고 언약궤를 바라보고 따라가야 한다.
(수 3: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이제 다음구절의 의미가 이제 이해가 되는가?
(렘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에스겔서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겔 10:18)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실제로 요새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교회들이 많다.
언약궤가 없는 교회도 많을 뿐아니라 언약궤를 보고 따라가는 성도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증한 물건이 교회에 세워지는 것처럼 주님보시기에 그런 궤일뿐일 것이다. 언약궤는 바라보고 따라가는 것이다. 그럴때는 늘 주님의 임재가 넘친다.
생명의 말씀을 보고 따라가는 것이다
그분을 좇는것이다.
그분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기독교안에 생명이 나타나려면
반드시 그분을 따라가야 한다.
성전 성전 하지만 성전안의 하나님이 목적이 되야 할것이고
내안의 거룩한 성전이 먼저 회복되어져야 할것이다
다음구절을 보자 솔로몬에게 주님이 나타나셔서 한말이다.
(왕상 9: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왕상 9: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여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왕상 9:5)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왕상 9:6)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바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언약궤를 보고 따라가지 아니하면)
(왕상 9:7)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구절을 통해 많은 깨달음이 있어으리라 확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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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무교회주의가 잘못된 것인가? 물론 잘못된 마귀의 사상이다.
“ 교회론은 신학적인 차이가 조금씩 있지만 이것은 나 개인의 입장이다 ”
처소로써의 교회도 참 중요한 것이다.
(왕상 9: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위의 구절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있고, 주님의 눈과 마음이 거기에 항상 함께있으며, 주님은 주님의 성전 또한 거룩하게 되길 원하신다
물론 진정한 교회라는 것은 주님의 공동체이지만 모이는 처소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구약을 통해 그 정신이 계승되길 원한다 .건축한 성전을 주님은 영원히 라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구약을 찾아보면 성전자체를 귀하게 여겼고,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식을 마치고 기도할 때 그 앞에서 주신 성전 안에서 기도했을때의 주님의 주실 약속을 반드시 읽어보길 원한다(왕상8장),그리고 성전건축의 축복(학개서,에스라)을 읽어보라.이것이 다 폐한것인가?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 너희(성전)도 그러하니라
(합 2: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대하 35:3) 또 여호와 앞에 구별되어서 온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에게 이르되 거룩한 궤를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건축한 전 가운데 두고 다시는 너희 어깨에 메지 말고 마땅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이 백성 이스라엘을 섬길 것이라
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그 자체적으로 거룩한 땅이요 구별된 처소라는 사실을 신명기에서 보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원한다
(신 12:5)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교회)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신 12:6)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신 12:7)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출 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또한 예수님은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왜냐면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요, 하나님의 집이요, 주님의 영원히 거하실 처소이기 때문이다.
성전은 그 자체만으로 거룩하며 귀하기 때문에 ,구별되며, 교회안의 물건 또한 내것이 아닌 성물이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가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게 될것이다.
일본이 망한 이유도 무교회주의로 인한 교회가 사라지면서 기울여지기 시작했고,
마귀는 우리 몸이 성전인 시대에 교회에 나갈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무교회나 나가도 된다고 말을 한다.
다음 구절을 보라. 바로: 악 즉 사탄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기위해 우리를 또한 애굽에서 부르셨다.
(신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다음은 마귀의 교묘한 작전이다.
(출 8: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주일날 교회가지 말고 집에서 기독교방송보면서..세상에서.타협하며 보내라.)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출 8:26)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마귀)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세상의영향권의 마귀의 공격)
(출 8:27)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광야교회 행7:38)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출 8:28)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행 7: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하나님의 명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안다면, 단순히 신약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66권의 말씀으로 예배와 성전에 관한 사항을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나는 무교회주의를 주장하며 자기가 명하는 대로 예배드리는자 즉 독단적으로(여기저기 옮겨다니거나, 장소를 이동하거나, 변덕스럽게) 신앙생활 한 사람중에 믿음 있는 사람 한사람도 발견하지 못한다. 당신 주위에 그러고도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이있는가? 그 사람은 세상의 공격에 노출되어있고(돌로치는 역사)믿음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베드로처럼 그 고백의 반석위에 교회를 주님은 세우기를 원하신다.
십자가는 세워져야 한다. 이것은 상징의 의미를 넘어선다.
교회속에 공동체가 중요한 만큼 그 모임으로 세워진 교회 그 자체또한 거룩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것이다. 물론 둘사이 균형점을 잘찾고 교회자체가 아니라 교회안의 하나님 그분이 목적이 되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물론 교회론에 차이는 신학적인 입장이 있겠지만 이것이 나의 입장이다.
율법을 완성했던 것처럼 성전도 완성하셨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의미는 구약의 성전의 의미가 폐하지 않는 범위에서 우리의 몸의 성령의 전으로써 기능과 거룩을 주님이 강조하시고 추가(헬:프레디노)하셨다는 애기이다.마치 산상수훈에서 율법의 기준을 높이셨던것처럼(율법을 폐하지 아니하시고..완성하신것처럼)...
물론 환난때는 가정교회나 지하교회로 회귀가 상황상 불가피하겠지만 말이다.
김기범 영성일지 미니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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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쉐카이나 월드워십팀(문수제일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온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