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의 탄생 / 하린
― 가장자리
헌책들이 쌓여 있는 가게
이것을 세상의 모든 가장자리라고 해 두자
무너질 것처럼 쌓여 있으니
가장자리가 가장자리에게 보내는 위안이라고 해 두자
결과는 기록이 되고 기록은 전진한다
가장 가장자리다운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왜 그렇게 문장들은 치열했던 것일까, 후회한다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도
아파하는 것도 가장자리의 특권이지만
소멸보다는 자멸에 가깝다
기록은 불현듯 속도를 잊는다
겨울에 문을 닫고
여름에도 문을 닫는 중고 서점
주인은 지금 새 주인을 찾는 중이다
책을 살 사람이 아니라
책과 함께 늙어 갈 사람이다
책방 임대 중이
책방 정리 중으로 바뀌고
다시 책 가져갈 사람 찾아요로 바뀌는 동안
가장자리는 니힐리스트가 된다
일 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쯧쯧 혀를 차며 지나갔지만
그 시절 마스크는 흔한 연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 시집 『기분의 탄생』 (시인의일요일, 20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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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린 시인(문학평론가)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
1998년 〈광주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 2008년 《시인세계》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1초 동안의 긴 고백』 『기분의 탄생』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
시 창작 안내서 『시클』
시 창작 제안서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평론집 『담화 구조적 측면에서의 친일시 연구』 등
현재 단국대 문예창작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