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서울 동행길에 휴학중인 딸아이를 앞장세워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고속버스는 늘 아늑한 분위기다. 아늑한 고속버스는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조금은 든든했다. 서울 지리를 잘 아는 딸아이가 있기에 길을 몰라 헤맬 필요도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성가심은 피할 수 있기에 말이다. 가을속에 설레임의 약이
들어 있었든가. 설레였다. 아주 조금 설레였다. 시상식 핑계로 혜화동의 교정을 밟아
볼 기회를 맞이했기 때문일까? 서울의 하늘은 여전했고 매일 떠오르는 태양처럼
우리들을 변함없이 반기고 있었다. 혜화동 본교에는 마침 졸업사진을 찍느라
학사모를 쓴 학우님들이 분주하다. 말로만 듣든 대학로에는 연극 티켓을 파는
학생들의 외침으로 거의 소란에 가깝다. 성주에서 올라온 갓깍은 땡감을 전시해
놓기도 했다. 여기가 사람시장인지 물건시장인지 분간이 가지를 않는다. 무엇보다
나는 중년의 여인이기에 앞서 대학 3학년 학생이다. 학생의 신분으로 제 21대
서울지역대학의 통문제와 전국 문예지경연대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서울1.
국화향기 가득한 이 가을에 본교 문을 활짝 열고 들어서니 서울통문제와
전국 문예지경연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출입구는 백악관이 아닌 분홍관에
들어 서는 듯한 장식으로 우리들을 맞이했다. 낯설을 것 같았지만 그리
낯설지 않았다. 국문학이란 공통분모로 학우들과의 첫 만남장이다.
나를 축하해 주기 위해 학교로 먼저 와 계신 친정오빠와 올캐언니가
익숙한 얼굴로 반겨 주신다. 혈육간의 만남은 질리지 않은 아까바리
햅쌀밥 같다. 눈빛만 마주쳐도 고소하고 달짝지근하다. 나의 짙은보라색
원피스와 같은 색깔의 꽃다발을 준비하시고 계셨다. 양복에 넥타이를 맨
오빠의 모습에서 얼핏 초로의 노인으로 변해감을 느껴졌다. 세상남자 다
늙어도 나의 오빠만은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은 나만의 착각 이었으리라.
오빠를 보는 순간 갑자기 친정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보여 내 가슴의 두께가
종이처럼 얇아지는 것 같았다. 오빠와 올캐언니는 나를 축하 해 주기 위해 선약을
어기면서까지 내가 상을 받는 모습을 보고 가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고....
이성순 수석부회장님의 차분하고 매끄러운 사회를 진행하시면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패기가 철철 넘치는 연합회장이신 이혁주님의 축사와 함께...... 이상진 학과장님께서
심사평을 하신다. 이번에는 예년에 비해 작품의 수준이 떨어졌다고. 그중에 고르고
골른 것이 입상자들의 작품이란다. 올해는 대상이 없을 정도로 작품의 수준이 미약하다고 하니....
시상.
단체부문에서 이름이 불리지 않았지만 개인부문에서는 마창학습관의 이름이 불리워졌다.
천리길을 달려오신 마창학습관의 편집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열정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진정 국문학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는 행동들이다. 사람들 사이로 훤출한
마창학회장의 모습도 눈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단체부문과 개인부문의 시상은 제법 많은
지역대학에서 받았다. 상을 받기까지 편집부에서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녹아 있을까.
개인부문에서는 고성환교수님께서 주셨다. 교수님과의 악수에서 왜 그리 손이 따뜻하든지.
아니 따뜻하다 못해 뜨거움의 수준이었다.
만남.
중후한 매력이 풍기시는 김윤배 시인님과 만남을 가졌다. 김윤배 시인님은 방송대 선배이시자
사회적으로 성공하신 분이시다. 첫 만남부터 왠지 모를 따뜻함이 전해진다. 시를 읊는 파동은
가슴을 잔잔히 파고들었다. "깊고 슬픈 강물" 에서 안압으로 안구의 실핏줄이 터져 눈속에
검은 강이 흐른다고 하는 아내의 말에 바로 당신이 시인이라고 하셨단다. 미루어보아 삶의
아픈흔적의 조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들과의 만남이 30분이었지만 왠지 시간이 짧은
실타래 같이 느껴졌다. 조금 아쉬웠다.
사행시.
"국문인의 문연" 이란 사행시가 정해졌다. 11조로 각각 조 이름을 정했는데 우리조는 "말쌈조" 였다.
우리조가 제일 늦게 나갔다. 시원스럽게 글을 쓴 학우님의 근사한 달필 때문이었을까. 나는
큰 종이막을 들고 말쌈조의 대표로 무대 위에 섰다. 사회자님께서 운을 띄워 주시면 조 대표들은
우아하게 낭독해야 한다. 내 차례가 와서 분위기를 잡아 낭독했다. 11조까지 낭독이 끝나고
순위는 박수로 결정한단다. 참으로 애매하지만 위에서 내린 지시에 아무도 저항하지 않고
대항하지도 않고 순한 양처럼 순종하는 분위기다. 최종으로 구절초조와 우리조인 말쌈조가 남았다.
박수의 소리는 거의 비슷했다. 정말 박수소리로 가늠하기 힘든 떨리는 순간이다. 언듯 작은
음성이 들린다. 이름만큼이나 얼굴도 예쁜 한혜진님의 한 마디, 말쌈조??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말쌈조가 최종승리를 한단말인가? 그러나 사회자님은 구절초조로 최종승리가 돌리셨다. 자리에
들어오니 말쌈조 학우님들은 나에게 아주 멋있게 낭독했다고 칭찬을 듬뿍 해주신다. 지역도
모르고 이름모를 학우님들이 말이다. 사행시 제목을 받고 그 짧은 순간에 어찌그리 아름다운
언어의 꽃을 피워 내시던지 그 학우님에게 칭찬하고 싶다. 우리들은 통성명도 하지 않은 체
앉은 자리에서 조를 정했기에 누가 누군지도 몰랐다. 아마 거의 서울지역대학 학우님이라는
것 밖에는....... 까만 와이샤스에 탱탱한 분위기를 통통 띄우셨던 사회를 잘 보셨던 그 사회자님도......
서울2.
서울? 서울! 역시 서울은 뭔가 달랐다. 잘못하면 서울학우님들에게 거의 아부하는 발상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 서울학우님들은 정확한 이유도 모르게 뭔가 다른 것 같았다.
사람이 많이 모인곳에 다양한 인재도 배출되며 무엇이든 많은 곳에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이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라고 했던가?
깔끔하고 알차게 만들어진 2007년 통문제의 책도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모습이 역력히 보였다.
인터넷에서 자주 뵐 수 있었던 김연구님도 뵈었다. 글을 많이 쓰시길래 조금은 궁금했었는데
만나뵈니 반가웠고 역시 멋진 분이신 듯 했다. 카페에서 자주 뵙던 분들의 명찰을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어떤 분은 여자분인줄 알았는데 남자이셨고, 이름이 예뻤던 여자분은 이름만큼 이나
얼굴도 예뻤다.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2% 부족한 나는 그저 속으로만 접어 두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들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마창학습관에서 올라온 네 명이 식탁에 앉았다.
김미연 학우님은 아침도 먹지 않고 왔다는데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황영남 마창학습관
편집부장님은 이번 여름 편집일을 하면서 링겔을 맞았을 정도로 극도로 힘드셨다고 하신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누구의 헌신과 희생을 필요로 한다. 순전히
자신의 온전한 사명감과 헌신과 희생이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마창학습관!
마산과 창원이 과연 어디란 말이든가? 남쪽으로 차를 타고 내려오면 분지인 창원과 바닷가인 마산을
만날 수 있다. 창원은 호주의 캔버라시를 본따서 만든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이다. 전국에서
도로가 가장 넓으며 온 도시가 공원화 되어 있다. 내가 살고 있지만 창원처럼 깨끗하고 쾌적한
도시도 그리 흔치 않으리라 생각된다. 마산은 물좋은 곳, 무학소주로 유명하다. 이 자그마한
도시에서 국문과의 열정은 어느 지역 못지 않은 듯 하다. 또한 작년에는 고성에서 전국네트워크를
주최한 곳이기도 하다. 학회장님은 회의차 당일 내려오지 못한다고 했으며 우린 혜화동
대학로를 빠져나와 강남 고속터미널로 왔다. 각자 방향을 달리 헤어지며 하루를 마감해야 했다.
피곤과 아쉬움이 교차되는 순간이다. 강남고속버스 터미널로 빠져 나오는 창밖의 달은 왜 그리
밝게 빛나든지 서울의 달도 여전히 둥글고 밝았다. 저 달은 창원에도, 내 고향 청도에도 두둥실
비추고 있을 것이다. 차가운 무채색이 되어. 하룻동안 많은 경험을 한 듯 하다. 마지막으로
전국 문예지경연대회를 주최한 서울지역대학 학우님들, 그리고 식당에서 보이지 않게 조용히
수고해 주신 서울지역 학우님들에게도 정말 수고하셨다는 인사말을 지면으로나마 드린다.
이것으로 제 3회 전국 문예지경연대회 경험보고서를 마친다.
첫댓글 훤칠한 키에 보라색 원피스가 빛나던 김정자 학우님~!!! 먼 길 다녀가시느라 힘드셨지요??? 늦게나마 수상을 축하드리며 활발한 창작활동 기대하겠습니다.^^
뒷줄에 앉아있던 저희들은 고전강독회 회원들이었어요. 그 글을 쓴 이는 3학년 소영숙씨라고 작년 통문제에서 수필로 상을 타셨지요. 저는 그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구요. 참 차분하게 낭독을 잘 하신다 생각했는데 수상하러 올라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소설같이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먼 길 수고하셨습니다. 앞날에 大成을 바람니다.^^
마창! 멋지십니다. 후배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먼길 오셨는데,. 대접도 못하고.... 다음이 또 있을것이고.. 고향가면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니... 잘 다녀가셔서 반갑습니다.
수상 축하드립니다. 맨 앞줄에 앉으셔서 꼼짝을 왜 안하시나 했더니......역시 그 쑥스러움이란 녀석 때문이었네요. ㅎㅎㅎ 먼 길 오섰었군요.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어머나! 우리 말쌈조 낭독하신분이네. 세련된 폼새에 사투리도 전혀 안쓰시던데...ㅋㅋ마산 전주 대구 강원 등등 인재는 지방에 많은것 같아요! 우리랑 같은 서울학운줄 알았어요...ㅋㅋ 오빠내외랑 찍은 사진 멋져요. 담에 한두번 더 뵐것 같은데 차한잔 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