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 누구인가?
‘아버지’는 언제 어떻게 등장했을까? 저자들은 기나긴 진화 과정 속에서 ‘아버지의 탄생’을 살핀다. 먼저 인간과 가장 가깝다는 영장류인 침팬지와 보노보가 등장한다. 인간이 진화의 역사에서 그들과 결별한 것은 대략 600만 년 전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자식을 돌보는 ‘아비 노릇’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부다처제 때문이다. 어떤 침팬지 암컷은 하루에 일곱 마리 수컷과 50차례나 교미를 한다. 배란주기가 되면 엉덩이 쪽의 성기를 잔뜩 부풀려 다수의 수컷을 유혹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수컷은 누가 자기 새끼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새끼를 보호하거나 먹이를 주는 ‘아비로서의 행동’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인간과 가장 유사하다는 영장류에게서 자식을 보살피는 아버지의 사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저자들은 ‘일부일처제’라는 장기적 부부관계가 ‘보살피는 존재로서의 아버지’를 해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강조한다. 그것은 “약 20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 시대에 시작되었고, 50만 년 전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집단 내에서 “지위가 낮은 남성”들이 여성을 두고 펼쳐야 했던 피곤한 경쟁을 피하려고 “평등한 짝짓기”라는 의지를 피력하였고, 번식 기회를 독점했던 우두머리 남성이 “그 요구를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물론 이 ‘새로운 질서’는 폭력적이었다. 남성은 자신이 점찍은 여성과 “강제적으로라도 성관계를 맺었으며, (그렇게 관계 맺은) 배우자를 보호하면서 차츰 일부일처제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의 보살핌이 등장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진단이다.
일부일처제에 이어 ‘노동의 성적 분화’가 나타나고, 그때부터 남성은 고기를 조달하는 ‘사냥꾼’이 된다. 설령 사냥에 실패해 빈손으로 돌아오더라도 배우자가 꿍쳐 놓은 식량을 내놓곤 했기 때문에 “위험도는 높지만 양질의 고기를 얻는 사냥에 더 열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여성의 출산력도 영양 상태의 개선 때문에 한결 나아졌다”는 것이 저자들의 해석이다. 이렇게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유리한” 일부일처제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면서,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애착이 싹텄으며,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이 저자들의 설명이다. 그들은 이 패턴이 “약 15만 년 전 현생 인류가 출현할 무렵에 완전히 정착됐다”고 서술한다.
그렇더라도 아버지의 보살핌은 문화마다 다르다. 콩고 분지를 무대로 살고 있는 아카족의 아버지는 자식을 대단히 헌신적으로 돌본다. 일을 할 때도 손을 뻗치면 닿을 만한 곳에서 늘 자식을 보살핀다. 밤에도 항상 같이 잔다. 낮이든 밤이든 “아버지의 세계와 자식의 세계가 하나로 통합돼 있는 것”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부부가 긴밀히 협력해 그물을 쳐서 영양 등의 동물을 사냥하는 것이 주요 생계유지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적 차이’는 같은 아프리카에서도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저자들은 각종 데이터를 근거로 “수렵채집사회의 아버지는 농경사회의 아버지에 비해 어린 자식에게 직접적인 보살핌을 베푸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설명한다. 반면에 “유목사회 아버지는 어린 자식에게 직접적인 보살핌을 거의 베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류학자인 저자들의 관찰에 따르자면, 일부다처제 성격이 짙을수록 아버지가 직접적인 보살핌을 베푸는 경우는 드물다. 남성들이 아내와 자식을 보호하는 것보다 다른 배우자를 하나 더 얻는 것에 힘을 쏟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남성 사이의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로서의 보살핌을 베푸는 것이 경쟁에서 이기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저자들이 “아버지가 되는 것과 관련해 가장 중압감이 심한 일”로 꼽는 것은 배우자를 찾는 것이다. 또 아버지가 되는 첫 단추는 “장기적이며 안정적인 결혼”이다. 그들은 “결혼은 자식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준다”면서 “혼외 출생아들은 법적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다만 ‘그것이 과연 정치적으로 올바른가.’라는 판단은 논점에서 배제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들은 “미국인을 상대로 1939년에서 1996년까지, 대략 10년씩 간격을 두고 배우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를 근거로, 남성들이 중요하게 꼽은 배우자 선택 기준은 “매력, 균형 잡힌 몸매, 마음에 드는 허리둘레 대비 엉덩이 둘레”였다고 전한다. 그것이 “젊음, 건강, 출산능력을 나타내는 척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화론적으로 말한다면, 출산 능력과 건강한 신체는 남성이 배우자감을 점찍을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핵심적 기준”이라는 설명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아버지가 된 남성. 하지만 어떤 아버지들은 때때로 자기 자식이 ‘진짜’인지에 대해 불안과 혼란에 휩싸인다. 그것은 어머니에게선 나타나지 않는 특별한 현상이다. 저자들은 “체내 수정의 메커니즘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아기가 어머니의 산도를 거쳐 세상에 막 얼굴을 내밀었을 때, “얘가 진짜 내 자식인가요?”라고 묻는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남성들은 “자기가 어떤 여성의 유일한 성행위 파트너라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확신한 다음에야 뱃속 자식의 아버지임을 인정하는 법”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설명이다.
아울러 “그 확신 여부가 자식에 대한 보살핌과 투자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캐나다·멕시코를 대상으로 이뤄진 몇몇 연구에 따르면, 아버지 쪽 친척에 비해 어머니 쪽 친척이 신생아를 보고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니, 이 인사치레가 “남성의 부성 확신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갓 태어난 아기와 그 어머니는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상관없이, 남성의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다.”고 해석한다. 당연히 그것은, 여성에 대한 비하로 비칠 수도 있는 발언이다.
“아버지의 부재는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저자들의 진단이다. 미국 조지아주의 출생증명서를 분석한 결과, “아버지 이름이 출생증명서에 기재돼 있지 않은 자식은 과소체중을 보이거나 조산아로 태어날 확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이런 논지는 자연히 “성장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홀어머니 슬하의 자식은 학교를 빠지는 일이 잦고, 마약중독을 비롯한 일탈 경향을 보이며, 성인이 된 후에도 돈벌이가 시원찮거나 신체적·정신적 건강상태가 황폐해지기 십상이고, 혼외출산, 부부관계의 파탄, 이혼을 경험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남성은 아버지가 되는 순간부터 갖가지 변화를 겪는다. 배우자의 임신과 출산을 전후한 시기에 성욕의 하향세를 보이는 것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저자들은 “(성욕 하향세는) 여성 쪽이 훨씬 더 심하다”면서, “(이 차이를 해결하려고) 남성은 혼외정사를 시도하면서도 기존 결혼에 대한 만족도를 얼마든지 평상적으로 유지한다.”고 말한다. 또 저자들은 “자식은 아버지의 감정과 생각까지 바꿔놓는다”고 진단하면서 “(남성은 아버지가 되면서) 기쁨, 설렘 등의 긍정적 감정과 더불어 피로, 짜증, 두통, 집중장애, 불면증, 신경과민, 불안감 등에 심하게 시달린다.”고 설명한다. 이밖에 자식으로 인해 겪는 신경내분비계 변화가 “결국 뇌의 변화로까지 이어진다.”는 생물학적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책은 ‘아버지’의 진화론적 탄생부터 현대의 아버지들에게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까지 아우른다. 말하자면 일종의 ‘아버지 학’ 개론서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400여 쪽의 분량에 너무 장황한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 아쉽고, 때때로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편견도 불편하다.
첫댓글 진정한 아버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 하고 있는지?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