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제주에 내려온지도 일주일이 넘었고 그동안 운동이라곤 체력단련이 확실히 되는 노가다가 주를 이뤘고 런닝은 단 100미터도 할수가 없었다.
아마도 마라톤을 시작한 이래 15년 동안 부상, 그것도 심각한 부상이나 수술을 하는 정도가 아닌 상황에선 가장 장시간 런닝을 쉰 시기가 아닐까싶다.
애초에 여길 내려올 때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급하게 돌아갈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저 며칠 일이나 좀 도와줄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여기저기 돌면서 두루다양하게 시간을 보낼거라 생각했었다.
막내 작은아버지네 집이 상황이 심각해서 여기에 눌러앉아 전적으로 일을 해주고 있는데 그것도 영역이 확대되다보니 일보다도 더 비중이 있는 것이 '영업'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6시 무렵부터 시작되는 하루가 마치 한시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후다닥 지나가기 일쑤다.
해가 뜰때부터 해가 질때까지는 밭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 그야말로 체력운동 이외엔 꿈도 못꾸고 집에 돌아와서는 짐 퍼놓고 바로 주문 리스트 정리와 박스포장 작업...특히 여기저기서 다양한 방식으로 주문이 들어오다보니 행여라도 누락이 되거나 착오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서 더욱 조심스럽다.
오늘까지 209박스를 주문받았으니 기대이상으로 큰 실적(?)을 거둔 것이고...하여간 제주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이색체험, 그리고 그것은 계속 진행중~
일요일날 비가 오는 바람에 일부 쉰 것 이외엔 이렇듯 매일 정신없이 강행군을 했고 오늘까지도 이어졌는데 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에 아직 완전히 날이 어두워지지 않았기에 얼른 신발만 바꿔신고 40분 시간을 내어 런닝을 나섰다.
일단 하원이라는 동네가 익숙하니 이 주변을 둘러보기로 한다.
1100도로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북쪽과 동쪽으로 발길을 이어가다보니 마을 공동묘지가 나오는데 60대 남자 둘이서 뭔가 큰소리로 주고받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상황이 좀 이상하다 싶은 순간 뒤에서 황소가 달려든다.
아닌밤중에 홍두깨라고 이게 무슨 황당한...투우를 하러 나온 게 아닌데...
성난 황소가 이미 날이 저물어 깜깜해진 공동묘지 도로에서 뒤따라 달려온다!
돌담을 이용해 일단 상황을 모면하고 핸드폰 카메라로 녀석을 찍는데 잘 나올 턱이 없다.
그제서야 아까 두 남자가 주고받던 고함소리가 이해가 된다.
우리를 박차고 도망친 소를 잡으려고...
그 남자들은 난데없는 이방인의 출현에 나름 크게 격앙이 된 듯 어디서 온 사람이냐고 묻는다.
하원에 산다고...하원은 여기도 하원인데...그럼 전주에서 왔다고...강문택씨 조카되는 사람...
아무튼 소가 흥분된 상태인데 당신이 뛰어다니면 통제가 더 힘들어지니 일단 멈추라는 얘기.
슬쩍 눈치를 보다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여기저기 시멘트 소로길을 들락날락 하다가 남쪽 방향으로 내려가니 도순 근처가 나온다.
6차선의 해안순환도로를 건넌 뒤 강정이나 도순 방향으로 더 가보려고 발길을 내딛었다가 어두워서 오래 가지는 못하고 되돌아 나오게 된다.
하원마을 동쪽동네를 관통해서 아까 처음에 지나갔던 중산간도로를 돌아 하원감리교회 방향으로 돌아오며 작은집에 이르니 43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평균 6분 페이스로 잡으면 7Km내외는 달렸다는 계산인데 거리나 강도가 문제가 아니고 거의 열흘만에 달렸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아무리 노동을 하고 다른식의 보강이 될거라고 위안을 삼아도 뱃속에서 반응하는 것은 런닝만한 것이 없다.
덕분에 시원하게 장도 비우고 게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