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멀티미디어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된 우리시대의 문화적 화두로서 호황을 누리는 것 중 하나는 <환상 Phantastik>이다. 만화, 영화, 게임 그리고 PC통신으로 올려지는 판타지소설 등은 새로운 읽을 거리들이며 여흥예술매체이다. 싸구려 만화에서부터 소설, 잡지, 젊은이들을 겨냥하는 상품 겉표지, 광고 ,영화 그리고 웹진 등 어디에서나 환상성의 출현은 두드러진다. 우리의 소통환경은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서 거대하게 조직화되었으며, 사람들은 실제현실공간보다도 가상현실공간에 더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다. 20세기 초 인간의 인식세계는 프로이트에 의해서 의식세계에 무의식세계가 추가되는 확대를 경험했다면, 21세기에는 실제현실공간과 더불어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가상현실공간이 펼쳐질 것이다. 가상현실공간 속에서는 현실적 사물들을 바탕으로 기계적인 편집과 조작을 통해서 자연원칙과 현실논리를 초월하는 세계들이 만들어진다. 우리의 문화적 체험은 이러한 가상 현실적 화법이 주도하게 되었고, 그 화법은 <환상성>이라는 개념으로 포괄될 수 있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대조를 이루는 경험세계의 발현> 이야말로 환상성의 가장 기본적인 특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매체표현 내지는 문화체험의 화법인 환상성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는 필수 불가결하다고 본다. 그 연구는 통시적이면서도 공시적인 성격을 가져야 하기에 개념범주로서 환상성의 원천을 거슬러 올라가 되짚어 보면서 지금까지의 변천과정을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동시에 변화 속에서도 불변의 개념적 핵심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광대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는 개념범주인 환상성에 대한 연구고찰의 한 도구로서 우선 19세기적 환상문학을 작품 내재적으로 분석하여 환상성의 개념정의와 동시에 환상문학의 사회적 기능성을 심도 있게 고찰한다. 20세기에서는 이미 환상문학의 종말을 고했다고 토도로프가 말했듯이 20세기 식 환상성은 19세기의 그것과 차별된다. 이제 멀티미디어시대의 새로운 놀이인 게임과 함께 등장한 저마다의 세계관을 가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판타지소설들이 많은 신세대 독자들을 사로 잡고있다. 여기서의 판타지는 19세기, 20세기 식의 환상성과도 또 다시 차별된다. 그러나 차별 속에서도 끊임없이 다른 세계를 염원하는 인간의 열정인 환상적 상상력을 동일하다. 그렇기에 환상성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의 연구결과는 우리시대의 환상 내지는 판타지문학을 진단할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Ⅱ. 1 환상문학 또는 환상성의 정의현황
우리는 환상성, 환상문학 더 나아가 우리시대의 판타지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으로서 이제 서구문학에서 논의되었던 환상문학에 대한 담론들을 간략하게나마 알아보기로 한다. 메츨러사전에서환상 Phantasie ( 그리스어로 phantasia = 상상Vorstellung, 현상Erscheinung )은 “예술이나 문학에서 이전에 감각적으로 지각했던 것들, 일반적으로 내적인 체험과 이미지들을 새롭고 현실과는 전혀 다른 관계로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상상력. 이러한 새로운 세계는 구체성으로 해서 추상적인 사변적인 것과는 구분된다. 어린아이들의 모방력이나 신화창조 속에서의 자연종족들의 수동적인 상상력과 작가나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상상력과는 구분된다.”고 기술했다. 야후백과사전은 “환상문학이란 초자연적인 가공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사건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 환상문학은 18, 19세기 서유럽문학의 주류였다고 여겨지는 리얼리즘문학이 일단 고갈 점에 이르고, 그 이전의 환상 성을 풍부히 가진 문학이 재평가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에는 모더니즘문학이후 기법상의 환상성과 인간의 세계인식의 상징적 픽션성에 대한 인식이 깊어짐에 따라 종래의 리얼리즘에 대한 환상문학이라는 장르의 정립이 성립되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환상문학을 소재적 측면과 생성과정의 역사적 측면에서 규정한 것이다. 고대 신화에서 20세기 환상성이 짙은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소위 환상문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작품들의 실례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환상성은 대개는 문학적 상상력과 동일시되기에 특별히 환상문학이라고 명할 수 있는 문학의 범주로서 성립도 늦어졌고 내용적으로도 왜곡되기도 했었다. 환상문학에 대한 연구가 부진했던 것은 소위 19세기에 환상문학이라고 칭할 수 있었던 작품들은 대개 고전주의적 미학기준에 미달하는 반고전주의적이며 대중적인 통속소설이나 키치로 평가 절하되어 해석할 가치도 못 느꼈던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초에도 환상적인 문학에 대해서 많은 평론가들은 문학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환상문학을 이해하고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을 정리하고 그 미학적 기준들을 도출하는데 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이다. 환상성이나 환상문학에 대한 이론전개에 있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정의와 설명들은 이 개념들의 복합적인 함축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70년대에 들어서서 갑자기 환상성에 대한 이론적 논쟁이 많아졌고 조형예술과 영화에도 동일한 붐이 형성되었으며 드라큘라, 과학공상소설 등 환상문학장르들의 작품들이 새롭게 출판되는 등 활성화되었다.
환상문학은 장르개념으로 단초를 잡기도 힘들고 내용적으로 환상성 역시 독립된 범주규정보다는 대개는 괴기성(그로테스크), 매너리즘(반고전주의적 성향), 부조리, 무시무시함 그리고 경이로움과 연관짓거나 그에 기대어서 고찰되었다. 프랑스에서 독일작가 호프만의 작품이 수용된 뒤인 19세기에 환상문학 conte fantastique 이라는 말이 처음 나왔으며, 그밖에는 명백한 문학사적 범주로 나타나지 않는다. 대개는 유럽 낭만주의작가들, 특히 호프만, 포우 , 고골 그리고 19세기 후반부에 캐롤, 제임스, 스티븐슨, 와일드, 모파상, 로트레몽, 베르느, 20세기에는 마이링크, 카프카, 쿠빈, 웰즈, 오웰, 러브크래프트, 보르헤스, 렘등의 작품을 칭했다. 내용적으로도 통속적인 것에서부터 고상한 문학, 넌센스에서부터 형이상학적 사고의 저변까지, 그리고 공포스럽고 어린아이 같은 유희에서 의도적인 사회비평까지를 포괄한다. 여러 환상문학 연구의 담론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환상문학의 핵심인 ‘환상성’은 합리적인 관점과 전혀 모순되는 질서 내지는 논리들 사이의 갈등으로, 즉 경험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갈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때 한 질서가 다른 질서를 지배하여 결국 자기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지 여부를 알려는 긴장이 전 작품에 관통해야한다는 것이다.
Ⅱ.2 문학외적인 연구경향
환상문학에 대한 연구는 텍스트내재적 표현에 대한 것보다는 그 텍스트가 독자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하는 영향미학적인 결정이 주를 이룬다. 텍스트수용자를 당황케하고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환상성의 영향력의 주요요소로 결정되었다. 러브크래프트에게서는 작품이 독자에게 깊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지 아닌지의 여부가 주요 관건이 되었다. 물론 그는 직접적으로 환상성 개념을 말하지 않고 불안이 그 영향동기로 기능하는 문학을 그는 “무시무시한 weird”라고 규정했다. ‘환상의 진정함을 헤아리는 결정적 기준은 줄거리구성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특별한 인상을 만들어내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 작가의 의도나 줄거리의 짜임새보다는 그것이 유발하는 감정의 강도에 따라 소설을 평가해야한다. 독자가 깊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이상한 힘, 이상한 세계의 존재를 체험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환상적인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의 선구자인 프로이트는 비슷한 개념으로서 ‘섬뜩함 das Unheimliche'을 들어 설명했다. 무시무시함은 영혼의 영역에서 아주 옛날부터 잘 알고 있는 것이지만 억압과정을 통해서 소외된 것이 다시금 불러 일으키는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감정을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분석을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호프만의 모래사나이라는 작품을 아주 멋있게 해석했던 것이다. 존더겔트는 환상문학의 과제는 ‘어두운 본능적 충동의 표현’으로, 환상성에서는 성적 소망을 명백히 인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환상성이 가지는 성애적 소망의 표현에서 점점 치명적이 되어가는 현실원리에 지배받는 자본주의의 사물화 된 세계에 대항하는 억압받은 충동의 반항을 보았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인 관점에서는 환상문학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것을 일탈하는 것으로 이해된 것이다. 사회역사적인 관점에서 연구한 프로인트는 환상문학이라는 장르 생성역사 속에 역사적 사회적인 발전이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고 보았다. 급격한 문화사적인 전환기 그리고 질서의 상실과 사회적 영역에서의 좌표의 상실은 환상문학의 꽃을 피우게 했다는 것이다. 환상성을 매개로 하여 사회현실 속에서 억압된 공격잠재성이 터져 나오면서 지배적 질서와 지배계층을 향하여 매우 파괴적으로 공격한다고 했다. 그는 여기서 진지한 환상문학과 통속적인 환상문학을 구분하였는데, 전자는 구체적인 현실생활을 반영하는 의식에 관심을 두는 반면 후자는 현재의 현실이 야기시키는 의식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구스타프손은 환상적인 예술이란 이 세계를 인간의 자연스러운 환경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라고 정의내리면서, 개별자는 이 세계를 매우 낯설게 인식하기에, 개인과 세계와의 관계는 불투명하고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상상하는 것이 환상문학이라고 했다.
Ⅱ.3 문학내적인 연구경향
캬이유와 그라드만은 환상문학의 장르에 특징적인 속성과 모티브의 목록을 “해골, 부패, 유기체의 무기질화, 허깨비, 악마, 유령, 괴물(머리는 사자, 몸은 산양 그리고 꼬리는 뱀을 한 괴물), 요괴, 가면, 거지, 하녀, 곡예사, 자웅동체, 난장이 , 거인, 폐허, 동굴, 미로등”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모티브들은 유령이야기나 흡혈귀이야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여기서 개별적인 모티브가 장르의 구성요소가 되는데, 기준들은 역사적인 차별성을 고려하지 않을 때 적용될 수 있다. 모티브들은 여러 가지 상이한 텍스트나 역사 속에서 각각 다르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카이유는 환상문학을 설명하면서 ‘환상문학은 현실과 다른 경험세계를 구현한 것이다.’ 라고 강조했는데 이것은 환상문학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그에 따르면 환상성은 일상적인 세계 질서의 파괴이며 습관적인 세계로부터 일탈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점에서 환상문학과 동화가 확연히 구분된다는 것이다. 동화에서는 실제 현실과 갑자기 돌출한 이질적인 세계와의 갈등이 없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에게서도 역시 환상성의 영향력은 실제와 친숙한 것에 대한 의식이 대단히 중요한데, 경이로움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동화의 세계는 환상적이 아니라 동화적이라는 것이다.
베시르는 ‘환상성은 18세기에 전성기를 이뤘던 동화와 사실주의적인 소설의 두 가지 관습의 혼성이다’라고 했다. 동화에서의 경이로움은 처음부터 줄거리를 통합하는 요소로 내적인 일관성을 통해서 독자에게 그 어떤 불안도 야기하지 않는다. 전래동화에는 게다가 구원적인 세계를 보장하는 윤리적인 결정론도 작용한다. 그에 따르면 환상적 이야기 속에서 질서의 갈등이 영적으로 해석되면 동화적이고, 처음에는 이상한 사건이 합리적인 해명으로 설명되면 탐정소설이 된다. 호프만의 작품이 그 예이다. 「모래사나이」에서는 두 개의 질서가 동등하게 팽팽히 맞서는 긴장이 끝까지 유지되고 호프만은 그것을 밤의 문학 Nachtstück라고 칭했고, 황금단지는 동화에 가깝고 스쿠델리양은 현대적 탐정소설의 효시라는 것이다.
토도로프는 환상문학을 구조주의적인 입장에서 본격적으로 연구하였다. 그러나 앞 선 여러 가지 연구결과를 종합해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환상성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미정성(주저함, 망설임)이다. 다시 말해서 서술된 현상이나 사건이 실제로 관찰자와는 무관한 초자연적인 세계인가 아니면 이 사건은 단지 꿈으로 광기나 환영 등을 위장한 것이기에 환상적 형상으로서 설명되는 것인지 여부가 결정될 수 없는 망설임이 환상성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환상문학은 근본적으로 독자가 사건의 성격을 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주저하게 한다는 사실 위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두 개의 서로 다른 현실차원에 대한 개념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카이유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세계의 배경없이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불러 들여 질 수 없는 것이다. 이 환상적인 망설임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독자에게서 체험된다. 이런 중첩은 환상문학의 서술체가 일인칭소설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일인칭소설에서는 주인공과 시점인물이 동일하다. 서술되는 세계 속에서 기술되는 주인공의 의식지평은 독자에게 이 세계를 중개해주는 시계와 일치한다. 전시점적 혹은 전지전능한 화자가 없기 때문에 독자는 체험하는 주인공이 경험하는 것 이상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의 망설임이 수용자인 독자에게로 전이된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는 환상문학과 환상성을 정의하는데 텍스트 구조에 기초하고 실제독자에 관련짓지 않음으로써 지금까지 연구의 영향 심리주의를 극복했던 것이다.
그는 자연과학적인 정확함으로 이론 정립을 시도하여 개혁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환상성의 구조에 집착하였기에 방법론적으로 독단적인 면도 많다. 한 예로 환상문학과 경이문학 그리고 미스터리(괴기)문학과 구분한 점이다. 자연적 또는 초자연적 설명 사이에서 주저함을 잣대로 하여 그는 유사장르들을 구분하였다. 텍스트가 제시한 초자연적인 사건이 자연적 방식으로 설명되면 미스터리문학이고, 초자연적으로 설명되면 경이문학이라는 것이다. 예로 귀신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장난이었던 것으로 판명되면 미스터리문학이고 정말로 도깨비적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면 경이문학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그는 환상문학은 철저히 서사적인 것으로 알레고리와 시로부터 분리해낸다. 알레고리는 말하는 것으로 다른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우화는 순수한 알레고리로, 만일 우화에서 동물이 말한다해도 독자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텍스트의 속뜻은 다른 것임을 이미 독자가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적 이미지는 재현적이 아닌 순수 언어적 연쇄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에서는 재현 형식이 불가능하기에 작품 속의 사건에 대해서 일어나는 독자의 반응을 기준으로 하는 환상문학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환상문학은 소설에 한정되며 또한 알레고리적인 구조를 지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독자는 그 사건을 우의적으로나 시적으로 파악해서는 안되고 초자연적인 돌발을 작품에 세워진 가상세계 속에서 사실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사건이 합리적으로 해명될 수 있는 지 혹은 그가 모든 사건에 새로운 응집력을 줄 수 있는 영적인 질서를 믿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독자의 망설임이 작품의 주인공에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경험원리의 파괴를 아주 자연스럽게 보는 반면, 단지 꿈, 광기, 환영이었을 뿐이라는 독자의 가정은 합리성에 유리하게 이끌어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환상문학에 있어서도 기이한 체험이 나름대로 객관성 내지는 상호주관성에 기반을 둔다. 우리에게 친숙한 차원에서 출발하여 다음 단계에서 이질화되어야 하기에, 환상적인 사건은 처음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기술된 세계가 없어지면서 나타난다고 했다.
요즈음 신 장르 판타지문학의 효시격인 반지군주를 쓴 톨킨은 긴 에세이 「요정이야기에 대하여On Fairy-Stories」에서 그의 거대한 동화서사시인 반지군주의 구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원리에 대해서 말했다. 환상성이란 사물, 형상, 상황, 세계를 우리들의 일상적이고 일차원적이고 이미 주어진 현재 잘 알고 있는 자연법칙과는 일치하지 않게, 완전히 다르게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이 다름이 너무나 자세하게 묘사되거나 그림으로 주어지면 독자의 환상에 대한 호소력이 약화되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공간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의 소재가 언어인 문학만이 환상을 창출하기에 적당하다고 했다. 요정이야기에는 요정, 엘프, 트롤, 용, 난쟁이 등 인간이 아닌 전설적 형상들이 나온다. 그러나 마법에 걸린 현실적인 사물들, 예를 들어서 나무, 꽃 그리고 인간들도 포함된다. 그는 신데렐라나 빨간모자아이등 전형적인 어린이전래동화를 요정이야기에서 제외시킨다. 요정들은 나오지 않고 교훈적 요소만이 강조되었기에 환상적 요소가 적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세계를 풍자하거나 반영했던 스위프트의 걸리버여행기, 뮌히하우젠의 작품들 혹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또한 제외된다. 이들 작품에서는 인간들의 본성과 허영에 대한 비웃음으로 해서 환상적 요소를 잃고 있으며, 요정이야기에서 나온 기이한 사물들을 꿈이나 환영이었다 식의 얼버무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배제된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이야기 자체로서 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톨킨에게 있어서 요정이야기의 핵심은 제 2의 창조로서, 이야기 속에서는 그 내용이 진실되고 믿을 수 있어야한다. 물론 이야기 속의 사건이 우리의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지만 적어도 이야기 속에서는 그것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톨킨은 요정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형용구를 “내적인 진실성”이라고 했다. 초자연적인 엘프적인 요소의 본질적인 것은 환상적인 환영을 직접적으로 느끼게끔 하는 것이기에 그는 반지전쟁이 알레고리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반대했다.
Ⅱ. 4 환상문학의 기능성
계몽주의시대로서 18세기는 자신과 반대되는 것을 잉태했다. 다시 말해서 인식론적으로서 심령주의와 신비주의 그리고 모든 비합리성을 동원하여 감정을 강조한 문학적 감상주의가 그것이다. 환상성을 과도한 합리성에 대한 반발로 간주한다면 18세기 후반에 새로운 장르의 출현과 19세기 후반부에 철학적 실증주의에 대한 반대운동으로서이다. 환상문학은 철학적으로 보면 세계의 세속화의 분열된 자손이라는 것이다. 문학내적인 과정에서 그것은 18세기 말 고전적 장르의 붕괴와 추함의 미학으로부터 생성되었다. 추함의 미학은 예술적 경계를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귀족으로 지탱된 가치체계의 붕괴를 보여준다. 사드백작은 공포소설의 등장을 프랑스혁명의 공포와 연관지었으며, 18세기 문학에 있어서 새로운 교양독자층의 출현했다. 그들은 허구성을 의식했고 더 이상 단순한 모방이나 희한한 이야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환상문학은 모든 형이상학적 문제제기와 함께 현대 독자들의 허구적 의식을 위한 유희였던 것이다.
환상문학의 역사성에서 살펴보았듯이 그것이 암시하고 있는 기능성, 다시 말해서 환상문학은 일반적인 반 합리적인 경향을 넘어서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균열(틈)로 해석될 수 있다. 램은 환상문학에서 얻어지는 놀라움은 문화적인 약호라고 규정한다. 영적인 질서를 가정하는 것이 존재론적으로 완전히 방향을 전환시키는 것보다는 안심된다는 것이다. 허구적인 일탈은 안전한 유희적인 일탈, 즉 장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귀신을 믿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인과원리로 자기의 질서기능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질서의 갈등은 환상성 기능에 기초가 되는 확장적 동기를 낳는다. 그것은 인식론적으로 현실을 탈출하여 가능한 세계로 가는 것이며, 실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구속된 가치로부터 금기시되고 금지된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러브크래프트같은 작가는 환상문학은 실제로 독자의 불안과의 유희라고 본다. 알러윈에 따르면 18세기 합리적인 세계상의 승리는 인간을 자연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했지만, 심리적으로 깊이 뿌리내린 불안감은 잠재적으로 남아서 더욱 인공적으로 영양분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공포문이 한 예로, 독자의 불안은 독자의 완벽한 환영화능력을 상정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은 그의 실존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유희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환상문학은 반동 보수적이며 진취적인 혹은 비판적인 기능을 가질 수 있다. 구스타프손은 환상문학 근저에는 보수적이며 도덕적인 태도가 숨어 있다고 했다. 인간존재를 결정하는 것을 꿰뚫어볼 수 없는 힘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보수적인 태도는 견딜 수 없는 현실로부터 도피가능성으로 꿈에서와 같은 소망성취의 기능을 얻는다. 진취적이고 이데올로기 비판적이라는 점에서는 베르호프스타트와 존더겔트는 환상문학은 해방의 지적이며 윤리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환상성은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서 현실의 비본래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통찰케 한다는 것이다. 환상성으로 표출되는 현실의 틈새는 부정적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심오한 인식으로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프로인트는 지금까지 환상문학의 상이한 형태인 ‘비판적 - 해방적’ 그리고 ‘체념적인’ 환상문학을 하나의 모델로 간주하고 사회적 맥락에서 그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환상문학은 시민적-합리적인 경향으로 개인의 자기실현의 가능성이 협소해지자 낭만주의와 함께 생성되었다고 본다. 환상문학은 첫 단계에서는 제한적인 환경에 대해서 공격적이고 비판적으로 대항한다. 티크의 「금발의 에크베르트」는 ‘동화적인 전원시로의 도피’가 아니라 개인화에 대항하는 세계를 환영적이며 허구적으로 파괴시킨다. 외부로 향했던 환상문학은 1815년 경 즈음 대량의 보수 반동적 압력으로 내부지향적 환상문학으로 바뀌었다. 모래사나이에서 주인공의 정체성위기는 사회적 갈등의 내면화라는 것이다. 외부로 향했던 공격이 내적인 자기파괴에 대한 불안으로 바뀐 것이다. 문화적으로 보장된 현실의 모든 가치를 확장/확대한다는 점에서 환상문학은 확실히 진지한 면을 가지며, 그 내적인 초현실적인 것으로 모든 주관적인 형태의 경계체험을 문제화시키는 것이다.
Ⅲ.1 민속적 설화속의 환상성
인간에게서 가장 오염되지 않아 순수하고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시기가 어린아이시절인 것처럼 인류에게 있어서도 이성과 오성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이 세계를 해석 분석하기 이전에 스스로 자연과 우주의 일부로서 우주만물을 신비스러워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던 순수한 시절은 신화적ㆍ동화적인 인식의 시절이 아니었을까. 옛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을 파악하던 방식은 이성과 오성이라는 장비를 갖추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정말로 ‘환상적’ 방법이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올림푸스산의 신들이 있고 게르만족은 오딘을 비롯한 북구 신들의 신화적 세계로 자신들의 가려진 신비로운 원천을 찾고, 우리는 단군신화라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의 뿌리를 찾으려고 상상력을 동원했다. 민중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야기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기쁨, 슬픔, 욕망, 소망 등이 어떤 형식적, 인식론 적 틀의 제약없이 표현하고 있다. <지금 여기서>의 제약을 벗어나 자신의 기억이나 머리 속에서 세울 수 있는 다른 세상인 이 표현들은 문학적 형식은 갖추지 못했지만 그야말로 판타지의 효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환상성의 원천이자 환상문학의 先형식인 그리스신화, 북구신화, 천일야화, 그림동화 등은 환상이나 환상문학이라는 방법적 도구로 현실과 다른 차원의 상상적 세계를 표현하려고 했다기 보다는 당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일야화는 환상적인 형상 - 요술 램프, 병속에 갇힌 마신, 말하는 새, 노래하는 나무, 황금의 강, 나르는 양탄자, 하늘을 덮고 태양을 가리는 거대한 새 루흐, 섬과도 같은 바다괴물 레비아탄 등 - 이 많이 등장하지만, 은유적이고 비유적이며, 개념적인 이야기이다. 현실법칙의 의식적 일탈은 환상성 계기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여기에서 이슬람문화가 승인하고 허가한 현실법칙을 의식적이며 체계적으로 위반하려는 시도는 조금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 시대의 윤리적ㆍ미적ㆍ인식론적인 현실관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천일야화에서의 환상성은 바로 이러한 오리엔트식 세계관 체제를 철저하게 긍정하는 데에서 나온다고도 볼 수 있다. 철저히 체제 긍정적인 체념은 오히려 인간존재의 허무함을 더해주며 이 허무함이야말로 판타지의 원천이 되고있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알라신의 주권으로 정해져 있는 운명에 따라 만남, 이별, 기쁨, 슬픔 그리고 성공의 행복한 결말로의 우여곡절을 경험한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기이한 형상들의 등장보다는 오히려 최고의 선남선녀들로 승화된 주인공들, 그들이 겪어 가는 사건들의 필연적인 우연성 그리고 해피엔드로 단순화된 이야기 구조들이 너무나 비현실적(환상적)이기 때문이다. 세밀하고 감각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첫날밤 사랑의 구체성도 열 다섯 번씩이나 계속되었다는 과장과 허풍으로 그만 환상적(허구적)이 되어버린다. 사건의 전개에서도 인과성이라는 논리로 설명되기보다는 정해진 운명이라는 비논리성이 우선한다. 이 세상에서 존재한다는 것이 그 어떤 합리적인 근거를 가진다기 보다는 절대적인 힘인 알라신의 뜻이다. 신의 뜻은 어떤 합리성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자의적이다. 논리와 합리성의 관점으로 불 때는 그것은 우연의 장난이고 초자연적이거나 미지의 힘이 작용하는 것으로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천일야화의 셀 수없이 많은 동화, 소설, 단편, 사랑과 악한과 뱃사람들의 이야기, 교훈적 이야기, 전설, 성담, 일화 등은 역설적으로 아주 짧은 시간동안에 상상하고 고안된 것이다. 끝없는 이미지, 꿈, 소망들, 인물, 모험들은 화자인 샤흐르쟈드 왕비의 제한된 시한부인생이라는 대조적인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여자라는 종족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결혼 첫날밤을 지낸 뒤 그 다음날 아침 신부를 죽여버리는 왕 샤흐르야르의 왕비인 샤흐르쟈드는 흥미진진한 연속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운명의 시간을 연기시키며, 이야기에 감동한 왕이 드디어 그녀에게 생명을 선사한다. 다양하게 짜여진 세상이야기 속에서 샤흐르쟈드왕비의 경우처럼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들의 모델들이 보여진다. 틀이야기에서 뿐만 아니라 안(內)이야기에서도 언제나 주인과 종복관계 혹은 권력자의 처분에 맡겨진 약자들의 공포가 이야기된다. 대추씨를 잘못 뱉어서 마신에게 목숨을 내 놓을 수밖에 없는 상인, 왕비가 될 노예와 사랑을 했기에 죽을 목숨인 철부지아들, 언니들의 모함으로 세 자녀도 잃고 동물밖에 낳지 못했다는 누명으로 감금당한 왕비 등 모두가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극한 상황의 모델들이다. 여기서 절대적인 권력자 - 그가 마신이건 군주이건 간에 -의 손에 달린 죽음의 공포와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판타지 - 사랑, 지혜, 모험의 이야기- 로 그들을 감동시켜서였다. 천일야화의 환상성은 분명히 이야기의 초자연적이고 우연적인 사건 그리고 기이한 형상들의 등장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이성과 오성적 인식으로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의 그러한 도식적인 환상성의 발굴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주어진 운명적 상황을 벗어나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바로 환상/판타지 속에서 찾았다는 것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샤흐르자드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샤흐르야르왕이 배반의 분노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바로 솜씨 좋게 꾸며진 이야기, 즉 판타지를 통해서였다. 샤흐르야르왕 뿐만 아니라 독자들을 사로잡은 것 또한 결코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의 허황됨(환상성)때문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오묘한 무늬의 연속인 아라베스크처럼 이야기에 이야기가 꼬리를 물며 끝없는 이어지는 천일야화는 끝없는 사막의 현실을 감내할 수 있는 오아시스요 덧없고 허망한 신기루가 아니었을까?
그림형제는 동화를 신화에서 추론하고자했다. 인도 게르만신화가 침몰하면서, 다시 말해서 원시사회의 신화가 무너지면서 동화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용과 용퇴치자, 곰의 아들, 거인, 난쟁이, 요정, 기이한 출생, 죽은 자의 소생 등등 신화와 동화가 가지는 공통적 요소이다. 그러나 신화는 사물을 이해하는 세계상을 보여준다면, 동화는 현실생활에서 기반을 두고는 현실을 미화시키면서 사회 비판적이고 이상향적인 요소를 가진다는 데에서 구분된다. 그림동화 이야기의 발단은 주로 가정불화와 비극, 즉 계모, 배다른 형제 등의 가족관계에서 비롯된다. 신데렐라(재투성이부엌데기), 백설공주, 헨젤은 그레텔에서의 사건의 발단이 모두 계모의 질투와 음모에서 시작된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비록 왕자, 공주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외롭고 가난하고 천대받지만 심성이 착한 아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적으로, 가정에서 소외되기에 흔히 꿈꾸며 공상하기를 좋아한다. 자의든 타의든 가출하여 위험한 여로 속에서 온갖 시험을 거친 뒤 집으로 돌아온다. 시련과 위험의 공간은 그러나 대개는 숲으로 마녀나 악마와 대립하게 된다. 그들은 지혜를 짜내어 시련을 극복하며 모든 것이 인과 응보적으로 해결된다. 권선징악적인 결말로 대개는 가난한 사람과 약한 자 편에서 이야기된다. 이렇게 틀에 박히고 도식적인 이야기 전개에도 불구하고 동화 속에는 무한한 상상력이 동원되고 있으며, 시간과 공간적 제약을 초월하며 자연법칙과 인과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현실적 시공간을 뛰어넘어 불가능한 세계가 구현된 동화는 그러나 언제나 민중들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도식적인 이야기 줄거리와 비현실적인 세계는 우리의 경험세계를 초월하여 이야기(판타지)속에 유토피아를 정립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사회정의를 이야기를 통해서 엮어내며, 자신들의 억울함을 보상받는 것이다. 재투성이 부엌데기가 마술의 힘을 빌어서 왕자님 잔치에 가게되고 아름다운 미모와 착한 심성으로 왕비가 되는 것이나, 계모에게 쫓겨난 헨젤과 그레텔이 깊은 숲속 마녀에게서 죽을 고비를 지혜롭게 넘기고 오히려 보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나, 어린 소녀가 할머니를 삼켜버린 늑대의 배를 갈라 할머니를 구하는 것등 모두 막강한 힘의 억압에 대한 보상의 표현이다. 신화나 설화에서는 이야기 소재와 구성요소의 환상성이 우선한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적 구성요소보다는 인류사 초기단계에서 현실적 삶을 영위하고 극복하기 위한 환상의 기능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로 분화되기 이전의 환상적인 세계관과 현실과 대립되는 허구적 혹은 환상적 영역으로서 <이야기>의 기능이 더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Ⅲ.2 19세기 환상문학
19세기 환상문학의 대표적인 예로 우리는 독일의 호프만, 미국의 포우 그리고 영국의 캐롤을 살펴 보고자한다. 이들은 예술동화, 공포괴기소설 그리고 아동문학이라는 장르로 차별화 될 수도 있다. 환상문학의 효시로 인정받고 있는 호프만은 문학사적으로 볼 때 낭만주의와 리얼리즘 경계선상에 서 있는 독특한 작가이다. 기괴한 작품들은 독일에서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프랑스 등 유럽에 많이 알려져 독일작가 중에서 몇 안 되는 세계화된 작가였다. 보들레르, 포우,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존경받은 그는 20세기 초현실주의자, 카프카, 쿠빈, 마이링크, 호프만 스탈 그리고 화가 클레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평범한 일상의 표면 밑에서 마적이고 괴기하고 초감각적인 것이 튀어나오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호프만의 영향력을 감지할 수 있다. 관료, 작곡가, 화가, 작가 그리고 술고래인 호프만은 환상력을 얻기 위해 술을 마셨고, 눈앞에서 망상, 유령, 요괴들이 어두운 방안에서 나 뒹굴고, 자신도 자신의 분신과 마주 서서 은밀하고도 두려운 대화를 나누게 될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러나 그는 냉철해지고 자신의 오성이 환상을 제어할 수 있을 때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악몽의 잔재가 이야기 속에는 남아서 섬뜩함과 비현실이 그의 형상세계에 녹아들어 있다. 관료와 예술가로서의 이중생활, 낮/밤으로 상징되는 오성적/충동적인 이중생활 이라는 그의 생존 방식은 작품에서 현실과 환상이 끊임없이 전환되는 이야기에 반영되고 있다. 밤의 이야기의 제목에서도 보듯 판타지보다는 밤이 주는 의미가 크다. 밝고, 가시적이고, 오성적이고, 합리적인 낮의 세계는 질서, 균형과 화해의 세계라면, 밤의 세계는 어둡고, 보이지 않고, 충동적이고, 카오스적이고 탐닉적인 면이 우선한다. 인간존재는 오성과 이성만으로는 파악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인간 영혼은 보이지 않는 어둡고 끝없는 심연이기에 이성은 영혼적 영역들과 매개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오직 자유로운 상상력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현실생활에서는 꿈, 어린아이상태, 민속문학등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동화적 세계 속에서 두 세계의 통합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호프만은 예술동화라는 장르를 통해서 인간의 양가적인 실존을 표현하고 있다. 오성과 질서가 지배하는 현실원리로는 발견되지 않는 거대한 인간의 영혼의 세계를 그는 환상적인 수법을 통해서 그려내고 있다. 흔히 그의 작품이 악마적이거나 괴기하고 유령이야기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호프만의 환상세계는 언제나 현실세계에 확고하게 뿌리를 박고 있다. 그래서 외부와의 단절된 사랑, 죽음 등을 주제로 한 다른 낭만주의작가들과는 구분된다. 밤의 이야기에 들어있는 「모래사나이」에서 오성/ 광기, 현실/환상의 세계는 언제나 전환되는 병존적인 양가성임을 보여준다.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는 나타나엘과 약혼자 클라라의 오성적 판단이 대비되면서 그것을 잘 보여준다. 「호두까기인형과 생쥐왕」에서는 괘종소리와 함께 ‘혼자’ 있는 마리 앞에 밤의 엽기적인 동화세계가 펼쳐진다. ‘엽기적’이라는 형용사는 아마도 인형들의 애니매이션화와 일곱개의 머리를 가진 흉물스러운 새앙쥐 모습에 부가될 수 있을 것이다. 원시적 사고의 한 형태인 애니미즘은 판타지의 기본이 된다. 프로이트나 베르그송은 이러한 무생물의 생명화(활성화)에서 기괴함이나 섬뜩함이라는 인간 정서를 설명했고, 반대로 생명체의 기계화에서 희극성을 보기도 했다. 원시적 사고와 마찬가지로 어린아이는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형을 즐겨 살아있는 것처럼 다룬다. 무한한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현대에 와서 애니메이션은 중요한 예술표현도구가 되었다. 호프만 작품에서 자주 나오는 모티브 중에 하나가 바로 자동인형, 목각인형의 애니매이션화이다. 호프만의 소설서술의 특징은 지금 보고 혹은 서술되고 있는 것이 실재이야기인지 환상인지를 불확실하게 모호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토도로프가 환상성의 핵심수법으로 보았던 망설임/불확실성과 부합된다. 특히 호두까기인형에서는 마리가 환상적인 동화 속에서 현실로 돌아올 때 항상 양쪽 세계의 접점을 남겨둔다. 호프만은 현실세계와 환상세계가 경계없이 서로 뒤엉켜 병존하듯이 바로 인간의 영혼의 세계는 의식되는 현실세계뿐만 아니라 불쑥 찾아오는 괴기한/불안한/신비로운/공포스러운... 환상적 세계를 포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호프만의 공상 내지 환상세계는 모두가 현실의 세계와 일대일 대응된다. 예를 들어서 코펠리우스 - 코폴라 - 모래사나이, 올림피아 - 아름다운 천사의 미녀, 호두까기인형- 드로셀마이어조카, 드로셀마이어아저씨-시계공, 장난감성 - 과자나라성등 보는 관점 - 다시 말해서 오성의 눈으로 혹은 환상적 상상적 직관으로 - 에 따라서 이렇게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호프만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데에는 반드시 매개수단인 도구와 방법- 예를 들어 망원경, 술등-이 명시되고 있다. 이로써 현실과 환상의 세계에 양쪽 발을 걸친 양가적이며 분열적이고 불안한 인간존재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포우 E.A.Poe의 작품 내용은 파격적이지만 여전히 그의 소설에는 영국적인 고딕 소설풍이나 공포낭만주의를 엿볼 수 있다. 포우 역시 프랑스의 보들레르가 격찬한 작가로서 프랑스 문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괴기하고 공포로 가득찬 분위기위주의 작품이 있는 반면 아주 논리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탐정소설들도 있다.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인간 정서의 심연을 헤매는 듯 하다가도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수리의 힘을 믿는 듯 모든 사건을 조목조목 그 원인과 결과를 연관시키는 치밀한 계산적 탐색도 있다. 그는 오성적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면서도 광기에 사로잡혀 절망적인 사투를 벌이는 광인이었다. 그의 소설에서는 19세기 미국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없으며, 탐정소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포괴기소설로서 옛 귀족적 낭만주의의 잔재인 고딕소설적 장치를 사용하였다. 반쯤 부숴진 집, 성, 어두운 지하실, 이색적인 가구, 장식물 등등. 그러한 공간으로부터 퍼져 나오는 공포는 이미 잘 알려진 것이며 또한 이미 문학적으로도 가공되었던 것이다. 또한 죽은 자, 생매장되는 인간, 폐병환자, 죽어 가는 여자 등의 등장인물들. 이렇게 완성된 상투성의 배경 위에서 포우는 자기시대의 이야기를 엮여냈다. 다시 말해서 중세적 분위기와 공포낭만주의적 의미상투성을 가지고 자기 시대의 우울함의 상징화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도르노와 벤야민은 포우를 환상문학의 대가로 격찬한 반면 토도로프는 포우를 환상문학의 반열로부터 제외했다. 토도로프는 포우의 「검정고양이」를 제외하고는 포우의 작품은 괴기소설이나 경이소설이며, 주제나 기법에서만 환상문학에 가깝다고 했다. 아도르노는 환상성에 대하여 ‘현실적인 존재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환상문학에서 상상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포우는 바로 이렇게 생성조건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적 제약이라는 환상문학의 미학적 제약을 잘 인식하고 이용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환상적인 형상이 더 실재적이며 직접적인 경험의 잣대로 잴 수 있으려면, 애초부터 객관적인 모순이 숨겨져 있어야 하며, 오직 사물을 상상적인 시각으로 보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포우 문학에서는 바로 이런 것들이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험적인 체험으로는 헤아릴수 없는 현상들을 상대화시키거나 합리적으로 무해한 것으로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그러한 시도가 실패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검정고양이」에서 배우자 살해라는 사건을 이야기의 화자는 우선은 냉담한 오성으로 자신의 행위의 환상적인 배경을 아주 자연스러운 인과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이야기를 단지 현상들과 사건들을 재현하면서 어떤 해석도 유보한다는것을 확신시키다가 슬쩍 그 의도를 취소해버린다. 꼼꼼한 설명 속에서 사건의 사실성, 다시 말해서 상징적인 이름 프루토라는 교살된 고양이가 벽에 묻혀지고, 갑작스러운 화재, 두번째 고양이가 다 연관된 사실임이 암시된다. 끊임없이 처음에는 상대화되고 합리화 되었던 허상들이 실재한다는 것을 통해서 현실의 환영이 만들어진다. 벤야민 역시 포우를 새로운 문학의 최대의 기법적 대가라고 격찬했다. 상투성과 내적동기화라는 중요요소때문이다. 주관적인 내면의 이미지로 가득찬 포우의 환상적 세계는 상투적인데, 벤야민은 이러한 것을 포우의 멜랑코리로 정의한다. 외적으로만 경험적인 가상을 이야기 위로 덮어씌우려고 할 뿐만 아니라 체험인물들과 내적으로 친밀하고, 밀접하게 연관되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 속에 들어 있는 주관적인 화자도 상투적이라는 것이다. 포우는 문학을 내적인 분위기라는 기준으로 헤아렸을 뿐만 아니라 벌써 시장원리를 이해하고 작품을 썼다는 것이다. 당시 시장법칙에 따르면 기존의 제도화되지 않은 것을 선호하여, 무조건 새 것이나 미지의 것이 강요되었다. 절대적인 새로움과, 미지의 것을 암시하는 것이 환상성의 법칙이 되었다. 상투적인 소재를 환상성 법칙으로 불가해하고 괴기스러운 미지의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어셔가의 몰락」또한 공포낭만주의적 모티브를 가진다. 가문종갓집, 종족 그리고 죽음의 도래등의 신비스러운 관계가 그것이다. 철저하게 세상을 등진 로더릭은 가문의 정신적 전통의 원을 마지막으로 완성하는데, 가문의 열광적인 창조성은 로더릭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쓴다. 공적인 삶과의 절연하고 모든 다른 행위를 포기하는 철저히 개인적인 브루조아지적인 삶에서 나오는 우울함은 환상적이며 괴기스럽다. 그러나 포우가 여기서 인간 존재란 독립적이고 공유될 수 없는 개별적이고 밀실적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극단적으로 밀실적 존재를 무행위와 정신화 속에서 완전히 해체해버리려 했다는 것이다. 이 최종적 해체를 위해서 마지막 결말에서 어셔가의 집이 무너져 사라져야 했다. 공포낭만주의에서도 유지되었던 소재들이다. 죽음, 병적인 영혼을 지닌 어셔가의 해체로부터 공포가 현재화되기 위해서는 원래의 소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어셔가는 폐허로서만이 낯선 과거의 공상된 증거로서 알레고리적으로 남기 때문이다. 포우의 환상세계는 유령계를 없앨 시간이나 기회도 주지 않고 새로운 사회가 그저 적응하기 급급한 열병과도 같은 물질적 생산열풍에 도취한 산업사회에 대한 반성인 것이다. 그의 작품은 개인에게 낯설고 구속력이 없는 비유적인 장치인 고딕소설과 공포낭만주의 풍의 소재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시대의 경험적 세계 뒤에 서있기 때문이다. 포우는 시대의 찌꺼기 속에서 인식하지 못한 절편들을 의미심장한 표현으로 형상화했던 것이다.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제 아동문학의 범주를 넘어서서 다양한 해석가능성 - 언어유희, 빅토리아 시대적인 종교관에 대한 비판, 환각세계의 패러디, 정신분석학적으로 심층분석 - 을 가진 문학작품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루이스 캐롤이 자주 사진을 찍고 친하게 지내던 학장의 세 딸과 함께한 템즈강 보트놀이에 대한 기억에서 앨리스의 모험이 쓰여졌다. 캐롤의 이야기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던 세 딸, 특히 막내 앨리스를 위해서 그는 이 이야기를 썼던 것이다. 1864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책이 나오길 기대했으나, 삽화가 완성되지 않아서 1865년에야 복사본을 앨리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앨리스의 이야기는 “앨리스는 자매들과 함께 벤치에 앉아 있는 것에 차츰 싫증이 나기 시작했으며 아무 할 일도 없었다.”로 시작한다. 앨리스는 빨간색 눈을 한 흰 토끼를 따라 토끼 굴로 들어간다. 긴 추락 뒤에 앨리스는 큰 방에 도달하는데 거기서 멋진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의 열쇠를 발견한다. 그문을 들어가기 위해서 앨리스는 커졌다 작아졌다하는 체험을 연습한다. 그로부터 12장에 걸친 이상한 나라의 모험이 시작되고 마지막 “목을 쳐” 하는 카드 하트나라 여왕의 목소리에 꿈에서 깨어난다. 깨어난 앨리스는 여전히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마치 이상한 나라에 들어 있는 듯 상상한다. 그리고 다시 그녀는 이상한 나라로의 문을 열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은 변화될 것이라는 상념에 빠진다. 앨리스는 먼 훗날 어른이 되어서도 이 단순하고 사랑스러운 어린 시절의 마음을 지킬 것이며, 그 옛날의 이상한 나라에서의 꿈 이야기로 아이들의 눈을 반짝거리며 열망하게 만들 것이며 또한 자신의 어린 시절과 이 행복했던 여름날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단순한 근심을 함께 나누고 그들의 소박한 기쁨에서 즐거움을 찾을 것이라고 마음속에 그려보고 있었다.
토끼 굴을 따라서 들어갔던 동화적 세계와 사건들을 많이 겪었건만 이야기 끝에 와서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이 꿈에서 깨어난다. 불안과 공포란 원래 기적의 동화나라인 이상한 나라에서는 배제되어야할 속성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앨리스는 언제나 불안과 공포에 떤다. 무엇인가 외부세계에 대한 불안감은 앨리스가 변신할 때마다 더욱 심하게 의식된다. 변신은 현실세계에서 상상적 세계로, 또 거꾸로 이동하는 접점인 경계지점을 의미한다. 앨리스는 여러가지 체험을 겪으면서 수 많은 형상으로 변한다. 그리고 스스로 질문해 본다.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앨리스는 커졌다 작아졌다 때론 머리와 목으로 혹은 머리와 발로 만 되어진 형상이 되기도 했기에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겉모습과는 상관없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자기 존재를 묻는다. 그녀는 잘 알던 시를 외워 보려고 했지만 자꾸만 다른 단어가 나온다. 그녀가 만나는 인물들 - 동물, 카드인물, 체스인물들, 계란 그리고 모자장사 - 은 괴상한 비논리로 앨리스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환상성이나 경이로움은 기존의 존재물들을 뒤집어버림으로써 생겨난다. 잘 알던 것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봄으로써 생전 처음 본 것으로 만들며, 의미 있는 말을 완전히 뒤집어 허튼 소리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허튼 소리는 바로 의미성에서 나오며 환상성은 현실성으로부터 모태를 찾을 수 있다. 넌센스문학이라는 데에서 이미 환상성의 단초를 볼 수 있으며, 환상적인 줄거리에서보다는 언어의 환상성 속에서 더욱 공포와 위협이 잘 반영되어 있다. 비논리와 엉터리 같은 허튼 소리하는 주장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그것은 논리를, 즉 현 존재 그 자체를 문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줄거리에서도 경이로움이 많이 나타난다. 경이로움의 표현으로 뒤집음은 캐롤의 심층적 소망을 잘 나타낸다. 뒤집어져 모순된 세계에서는 아이와 어른과의 밀접한 관계도 아주 자연스러우며, 현실에서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여기서는 법으로 정해진다. 이상한 나라라는 다른세계는 캐롤의 소망충족의 겉옷일 뿐이다. “난 그냥 허튼 소리를 했을 뿐이야”라는 말은 자기 방어적 수단 이 되는 진술이다. 논리적 의미연결 속에 불쑥 무의미가 나타나는 것은 단지 그 의미에 대한 모순됨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얘기되어진 세계 전체에 대한 모순과 역설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의미는 방해물이 되어서 개별적인 현상으로만 설명되며 해석을 통해서 그 어떤 의미있는 논리적인 세계와 연결되기를 거부한다. 궁극적으로 의미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 유희적 환상의 나라인 것이다.
Ⅳ. 나가며
19세기를 중심으로 고찰해본 환상성과 환상문학에 대한 개념정리와 작품읽기는 방대하고 복합적인 주제를 연구하기위한 작은 좌표설정이다. 대표적인 환상문학으로 설화와 중요작가 작품을 다루긴 했지만, 이상향소설, 과학공상소설, 흡혈귀소설 등 광대한 스펙트럼 위에서 펼쳐졌던 환상문학을 포괄하기에는 불충분하다. 토도로프는 19세기로 환상문학은 종말을 고했다고 했다. 그러나 카프카, 쿠빈, 마이링크등의 작품은 여전히 20세기적 환상문학으로 간주되고 있다. 더욱이 비현실성이나 불확실성 등으로 규정되는 19세기적 환상성보다는 새로운 종족과 마법, 종교와 신앙, 나라와 역사 그 자체를 완전히 창조하여 지금 우리의 세계와는 전혀 다르고 새로운 세상을 구성하는 신 장르 판타지소설이 요즈음 PC통신세대 독자에게는 더욱 친숙하다. 톨킨의 반지군주을 원조로하고 컴퓨터 게임 그리고 RPG에 영향을 받고, 무협과 신화적 소재를 변형시킨 판타지소설들 드래곤라자, 용의 신전, 퓨처워커,귀환병이야기,묵향등은 우리시대의 환상문학이다. 문체적으로 미완성적이고 내용적으로 통속적이기까지 한 속칭 판타지소설들에 대한 독자들의 열광적 반응은 뉴미디어시대를 살아가는 신세대들의 독서요구를 잘 보여준다. 만화와 게임에 익숙해지고 복잡하고 난해한 것을 회피하며, 단순하면서도 상상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비현실적인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시공간과 국적을 초월하고, 모험적인 영웅전사들이 상상의 세계 속에서 종횡무진하는 신세대형 무협지인 판타지 소설의 부상이 단순히 한때의 유행으로 그칠지 아니면 더욱 발전 전개되어 확고한 시대적 장르로 자리잡을지 아직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현재 소위 본격문학, 순수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역에 하나의 대안적 내지는 대항적 세력으로 급속히 확장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한 현재 시대적 욕구로서 두드러진 것은 흑백논리처럼 확실한 대비를 이루면서도 기존의 제한 적인 것을 초월하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 즉 환상성에 대한 열망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판타지소설을 단순히 일시적인 유행이나 시대순응적으로 폄하하기 이전에 오히려 환상문학의 전통선 상에서 그 원천을 찾아보면서 포스트모더니즘적 현상으로 연구 발전시켜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문학 영역을 확대시키는 동시에 게임, 영화 등의 문화산업의 기반자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본 환상문학소고는 이러한 연구고찰의 시작이 되고자 하며, 20세기 환상문학으로 카프카읽기, 판타지소설연구, 게임과 판타지등으로 계속 탐구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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