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결국 국제규모의 사철私鐵 건설이군요?
이 소장의 설명을 듣고 난 오 장관의 말이었다.
"그렇습니다. 다소 복잡할 뿐 결국은 사설철도지요.
"환태평양 지역에 관심이 쏠린 정세와도 맞아 시의적절한 사업 같군요.
다만 북방국가와는 채널이 없어서...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오 장관은 그쪽에서 요청하라는 듯 말꼬리를 흐린다.
진 현구는 준비해온 자료를 이 소장에게 넘겨주었고
이 소장은 그것을 펴들면서 오 장관을 향했다.
"물론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부분을 정리해 왔습니다. 여기 자료를 보면서 말씀드리지요.
첫째로...
극동연구소가 UN과 접촉할 자격을 승인해 달라는 요청과
국내를 통과하는 베링철도 부지 조차 문제가
통일원 장관에게 설명되고 있었다. 정부와의 조율작업이었다.
1987년, 과천청사에서 베링 프로젝트가 제출되었다.
이미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정부의 입장은 여전히 당혹스런 것이었다.
민간에서 국제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데 반대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적극 지원해야 할 사업이었다.
그러나 영토를 조차해 달라는 요구는 만만히 처리할 사안이 아니었다.
더욱이 건설될 베링 철도가 한국의 통제를 벗어나는 치외법권적
조직이라는 점이 정부를 민감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한국이 조차지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베링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뻔했다. 이미 십여 년에 걸친 치밀한 현장 조사와 자금계획,
그리고 기술개발계획까지 있는 보고서로 미루어 실현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따라서 한국정부에 대한 설명은 모국에 대한 예우 정도였다.
만약 베링 철도가 한국 아닌 제 3국으로 연결될 경우
막대한 기회손실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토조차는 건국 이래 없던 일이고
비록 내국인에게라 하더라도 국회 비준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1세기 동안 유지되는 조건이기 때문에 잘못될 경우
제2의 이 완용으로까지 비난받을 수 있는 문제다.
정부는 차관보급 팀장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문제를 검토 했다.
그리고 1986년 가을.
위원회는 극동 연구소로 위원들을 보내 청문회를 겸한 검토를 시작했다.
위원들은 성실한 사람들 이었다.
그들은 베링 프로젝트의 동기와 실현 가능성, 그리고 혹시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연구소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들의 자세는 진지했고 극동 연구소 측도 이들 에게 성의를 다했다.
하지만 작업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라면 연구원들의 교민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베링지역에 대해 품고 있는 강한 집념 외에는 없었다.
6개월 후 나온 결론은 프로젝트 진행에 따라 단계적으로 대응하되
일단 극동 연구소가 일할 수 있도록 유엔 접촉자격은 승인하자는 데로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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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보다는 생활양식, 즉 문화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 보여주는 사례는 많습니다.
화북 중국인과 몽골족은 구별이 쉽지 않아요.
몽골 옷 입은 중국인을 몽골인으로,
중국옷 입은 몽골인을 중국인으로 착각하는 건 흔한 일이지요.
하지만 자세, 동작, 표정, 태도를 잠시 관찰하면 차이는 금방 드러납니다.
외모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이런 것들 - 생활 양식이나 문화의 차이에서 비릇되는 점들 - 그 사람의 출신민족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민족간의 차이란 외모나 환경보다는 생활의 차이, 즉 사물을 보는 태도, 문화, 감정, 생활 양식에서 비릇되는 것이라 볼 수있지요.
베링지역 이주자들이 이러한 것들을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민족 집단으로 탄생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베링 지역에 형성될 공동체의 성격이라는 주제에 대한
진 현구의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내용은 전문적이었지만 평이하게 풀어
비전문가들도 흥미있게 들을 수 있도록 진행 하고 있었다.
회의실을 채운 UN 사무국 직원과 한국에서 온 관리들은 강연에 몰입해있다.
"그 지역은 대부분이 겨울이고 겨울 기온이 영하 40도를 밑돌지요.
인간이 정착할 수 있다는 건 낙관적인 견해 아닐까요?
UN사무국 비서 피어슨 여사가 질문했다.
"그 땅에서 이미 수천 년을 살아온 에스키모들과 비교적 최근 알라스카에 이주한 미국인들이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에스키모는 인간의 생존 능력을,
그리고 알라스카는 문명사회의 건설 가능성을 각각 보여준 셈이니까요.
현대문명의 혜택이 없었던 에스키모들이 극지에 적응하기 위해 발휘한 재주는 대단했지요. 살아남기 위해 극도로 긴장해야하는 일상생활에 너무 과도하게 힘을 쏟은 결과 다음 단계로 발전할 추진력을 잃는 슬픈 결과를 빚기는 했습니다만.
반응을 조심스레 살피는 진 현구.
지루해할 경우나 반대로 몰입하는 반응이 나올 경우에 대비한
각각의 시나리오가 준비되어있다. 모니터 요원들의 싸인에 따라 진행하는
유연한 방식이었다. 연구원들이 머리를 쓸어 넘긴다.
관심 있게 듣는다는 싸인.
그렇다면-- 진 현구는 상세한 쪽의 원고를 펼쳤다.
"이들이 극지 적응을 위해 발휘한 놀라운 기술들 -- 카약(1 인용 보트), 우미약(여러 사람이 같이 타는 배), 작살, 새잡이 투창, 세모 창, 동물 힘줄로 보강한 활, 개썰매, 설피, 고래 기름 램프로 밝히는 겨울 집과 눈 집, 여름 텐트와 모피 옷 등등.
이 발명품들이 얼마나 효율적이었는가는 카약 하나만 설명해도 충분하리라 봅니다.
그들은 몸과 배를 일체화 시킴로써 스스로 반인반어半人半魚의 존재가 되는 놀라운 솜씨를 발휘했지요.
카약은 에스키모의 사촌 격인 북미 인디언의 카누를 개조한 것이라 구조가 같습니다. 하지만 카누는 선체를 백양 나무껍질로 싸고 뚜껑이 없는데 반해,
험한 바다를 건너야 하는 카약은 바다 표범 가죽으로 선체를 싸고 뚜껑을 달았습니다.
카약은 맞춤옷처럼 자기 몸에 맞게 만듭니다.
뚜껑 가운데쯤 다리를 넣고 앉을 수 있는 큰 구멍을 내는데 꼭 끼게 만들지요.
그래서 카약을 타거나 내리는데 숙달되려면 상당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나무 테두리로 둘러싼 몸통 구멍은 카약 링이라 부르는데 갑판보다 1인치 정도 높게 나무 테두리로 둘러싸고 방수용 뚜껑을 답니다.
날씨가 좋을 때 카약을 타는 사람은 아쿠이리 사크라는 반 자켓을 입는데 이건 털을 뽑은 바다표범 가죽을 힘줄로 꿔매 만들어서 물이 스며들지 않아요.
자켓 아랫부분에는 졸라매는 끈이 있어 이걸 당겨 카약 링에 자켓을 붙이면
반 자켓은 카약의 연장이 되어버립니다.
자켓 상부는 탄 사람의 겨드랑이까지 와서 어깨 부분의 가죽 끈으로 연결되는데
뼈로 만든 버클로 늘이거나 좁힐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이 장치는 간단하면서도 정밀해서 금속제 버클도 이것만 못할 정돕니다.
이 반 자켓은 카약을 넘어오는 작은 파도를 충분히 막아내지요.
바다가 험할 때는 상체를 완전히 덮는 투일릭이라는 자켓을 사용하는데,
반 자켓과 같은 요령으로 만들지만 위쪽이 길고
소매하고 모자가 달려서 손과 머리까지 덮어 줍니다.
이렇게 하면 파도를 뚫고 나가다가 카약이 전복할 경우
다시 뒤집어도 한 방울의 바닷물도 카약에 스며들지 않아요.
가끔 나오는 잔기침 소리 외에는 조용히 경청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오늘의 주제인
`베링 철도부지 조차안의 제안 설명`
이라는 제목으로 미루어 딱딱할 줄 알았던 내용이
의외로 인류학 교양 강좌처럼 부드러워진데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은 노의 사용법을 익혀 카약을 조종하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만
일단 숙달되고 나면 어떤 악천후에도
빠른 속도로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카약은 이제까지 고안 된 일인용 보트 중 가장 뛰어난 장비인 셈이지요.
일인용 카약을 타는 연습은 어릴 적부터 시작됩니다.
6살에서 8살까지의 그린란드 소년들은 부친의 카약으로 연습 하는데
자식의 장래를 생각하는 아버지라면 이들이 10살이 나 12살이 될 때
전용 카약을 만들어주지요.
이 무렵부터 그린란드 젊은이들은 일생 바다의 일꾼으로 일하게 되는 겁니다.
이들은 전복된 카약을 뒤집는 기술을 습득하기 전까지는
한 몫의 숙달된 뱃군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어떤 에스키모가 뒤집힌 카약을 바로잡는 기술이 능한 친구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는 노가 있건 없건
또는 막대기가 있건 없건 간에
맨손으로 카약을 뒤집을 수있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할 수없는 단 한 가지 방식은 혀로 뒤집을 수 없다는 거예요.
청중들 사이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나왔다.
"전복된 카약을 스스로 뒤집는 기술을 습득한 사람은 어떤 날씨에도
바다에 나갈 수 있습니다. 전복되어도 바로 원 위치로 돌이킬 수 있으니
해조처럼 거대한 파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거지요. 카약을 조종하는 기술 중,
제가 들은 가장 디단한 재주는 산처럼 말려 올라갔다 부서지는 파도를
뚫고 나가는 기술입니다.
파도가 무너져 떨어지면 일부러 카약을 전복시켜
그 뱃전으로 파도의 충격을 막고
일단 파도가 지나가면 원 상태로 카약을 뒤집는다는 거예요.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의 능력이란 이런 것입니다.
하물며 문명의 도움을 받는 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할 환경이란
상상하기 어렵지요.
피어슨 여사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피어슨 여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극지 환경의 도전에 인간이 어떻게 대응했는가에 대한 해박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 설명만으로 부족합니다.
연사께서도 이미 지적하셨다시피
그들의 현재는 그리 성공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례를 보여준데 불과한 정도라고나 할까요.
"동의합니다.
에스키모들은 육체적으로 부족한 것들을 훌륭하게 보충했지만 결국은 동물의 기능으로 동화되는 댓가로 기동성 있는 인간의 적응능력을 포기한 셈이 되고 말았지요.
그러나 19세기에 알라스카로 온 미국인들은 어떻습니까?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훌륭한 문화 수준의 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베링 지역이 외부와의 연결이나 현대 문명의 도움 없이도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지역임을 에스키모들은 수천 년간에 걸쳐 증명해 주었고,
약간의 현대 문명과 외부연계만 있다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알라스카가 이미 웅변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베링 지역은 시속 500km의 이동수단을 통해 세계로 개방되는 동시에
현대적인 첨단설비를 갖출 것입니다.
카약에 의존하던 1차 산업 중심의 이 지역에 2,3차 산업시대를 열게 될 것이고,
진 현구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참석자들을 비로 쓸 듯 쓰윽 훑어보았다.
"새로운 문화와 고유의 생활양식으로 결합된 새로운 민족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에스키모들의 한계를 극복할 것입니다.
박수가 터져나온다. 그가 깊숙히 절하고 들어가자
잠시 휴게시간이 알려졌다. 커피와 스낵이 준비된 테이불로 사람들이 몰렸다.
한국 관리들과 극동 연구소 사람들은 기자들의 포위를 받고 질문 공세에 몰렸다.
기자 출신인 연구원들이 진 면목을 발휘할 시간이었다.
웅대한 규모와 로맨틱한 비전으로 베링 철도는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중들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베링 코스의 탐사 다큐멘터리 시청률은 인기 드라마 수준에 육박했다.
연구원들은 기자들의 구미에 맞게 정리해 각국어로 번역, 편집한 자료를 배포하면서
일일이 악수하고 명함을 교환했다. 그 명함들은 앞으로의 홍보 채널로 활용할 소중한 자료였다.
극동연구소 연구원들의 민주화 투쟁 경력을 아는 외국기자들의 자세는 호의적이었다.
속개된 회의는 베링 철도 코스의 소개 순서였다.
회의장 전면에 설치된 화면에 인공위성에서 잡은 극동지역과 알라스카 지역이 나타나고 컴퓨터 그래픽 처리된 도로망과 철도가 표시되어 갔다.
화면은 알라스카의 유콘 강 유역으로 다가갔다. 2 km 상공의 항공사진 경관이 흘러가면서 남쪽의 페어뱅크스까지 갔다가 다시 서쪽 끝의 황태자 곶에 도착했다.
카메라가 베링 해협을 건너기 시작한다.
상하로 나누어진 화면 윗부분은 바다 위, 아랫부분은 해협 단면도를 보여주면서
바다 깊이와 해저 토양상태까지 색채 구분으로 표시한다.
해협 중앙의 다이오미드 섬을 중심으로 미국령과 쏘련령으로 나누어 진다.
수심은 미국 쪽이 10m 내외로 얕은 반면에 시베리아 쪽은 3배 정도 더 깊었다.
시베리아의 동쪽 끝인 데지네프 곶에 도달하자
화면은 툰드라와 침엽수 지대를 흘러갔는데
이번에는 지하자원과 삼림 자원 규모 등을 보여준다.
추코트 반도를 지나자 캄챠카 반도가 나타났다.
`면적 37만㎢ 인구 38만, 동서 450 km, 남북 1,200km`
인공위성 높이로 올라간 카메라는 캄챠카 반도의 전경을 비쳐준 후 내려와 이동한다.
나레이션)
120여개의 화산 중 22개는 활화산,
청어, 대구, 연어, 송어, 왕게 등 어획량은 쏘련 어획량의 10%, 세계 어획량의 4%,
석유, 석탄, 금의 보고이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고 있다.
끝없이 넓은 목장과 농장지대가 나타난다.
수증기로 자욱한 사이로 솟구치는 간헐천 줄기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온천지역
눈 덮인 장대한 산골짜기를 끝으로 다시 인공위성 높이로 이동.
베르호얀스크 산맥을 넘고 야쿠츠크를 지나
남쪽으로 뻗은 좁은 도로를 따라 오다가
BAM(바이칼-아무르)철도와 교차하면서 동쪽으로 이동한다.
하바롭스크를 지나 블라디, 청진, 그리고 강릉, 부산을 보여준 후 끝난다.
불과 20분 정도의 프로그램이지만 대단한 설득력이 있었다.
미국 ATLAS팀과 NASA의 협조를 받아 입수한 자료를
광고영화 전문회사에게 맡겨 제작한 영화였다.
브리핑을 맡은 이 소장은 영화의 감동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한 청중을 향했다.
"베링철도는 총 6,700km, 이중 쏘련 5,600km 미주 1,000km,
나머지 100km는 베링해협 구간입니다.
공사기간은 30년 예상이므로 1990년에 착공하면 2020년에 준공될 전망입니다.
하지만 완성은 곧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신설되는 자기부상철도와 기존 철도 연결에는 비효율성이 있어
접속되는 철도들 역시 자기부상 철도화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사업들은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의 후대에 진행되겠지요.
시골 영감처럼 생긴 이 소장의 눌변이 떠듬떠듬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감에 차 있었고 동시통역사들의 유창한 번역이 눌변을 가려주어
연설은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참석자 여러분께서는 이번 토의결과가 세계사에 영향을 주게 된다는 자부심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부디 진지한 토의를 기대합니다.
연설을 마무리 짓자 미국과 쏘련 좌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고
이어서 기자들과 UN 사무국 직원들을 포함한 회의실 전체로
열광적인 박수가 이어졌다. |
첫댓글 거대한 스케일의 스토리!!!
거기에 비해 매우 쪼잔한 교정 하나:
제가 들은 가징 디단한 재주는 -> 제가 들은 가장 대단한 재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