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로 신의료기술 조기 시장 진입 허용...“비급여로 풀릴 수밖에 없어 의료비 부담 가중”
의료민영화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정부의 '투자활성화대책'의 한 꼭지인 '신의료기술 평가 간소화' 방안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고 있다. 그러나
쟁점으로 떠오른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 허용과 법인 약국 도입 정책 못지 않게 국민 의료 환경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만한 큰
사안이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13일 발효한 4차 투자활성화대책에는 '신의료기기 출시 지원'과 '신약 건강보험 등재 소요기간
단축'을 위한 방안이 담겨있다. 기존 규제를 간소화해서 신의료기기와 신약의 상품화를 촉진하기 위한 내용으로, 해당 업계의 줄기찬 규제 간소화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다. 그러나 정부 대책은 시장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안전은 뒷전으로 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선
시장 진입 허용, 후 신의료기술 평가 "사실상 의료기술 효용성 평가 생략하는 정책"
신의료기술 평가제도는 2006년
의료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그 전까지는 새로 개발된 의료기술이 실제 임상에서도 동일한 효과와 안전성을 가지는지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제도가
없었다. 이에따라 2006년 법을 개정해 신의료기술 평가제도를 마련했다. 새로운 의료기술의 안전성 및 유효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해 환자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복지부가 관련 부처들이다. 현행
제도는 신의료기술 평가 신청을 하면, 품목허가(식약처, 80일) -> 신의료기술평가(한국보건의료연구원, 1년) ->
경제성평가(건강보험심사평가원, 90일) -> 요양급여대상 지정 고시(복지부, 60일) 순으로 진행된다.
안정성을 평가해
식약처에서 품목허가를 하면,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신의료기술로써의 효용성 등을 평가한다. 이 절차를 통과하면 마지막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경제성을 평가한다. 경제성을 인정받으면 건강보험 급여 대상으로 지정되고, 이를 보건복지부에서 고시하게 되는 절차다.
이 절차를
모두 거치는데 최소 1년에서 2년 가까이 걸리다 보니 의료기기업체에서는 신기술을 적용해 의료기기를 개발 또는 수입해 놓고도 시중 판매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관련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신의료기술평가 절차 간소화를 요구해왔다.
정부가 업계의 요구를 반영해 4차
투자활성화대책에 담은 개선 방안은 이렇다. 식약처 허가 -> 복지부 요양급여 여부 결정 -> 판매개시 -> 신의료기술평가 순으로
평가가 이뤄진다. 이 방안대로라면 신의료기술 평가 이전에 조기에 시장진입이 허용되는 것이다. 이에 따른 기대효과로 보건복지부는 "신의료기기
상품화 및 신시장 창출 촉진"을 꼽았다.
신의료기술평가 신청건수ⓒ신의료기술평가현황 및 지금까지 성과. 주예일, 이무열. 한국보건의료연구원. 2013.
"의료기기업체들은 돈 벌고 국민 의료비는
상승하고"
이렇게 할 경우 발생될 문제는 없을까? 보건의료계에서는 정부 방안이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의료기기업체들의 배를
불려주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 의료기기업체들은 돈을 벌겠지만 국민은 의료비 상승으로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식약처의 품목 허가만으로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것은 결국 사실상 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기술 평가가 빠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식약처에서 신의료기술의 안전성을 평가하고 보건의료연구원에서 효용성을 평가하는데, 안정성만 평가하고
효용성은 따져보지 않은 채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하는 건데, 이렇게 되면 100% 비급여로 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현재도 병원들은 비급여 항목을 환자들에게 권유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 비급여를 통한 병원들의 돈벌이가 더 심화될 수 있다.
간소화된 신의료기술평가절차로 의료기기회사들의 이익은 늘어날 수 있겠지만, 국민 건강의 안전성은 위협받고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의 신약과
신의료기술이 의료 시장에 대거 풀리면서 국민들은 의료비 상승의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식약처 품목허가 만으로 일단 시장
진입을 허용하고 이후 신의료기술평가를 하도록 하는 것은, 현행 제도에 따르면 신의료기술 평가에서 효용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기술들이 의료 현장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문제도 낳을 수 있다.
신의료기술평가제도가 시행된 2007년부터 2012년 8월까지 통계에 따르면, 총
1041건의 신의료기술평가 신청 중에서 승인된 것은 30%인 314건에 불과했다. 정형준 국장은 "현재 의대 교수 등이 양심을 갖고 신의료기술의
효용성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 안대로라면 반려될 의료기술들마저 다 시장에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