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에서 내려오는 대천천 하류의 왕버들 군락. 연둣빛 꽃과 초록 새 잎이 보송보송 피어나
둥근 수관을 이룬 왕버들이 수면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있다.
원앙 한 쌍이 보송보송한 새끼들을 데리고 냇버들 아래로 나왔다. 소리 없이 대천천 물이랑이 동심원으로 번져간다. 쇠백로 한 마리는
점잖은 체 긴 다리로 뚜벅뚜벅 걷는다. 금정산에서 흐르는 큰 내, 대천천은 무조건 파 뒤집고 미끈하게 포장해버리는 '개발
바람'에도 용케 살아남은 보석 같은 자연하천이다. 버들가지처럼 휘어지며 봄볕에 반짝이는 물너울을 따라 한 번이라도 걸어본 사람은
보석 같다는 말이 전혀 꾸미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안다.
개발 바람에도 살아 남아
사
물이 없어지면 그를 지칭하는 언어도 사라지고 그와 관계하던 풍습과 정서도 잃는다. 도시개발을 통해 우리가 잃은 대표적인 사물이
마을마다 흐르던 냇가, 물도랑이다. 급격하게 바뀌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그것을 잃은 것도 잊게 되고 우리 안에서 함께
잘려나간 게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대천천을 걷다 보면 냇가와 풀, 나무가 얼마나 빨리 사람을 평온으로
회복시키는지 그 소중함을 실감한다. 냇물 위 어룽대는 햇빛 발자국에, 풋가지에 햇잎이 살금살금 올라오는 버드나무에 무심히 빠져드는
자신을 보게 되고 그제야 잃은 것을 기억한다.
물길을 따라 연둣빛 둥근 수관을 이룬 버드나무는 절정인 꽃나무와 다를
바 없다. 봄을 맞은 갯버들과 능수버들도 정답지만 낙동강 가까이 하류에서 자라는 왕버들 군락은 대천천을 더 뿌리 깊게 한다.
대
천천은 본시 하류인 대천리에서 휘돌아 낙동강에 합쳐지는 모습으로 생겼었다. 비가 오면 휘어지는 일대에 물난리가 자주 나 농민들
고충이 많았다. 지역유지였던 객주 장우석이 주도하여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강으로 바로 흐르게 하는 직강공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 둑을 만들면서 심은 나무들이 왕버들이다. 그러니 이 왕버들 줄기에는 당시 농민들의 고마운 심정이 배어있다. 시름을 펴는
나무의 푸른빛이, 우직한 가지의 그늘이 그렇게 각별하다.
물에 닿도록 허리 숙여
아
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왕버들 군락을 찾아간다. 연두와 초록을 건너는 새잎과 꽃이 신선하다. 잔이랑 지는 물거울에 낯을 비춰보는
듯 왕버들 나무들은 물에 닿도록 허리를 숙이고 있다. 그리운 쪽만 바라보다 그만 몸이 기우는 곡진한 자세다.
수
달 은신처이자 놀이터
냇물과 나무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부드러움의 파장을 전해 받는가
보다. 그 옆을 산책하는 사람이나 텃밭에 채소를 솎아주는 사람이나 모두 낯빛이 느긋하고 순하다. 사진을 찍고 있는 내게 그들은
왕버들 가지처럼 다가와서 대천천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일러준다. "수달 봤어요?" "여기 수달 가족이 있답니다. 흰 놈도 있어요."
"수달은 멸종 위기 동물이라 잘 보존해야 해요." "수달이 움직이면 물 파장이 달라져요." "저기 수달이 오는 걸 찍으소."
어
제 저녁에 왔을 때는 옆 공사장 아저씨가 살짝 귀띔해주며 수달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더니 아침에 오니 지나는
사람들이 속살이듯 온통 "수달" "수달"거려서 웃게 만든다. 수달은 물에 닿은 왕버들 가지에 올라가 몸을 털고 한 숨 쉬다가 또
다른 왕버들 밑으로 헤엄쳐 가 물가에 난 풀을 뜯어 맛나게 먹곤 한다. 이곳 사람들에게 수달은 귀염둥이다. 그 옆에 중장비로
도로공사를 하고 있어서 수달에게 해가 갈까 다들 걱정이다.
"물을 정화시키는 왕버들이 있으니 수달도 와요. 왕버들이
수달의 은신처고 놀이터예요." 한 아저씨 말대로 왕버들은 대천천의 다양한 생물들을 품어준다. 왕버들은 오래 사는 나무줄기 안이
썩어서 큰 공동이 생기기도 한다. 목재의 인 성분으로 비 오는 날 밤중에 빛을 내어 사람들이 '귀신불'이라 하여 귀류(鬼柳)라고도
한다.
지금 이맘때 낙동강을 따라 꿈을 꾸는 연둣빛 구름송이가 꽃나무처럼 눈에 들어오면 왕버들이구나 생각하면
맞다. 크게 자라 정자나무가 되기도 하는 왕버들나무는 가지가 아래로 늘어지는 능수버들과는 달리 가지가 위로 서고 몸집이 커서
웅장한 맛을 풍긴다.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물에 닿도록 기우는 모습을 보든지 봄에 연한 가지를 꺾어 부는 버들피리 소리를 들으면
투박하면서도 정이 여린 우리나라 사람들을 그대로 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