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황진이(黃眞伊)를 비롯하여 경상도 진주의 논개(論介), 함경도 경성(鏡城)의 홍랑(洪娘), 전라도 부안(扶安)의 매창(梅窓) 등 미색과 기예(技藝) 그리고 시문(詩文)을 겸비한 명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보석들도 있지요. 여기에서는 조선 초 개성의 명기 자동선(紫洞仙), 성종대왕이 사랑한 함경도 영흥(永興)의 소춘풍(笑春風), 대 석학 退溪 선생이 아꼈던 충청도 단양(丹陽)의 두향(杜香) 서예의 거목 秋史의 숨겨진 연인 평양의 죽향(竹香) 등을 불러내 볼까 합니다. 明나라 사신들의 필수코스
조선 초 明나라 사신으로 온 한림학사(翰林學士) 장령(張寜)은 전조(前朝)의 도읍지(松都)에 들러 자하동(紫霞洞) 기방에서 자동선(紫洞仙)을 만납니다. 그는 명나라로 돌아간 후 송도에는 절세가인이 있는데 경성지색(傾城之色)이 틀림없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요. 그 후 송도 자하동은 조선에 오는 명나라 사신들의 필수코스가 되었다나..
그녀는 황진이보다 70년 정도 먼저 태어난 선배(?)인데 ‘자하동의 선녀’란 뜻의 기명은 스스로 지었다고도 하고, 그 고을 지방관이 지어준 거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명기의 이야기에는 늘 대단한 인물이 등장하게 마련인데, 조선 초 대 시인이며 문장가로 세종부터 성종 때까지 주요 벼슬을 두루 역임한 四佳亭*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바로 그입니다(*사가정의 자취는 지금도 서울에 남아, 면목동역 다음 역이 사가정역이고, 그 부근에 사가정로와 사가정공원이 있으며 좀 떨어진 답십리에는 사가정길이 있음.). 그리고 여기에는 당대의 바람둥이 영천군(永川君) 이정(李定)도 등장합니다.
문밖의 두 남자
서거정의 나이 29세 때 사가독서(賜暇讀書: 책 읽으며 재충전하라는 휴가)를 얻게 됩니다. 이때 그보다 두 살 아래로, 시서화(詩書畫)의 동무이며 술벗인 영천군과 함께 기명이 자자한 송도 자동선을 탐방(?)키로 하지요. 기방을 찾아 왕손(王孫) 일행임을 밝혔으나, 선약이 없으면 누구라도 들일 수 없다고 합니다. 급히 알 만한 이를 내세워 예약을 넣었으나 문밖 풀밭에서 부지하세월 기다릴 수밖에 없었지요. 한나절이나 지나서 나타난 ‘선녀’ 같은 여인은 능청스럽게 뉘시냐고 묻고는, 신분을 밝히자 몰라뵈어 송구하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그를 만난 자동선은 조선 최고의 시인을 눈앞에서 직접 뵈니 정신이 혼미하고 뛰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다면서, 서거정이 소시적에 지었던 시 한수를 외워서 읊습니다.
尋春來渡小橋西 零落殘紅襯馬蹄 隔林幽鳥多才思 管領靑山自在啼 봄을 찾아 서쪽 작은 다리를 건너노라니, 떨어진 붉은 꽃잎이 말발굽에 달라붙네. 숲 넘어 보이지 않는 새들도 생각이 많은지, 靑山을 아우르듯 절로 울어대는구나.
그중에도 ‘떨어진 붉은 꽃잎이 말발굽에 달라붙네’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촌평까지 곁들입니다. 그리고 서거정의 다른 시들도 읊조리며 감격스러워 하지요. 이렇게 그들은 詩書畵와 자동선의 歌舞로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풍류를 즐깁니다. 그 후 두 남자는 혹은 함께 혹은 혼자 자하동을 찾게 되는데, 그 상세한 야그는 아는 바가 적어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세 사람 사이엔 사랑의 삼각관계가 치열하게 전개됩니다(소설이나 드라마에서나 삼각관계가 가장 흔히 등장하는 건, 4각이나 5각보다 독자나 시청자가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모 선배의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사랑이냐 우정이냐
어느 날 서거정과 영천군은 자동선과 함께 송악산에 오릅니다. 아득히 굽어보는 송도는 그림같이 아름답기에 한그림 하는 영흥군에게 그려달라고 청합니다. 지필묵을 막 준비하려는데 자동선이 하이얀 비단 속옷을 북~ 찢어 대령하지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붓을 휘둘러 산과 개울, 민가와 저녁연기를 그립니다. 그림이 완성되자 서거정에게 어울리는 제시(題詩)를 청하니, 일필휘지로,
一朶松巒高入天 荒城落日銷寒烟 傷心莫間前朝事 雲物渾非全盛年 한 떨기 송악산 하늘 높이 솟았는데, 노을 지는 옛 궁터에 차가운 안개 서렸구나. 애달픈 옛 왕조의 일 물어 무엇하리, 융성했던 그 때와는 풍광조차 다른 걸..
두 사내의 사랑싸움이 어찌 진행되었느냐고 묻는 건 촌스럽겠지요. 왕권이 서슬퍼렇던 조선 초 세종대왕의 친조카(효령대군의 아들)인 王孫. 비록 명문가의 자제(조선 창업 때 공이 큰 文忠 권근(權近)의 외손이며, 세조 때 3인방 중 하나인 권람(權擥)의 고종 사촌)지만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꼴이 아니었을까요. 자동선(紫洞仙)은 결국 영천군의 小室로 들어앉게 됩니다. 서거정이 느꼈던 가슴 저린 아픔은 그 후 여러 한시에서 잘 나타나 있으나, 읽는 임들의 지루함을 고려하여 생략합니다. 漢詩가 한 줄만 나와도 읽는 이가 열 명 이상 떨어져 나간다고 하니..
蛇足 : 그 뒤 명나라에서 온 사신이 자하동을 찾았으나 대령한 기녀가 그동안 들어왔던 그 傾城之色이 아님을 눈치채고 크게 화를 내니, 부랴부랴 이미 소실로 들어간 자동선을 찾아 데려오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 시인 장청(張靑) 선생의 수필집 “술따라 정따라”, 역시 시인인 이상국님이 십수년전 월간중앙에 게재한 글, 그리고 인터넷 해당 사이트 등을 참조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혹시 史實과 맞지 않는 내용이 있으면 제게 조용히 알려주시면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