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런히 정렬해 둔 브런치 재료와 프라이팬에 스파게티를 볶아내는 솜씨. 프로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지금 요리하는 배우 김호진은 일곱 개의 조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1년 차 오너 셰프. 그저 재밌어서 시작했던 요리가 인생의 두 번째 본업이 되었고 자신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 샤야 99를 오픈한 지도 만 1년이 되었다. 몸도 마음도 노곤해지는 토요일 오후, 김호진이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꼬마 요리사의 토스트프렌치토스트는 김호진이 딸 효우 나이인 여덟 살 때 처음으로 도전했던 요리. 유치원 친구의 집에서 맛본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보겠다고 식빵을 우유에 퐁당, 덜 풀린 달걀물에 담가 구워 먹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내던 꼬마 요리사 김호진의 모습을 지금은 딸이 그대로 따라 한다고.
재료_식빵 2장, 달걀 1개, 우유 5큰술, 생크림 2큰술, 설탕 1작은술, 소금·후춧가루·버터 약간씩
만들기
1_그릇에 달걀을 깨어 넣은 후 분량의 우유, 생크림, 설탕, 소금, 후춧가루를 넣고 섞는다.
2_1에 식빵을 앞뒤로 충분히 적셔서 버터를 녹인 팬에 굽는다.
3_2에 산딸기와 메이플 시럽을 넣은 소스를 올린다.
매일 요리하는 남자김호진에게 올해는 여러모로 의미있는 해다. 연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 만 20년, 결혼 10주년. 요즘 그는 아내에게 줄 결혼 기념 선물을 고르며 그 사이 초등학생이 된 딸 효우를 위해 주말마다 요리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엔 쉽고 맛있고 재밌는 김호진표 요리를 담은 책(『오픈키친』김호진 지음, 비타북스)도 한 권 냈다. 요리를 어찌 시작했느냐 물었더니 재료 손질하던 칼질을 계속하며 그간의 히스토리를 들려준다. “총각 땐 요리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요. 그 시절엔 연기할 땐 밤낮없이 작품에 매달리고, 일이 없을 때 집 안에서 뒹굴뒹굴,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술 한잔하면서 여가를 보내면 그뿐이었으니까.
누군가의 남편과 아빠가 되고 나니 사정이 달라졌어요. 좀 더 건설적인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뭔가 배워보자 생각하다 선택한 분야가 요리였고, 연기자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해 5년 동안 7개의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그리곤 매일 요리하는 남자가 되어 미식가를 자처하며 맛 기행에 오르고, 면 요리를 좋아하는 아내 김지호의 취향에 맞춰 맛있는 국숫집을 찾아다니는 일을 마다하지 않게 됐다. 그러다 자신의 요리 스튜디오를 겸한 레스토랑 ‘샤야 99’를 냈다. 샤야(SHAYA)는 딸 효우의 영어 이름이다. 김호진은 집에서도 종종 소매를 걷어붙이고 부엌에 선다. 아빠의 파스타 요리를 흉내 내느라 집 안의 양념통을 죄다 꺼내 놓는 딸에게 브런치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시금치 샐러드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여행을 갔을 때 유명한 스테이크집에서 먹었던 시금치 샐러드의 맛과 세팅이 인상적이어서 휴대폰에 사진을 담아 왔다. 직접 만들어보니 샐러드용으로는 포항초보다 일반 시금치가 더 맛있고, 물기를 뺀 시금치에 10초 정도 뜨거운 김을 쏘여 사용하니 시금치의 식감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재료(3인분)_시금치 1/2단, 적양파 1/4쪽, 방울토마토 10개, 양송이버섯 5개, 베이컨 3장, 삶은 달걀 2개
드레싱(올리브 오일 4큰술, 식초 2큰술, 꿀 2큰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_잘 씻은 시금치와 채 썬 적양파는 찬물에 담갔다 물기를 뺀다. 방울토마토는 반으로 자르고 양송이버섯은 슬라이스한다.
2_베이컨은 2cm 크기로 잘라서 마른 팬에 노릇해질 때까지 굽고 미리 삶아둔 달걀은 볼에 넣고 숟가락으로 으깬다.
3_1, 2를 접시에 담고 분량의 드레싱 재료를 섞어 뿌린다.
즐거워야 요리할 맛이 나지 않나요일반적인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늘 먹었던 프렌치토스트와 샐러드, 봉골레 파스타 같은 기본 서양 요리인데, 그날따라 유난히 더 맛있어서 그릇을 싹 비웠다. 같은 레시피라도 만드는 사람의 솜씨와 감각에 따라 맛이 다른 데, 재료를 다듬고 적절한 타이밍에 재료를 섞고 익히는 요리 센스가 뛰어난 그가 만든 음식이라 그런 모양. 만드는 법을 세세하게 물어보았다.
“레시피에 ‘중간 불에 10분’이라 써 있다고 10분 내내 뚫어져라 불만 쳐다보고 있지 않았으면 해요. 실패하면 어떻고 간 좀 안 맞으면 어때요. 재료의 양과 조리 순서도 요령껏 조절해 가면서 융통성 있게 요리를 해야 즐겁죠.” 또 잘 차려내면 기본 음식도 먹는 순간 다른 맛이 될 수 있으니 예쁘게 세팅해 주란다. 가족끼리 파스타를 먹을 때는 온기가 유지될 수 있도록 프라이팬에 담긴 채 먹으라는 팁까지. 음식에 대해 김호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디테일한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딸을 위해 사랑을 담아 요리하는 아빠. 효우가 어릴 적엔 “너희 엄마, 아빠 뭐 하는 분이니”라고 누가 물으면 아빠가 연기자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엄마는 탤런트이고 아빠는 요리사예요”라고 야무지게 말했을 정도.
보통 음식 만드는 셰프들은 그릇 컬러, 포크 모양새를 따지는 스타일링까지 살피기 어려운 데 반해 김호진은 음식 데커레이션 전문가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솜씨를 보여줬다. 딸과 아내에게 만들어 주는 것처럼 소박하게 만들어 보여 달라는 에디터의 주문에 “집에서도 예쁘게 담아서 주는데요, 뭘”이라고 답하며 이리저리 돌려가며 음식 담음새를 점검한다.
요리는 쉬워야 돼요 웬만하면 가족들과 함께 아침밥을 먹는 자상한 남자. 김호진은 평일엔 따듯하게 지은 밥에 바글바글 된장찌개를 끓여 소박하게 먹는다고 했다. 딸 효우를 위해서도 집에서는 될 수 있으면 가정식을 먹이는 편. 밥 위에 김치를 얹어주고 방금 무친 나물과 생선을 발라 먹인다. 소스도 거의 없다. 신선한 재료 맛을 즐기기 위해서다. 대신 주말엔 빵과 면을 좋아하는 아내와 딸을 위해 간편한 서양식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센스 있는 그가 어찌 해 먹나 궁금해 주말에 먹는 브런치를 소개해 달라고 주문했다. 집에서 먹는 대로 차려 내놓았다는데, 어느새 테이블엔 근사하게 모양을 낸 메뉴들로 가득 찼다.
“파스타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어요. 파스타는 남자들도 도전해 볼 만한 아주 쉬운 요리예요. 브로콜리, 시금치, 조개 등 들어가는 재료만 달리하면 되니까요. 스타일링하는 방법만 익혀두면 식빵 몇 장, 달걀 몇 개로 만든 요리도 근사하게 차려낼 수 있고요. 또 주말에 아빠가 요리하면 집 안 분위기가 달라질 거예요.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도 늘고….” 레스토랑을 운영하기 전부터 그의 철학은 ‘요리는 쉬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나도 만들 수 있겠다’는 맘이 들 만큼 구하기 쉬운 재료로 간편하게 만들어 먹어야 요리하는 순간이 즐겁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다.
요리하는 아빠의 봉골레김호진은 아빠들이 도전하기 쉽고 맛있는 요리로 파스타를 꼽았다. 요리 팁은 면이 불지 않도록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
재료(3인분)_스파게티 면 300g, 모시조개 15개, 바지락 30개, 마늘 12쪽, 양파 1/2개, 홍고추 9개, 화이트 와인 1/2컵, 파슬리·소금 약간씩
만들기
1_끓는 물에 스파게티 면을 넣고 7~8분간 끓인다.
2_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슬라이스한 마늘을 넣어 색이 노릇해질 때까지 볶다가 채 썬 양파를 넣고 볶는다.
3_2에 모시조개, 바지락을 넣고 볶다가 화이트 와인, 스파게티 삶은 물 약간, 홍고추, 소금을 넣고 조개가 입을 벌릴 때까지 살짝 끓인다.
4_3에 1의 삶은 면과 파슬리 가루를 넣고 맛이 배도록 30초 정도 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