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이영선
툭 터진 석류 껍질을 비집고 움찔움찔 붉은 즙이
흘러나온다
낼름 혀로 핥다가는 낄낄대는 개 한 마리
붉은 침이 목으로 가슴으로 가랑이 사이로 튀어 대는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개의
가랑이 사이로 비죽이 서는 그것
석류 훔쳐먹은 죄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는다
화살나무 사이에서
자작나무 사이에서
사철나무 사이에서
어떤 붉은 것이 발걸음마다
흔들린다
---이영선 시집, {모과의 귀지를 파내다}에서
석류나무는 키가 5m에서 7m 정도이며, 주홍빛을 띠는 붉은 꽃이 핀다. 석류는 9~10월에 노란색, 또는 노란빛이 도는 붉은 색으로 익는데, 열매의 크기는 오렌지 만하고, 부드러운 가죽껍질로 덮여있다. 안쪽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고, 각 방에는 가늘고 투명한 소낭이 들어 있는데, 소낭은 붉은색을 띠는 즙이 많은 과육으로 이루어졌으며, 씨를 둘러싸고 있다. 이란이 원산지이며, 한국에는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고 한다. 석류의 열매는 날것으로 먹거나 즙을 만들어 먹을 수가 있다.(다음백과 참조)
이영선 시인의 [새해 첫날]의 붉디붉은 석류의 열매와 그 즙은 여성의 그것을 뜻하고, “툭 터진 석류 껍질을 비집고 움찔움찔” 흘러나오는 “붉은 즙”을 “낼름 혀로 핥는” 개 한 마리의 그것은 암수의 합일을 뜻한다.
싹이 트면 꽃이 피듯이, 암수의 합일은 삶의 절정이며, 모든 성자의 탄생과도 맞닿아 있다. [새해 첫날]의 암수의 결합에 의하여 하늘의 태양이 떠오르고, “가랑이 사이로 비죽이 서는 그것/ 석류 훔쳐먹은 죄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는다”는 것은 세계정복운동의 깃발과도 같다.
새는 알껍질을 뚫고 탄생하고, 모든 성자는 기존의 가치관을 파괴시키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다. “화살나무 사이에서/ 자작나무 사이에서/ 사철나무 사이에서” “어떤 붉은 것이 발걸음마다/ 흔들린다”는 것은 천하무적의 개선장군의 깃발과도 같다.
꽃(성)은 종족의 아름다움을 뜻하고, 이영선 시인의 [새해 첫날]로부터 개선장군의 행진곡이 울려퍼지고, 종족의 번영과 행복이 약속된다.
새들이 노래를 부르고, 풀과 나무들이 춤을 추며,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즉, ‘만사형통의 대기운’이 온천하를 뒤덮는다.
이영선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