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원
김병우
지하철 출입구 부근에서 행인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여인이 있다. 그녀는 점심나절 나타났다가 해 질 무렵이면 사라지는데 구걸 행위가 독특하다. 그녀는 자기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면서 외친다.
“아저씨요! 오백 원만. 아줌마요! 오백 원만. 아가씨! 오백 원만. 학생! 오백 원만….”
신분에 걸맞은 호칭을 구사하면서 더도 덜도 말고 딱 오백 원만 달란다. 재미있는 것은 아저씨나 아줌마를 부를 때는 톤이 올라가는데 오백 원만에서는 슬며시 내려간다. 남의 돈을 그저 달라는 게 양심에 찔리기는 하나 보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얼마나 낭랑한지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녀는 양발도 신지 않은 땟국이 흐르는 맨발 하며 치맛자락으로 삐져나온 엉덩이가 펑퍼짐하다. 제 몸도 하나 추스르지 못할 정도로 육중한 몸집을 끌면서 영락없는 비렁뱅이 거지 행색으로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있다. 한겨울의 추운 날을 빼고는 같은 장소에서 구걸하는 그 여인을 늘 본다. 가끔은 시간대에 따라서 장소를 옮겨 다니는 경우도 있으나, 이동 거리라야 고작 지하철 출구를 거점으로 백여 미터 전후가 전부다. 버스주차장, 횡단보도 앞, 사람들이 붐비는 주변을 벗어나는 법이 거의 없다 보니 사람들 눈에 항시 잘 띈다. 그게 그 여인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는 각인효과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그 장소에서 본지도 벌써 3년째 접어들었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오고부터 계속 보아왔으니 그런 셈이다. 언제부터 그 장소에서 구걸이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혹여나 그 옆을 지나치다가 아저씨요! 아줌마요!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은 되레 궁금해지기까지 하니 참 별일이다. 그녀가 그 주변을 오래도록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이유가 뭘까?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그녀의 나이는 일흔을 조금 넘긴듯하나 그것도 추측일 뿐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다만 목소리는 사십 대라고도 해도 믿을 만큼 젊고 힘이 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도
“아저씨요! 오백 원만”
소리가 들릴 정도다. 허구한 날 똑같은 톤으로 외치다 보니 그렇게 변한 것인지 소리가 맑고 또랑또랑하다. 오백 원 동전 앞면에 그려진 학이 그처럼 울었을까? 그녀는 아마도 한 시절 잘 나가던 가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니 웃음이 나온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일이 생겼다. 그녀의 패션이 가끔 바뀐다는 점이다. 손으로 직접 짠 듯한 수를 놓은 벙거지를 생뚱맞게 쓰고 있는데 그 모양새가 흠잡을 때 없이 깔끔하다. 때가 꾀죄죄하게 묻어있는 옷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더러운 옷은 동냥의 수단이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모자만큼은 한껏 멋을 부려보아야겠다는 여자의 본능적인 심사가 작용한 것일까. 오백 원 동전의 학처럼 훌훌 날고 싶은 충동을 모자로나마 보상받으려는 듯이.
그녀와 맞닥뜨릴 때는 나 역시 주머니를 열 수밖에 없다. 동전이 없는 날은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살며시 손에 쥐여 주는데 그걸 뺏다시피 낚아채서는 치마 속으로 쑤셔 넣는다. 손아귀 힘이 무척 세다. 그런 행동으로 봐서는 정신이 온전하지가 못한 것 같기도 하나, 자신의 어쭙잖은 행동이 들켜 민망해할 때는 살포시 눈웃음을 짓는다.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는 여인이 아닐 수 없다.
한번은 구걸 장소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만났는데 번잡한 주도로가 아닌 이면도로 골목길이었다. 그녀는 막 뜯은 비닐봉지에서 꺼낸 빵을 한입 물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보물단지처럼 항시 떨어지지 않던 보따리가 마침 그녀 앞에 펼쳐져 있었고, 비집은 사이로 신문, 빨간색 지갑, 보온병 등이 내 눈에 들어왔다. 열린 지갑에는 햇빛에 반사된 동전들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순간, 오백 원 동전의 학이 날갯죽지를 푸드덕거리며 공중을 차고 오르는 환영이 보였다. 동냥 사이사이 막간을 이용해서 커피 타임을 즐기며, 구걸한 돈을 지갑에 챙겨 넣으면서 마냥 행복해하는 그녀를 상상해 본다.
돈이 없으면 자유를 잃는다고 했던가. 평생 빚에 허덕이며 살았던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돈은 주조된 자유'라는 명언을 남겼다. 돈의 위력을 여실히 증명하는 말이다. 저 여인 역시 말 못 할 아픔이나 사연을 가슴에 안고 살다 보니 돈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것은 아닌지. 횡단보도를 건너는 여인들이 구걸하는 그녀를 보면서 한마디 한다. 집도 있고 서방도 있는 여자가 저러고 있다고….
그러고 보니 그녀는 아저씨요! 아줌마요! 누구를 부를 때는 생기가 돌았으나 오백 원만을 외칠 때는 사뭇 달랐다. 구걸에 대한 절박감이나 절절함이 그녀의 목소리에는 묻어나지 않았다. 구걸 행위는 단지 사람 냄새가 그리워 그냥 심심풀이로 하는 그녀만의 놀이와도 같은 것은 아닐까? 임도 보고 뽕도 따듯이 사람 구경도 하고 한두 푼 던져주는 푼돈을 모으는 재미도 누리면서, 마치 동냥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스스로 터득한 길거리 철학을 통달한 자기 분수를 아는 걸인이다.
도심 속에는 각기 다른 다양한 개체들이 옹기종기 모여 조화를 이루면서 어울러 살아간다. 자기들만의 색깔을 분출하면서 구색을 맞추듯이…. 그녀 역시 이제는 친숙한 이웃으로써 다가와서 우리들 속에 자리매김하는 것 같다. 비록 행색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으나 그 장소에 없으면 아쉽고 서운하다.
오백 원 동전에 새겨진 날아오르는 학의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오백원만! 오백 원만!
첫댓글 구걸하며 살아가는 어느 여인의 일상을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 흥미로운 필치로 구사한 글 재미있게 잘 읽었읍니다. 오백원 동전에 그려진 학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 오르듯 행인들이 건넨 오백원 학이되어 그 여인도 학같이 날아 오르는 날 오길 기원해 봅니다.
구걸하는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겄입니다. 어떤 건강하게 생긴 사람도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편한 것에만 길들이다 보면 아무헌 일도 못하는 법입니다.
저도 반월당 역 근처에서 가끔 그 여인을 만나곤 합니다. 그걸 본 사람들 마다의 느낌이나 생각은 모두 다르겠지만 그걸 보는 선생님의 따뜻한 시선이 우선 가슴에 와 닿습니다. 물 흐르듯 부드러운 표현이 글을 돋보이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500원을 핑게로 많은 사람들과 만남 재미를 누리는 그 여인의 생활 방법일 수도 있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아무리 발 버둥쳐도 삶을 영위할 능력이 없어서 구걸하는 여인일까요? 그런 여인에게라면 오백원 동전 한개나 천원 한장을 내 주면 흐믓한 마음이 듭니다. 아직 그 여인을 보지 못해 어떤 처지에 어떤 마음을 가진 여인인지 궁금합니다. 그런 여인 보다 진정 도와주고 싶은이가 있었습니다. 두다리가 잘려나간 상태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지만 노래를 들려주는 신체 불구자였습니다. 엎드린 상태에서 악기를 다루며 노래를 들려주기에 영혼의 맑음을 지녔다는 생각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였는지 행인들은 그의 바구니에 동전을 비롯한 천원권 오천원권 지폐를 놓고 가는 걸 봤습니다. 두다리를 어떻게 잃었는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가혹
500원의 인생에 대해 미학적으로 표현한 글 잘 읽었습니다.
긴 강물로 바다를 향해 유유히 흐르다가, 앗차 강변웅덩이로 잘못 들어 고인물로 하세월 기다리고 있는 강물 본 적 있습니다.
'흐를 수 없는 건 강물의 의지인가 운명인가' 중얼거리며 들여다 본 적 있습니다. 언젠가 태풍이 저 멀리서 불어닥쳐 다시 흐를 날 오겠지 생각했습니다. 오백원만 여인은 다시 흐를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지하철역과 거리를 오가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냥 스쳐 지나갑니다. 500원.. 그 여인에 대한 선생님의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서로 다른 상황과 삶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작으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백원! 제목도 특이하고 내용도 범상치 않습니다. 일상 지나쳐버릴 수 있는 광경을 유심히 관찰하여 스케치하듯 서 내려간 문맥이 읽는 이를 매료시킬 듯 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오백원 단가가 낮은 이유는? 주는 사람 마음이지만 그래도 적은 액수로 동정을 요구하는 여인의 구걸,어떤 연유에서든
오가는 사람을 부르며 동정을 요구하는 삶의 방법이 때론 짜증 스러울 때도 있더랍니다. 저도 병원갔다가 돈을 다 썼다면 차비를 달라기에 얼른 줬는데 일주일 후 또 다른 장소에서 손을 내 밀면서 병원갔다가 돈이 떨어졌다고 해서 그냥 지났는데 며칠 후 아들과 점심을 식당에서 먹으면서 아들이 엄마의 구걸한 돈을 챙긴다면서 얼굴을 아는 이웃 친구가 말해 씁쓸한 맘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