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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智 : 지혜 지(日/8)
者 : 놈 자(耂/5)
樂 : 즐길 락(木/11)
水 : 물 수(水/0)
仁 : 어질 인(亻/2)
者 : 놈 자(耂/5)
樂 : 즐길 락(木/11)
山 : 메 산(山/0)
논어(論語) 옹야편(翁也篇)에 나온다. 공자(孔子)가 말하였다[子曰].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智者樂水],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仁者樂山]. 지혜로운 자는 움직이고[智者動], 어진 자는 고요하다[仁者靜]. 지혜로운 자는 즐기고[智者樂], 어진 자는 오래산다[仁者壽].
공자의 말은, 지혜로운 사람의 부류에 속하는 이들과 어진 사람의 부류에 속하는 이들의 일반적인 성격과 행동 경향을 설명한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식별력이 높다. 자신과 맺어지는 인간 관계에 관심이 많아 항상 겸허한 자세를 가지려 노력한다. 두루 흘러 맺힘이 없는 것이 물과 같기 때문에 물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항상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즐기기를 좋아한다.
반면에 어진 사람은 의리를 편안히 하고 중후하여 옮기지 않는 것이 산과 같다. 그래서 산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늘 자신과 하늘의 관계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모든 가치를 위에다 두고 있다. 그리고 호기심이 적어 한 곳에 가만 있기를 좋아하여 고요한 성격이 많다.
또한 마음을 가다듬고 물질적 욕구에 집착하지 않으니 오래 산다. 즉, 지혜있는 사람의 마음은 밝고 깨끗하기 때문에 이해심이 깊고 넓다. 그래서 흐르는 물처럼 시대와 환경에 따라 항상 새롭게 산다는 뜻이다.
반면에 어진 사람이 산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고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는 지혜있는 사람은 물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산처럼 조용하기 때문에 장수한다고 하였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智者樂水),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仁者樂山).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과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 서로 지혜롭다, 어질다며 자랑하는 문구다. 최고 권위의 공자(孔子)의 말씀이니 더욱 양보 않는다.
즐길 락(樂) 자는 독음이 세 가지 모두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락은 주로 형용사로 사용된다. 락이 두음법칙이 적용되면 낙으로 표기된다. 좋아하다는 뜻엔 요, 노래나 음악, 연주한다는 뜻으로는 악이다.
산과 물은 좋은 이웃이란 말이 있듯 산에서 발원하는 물이 서로 다툼을 하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십리나 뻗친 계곡과 산 십리계산(十里溪山)이나 많은 내와 겹겹이 솟은 산 만수천산(萬水千山)과 같이 따르는 말이 많고 고산유수(高山流水)는 뜻이 높고 청아한 지기(知己)를 가리킨다.
논어(論語)의 제6편 옹야(雍也)편 제21장에 실린 내용을 보자.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자왈; 지자요수 인자요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활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평정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즐길 줄 알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
물이 항상 변화하고 움직이면서도 두루 흘러 막힘이 없는 모습이, 마치 지혜로운 자가 사물의 변화와 사리의 막힌 곳 속에서, 그 궁극의 도리를 찾아내고, 사리를 풀어내어, 그것을 즐기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요, 산이 온갖 것을 그 속에 안고서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어진 자가 인(仁)을 마음 속에 안고서, 그것에 안주하고, 자기 밖의 사물과 갈등함이 없이 장수하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 나온 성어를 간략히 줄여 요산요수(樂山樂水), 인산지수(仁山智水)라고도 한다.
자장(子張)이 공자에게 물었다. “왜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합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산, 그것은 우람하고 높고 크다. 왜 인자한 분들은 높고 웅위로운 산을 좋아하는가? 왜냐하면 산의 초목이 무성하여 새와 짐승들이 떼를 지어 살고, 사람들이 수요하는 일체 물건은 산에서 모두 나온다. 그리고 엄청나게 풍부한 자원을 사람들에게 주지만 그러나 사람들에게 어떤 물건도 요구하지 않는다. 사면 팔방의 사람들이 산에서 필요한 것들을 가져가지만 산은 모두 사심없이 아낌없이 주고 있다. 산은 또 폭풍우를 일구어 구름과 비를 몰아 천지를 관통한다. 이렇듯 음양 두 기를 조합시키고 이슬을 내려 만물에 혜택을 주므로 만물은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먹고 입는데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자한 자는 산을 보면 기뻐하는 이유다.”
자공(子貢)이 잇달아 물었다. “왜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만나면 좋아합니까?”
공자가 이에 대답했다. “물,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만물의 생명을 윤활하고 있다. 이것이 사람으로 말하면 미덕과 같아 그는 낮은 데로 흐르는데 구불구불하지만 일정한 방향이 있다. 곧 정의와도 같이 기세가 드높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설령 만장의 심원속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추호의 두려움도 없다. 그는 나약해 보이지만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없다. 만물이 그를 거쳐야만 신선하고 깨끗하게 변한다. 마치 교화를 잘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지혜로운 자의 품덕이 아니겠는가?”
인자한 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 이는 유가의 경전 논술이다. 유가는 산과 같이 주지만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은 인덕(仁德)이 있는 사람의 품덕을 말하고, 물같이 부드럽고 유연(柔弱)하지만 만능의 기질이 있는 것으로 지혜로운 자의 품격을 상징하는 것이다. 지혜도 인덕도 부족하지만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오름이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맹자는 옳고 그름을 판별해 낼 줄 아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지혜의 출발이고, 남을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인의 출발이라고 했다.
인(仁)과 지(知)를 대비해서 정의하면, 인(仁)을 사랑(博愛), 인자(仁慈), 인도적(人道的)이라 한다면, 지(知)는 지혜(知慧), 지성(知性), 이지적(理智的)이라 할 수 있다.
지자(知者)는 사리에 통달해서 두루 막힘이 없으니 물을 닮은지라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의리를 지키고 몸가짐을 장중(莊重)하게 지녀 산을 닮은지라 산을 좋아한다.
지자(知者)는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지혜를 쓰기 때문에 동적(動的)이고, 인자(仁者)는 육중한 산처럼 침묵 속에 크고 넓은 사랑을 베풀기 때문에 정적(靜的)이다. 지자(知者)는 세상을 알고 인생을 알아 생활을 즐긴다. 인자(仁者)는 사랑으로 삶을 누려 장수(長壽)를 한다.
공자는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남을 불쌍히 여기는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물은 투명하고 깨끗하며 산은 진중하고 넉넉해서일까?
슬기로운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들의 일반적인 성격과 행동의 특징을 공자가 설명했는데 이에 대해 해석이 구구하다. 슬기로운 사람은 앞장서 일하고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지혜로워 전후 분간을 잘하고 맺힘이 없는 물과 같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고 뜻대로 이룰 수 있어 즐겁게 살아간다.
그에 비해 어진 사람은 의리를 지키고 중후하여 옮기지 않는 것이 산과 같다. 산은 우뚝하여 우러러 보는 대상이라 모든 가치를 위에 두고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물질적 욕망에 집착하지 않으니 오래 살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오래 산다고 해도 장수가 아니라 마음이 안정되어 있기에 떳떳함이 있어서 오래갈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어떻게 풀이를 하든 슬기로운 자와 어진 사람이 서로 좋다고 내세울 일은 아니다. 산을 닮았다면 조용히 침잠하여 앞날의 문제점을 깊이 연구하고 해결책을 찾는데 노력해야 한다. 물을 닮았다면 두루 혜택을 주는 원만함과 제자리에 있지 않는 부지런함, 행동력을 앞세워 실천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인자와 지자가 서로 도와 어려운 나라의 미래를 개척해야겠다.
다음은 참고로 주자(朱子)의 논어집주(論語集註)의 내용입니다.
樂는 喜好也라.
요(樂)는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知者는 達於事理而周流無滯하여 有似於水라 故로 樂水하고 仁者는 安於義理而厚重不遷하여 有似於山이라 故로 樂山이라.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고 두루 흘러서 막힘이 없는 것이 물과 유사하기 때문에 물을 좋아하는 것이고, 어진 사람은 의리에 편안하고 두텁고 중후함을 옮기지 않는 것이 산과 유사하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는 것이다.
動靜은 以體言이요 樂壽는 以效言也라.
동정(動靜)은 본체로 말을 한 것이고, 락수(樂壽)는 효과로 말한 것이다.
動而不括故로 樂이요 靜而有常故로 壽라.
동적이어서 구속되지 않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요, 정적이어서 항상됨이 있기 때문에 장수하는 것이다.
程子曰 非體仁知之深者면 不能如此形容之니라.
정자가 말하기를 “인(仁)과 지(知)를 깊이 체득하지 않은 사람은 이와 같이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노년(老年)의 공자(孔子)는 강가에 서서 ‘흐르는 것이 이와 같구나, 낮밤으로 쉬지도 않는구나’하고 탄식했다. 흐르는 물은 우리도 저와 같이 흐르고 흘러 언젠가 다른 세상으로 흘러갈 것임을 깨닫게 했다.
이에 산은 거기 깃든 것들을 품어주는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엄하고 우뚝한 아버지를 표상했고, 인생사의 화탕지옥에 지친 이들은 산으로 숨어 들었다. 산과 강은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와 사랑의 원천이었다.
또한, 노자(老子)는 도법자연(道法自然) 즉 도(道)는 자연에서 본받는다. 다시 말해 진리는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고 했다. 여기에서 자연(自然)이란 명사로서의 Nature의 뜻이 아니라 스스로(自) 그렇게 한다(然)라는 뜻이라 하겠다. 예를 들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이것이 물의 자연 현상이라고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만약 흐르는 물을 막아서 댐을 만들거나 위로 뿜어 올려 분수를 만드는 것은 인위(人爲)인 것이다. 물이 저절로 흘러가게 하는 무위(無爲)가 바로 자연(自然)인 것이다. 이러한 자연 현상에 만물의 이치, 삶의 도리와 지혜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道)는 자연에서 본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노자(老子)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고 설파해 물의 자연현상에서 선(善) 즉 도(道)를 찾으려 한 것이다. 그래서 노자의 철학을 물의철학 또는 무위(無爲)철학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상선약수는 한 마디로 물처럼 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물처럼 살 수 있을까?
완당전집(阮堂全集)에 실린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이 산(금강산)에 들어가는 사람은 또한 놀이하는 방술(方術)이 있는데, 신선의 놀이(仙遊), 선가의 놀이(禪遊), 유자의 놀이(儒遊) 세 가지이다.
인산지수(仁山智水)와 옥약금추(玉籥金樞)와 화엄누각(華嚴樓閣)은 모두 그 성(性)에 가까운 것으로 경우에 따라 다를 뿐, 산은 본디 다름이 없다. 옥약금추는 도가의 양생법에 관한 말 같은데 일단 접어두고, 인산지수는 仁者樂山 智者樂水(인자요산 지자요수)를 합친 말이다.
이 말에 대한 한시외전(韓詩外傳)의 해석이 사뭇 재미있다. 지혜로운 자가 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물은 순리를 따라 흐르되 작은 빈틈도 놓치지 않고 적셔드니 지혜를 갖춘 자와 같고, 아래로 흘러가니 예를 갖춘 자와 같으며, 깊은 곳도 머뭇거림 없이 들어가니 용기를 가진 자와 같고, 막혀서 갇히면 고요히 맑아지니 천명을 아는 자와 같고, 험하고 먼 길을 흐르면서도 남을 허물어뜨리는 법이 없으니 덕을 가진 자와 같기 때문이다.
어진 자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산은 만인이 우러러보는 대상이다. 초목이 그곳에서 나서 자라고 만물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새들이 모여들고 짐승이 쉬어 간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익을 취한다. 천지의 중간에 우뚝 서 있는 산에는 구름과 바람이 불어 인다. 천지는 이로써 이루어지고 국가는 이로써 안녕을 얻는다. 그래서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처럼, 남과 세상을 위해 음덕(陰德)을 쌓으며 살라는 것이다. 수선이만물(水善利萬物) 즉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고 했다. 물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자신을 스며들게 해 만물을 길러 주고 키워주지만 절대로 자신의 공(功)을 자랑하지 않는다. 이러한 물의 덕목처럼 남과 세상을 위해 음덕(陰德)을 쌓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다투지 않는 물처럼, 양보와 희생 그리고 순리로써 다툼 없이 세상을 살라는 것이다. 수선부쟁(水善不爭) 즉 물은 다투지 않는다고 했다. 물은 산이 가로 막히면 곡류(曲流)해 멀리 돌아가고 바위를 만나면 할수(割水)해 몸을 나누어 비켜간다.
이처럼 물은 곡류(曲流)하고 할수(割水)하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산이나 바위와 다투지 않으며 흘러간다. 또한 물은 깊은 웅덩이를 만나면 그 웅덩이를 다 채운 다음 뒷물을 기다려 비로소 나아간다. 이와 같이 물은 웅덩이를 건너뛰거나 먼저가려는 무리나 억지를 부리지 않고 순서대로 흘러간다.
이러한 물의 자연현상을 보고 노자는 부쟁(不爭) 즉 물은 다투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노자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하지 못하는 것, 무리하는 것, 억지를 부리는 것을 쟁(爭)이라 했다. 부쟁(不爭) 즉 다투지 않기 위해서는 산을 돌아가고 바위 앞에서 자신을 나누면서 가는 물의 희생, 덕목이 절대 필요하다 하겠다.
또한 웅덩이를 건너뛰거나 뒷물이 먼저 나가는 무리나 억지를 부리지 않는 물의 덕목이 절대 필요하다 하겠다. 이러한 물의 덕목처럼 양보와 희생 그리고 무리나 억지를 부리지 않고 순리대로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이다.
가장 낮고 넓은 바다처럼, 겸손과 포용의 덕목을 지녀라 하는 것이다. 수선처중인지소오(水善處衆人之所惡) 즉 물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흐르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본성을 따른 가장 낮은 물이며 넓은 물은 강을 거슬러 바다이다. 바다는 가장 낮기에 계곡물에서부터 강물까지 다 받아들인다. 또한 가장 넓기에 깨끗한 물, 더러운 물 할것 없이 다 받아들인다. 그래서 바다이다. 바다가 모든 강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더 낮추기 때문이라고 했다.
산보다 높은 것은 없고 바다보다 넓은 것은 없다. 그러나 높은 산은 바다를 포용할 수 없지만 넓은 바다는 높은 산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바다 즉 물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덕목과 모든 것을 다 끌어 앉는 포용의 덕목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이러한 바다의 덕목처럼 자기 자신과 남에게 항상 겸손하고 모든 사람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강(剛) 유(柔)의 성질을 모두 지닌 물처럼 외유내강(外柔內剛) 하라는 것이다. 물은 강, 유(剛, 柔)의 성질을 모두 지니고 있다. 겉으로 나타난 물의 성질은 한 없이 부드럽기(柔)만 하다. 네모 그릇에 넣으면 네모 모양이 되고 둥근 그릇에 넣으며 둥근 모양이 되니 물보다 더 부드러운 것은 없다 하겠다.
또한 물은 부드러움 속에 가장 단단한(剛) 본성을 숨기고 있다. 시멘트도 물을 만나야 딱딱한 콘크리트가 되고, 밀가루도 물을 만나야 반죽이 되고,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물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느 것도 굳게 되지 못한다. 이러한 강, 유를 모두 지닌 물의 성질처럼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성품과 부드러움과 강함을 모두 갖춘 리더십을 지녀야 할 것이다.
산처럼 꿋꿋한 인의(仁義)와 물처럼 막힘없는 지혜(智慧)를 지녀라는 것이다. 공자의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 즉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어진)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평생학습과 자기수양으로 우뚝선 산처럼 꿋꿋한 인의(仁義)를 지니고 막힘없이 흐르는 물처럼 만사에 막힘없는 지혜(智慧)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작금의 정치권이 이같은 옛 성현의 말씀을 한 마디만 명심하고 제대로 지킨다면 우리의 미래는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지금 과거 정치와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 기대할 것도 보이지 않은 채 날로 살기 힘든 퍽퍽한 생활의 연속인 가운데 무엇을 본보기 삼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캄캄하다. 그냥 스스로를 되돌아 볼 어떤 것도 없이 그저 산다.
사회 곳곳에서 사건과 사고가 난무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세상은 점점 험악하게 변해가고 있다. 학교에서 제자가 선생님을 집단폭행 하는 것이 예사로 여겨지고 있고, 지나가는 행인을 아무런 이유 없이 무참하게 살해하는 참극들이 연일 발생하고 있다.
세상이 어찌 변해가던지 말던지 정치권은 오로지 힘 겨루기로 기득권 싸움으로만 일삼으며 말로만 민생을 핑게 삼는다. 산사태가 나서 하루 아침에 집이 흔적없이 사라지고 사람이 죽으면 보험사에서 보상금을 줄 것이며, 물놀이는 워터파크에서 하는 것이고 녹조로 썩어가는 강은 쳐다보지 않으면 된다.
우리가 성냄으로 서로 더 갖기를 위해 이렇게 다투다보면 결국엔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깨닫게 될 것이다.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분명한 사실과 위정자들 개개인의 권세와 명예는 민초들의 고단한 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자연에서 얻었던 인생의 교훈은 텔레비전 화면으로 전해지는 스님과 목사님의 설교로 배우면 되는 것이다. 세기와 종파를 뛰어 넘어 크리족 인디언 추장의 예언과 성경 욜3:1-8의 행한대로 당하게 하리라 처럼 이 나라에서도 문자 그대로 실현될 것 같다. 우리는 행한대로 돌려받을 것이라는 자명한 진리대로 말이다.
훗날 제대로 된 삶의 족적을 남기고 싶다면 국민의 선택을 받아 자리에 오른 위정자들이 말로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평가는 국민들이 하는 만큼 정파와 계파를 막론하고 서로 조금만 물러 서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오직 국민을 위해 자신의 직분과 행동에 책임지는 하루하루를 살았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특히 위정자들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성현들의 고귀한 가르침을 망각하지 말고, 다투지 않는 물처럼 양보와 희생 그리고 순리로써 다툼없이 맡은 바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그런 세상을 살라는 것이다.
논어(論語) 옹야(雍也)편에 나오는 이 말은 달리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을 만큼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알려진 만큼 이 말의 참뜻을 알고 또 그것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자(知者)와 인자(仁者)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은 아닐는지요.
역학적(力學的) 관점에서 보면 인(仁)과 지(知)는 인간 본래성의 본질적 구조이며,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덕(四德)이 현실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디딤돌과 같은 덕목입니다.
그래서 주역(周易) 계사상전(繫辭上傳) 5장에서는 천도(天道)를 계승하여 선성(善性)으로 규정된 인간의 본래성이 인(仁)과 지(知)로 요약된다고 하면서 천도를 계승하는 것이 선(善)이고, 천도를 완성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인자(仁者)는 천도를 보고 어질다고 하고 지자(知者)는 그것을 보고 지혜롭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인(仁)과 지(知)는 인간 본래성의 본질 구조를 표현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유가의 인간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자나 인자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갖기 매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주지하다시피 知者樂水 仁者樂山(지자요수 인자요산)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설의 전범은 주자(朱子)였습니다. 주자에 의하면 지자(知者)는 사리에 통달하여 매사에 두루 통하고 막힘이 없는 사람이고, 인자(仁者)는 의리에 편안하여 중후(重厚)하고 자신의 뜻을 쉽게 바꾸거나 옮기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중국의 철학계를 대표한다고 하는 리쩌허우(李澤厚) 역시 주자의 설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그는 논어금독에서 지자와 인자를 가리켜 인자는 믿을 만하고 안정적이고 공고하고 장구한 것이 산과 같은 사람이고, 지자는 영민하고 빠르고 유동적이고 변하는 것이 물과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주자를 멀리 벗어나 있는 학자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우리나라 사람인 신영복(申榮福) 교수입니다. 그는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라고 부제를 붙인 '강의'라는 책에서 지자와 인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신 교수에 의하면 지자는 서있거나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이고 인자는 한 곳에 앉아서 지긋이 눈감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자는 세상의 무궁한 관계망을 깨달은 사람이고, 지자는 개별적인 사물들 간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생각의 일단을 덧붙여 볼까 합니다. 제 생각은 역학적 관점에서 지자와 인자를 이해해 보자는 것입니다. 인(仁)은 봄이고 양(陽)이고 정신이고 미래입니다. 반면에 지(知)는 겨울이고 음(陰)이고 물질이고 과거입니다. 인(仁)은 양(陽)이므로 발산을 특징으로 하고 있고, 지(知)는 음(陰)이므로 수렴을 그 특징으로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지자(知者)는 실리에 밝고 시류에 잘 영합하는 사람이라고 일단 정의해 볼 수가 있고, 인자(仁者)는 실리보다는 의리를 먼저 생각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자(知者)가 물질적 삶을 더 중시한다면 인자(仁者)는 정신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지자(知者)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고 과거 지향적이라면, 인자(仁者)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학 현실은 어떻습니까. 인자(仁者)가 되기를 포기하고 지자로서의 학자의 삶을 추구하는 교수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은 발등의 불밖에 보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나 자기 인식에 대한 각성이 없습니다.
인자로서의 학자는 시류에 아부하지 않고 자기의 소신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고, 민중과 고통을 나눠가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미래지향적 사고를 가지고 살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킬 줄 알고, 자기 분수를 지켜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치세가 아니라 난세입니다. 난세에 필요한 인물은 지자가 아니라 인자입니다. 학계의 진정한 주인은 지자로서의 교수가 아니라 인자로서의 학자이어야 한다고 또 감히 주장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또 구업을 많이 지은 것 같습니다. 문득 논어(論語) 태백편(泰伯篇)의 한 대목 선비는 인(仁)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삼으니 어찌 막중하지 않으며 죽은 다음에야 끝이 나니 어찌 멀지 않겠는가 라는 증자(曾子)의 말이 가슴을 치고 지나갑니다.
▶ 智(슬기 지/지혜 지)는 형성문자로 세상을 두루 밝게 안다는 뜻을 나타내는 날일(日; 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신(神)의 말씀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知(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지식(知識)이 있다의 뜻으로 知(지)와 통한다. 그래서 智(지)는 (1)사물의 도리(道理), 시비(是非), 선악(善惡)을 분별(판단)하고 처리하는 마음의 작용. 지혜(智는 知로도 쓰임) (2)시비(是非), 정사(正邪)를 분별, 단정(斷定)하여 번뇌(煩惱)를 뿌리째 없애는 정신 작용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슬기, 지혜(智慧) ②재능(才能) ③꾀, 기지(奇智), 모략(謀略) ④지혜로운 사람, 총명한 사람 ⑤슬기롭다 ⑥지혜롭다, 총명하다 ⑦알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슬기로울 혜(慧),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어리석을 우(愚)이다. 용례로는 삶의 경험이 풍부하거나 세상 이치나 도리를 잘 알아 일을 바르고 옳게 처리하는, 마음이나 두뇌의 능력을 지혜(智慧), 새로운 사물 현상에 부딪쳐 그 의미를 이해하고,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사용하여 해결하는 능력이나 지력을 지능(智能), 안다는 의식의 작용을 지식(智識), 지혜의 힘을 지력(智力), 슬기로운 계략을 지략(智略), 슬기가 있는 사람을 지자(智者), 지혜가 많은 장수를 지장(智將), 슬기로움과 어리석음을 지우(智愚), 지혜가 많은 사람을 지낭(智囊), 슬기로운 사람도 많은 생각 중에서 간혹 실수가 있다는 지자일실(智者一失), 사리에 밝은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정체함이 없는 것이 마치 물이 자유로이 흐르는 것과 같으므로 물을 좋아한다는 지자요수(智者樂水), 지혜는 작은 데 꾀함은 크다는 지소모대(智小謀大), 지략이 보통 사람보다 매우 뛰어나다는 지과만인(智過萬人), 슬기는 모르는 것이 없고 행실은 방정하다는 지원행방(智圓行方), 지혜와 용기를 함께 갖춤을 지용겸비(智勇兼備), 지혜가 소중한 것은 화를 면하는 데에 있다는 지귀면화(智貴免禍) 등에 쓰인다.
▶ 者(놈 자)는 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者(자), 者(자)는 동자(同字)이다. 원래의 자형(字形)은 耂(로)와 白(백)의 합자(合字)이다. 나이 드신 어른(老)이 아랫사람에게 낮추어 말한다(白)는 뜻을 합(合)하여 말하는 대상을 가리켜 사람, 놈을 뜻한다. 또는 불 위에 장작을 잔뜩 쌓고 태우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그래서 者(자)는 ①어떤 명사(名詞) 아래에 붙여, 어느 방면의 일이나 지식(知識)에 능통하여 무엇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또는 무엇을 하는 사람임을 뜻하는 말 (2)사람을 가리켜 말할 때, 좀 얕잡아 이르는 말로서, 사람 또는 놈 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놈, 사람 ②것 ③곳, 장소(場所) ④허락하는 소리 ⑤여러, 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⑥이 ⑦~면(접속사) ⑧~와 같다 ⑨기재하다, 적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병을 앓는 사람을 환자(患者),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글을 쓰거나 엮어 짜냄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기자(記者), 학문에 능통한 사람이나 연구하는 사람을 학자(學者), 책을 지은 사람을 저자(著者), 살림이 넉넉하고 재산이 많은 사람을 부자(富者), 힘이나 기능이 약한 사람이나 생물 또는 집단을 약자(弱者), 그 사업을 직접 경영하는 사람을 업자(業者), 달리는 사람을 주자(走者), 어떤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을 신자(信者),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 붉은빛에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된다는 근주자적(近朱者赤) 등에 쓰인다.
▶ 樂(노래 악, 즐길 락/낙, 좋아할 요)은 상형문자로 楽(락)의 본자(本字), 乐(락)은 간자(簡字)이다. 현악기를 본뜬 글자, 신을 모시는 춤을 출 때 손에 가지는 방울을 본뜬 글자, 북 따위의 타악기를 본뜬 글자 등의 유래가 존재한다.기본 음가는 악이고, 전주된 음가로 락과 요가 있다. 락은 주로 형용사로 사용될 때, 요는 좋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락이 두음법칙이 적용되면 낙으로 표기된다. 그래서 樂(악)의 경우는 ①노래, 음악(音樂) ②악기(樂器) ③연주하다 ④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등의 뜻이 있고, 樂(락/낙)의 경우는 ⓐ즐기다(락) ⓑ즐거워하다(락) ⓒ편안하다(락) ⓓ풍년(豐年)(락) ⓔ즐거움(락) 등의 뜻이 있고, 樂(요)의 경우는 ⓕ좋아하다(요) ⓖ바라다(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노래 가(歌), 노래 요(謠), 노래 구(謳)이다. 용례로는 인생을 즐겁게 여기거나 세상을 밝고 좋게 생각함을 낙관(樂觀),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을 낙원(樂園), 늘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을 낙토(樂土), 재미 붙일 만한 일을 낙사(樂事), 경기 등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기는 것을 낙승(樂勝), 세상이나 인생을 즐겁게 생각함을 낙천(樂天), 노래의 곡조를 악곡(樂曲), 음악 기구를 악기(樂器), 작곡에 관한 착상이나 구상을 악상(樂想), 음악에서 연주되는 음의 배열을 악보(樂譜), 노랫소리 또는 가락스런 소리를 악음(樂音), 음악을 연주하는 단체를 악단(樂團), 물을 좋아함을 요수(樂水), 산을 좋아함을 요산(樂山), 즐기기는 하나 음탕하지는 않게 한다는 낙이불음(樂而不淫),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낙극애생(樂極哀生), 즐거움은 언제나 걱정하는데서 나온다는 낙생어우(樂生於憂), 안락은 고통의 원인이라는 낙시고인(樂是苦因), 즐거움 속에 삶이 있다는 낙중지생(樂中之生),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음을 이르는 요차불피(樂此不疲) 등에 쓰인다.
▶ 水(수)는 상형문자로 氵(수)는 동자(同字)이다. 시냇물이 흐르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물을 뜻한다. 본디 물 수(水)部는 시내의 뜻이었다. 부수로 쓸 때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로 쓰는 일이 많다. 그래서 水(수)는 (1)오행(五行)의 하나. 방위(方位)로는 북쪽, 계절(季節)로는 겨울, 빛깔로는 검정을 나타냄 (2)수요일(水曜日)(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물 ②강물 ③액체(液體), 물과 관련된 일 ④홍수(洪水), 수재(水災), 큰물(비가 많이 와서 강이나 개천에 갑자기 크게 불은 물) ⑤수성(水星: 태양에 가장 가까운 별) ⑥별자리의 이름 ⑦물을 적시다, 축이다 ⑧물을 긷다, 푸다 ⑨헤엄치다 ⑩물로써 공격하다 ⑪평평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내 천(川), 강 강(江), 물 하(河), 바다 해(海), 시내 계(溪), 바다 명(溟),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메 산(山),큰 산 악(岳), 뭍 륙/육(陸), 불 화(火),빌 공(空)이다. 용례로는 물 속에서 몸을 뜨게 하고 손발을 놀리며 다니는 짓을 수영(水泳), 축축한 물의 기운을 수분(水分), 물속에 잠김을 수몰(水沒), 물을 보내는 통로를 수로(水路), 물의 겉을 이루는 면을 수면(水面), 홍수로 인한 해를 수해(水害), 물에 의해 발생하는 힘을 수력(水力), 물의 깊이를 수심(水深), 물과 물고기의 사귐이라는 수어지교(水魚之交), 깊고 넓은 물에는 큰 고기가 깃듦을 수관어대(水寬魚大), 물이 흐르면 자연히 개천을 이룬다는 수도거성(水到渠成), 물이 흐르면 고기가 다닌다는 수도어행(水到魚行), 흐르는 물과 하늘의 뜬구름이라는 수류운공(水流雲空), 물이 빠져 밑바닥의 돌이 드러난다는 수락석출(水落石出), 물과 물고기의 사귐이라는 수어지교(水魚之交), 물과 불은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수화불통(水火不通),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수적천석(水滴穿石) 등에 쓰인다.
▶ 仁(인)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二(이)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냄을 뜻하는 데서 어질다의 뜻으로 쓰인다. 공자(孔子)가 특히 仁(인)을 도덕의 중심으로 삼은 후로는 자기에게는 엄하게 하지만 남에게는 어질게 하는 정신을 仁(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仁(인)은 (1)공자(孔子)가 주장한 유교의 도덕 이념, 또는 정치 이념. 오상(五常)의 하나로 모든 덕의 기초로서 공자는 이것을 극기 복례(克己復禮)라고 설명하고 일반적으로 사랑 또는 박애가 그 내용으로 됨. 천도(天道)가 발현하여 인이 되고, 이를 실천하면 만사 모두 조화, 발전된다는 사상임 (2)애정(愛情)을 타에 미침. 곧 어짐, 착함, 박애(博愛) (3)식물의 씨에서 껍질을 벗긴 배(胚), 배젖의 통틀어 일컬음 (4)세포의 핵(核) 안에 있는 작은 구형(球形)의 구조. 핵 하나에 한 개 또는 몇 개 들어 있고 리보 핵산과 단백질을 함유하여 단백 합성을 하는 것으로 생각됨. 비교적 큰 입상체(粒狀體)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어질다, 자애롭다, 인자하다 ②감각이 있다, 민감하다 ③사랑하다 ④불쌍히 여기다 ⑤어진 이, 현자(賢者) ⑥인, 어진 마음, 박애(博愛) ⑦자네 ⑧씨 ⑨과실(果實) 씨의 흰 알맹이, 속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사랑 자(慈), 어질 량/양(良), 어질 현(賢)이다. 용례로는 마음이 어진 사람을 인자(仁者), 어질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인자(仁慈), 어진 임금을 인군(仁君), 타고난 성질이 어질고 착함을 인선(仁善), 인덕이 있고 수명이 긺을 인수(仁壽), 인덕의 감화를 인화(仁化), 어질고 후덕함을 인후(仁厚), 어진 덕을 인덕(仁德), 어질고 명철함을 인명(仁明), 인자스러운 마음을 인심(仁心), 어질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인애(仁愛), 어질며 은혜가 있는 일을 인혜(仁惠), 어진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어 구제함을 인휼(仁恤), 어진 것과 의로운 것을 인의(仁義), 어질고 덕망이 있는 성인을 인성(仁聖), 성질이 어질고 순함을 인순(仁順),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 곧 어짊과 의로움과 예의와 지혜를 인의예지(仁義禮智), 어진 사람은 널리 사람을 사랑하므로 천하에 적대할 사람이 없음을 인자무적(仁者無敵), 인과 의와의 도를 인의지도(仁義之道), 의를 위하여 나서는 어진 사람의 용기를 인자지용(仁者之勇), 어진 사람은 도리에 따라 행하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므로 근심을 하지 않는다는 인자불우(仁者不憂), 인자는 의리에 만족하며 생각이 깊고 행동이 신중함이 산과 같으므로 자연히 산을 좋아한다는 인자요산(仁者樂山) 등에 쓰인다.
▶ 山(산)은 상형문자로 산의 봉우리가 뾰족뾰족하게 이어지는 모양을 본떴다. 옛 자형(字形)은 火(화; 불)와 닮아 옛 사람은 산과 불이 관계가 깊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래서 山(산)은 (1)둘레의 평평한 땅보다 우뚝하게 높이 솟아 있는 땅의 부분. 메 (2)산소(山所) (3)사물이 많이 쌓여 겹치거나, 아주 크거나, 매우 많은 것에 비유한 말 또는 그것 (4)산이나 들에 절로 나는 것을 뜻하는 말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메(山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뫼 ②산신(山神: 산신령), 산(山)의 신(神) ③무덤, 분묘(墳墓) ④절, 사찰(寺刹) ⑤임금의 상(象) ⑥산처럼 움직이지 아니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큰산 악(岳),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내 천(川), 강 강(江), 물 하(河), 바다 해(海), 물 수(水)이다. 용례로는 산 위를 산상(山上), 깊은 산 속에서 세상을 멀리하고 사는 사람을 산인(山人), 산 속에 지은 정자를 산정(山亭), 산의 임자를 산주(山主), 산의 가운데 또는 높은 산이 있거나 산이 많은 곳을 산중(山中), 산에 있는 나무를 벰을 산벌(山伐), 산의 생긴 형세를 산세(山勢), 산 위에 쌓은 성을 산성(山城), 들이 적고 산이 많은 지대를 산지(山地), 산 속에 있는 절을 산사(山寺), 산과 숲 또는 산에 있는 수풀을 산림(山林), 무덤을 높이어 이르는 말을 산소(山所), 산 속에 있는 마을을 산촌(山村), 산과 내라는 뜻으로 자연을 일컫는 산천(山川), 산에서의 싸움과 물에서의 싸움이라는 산전수전(山戰水戰), 산빛이 곱고 강물이 맑다는 산자수명(山紫水明),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산류천석(山溜穿石), 경치가 옛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음을 산천의구(山川依舊), 산과 물과 나무와 풀이라는 산천초목(山川草木), 산이 앞을 가로막고 물줄기는 끓어져 더 나아갈 길이 없다는 산궁수진(山窮水盡), 산은 높고 물은 유유히 흐른다는 산고수장(山高水長), 산과 바다의 산물을 다 갖추어 아주 잘 차린 진귀한 음식이라는 산해진미(山海珍味)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