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스마트 기계를 사용하는 일반 대중은 스스로 만든 데이터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콘텐츠를 언제든 원하는 방식으로 플랫폼이라는 데이터 중개소에서 소비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감정, 태도, 행동 등 각종 데이터 정보(좋아요, 화나요, 슬퍼요, 별점, 별풍선, 인증샷, 댓글, 태깅, 움짤 등)를 인터넷 공간에 남기며 각자가 원하는 취향의 세계를 구축한다. 스마트 플랫폼 기술 환경은 데이터 처리 과정을 통해 인간 정서 교류와 소통 활동을 매개하고 중개하면서 이른바 신종 ‘빅데이터 기술 문화’를 형성한다. 우리는 이렇듯 누군가의 강요나 강제 없이 플랫폼 활동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낸 거대한 디지털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데이터 생산의 분석 흐름 속에 놓인다.
---「빅데이터가 삶을 바꾸어놓다」중에서
넷플릭스의 첫 한국 오리지널 제작 드라마이자 사극 좀비물로 주목을 받았던 [킹덤](2019)은 사실상 ‘한국 공포물’이라는 국가나 민족이나 언어 등에 기댄 전통의 장르 구분법을 해체한다. [킹덤]은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5만 개 장르 구분법에 속할 텐데, 이를테면 ‘동양 고전 시대 좀비 장르’ 정도로 분류될 확률이 더 높다. 국내 시청자들에게 한국 콘텐츠의 소비나 노출 방식이 분명 중요하지만, 넷플릭스의 글로벌 유니버스에서 ‘한국’ 국적이란 그저 수많은 장르 변인 중 하나가 되면서 그조차 흔적도 없이 파묻힐 공산이 크다. 애초 넷플릭스의 태생이 제작 능력이 아닌 ‘유통’업계의 귀재였음을 잊지 말자. 결국 넷플릭스의 이 자동화된 알고리즘 질서 속에서 개별 콘텐츠의 개성이나 특성, 지역성, 민족성, 국가 등은 특징적 태그 정보에 불과하고 그 외의 질감이나 단서는 아예 무(無)맥락화할 뿐이다.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취향을 납작하게 만든다」중에서
하나 더 주목할 것은 2019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이 ‘라이더유니온’을 설립한 사실이다. 이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의 결사체 구성은 플랫폼 노동조합의 존재감을 우리 사회에 알린 계기가 되었다.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 여세를 몰아 이들은 배달 대행사인 ‘배달은형제들’과 최초 ‘비노사’ 교섭을 벌여 노동권 확대라는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라이더유니온은 플랫폼 노동에서 불가능할 것 같았던 노동 교섭권이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인해주고 있다. 더 나아가 이는 배달라이더·가맹 사업체·배달 대행사는 물론이고, 플랫폼 중개업자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시장 상생 모델이 실험 가능하다는 점을 징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플랫폼 노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중에서
‘인공지능 국가 전략’에서는 성급한 기술 낙관론과 성장 숭배가 압도한다. 인공지능이 인간 사회와 삶 자체를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장밋빛 가정이 짙게 깔려 있다. 가령 인공지능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고령화 시대 노인 돌봄, 범죄 예방, 국민 안전 강화, 맞춤형 서비스를 통한 국민 생활 편의’ 등 주로 사회적 순기능만 강조하고 있다. ‘사람 중심’의 인공지능 구현도 부실하기 그지없다. ‘취약계층까지 널리 인공지능의 기본 소양 교육과 기술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사람 중심’이며, 시민의 ‘삶 만족도’를 높이는 일이라고 단정한다. 인공지능의 기술 편리나 혜택을 ‘사람 중심’으로 치켜세우는 꼴이다.
---「인공지능 국가 전략’에 사람은 없다」중에서
무엇보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노동 현실에 처한 이들에게 테크놀로지는 비수가 되거나 악귀처럼 들러붙는 경우가 흔하다. 줄곧 노동의 피폐화나 ‘위험의 외주화’는 사회적 타살의 기계장치와 맞물려왔다. 유통상품 재고 관리의 빅데이터 분석과 예측력이 높아지면서, 낮과 밤 노동 리듬에 덧대 새벽 배송 노동 형태가 강제 생성되고, 배달 노동은 24시간 극한의 생존 능력의 시험장이 되고 있다. 플랫폼 배달 노동이 활성화되면서 수많은 라이더의 배달 사고율은 급증한다. 서울 지하철 구의역과 태안발전소 사망 사고 등 전국 단위 산업 현장에서 하청과 재하청, 파견, 이주노동에 지친 청년들의 사회적 타살과 죽임이 매일 일상화되고 있다.
---「반인권과 반생명의 부메랑」중에서
이제부터라도 신흥 테크놀로지로 부양된 대도시 건설의 발전주의적 사고를 털어내야 한다. 테크놀로지의 낡음과 새로움을 따지거나 여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동산 지대 욕망을 억제하는 대신 도시공동체가 먼 미래까지 살아남을 협력과 호혜의 가치를 도시설계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러려면 테크놀로지를 도시 생태에 조응해 어떻게 설계하거나 배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출발점에 서서 시민의 테크노 도시권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지 곰곰이 따져 물어야 한다.
---「테크놀로지와 포용 도시」중에서
‘한국형 뉴딜’ 사업 내용은 재난 충격에 빠진 국민 구제를 위한 국가 전환의 프로젝트라기보다는 기대와 달리 너무도 생뚱맞은 기술 숭배적 처방에 가깝다. 굳이 뉴딜까지 아니어도 일상 정국에서 기존 4차산업혁명위원회나 인공지능 국가전략 단위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논의할 수준의 사안들이다. 이는 캐나다 작가이자 언론인 나오미 클라인이 『쇼크 독트린』에서 사회적으로 중대한 위기나 재난 상황이 닥치면 이를 명분으로 국가 엘리트들이 처음부터 그들이 원하던 것을 밀어붙인다는 ‘재난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의 작동 방식처럼 보인다.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권위주의 국가들이 생명 안전이라는 명분으로 시민들에게 강도 높은 통치권을 행사한다면, 우리의 신자유주의 국가 엘리트들은 이제 첨단 비대면 자동화 기술로 무장한 노동시장 유연화와 기업 규제 완화를 영혼 없이 읊조린다.
---「'한국형 뉴딜’이 망각한 것들」중에서
언론들은 연일 관련 법 개정을 위해 ‘데이터는 원유’라는 비유법을 써왔다. 20세기 화석 원료 경제인 원유만큼 오늘날 신기술 환경에서는 데이터가 시장의 에너지원이자 돈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천박한 데이터 비유법은 원유라는 화석 원료가 오늘 지구의 위기 상황을 초래한 주범임을 망각한 듯하다. 어찌 보면 데이터도 디지털 자본주의의 중요한 시장 자원으로 쓰지만, 그도 지나치면 우리는 극단의 정보 사유화와 함께 어디에도 홀로 남겨질 곳 없는 ‘제로 프라이버시’의 우울한 현실을 맞게 된다. 데이터 활용 측은 꽤 오랫동안 ‘불안한 보호에서 안전한 활용으로’라는 그럴듯한 슬로건을 내세웠고, 관련 법 개정을 촉구해왔다.
---「‘제로 프라이버시’ 시대가 온다」중에서
무엇보다 오늘날 커먼즈 운동은 기업(私有)과 정부(公有)에 의존하던 자원 관리나 경영 방식을 벗어나 시민 자치의 협동적 자원 관리(共有) 방식을 선호한다. 물론 여기서 ‘공유(커머닝)’는 오늘날 공유경제의 ‘공유(셰어링)’, 즉 플랫폼 자원의 기능적 중개와 효율 논리와 다르다. 이는 특정 자원을 매개한 구성원들 사이 공동 이익을 도모하는 새로운 호혜적 관계의 생성에 방점이 있다. 다시 말해 ‘커머닝(commoning)’은 자본주의적 자원 수탈과 승자독식 논리를 지양하고, 시민들이 유무형 자원들을 그들의 직접적 통제 아래 두고 이를 공동 관리하며 다른 삶의 가치를 확산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커먼즈와 플랫폼이 만나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