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60]‘가객歌客 권삼득權三得’의 기록이라니?
<TV 진품명품>이라는 프로그램을 아시리라. 그것하고 성격이 비슷한 <우리집 금송아지>라는 프로그램을, 지난 7월 7일 오후 7시 40분 KBS1(전북권)에서 처음으로 시청했다. 전국방송은 8월 12일 오후 10시 30분에 재방송한다고 한다. 전국의 면面 소재지를 순례하며 문화재급 자료를 감정鑑定해주는 프로인데, 일부러 보게 된 까닭은 ‘전북 임실군 오수면’ 내 고향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일단 서두부터가 재밌었다. 30여년 동안 ‘오수개’에 미친 ‘열정맨’의 애향심이 눈물겨웠다. 역시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는 말은 맞는 말이다. 멸종된 오수개의 생물학적 복원과정이 얼마나 지난至難했을까? 오수 의견비의 건립연대(최소 1000년 추정)가 밝혀지면 ‘의견의 고장’ 오수가 세계적인 반려동물의 성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듯하다.
아무튼, 대여섯 개 꼭지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1712년(숙종 38년)에 세워졌다는 ‘오수양로청獒樹養老廳’에 대한 기록이었다. 오늘날의 ‘양로당 또는 노인회’가 그것일진대, 나라(국가)에서 1802년(가경嘉慶 7년) ‘양로연養老宴’을 지원해준 것같은 기록 문건이 전해 오고 있다는 것(<양로청선생안>).
잔치가 끝난 후 세세한 사항(떡, 술, 과일 등 담당자 이름들이 써있다)들을 기록해 관청의 결재를 받았는데 수결手決(사인)도 뚜렷하다. 60세 이상이 대상이었을텐데, 남노男老 54명, 여노女老 74명을 대상으로 한 양로연 소요예산이 기록돼 있지 않은 게 아쉬웠다. 지금도 무슨 잔치에든 연예인(가수, 개그맨 등)을 부르지만, 그때도 그랬던 모양이다. 놀랍게도 정조때 판소리 명창으로 알려진 권삼득權三得(1771-1841)을 초대손님으로 모신 것이다. ‘가객 권삼득’ 이름이 기생, 악공樂工 6명과 함께 기재돼 있다. 당시에 소리꾼을 가객으로 부른 것같다. 가객하면 장사익의 ‘찔레꽃’이 떠오르지만. 권삼득은 양반의 자제였다. 천대받는 광대로 나서자 집안에서 덕석말이를 시켰다던가. 소리나 한번 하고 죽게 해달라는 요청을 들어줬는데, 죽이기에는 재주가 너무 아까워 족보에서 이름을 지우며 추방을 시켰다던가. 그이후 완주 위봉폭포 아래와 남원 육모정 등에서 독공하여 '새와 짐승, 사람의 소리'(그래서 삼득三得이라 개명했다고 한다)를 자유자재로 내는 ‘득음得音’의 경지에 올랐다던가. 판소리계의 전설적 명창이 일개 면민의 양로잔치에 왔다는 것이 아닌가. 출연료는 얼마나 받았을지 나는 그것도 궁금했다.
하여튼, 그 문건을 직접 보고 싶어, 장마 뒤끝에 막역한 친구와 함께 문건의 소유자인 김춘탁 어르신을 찾았다. 여러 자료들을 보여주며 친절히 대해주셔 고마웠다. 한자와 한문문맹자이지만 그나마 떠듬떠듬 ‘맥락脈絡’은 이해할 수 있어 다행이다. 어찌 귀한 자료가 아니겠는가.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경로사상’이 투철했다. 가난한 나라에서도 이런 소소한 잔치까지 지원을 했다는 기록을 봐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기록은 이래서 소중하다. ‘바보대통령’ 노무현도 “기록은 역사입니다”라며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미시사微視史가 모이고 모여 거시사巨視史가 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당시에는 하찮은 기록이었을지 몰라도 200여년이 지난 오늘날, 당시의 행사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의미가 없을손가.
과문寡聞의 소치로, 우리나라 양로당의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1712년에 세워진 ‘오수양로청’을 보니(당堂도 아니고 숫제 관청이름인 청廳이다), 우리 고장이 괜시리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로청에 관련한 최초의 기록은 언제 때일까? 어르신들을 받들고 배려하며 존경하는 그런 선조들의 정신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일까? 어르신이 보관하고 있는 이런 문건들은 최소한 지방문화재로라도 등록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돌아오는 길, 어르신이 직접 쓰셨다는 전서체의 ‘수차창壽且昌’ 글씨를 선물로 주셔 더욱 좋았다. 그날은 또 한 건의 만남이 있어, 내일은 그 후기를 적을 참이다. <우리집 금송아지>에는 면소재지에 있는 <추억의 박물관>도 소개했는데, 쇠뿔도 단김에 빼랐다고, 콜렉터 관장(박재호)을 당장 만나 흥미진진한 얘기를 들어봤다. 이것 또한 명물이다. 강진의 <와보랑깨 박물관>과 담양의 <추억의 영화거리>와 성격이 같은 이런 박물관도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