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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이번 Part 에서는 악한 영의 세계 중 ‘지옥사자’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해 드리고 나서 하나님의 ‘인간경작’ 섭리 중에 6일 창조에 대한
내용을 계속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악한 영의 세계의 우두머리는 둘째하늘 공중에 속한 어두움의 영역에
하나님을 흉내 내어 자신의 보좌를 악으로 세운 ‘루시퍼’이며, 그 휘하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즉 타락한 천사와 타락한 그룹입니다.
먼저 타락한 천사들은 그 역할에 따라 ‘마귀’ 또는 ‘지옥사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그룹들은 대부분이 용의 사자로 활동하지만 일부는
아랫음부에서 지옥사자도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옥사자 중에는 타락한 천사도 있고, 타락한 그룹도 있습니다.
타락한 천사인 지옥사자들 중에서 일부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아랫음부로 끌고 가는 저승사자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아랫음부에서 주로 행정적인 업무를 감당합니다.
반면에 타락한 그룹인 지옥사자들은 아랫음부에 온 영혼들에게
직접 형벌을 가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랫음부는 형벌의 경중에 따라 네 단계로 나뉩니다.
아랫음부 1단계에서는 무거운 바위나 뜨거운 모래 등 무생물에 의한 형벌이
가해집니다. 아랫음부 2단계에서는 벌레나 짐승 등 생물에 의한 형벌이 가해집니다.
그리고 아랫음부 3, 4단계에서는 지옥사자에 의해 형벌이 가해집니다.
바로 이 아랫음부 3, 4단계에서 활동하는 지옥사자가 타락한 그룹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지옥’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드리기 원하는데...
아랫음부에서 형벌을 가하는 지옥사자의 형상이 돼지 등과 같은 흉측한 짐승의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이처럼 지옥(아랫음부)에서 짐승의 형상을 한 것은 지옥사자 중에서도 타락한 천사가
아닌 타락한 그룹인 것입니다. 천사가 사람의 형상과 비슷한 것처럼 지옥사자가 된
타락한 천사도 전체적으로 어둡고 칙칙한 사람의 형상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흉측하고 소름끼치는 형상으로 변했습니다. 이런 타락한 천사인
지옥사자들은 주로 아랫음부 1, 2단계를 관리하거나 아랫음부에 떨어진 영혼들을
죄의 경중에 따라 알맞은 곳에 보내는 등의 업무를 감당합니다.
따라서 짐승의 형상을 하고 직접 형벌을 가하는 지옥사자들은 타락한 그룹입니다.
한편 타락한 그룹의 대부분은 용의 사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타락한
그룹의 역사에 대해서는 지난 Parts 에서 설명해 드렸습니다.
용의 사자들로 활동하는 타락한 그룹에 의해 사람에게 질병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병든 사람의 치료를 위해 기도할 때 영안이 열려 보면,
그 사람의 몸에서 쥐 떼나, 돼지 형상의 짐승이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용은 그의 사자들을 통해서 악한 사람들을 사주하여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인신매매나 살인 등 사람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행한 흉악범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이나 행동이 몹시 흉악한 사람의 경우 용의 사자들 곧 타락한
그룹의 사주를 받은 것입니다.
용의 사자들 중에서도 어떤 짐승의 형상을 한 것의 사주를 받느냐에 따라서
나타나는 악의 모양이 다릅니다. 짐승에 따라 포악함과 간사함, 더러움과 추함,
난잡함 등 다른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Part 에는 하나님께서 창조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 명하실 때
육의 공간을 둘렀던 빛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빛은 창조의 근본의 빛입니다. 창조의 근본의 빛으로 둘린 육의 공간에는
영의 공간이 덧입혀짐으로 영의 시간의 흐름이 적용됐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창조될 만물들 사이에 질서와 원칙이 세워졌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모든 피조물에 깃들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창조를 믿느냐, 진화를 믿느냐가 결정됩니다.
우리는 만물에 깃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깨닫고 인정하기에 창조주가
계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반면 진화론자들은 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깨닫지 못하기에 모든 것을
사람의 생각과 지식 안에서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과학을 깊이
연구할수록 사람의 지식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지구의 탄생에 대해서 명확하게 입증된 진리가 과학계에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여러 가지 가설(假說)만 있을 뿐입니다. 가설이란 어떤 사실을 설명
하거나 어떤 이론 체계에서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설정한 가정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지구 탄생에 대한 진리가 분명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바로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4절~5절...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이 말씀의 육적인 의미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자 창조의 근본의 빛이 지구를 둘렀습니다. 이렇게 빛이 지구를 두르고
있는 동안을 하나님께서 낮이라 칭하셨습니다. 그리고 빛을 거두신 기간은
밤이라 칭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셨을 때 지구의 운행에 관한 질서와 원칙도 세워졌다 했는데
낮과 밤이 교차하는 것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해, 달, 별이 아직 없는 첫째 날부터
이처럼 지구는 낮과 밤이 구분됐던 것입니다.
그러면 지구는 이때 자전을 했을까요? 지금은 해가 뜨면 낮이 되고,
해가 지면 밤이 되지요. 정확히 말하면 지구가 자전을 해서 해와 마주보는
쪽은 낮이고, 해를 보지 못하는 쪽은 밤이 됩니다.
그런데 첫째 날은 해를 기준으로 낮과 밤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지요.
하나님께서 빛을 두르시느냐, 거두시느냐에 따라서 낮과 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창조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지구가 자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는 말씀에는 아주 중요한 영적인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속한 빛의 영역과 루시퍼에게 속한 어둠의
영역을 구분하여 나누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 밤이 되었을 때 무저갱에 갇혀 있던 루시퍼와 루시퍼가
부리게 될 악한 영들을 풀어 주시지요. 밤은 영적으로 악한 영들이 주관하는
세계를 상징합니다.
육적으로도 낮보다는 밤 시간에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어둠의 속성이
어둠의 영들에 의해 더 잘 발동되지요. 각종 범죄도 낮보다는 밤에 더
많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대검찰청에서 발표한 2007년 범죄분석 통계 중에서 시간대별 범죄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전 4시에서 낮 12시까지가 9.2%, 낮 12시에서 오후
6시까지는 21.2%, 오후 6시에서 다음 날 새벽 4시까지는 47.9%였습니다.
밤 시간대의 범죄율이 단연 높습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바로 파란색 가로등 효과라는 것입니다.
2000년도에 영국 북부의 ‘댈러스고’ 시(市)는 경관 미화용으로 파란색 가로등을
처음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설치 이후 뜻밖에도 범죄율이 눈에 띄게 하락한 것입니다. 범죄 발생
건수가 연 1만 건 이상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지요. 2005년도에는
일본 나라 현에서 파란색 가로등을 처음 설치했습니다. 범죄가 빈번히 발생하는
골목길의 가로등을 파란색으로 바꾸자 신기하게도 범죄율이 0%로 줄었다고 합니다.
그 후 파란색 가로등을 설치한 지역이 39개로 급격히 늘어났지요. 시마네 현,
히로시마 현, 시즈오카 현 등 전국 지방 자치단체로 파급됐습니다.
우리나라 서울의 강남구에서도 2008년 11월에 일부 지역의 가로등을 파란색
가로등으로 교체했지요. 이에 대해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청색은 빛이
널리 퍼지면서 멀리 비추는 특징 등을 갖고 있어 사람을 심리적으로 안정시키고
침착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범죄율 감소가 가로등 색 변화만의 효과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
검토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맑은 하늘의 색깔을 파란색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에 잠시 소개해 드렸습니다.
지구에는 낮과 밤이 있듯이 인간 경작을 위해서는 빛이신 하나님께 속한 영들과
함께 어둠에 속한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빛이 임하면 물러갑니다. 결코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지요.
악한 영들에게 어둠의 세계를 주관하는 권세가 있다 해도 그것을 허락하신 분은
빛이신 하나님입니다. 결국 어둠의 영들은 하나님께서 공의 가운데 허락해 준
범주 안에서만 그 권세를 부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경작이 끝나면 악한 영들은 모두 다시 무저갱에 갇히게 되지요.
반면 인간 경작을 다 받은 영혼들이 가서 영원히 사는 천국은 어떻습니까?
계시록 22장 5절에 보면 천국에는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했지요. 천국에는 어둠인 밤이 없고
오직 빛인 낮만 있습니다.
인간 경작의 무대인 지구에는 낮과 밤이 일대일의 동일한 비율로 있습니다.
물론 계절에 따라 낮과 밤의 길이는 다릅니다. 북반구에서는 6월 21일경 하지에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지요. 하지가 지나면 낮은 점점 짧아지고 밤은 점점
길어집니다.
그러다가 12월 22일경 동지가 되면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지요.
동지가 지나면 다시 낮이 점점 길어지고 밤은 점점 짧아집니다.
이처럼 육적으로도 낮과 밤의 길이는 한편으로 치우침이 없고 공평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공의롭게 인간 경작을 하시는지 나타냅니다.
낮과 밤의 비율이 똑같은 것처럼 악한 영들에게도 동일한 조건에서
하나님과 겨룰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악한 영들은 물론 육의 밤 시간만이 아니라
낮 시간에도 활동합니다. 여기서 낮과 밤의 비율이 같다고 할 때는 육적인 낮과
밤의 시간이 아닌 영적인 낮과 밤의 시간을 의미함을 알아야 합니다.
육적인 낮과 밤의 비율이 같다는 것은 악한 영들이 인간 경작을 위해 하나님과
겨루는 조건이 동일함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만물의 주인이시지만 인간 경작의 환경을 조금도
하나님 편에 유리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육으로 낮과 밤이 치우침 없듯이 영적으로도 조금도 치우침이 없는 공평한 환경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루시퍼와 악한 영들은 자신들은 불리한 입장에서 하나님과
겨루었다고 절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낮과 밤을 정확하게 구분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영적으로도
빛과 어둠은 결코 함께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절 후반절에도 말씀하시기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했습니다. 진리와 비진리가 함께할 수 없으며, 선과 악이
함께할 수 없지요.
영적인 의미의 빛은 빛이신 하나님께 속한 모든 속성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진리, 선, 사랑 등이 빛입니다.
반대로 영적인 의미에서 어둠이란 악한 영에게 속한 모든 속성이지요.
불법, 비진리, 죄, 악 등이 어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자유 의지 가운데
빛이나 어둠을 택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20~21절에 보니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했지요.
사람의 마음에 악이 있으면 빛이 아닌 어둠의 길을 가게 되고, 반대로 선이
있으면 빛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영들은 사람들이 어둠의 길로
가도록 조종합니다.
세상에 속한 비진리의 것들을 이용하여 죄를 짓도록 미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단호하게 세상 미혹을 물리치고
진리를 좇아서 빛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어둠이 아닌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성경에는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들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 지켜 행하는 것이 곧 어둠을 벗고 빛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8절에는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에 잘 나온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치 않으면 여전히 어둠에
속한 사람임을 알아야 하지요. 사람이 어둠에 속할 때는 어둠의 권세를 가진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둠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사주하고 조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로 죄를 짓게 하고, 죄의 대가로 시험, 환난, 재앙을
겪게 합니다. 어떻게든 더 짙은 어둠으로 빠져들게 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지요. 그리고 결국은 구원받지 못하게 하여 지옥으로 가게 하는 것이
그들의 최종 목표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어둠을 주관하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란 말씀처럼
죄를 지으면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것이 영계의 법입니다.
여기서 영적인 사망이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둠 즉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의 결말입니다.
그러나 항상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원수 마귀 사단이 건드리지 못합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지요.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빛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이제부터는 창조 둘째 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둘째 날이 되기 전의 지구는 생명수에 완전히 잠긴 상태였습니다.
창조 둘째 날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지구를 완전히 덮고 있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생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당시 물이 지구를 겉 표면만 살짝 덮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구의 가장 높은 산까지 완전히 잠기고도 남을 만큼 많은 물이 덮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물 가운데 궁창이 생겼고 물은 궁창 아래와 위로 나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 가운데 생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셨습니다.
그런데 둘째 날의 창조 역사는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에서 동시에 이뤄졌습니다.
먼저 육의 세계에서 이뤄진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구에 궁창 곧 하늘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대기권이 형성되었음을 뜻합니다. 대기권이란 지상 약
1,000km까지의 대기층입니다.
대기권은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역할을 합니다.
대기권 중 지상 약 30km 이내에 전체 공기의 대부분이 존재합니다.
이 공기 중에는 동식물이 호흡하는 데 필요한 산소가 들어있습니다.
또한 대기권은 태양이나 외계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해로운 빛을 흡수합니다.
운석이 지구 표면에 충돌하는 것을 막는 보호막 역할도 해 줍니다.
그리고 지구 표면에서 나오는 열의 일부를 흡수하여 품고 있어서
지구를 보온해 주기도 합니다.
또한 대류현상으로 열을 고르게 퍼뜨려서 지구 각 지역의 온도 차이를
줄입니다. 이처럼 지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기권이 창조 둘째 날
조성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궁창을 중심으로 물을 위와 아래로 나누셨다 했습니다.
그러면 먼저 궁창 아래의 물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해서 지구에 있는
물입니다. 이 궁창 아래의 물은 창조 셋째 날에 한곳으로 모여 바다를
이룹니다.
다음으로 육의 세계에서 궁창 위의 물은 무엇일까요? 바로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입니다. 공기 중의 수증기는 일정한 온도에서 물방울로 응결되지요.
이런 물방울이 모이면 구름이 되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이 물방울들이 뭉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비입니다. 또 구름 속의 물방울들은
기온이 낮아지면 얼음으로 바뀝니다. 구름에서 이 얼음 입자가 형성 되어
내리는 것이 눈 또는 우박이지요.
이처럼 궁창 위에도 물이 있음으로 인해 지구 곳곳에 수분이 골고루
공급되어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비나 눈이 되어 내린 물은
태양열에 의해 수증기가 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이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물이 이처럼 일정 온도가 되면 기체나 액체나 고체로
변하게 하심으로 물의 순환이 이뤄지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현대 과학에 의해 근대에 와서야 밝혀졌지요.
그런데 성경에는 이 물의 순환에 관한 내용이 이미 수천 년 전에
기록됐습니다. 바로 욥기 36장 27-28절에 보면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 되어 비를 이루고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예레미야 10장 13절에는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 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했지요.
이 밖에도 욥기 26장 8절에는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했고, 전도서 11장 3절 전반절에는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라고 한 것입니다.
지구 전체적으로 볼 때 태양열은 초당 수십억 리터의 물을 증발시킨다고
합니다. 이렇게 증발한 수증기는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을 형성하지요.
바람과 기류는 이 구름들을 이동시키고 비나 눈으로 지면에 내리게 합니다.
이에 대해 욥기 37장 11절에도 "그가 습기로 빽빽한 구름 위에 실으시고
번개 빛의 구름을 널리 펴신즉 구름이 인도하시는 대로 두루 행하나니
이는 무릇 그의 명하시는 것을 세계상에 이루려 함이라"고 말씀했지요.
이처럼 막대한 양의 지표의 물이 중력을 역행하여 대기권으로 올라가는
것이나, 물이 필요한 지역으로 이동할 때까지 공기 중에 떠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입니다.
이런 물의 순환이 창조 둘째 날부터 바로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아직 태양이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창조 넷째 날 해와 달이 만들어진 후에야 바닷물이 증발될 수 있게
되었지요. 태양열은 수면 온도를 높이고, 달로 인해 밀물과 썰물의
작용이 생기면서 바람이 일어나 증발을 돕지요.
이런 작용을 통해 구름도 생성되고 비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로 인해 뭍에도 호수와 강이 생길 수 있었고요. 따라서 창조 둘째
날에는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어지기는 했지만
궁창 아래의 물이 아직 바다나 호수나 강을 형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둘째 날의 창조 역사로 인해 영의 세계 한 부분도 새롭게 조성되었습니다.
여기서 영의 세계란 둘째 하늘에 있는 영의 공간을 가리킵니다.
이전 Parts에 하늘들에 대해 설명해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리를 머금은
빛의 형태로 온 우주에 퍼져 계시던 때에는 하늘이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영계의 정점에 하나의 빛으로 응집하셨습니다.
이때 정점을 중심으로 바깥쪽으로 갈수록 빛의 밝기와 영의 밀도가
감소했습니다.
원래 하나였던 근본의 우주는 빛의 밝기와 영의 밀도에 따라 네 개의 서로 다른
우주가 되었습니다. 이 우주의 개념을 성경에서는 ‘하늘들’이라 표현했지요.
따라서 네 개의 우주들이란 네 개의 하늘들입니다. 이와 동시에 영계의 정점에
모아진 근본의 빛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하셨습니다.
원래 하나였던 근본의 우주가 네 개의 하늘들로 분리되던 그 당시에는
각 하늘들의 내용물은 채워지지 않았지요. 각각의 용도에 적합하게 공간만
나뉘었을 뿐 그 안의 내용물은 차후에 창조된 것입니다.
가장 먼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간인 넷째 하늘의 내용물이 조성되었지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앉으시는 보좌와 머무시는 처소가 마련된 것입니다.
이어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영적인 존재들 곧 천사와 그룹이 창조되었고,
그들을 위한 처소가 셋째 하늘에 마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셋째 하늘은 사실 천사나 그룹을 위한 영의 공간이라기보다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공간이지요.
천국이 바로 셋째 하늘에 조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천국의 처소들은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하늘이라는 영의 공간이 생긴 시점과 천국이 조성된 시점은 다릅니다.
첫째, 둘째 하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하늘들의 공간이 생긴 시점은
넷째 하늘, 셋째 하늘이 생긴 시점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우리 은하계가 있어야 할 공간에는 아직 내용물은
없는 빈 공간과 같은 상태로 존재했지요.
하나님의 천지창조 역사를 통해 비로소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 중에서
우리은하계 안의 내용물이 하나씩 채워진 것입니다.
첫째 하늘의 중요한 내용물들은 인간 경작의 무대가 되는 지구와
지구에 영향을 주는 해, 달, 별들이지요. 이런 것들은 지구 창조와
6일 창조의 시간동안 순차적으로 채워집니다.
그러면 둘째 하늘이라는 영의 공간의 내용물들은 언제 어떻게 조성된 것일까요?
바로 이 창조 둘째 날에 조성이 되었습니다.
둘째 하늘의 주된 영역은 무엇이며 어떻게 조성되었을까요?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시고 이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셨다 했지요.
앞서 이 말씀은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에 동시에 이뤄진 창조 역사를 설명한다
했습니다. 육의 세계에 궁창 곧 하늘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대기권이 형성되었음을
뜻한다 했구요.
동시에 영의 세계인 둘째 하늘의 공간은 두 개의 영역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바로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창조 첫째 날 밤에 무저갱에서 풀려난 루시퍼와 악한 영들은 둘째 날이
되자 둘째 하늘의 어둠의 영역에 머물게 됐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루시퍼와 악한 영들이 인간 경작 기간 동안 이 둘째 하늘의
어둠의 영역에 머물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루시퍼와 악한 영들의 처소가
이 어둠의 영역 안에 마련되었지요.
그리고 장차 첫째 하늘에 있는 육의 존재들을 공의 가운데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악한 영들에 대해 에베소서 2장 2절에서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
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는...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 했구요.
바로 여기에 나온 ‘공중’과 ‘악의 영들이 있는 하늘’은 같은 공간으로서
바로 둘째 하늘에 있는 어둠의 영역입니다.
이처럼 성경 곳곳에는 악한 영들이 머무는 공간이 별도로 있음을
알려 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둘째 하늘에 있는 빛의 영역에는 어떤 공간이 있을까요?
인간 경작의 열매인 구원받는 영혼들이 장차 주님과 7년 혼인 잔치를
하는 장소가 이 둘째 하늘의 빛의 영역에 조성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 보면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했습니다.
바로 여기 나온 공중이 둘째 하늘에서 빛의 영역 안에 있는 별도의 공간이지요.
그렇다 하여 혼인 잔치하는 이 공간이 창조 둘째 날에 완전히 조성된 것은
아닙니다. 천국도 주님의 부활 승천 후에야 본격적으로 조성되듯이
혼인 잔치할 공간도 이후에 조성이 되지요.
둘째 하늘에 있는 빛의 영역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은 바로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대부분은 에덴동산이 지구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주변과 중동 지역 등 이곳저곳을 탐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근래에는 에덴동산이 중동지역이 아닌 아프리카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구의 어떤 곳에서도 에덴동산의
유적이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에덴동산은 육의 세계인 이 지구가 아닌 영의 세계인 둘째 하늘에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구에서 만드신 후에 둘째 하늘의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이는 아담이 흙으로 지어졌지만 육의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혹은 살아있는 혼)이 된지라" 말씀하셨지요.
아담은 하나님의 생기로 인해 생령 곧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가 됐습니다.
이런 아담에게 적합한 공간은 이 육의 공간보다는 둘째 하늘에 있는 영의
공간이었습니다.
둘째 하늘에 있는 영의 공간인 에덴동산은 영의 세계이지만 셋째 하늘에 있는
천국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에덴동산은 분명 영의 세계이지만 에덴동산에 있는 존재가 이 땅에 온다면
육의 사람의 눈에도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 셋째 하늘의 천국에서 내려오는 천사들은 육의 사람들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령으로 만드신 아담을 위해 이 땅과는
별도로 영의 공간인 둘째 하늘에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것입니다.
이 에덴동산의 환경은 지구와 비슷하지만 영의 세계이기 때문에 식물이나
동물들도 죽지 않고, 썩거나 냄새나는 것도 없습니다. 사람이나 동물들이
음식을 섭취하지만 용변을 보지는 않습니다. 호흡을 통하여 분해하여
몸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맑고 깨끗하며,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늘 그대로 유지됩니다.
이 에덴동산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습니다.
동산이란 표현 때문에 하나의 작은 동산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지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더 넓습니다.
둘째하늘에서 빛의 영역인 ‘에덴’은 우리가 속한 육(물질)의 우주와 같은
각종 물리법칙들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곳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을 행성의 크기로 표현한다면 태양보다 더 클 수도 있습니다.
태양만 해도 반지름이 700000km 로서 지구(6400km)의 100배가 넘습니다.
구의 표면적으로 계산하면 지구 표면적의 약 10000배 이상의 크기입니다.
아담은 ‘영적인 육의 세계’인 둘째하늘의 에덴동산에서 범죄하여 하와와 함께
첫째하늘인 자신이 지음 받은 고향인 지구로 추방되기 전까지, 인간의 시간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무수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무수한 자녀들도 그곳에서 낳았습니다.
물론, 그 자녀들 역시 무수한 세월을 살면서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그 자녀들의 자녀들 역시...
그리고 에덴동산은 현재도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에덴동산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벌거벗은 채 생활하지만 죄가 없기에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서로 쳐다보며 음욕을 품지도 않습니다.
단, 그 중에서도 머리급에 속한 극소수의 부류들은 제복(유니폼)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러한 에덴동산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둘째 하늘에 있는 이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은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성경 말씀과 둘째 하늘에 있는 또 다른 특별한 공간에 대해서도
나중에 이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잠언 3장 19~2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 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는 현상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지식으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하나에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 그리고
섬세한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필요한 물을 충분히 공급받는 사람들은 물의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반면 사막과 같은 곳에서는 물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막에서도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처방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침 이슬입니다. 물론 사막에서도
오아시스가 있는 곳은 동식물이 살 수 있지요.
그런데 오아시스가 없는 사막 지역에서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아침이슬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남서부의 나미브사막에서 딱정벌레가 사는 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막은 일교차가 심하지요. 밤이 되면 공기가 냉각되어 낮 동안에
뜨거워진 공기와 섞여 아침이슬을 만들어 냅니다. 딱정벌레는 해가 뜨기 전
모래 밖으로 나와 경사면에서 얼굴을 아래로 향한 채 엎드립니다.
딱정벌레의 차가운 등에 닿은 안개는 이슬이 되어 등을 타고 내려와 입에
도달하지요. 딱정벌레는 물이 없는 사막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수분을 섭취하고,
해가 뜨면 모래 속으로 숨습니다.
이처럼 이슬은 황량한 사막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의 생명의 원천이 되지요.
마음이 순수하고 선해질수록 작은 것에서도 창조주의 신성과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대해 자세히 풀어진
말씀을 접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더욱 순수하고 선한 마음이 되어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헤아리며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의
모습으로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