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조건적 사랑
장성숙/ 극동상담삼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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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며 어느 부인이 아들을 데리고 상담소에 왔다. 어떤 상태인지 살펴보고자 아들에게 말을 시켰으나, 그는 끔벅거리며 나를 바라보기나 할 뿐 입을 떼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대략적인 개요를 그 어머니에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사업을 하느라 늘 분주했고, 자기 역시 아이를 낳고서도 계속 회사에 다니느라 바쁘게 지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하는 아들은 한껏 기대를 받으며 자랐고, 부모를 비롯한 양가 친척은 이러한 아들을 서울대생 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단다.
하지만 아들의 수능 점수가 기대했던 만큼 나오질 않았고, 재수를 한 다음 해에도 결과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고 하였다. 모두가 실망하는 가운데 본인이 삼수하겠다고 하여 또다시 군말 없이 밀어주었단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1~2시간씩 샤워를 하더니 밥도 느리게 먹고 걸음도 어기적거리며 걷는다고 했다. 그래서 빨리 좀 하라고 야단을 쳤더니, 그때부터 아들이 침대에서 일어나지를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과부하에 걸렸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에게 말을 시켰으나, 그는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다. 나를 빤히 주시하기나 할 뿐인 그 삼수생을 상대로 3~4차례 상담하는 동안 나는 그의 심정을 읊기나 하는 식이었다. 비협조적인 사람을 상대로 마주하는 게 힘들었던 나는 과연 상담을 지속하는 게 의미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미세하게나마 그가 간간이 고개를 끄덕인다든가, 아니면 살짝 입꼬리를 올리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 시작해 상담을 지속했다.
마침내 나에 대한 신뢰가 생겼는지 그는 공부가 잘 안된다든가, 공부가 지겹다든가 하는 등의 말을 느릿느릿하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에게 동조 및 공감을 퍼부으며, 어떤 취약성으로 인해 그가 재수나 삼수하는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는지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양부모 모두가 자신의 성취에 취해 바쁜 나머지 수시로 바뀌는 아주머니들 손에 양육되었다. 어쩌다 좋은 성적을 올렸을 때 부모가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봤던 그는 더 열심히 공부하였고, 그 덕분에 부모와 사이가 좋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수능에서 기대했던 만큼 점수를 올리지 못하자, 그 어머니는 실망하는 정도를 넘어 빈정대는 몸짓을 보였다. 이러한 어머니의 태도에 매우 당황하고 실망했지만, 그래도 그는 재수를 통해 명예 회복을 하겠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재수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니까, 부모는 그를 보고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자 그만 그는 무너지고 말았다.
난관을 헤쳐내기 위해서는 바쳐주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인내심의 기본이 되는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부실했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든든하게 여기며 마냥 까부는 식의 호기를 부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는 부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쓰며 자랐던 때문으로 보였다.
나는 아들에 대한 이러한 역동을 그 어머니에게 들려주며, 그에게 필요한 것은 조건 없는 격려와 지지라며 성적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자기의 부족한 점을 지적한다고 여겼기 때문인지, 자기도 참을 만큼 참았다며 항변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같이 살아보면 아들이 얼마나 속 터지게 하는지 알 거란다. 즉 애착 관계의 부실이 아니라 아들 자체가 야물지 못해 그런 결과를 낳았다며 아들을 야멸차게 지적해 달라고 당부하는 것이 아닌가.
그 어머니의 이런 반응에 나는 다소 놀라며 얼마 전에 있었던 다른 모자를 상담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어느 의대생의 어머니는 남편과 불화를 겪으면서 꿩 대신 닭이라는 식으로 아들에게 집착하였다. 마침 그 아들은 공부를 잘했고, 그 어머니는 아들을 의사로 만들겠다는 포부로 입시 뒷바라지에 열중했다.
하지만 워낙 고득점자들이 의과대학으로 몰리는 바람에 그 아들은 의과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재수하게 된 아들에게 어머니는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는 결의로 아들을 혹독하게 야단치며 맹렬하게 공부시켰다. 이러한 힘든 과정을 거쳐 마침내 그 아들이 의과대학에 합격하였으나, 원하던 명문 의대는 아니었다.
그러자 아들은 함께 재수하던 학우들은 명문 의대에 입학했는데, 자기는 그러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기에게 혹독했던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다며 온갖 불만을 어머니에게 터트리기 시작하는 거였다. 그러지 않아도 명문 의대가 아닌 것에 실망스러웠던 어머니도 그동안 헌신하며 뒷바라지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었다. 그리하여 서로 으르렁거려 편할 날이 없었다.
결국 화병에 시달렸던 그 어머니는 허탈감이 몰려와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며 나를 찾아와서는 울부짖었다. 자식도 결국 남인데 왜 그토록 아들에게 목을 맸었나 하는 후회가 밀려와 미치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을 두고 그렇게 분노하는 어머니! 뭔가 심상치 않아 살펴보니, 남편에 대한 분노를 그렇게 아들에게 터트리는 듯했다. 즉 남편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꿩 대신 식으로 아들에게 열중했다고 한다. 그런데 상담을 통해 점차 드러난 사실은 그동안 그토록 애를 썼던 것은 아들을 위해서라기보다 남들에게 비치는 자기 모습에 더 집착했다는 것이다. 즉 잘난 아들을 두었다는 타인의 평가, 허세를 부리기 위해 그토록 열중했었다는 게 확연해지자, 그 어머니는 자기가 껍데기 인생을 살았다며 많이 우는 동시에 부끄러워했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나는 삼수를 하다 무너진 아들을 둔 어머니에게 의대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러움을 사는 의과대학에 보냈어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 온정이 없으면 득보다 실이 크다고 했다. 아들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싸늘하게 대하는 건 치명적인 독이라며 그에게 필요한 것은 조건 없이 품어주는 거라고 단단히 일렀다. 특히 그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든든한 울타리로 여기지 못했기 때문인지 허약하기 짝이 없다며 학업에 대한 기대는 접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학업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게 좋다는 말에 팩하며, 공부를 못하면 장차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고 대뜸 반박하는 게 아닌가. 답답해진 나는 아들을 제대로 보라며, 남도 아닌 어머니가 어떻게 그러냐고 다소 쓴소리를 했다. 나아가 덧붙이기를, 아들이 낸 성과에 실망하여 빈정댄 것은 화가 났다는 증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화의 근원은 욕심이라며 아들에 대한 욕심을 거두고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면, 앞으로 더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후 상담 약속은 취소되었다. 학업 성과에 대한 기대를 접으라는 것과 쓴소리를 한 것에 대해 토라진 듯했다. 아마 자기 구미에 맞는 상담자를 찾아간 것 같았다.
가까스로 그 아들과 소통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를 다시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나는 미안하고 애석했다. 딱한 그를 위해서라도 나는 좀 더 그 어머니의 근기에 맞춰야 했다는 후회를 한동안 했다.
첫댓글 조건적 사랑이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어머니나 그 자식이나 참 어려운 지경에 빠진 것 같네요. 부모 자식 관계는 어려운 숙제입니다.
"화의 근원은 욕심"
좋은 상담사례 소개
감사해요..
13일동안 미 대륙 종단 5200마일 드라이브 하고 왔네요..
대평원을 지나고
험한계곡
울창한 숲
빙하호수 등등
하루 보통 6시간 이상 운전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