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분을 놓고 고심하는 여성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남편과 다투다 나를 찾아온 부인은 내게 제삼자로서 누가 합당한지 알려달라며 상황을 이야기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부모는 삼 남매를 낳아 키우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도 오빠는 아들이라고 대학교를 보냈는데, 딸인 자기와 여동생은 고등학교만 마치게 했단다. 비교적 공부를 잘했던 자기는 공부가 하고 싶어 도시로 나와 일하며 늦게라도 공부를 이어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하였고, 슬하에 두 아이를 두고 있단다. 그런데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손해를 많이 봤다고 한다. 그리하여 어렵게 마련한 집을 처분하고 현재는 월세로 어렵게 지낸다고 했다.
남편이 전에는 반듯했는데 경제적 타격을 입은 후부터는 은근히 처가의 도움을 바라더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무슨 객쩍은 소리냐며 자기는 그런 남편을 무시하며 지나쳤단다. 그런데 근래에 부모가 전 재산을 아들에게 증여하겠다고 하자, 남편이 자기에게 본인의 지분도 찾지 못하는 등신이라고 하여 대판 싸웠다는 것이다.
자기는 어려서부터 오빠가 얼마나 부모의 소중한 존재인지를 봐왔고, 재산에 관해서는 부모가 악착스럽게 번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누구에게 주느냐 하는 것은 부모님의 권한으로 여긴다고 했다. 딸들에게도 나눠주면 좋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재물욕을 부리는 남편을 보고 ‘이런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실망했고, 이제는 그와 살기 싫을 정도의 마음이 든다고 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자 했다. 그 부인의 말이 반듯하게 들렸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남편을 불순한 사람으로 몰아 부부간의 갈등을 더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담은 인간관계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분야로 화합이나 균형을 중시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그 부부가 화합을 이룰지 궁리하며, 그녀가 어떻게 자랐는지 또 현 상황에서 간절한 게 무언지 살펴보고자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려서부터 똑똑했던 그녀는 무엇이든지 알아서 척척했고, 그럴 때마다 잘한다고 강화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아들 선호가 심했던 부모는 딸인 그녀가 오빠보다 공부를 잘했음에도 대학교 진학을 시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부모에게 떼쓰지 않고 홀로 도시에 나와 고생스럽게 돈을 벌어 진학하였고, 이렇게 아무에게도 손 벌리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게 그녀의 자존심인 동시에 그녀를 꿋꿋하게 지탱하도록 하는 가치관이었다.
현재 어떻게 사는지 물어보니, 그녀는 전에 살던 아파트는 처분하고 현재는 월세로 살지만 견딜만하다고 대꾸했다. 맨주먹으로 서울에 올라와 주경야독할 때와 비교하면 고생도 아니라고 하였다.
이렇게 어디를 봐도 건전하면서도 자립적인 여성이었지만, 어느 시점에서 자기 틀에 갇혀 완고함을 드러냈다. 빚 때문에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 것도 다 끊었던 게 가슴 아팠지만, 이것도 그들이 견디어야 할 운명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데서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한참 자라나는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운명이니 팔자니 하는 말을 적용한다는 게 다소 어색했다. 다시 말해, 죄 없는 아이들을 고생시킨다며 자책하기보다 그들이 겪어야 할 운명 운운하는 게 낯선 나머지, 그녀가 자신의 잘난 맛에 도취해 사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이 부인을 상담하며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학창 시절 어렵게 살다가 의사와 결혼한 어느 부인은 남편이 좋은 차를 사려고 하자, 소박하게 사는 덕목을 강조하며 소형차에 만족하라고 남편을 설득했다. 이러한 아내의 주장에 머쓱해진 남편은 아내의 의견을 따랐는데, 집단상담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철쭉 님은 그녀가 한쪽으로 치우쳤다며 그녀의 눈을 틔우고자 애썼다.
일반적으로는 근검절약하며 사는 게 바람직하지만, 그것도 지나치면 폐단을 낳고 만다는 게 철쭉 님의 관점이었다. 수도자가 아닌 일반사람은 일반인답게 살아야 자유롭다며, 모든 게 자신의 격에 맞아야 하는 거라고 그 부인을 설득했다. 마침내 자기가 한쪽으로 치우친 나머지 남편을 구속했다는 점을 알아차린 그녀는 집에 돌아가 남편에게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했다. 나아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어색해하는 자기네들과는 다르게 자녀들은 폭넓은 경험을 익히도록 돕자는 포부를 남편에게 밝혔다고 하였다.
나는 남편과 싸웠던 그 부인에게 의사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솔직히 부모에게 야속한 점이 있지 않으냐고 묻자, 그녀는 한참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다소 누그러진 부인에게 나는 다시금 말하기를, 부모의 돈을 그들 뜻대로 쓰도록 하는 게 합당한 말이긴 하다고 했다. 하지만 독립적이면서 부모에게 냉랭함을 지니는 것보다는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부모와 돈독해지는 게 더 나을 듯하다고 하였다. 그것이 돈에 목이 타는 배우자를 약 오르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마음가짐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즉, 그녀가 지닌 꼿꼿함 속에는 아쉬운 소리를 안 하겠다는 배타적인 결기가 담겨있는 것 같아 썰렁함이 배어 나온다고 말했다.
배타적인 결기라는 말에 그녀는 주춤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에 와서 홀로 악전고투할 때 오빠에게는 모든 지원을 해주면서 자기에게는 무심했던 부모를 원망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망하는 마음을 계속 지니고 있으면 자기가 망가질 것 같아 억압을 거쳐 과도하게 독립적으로 된 것 같다고 했다. 한마디로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 부인이 상담을 마치고 집에 가서 자기가 지나치게 재물욕이 없는 양했던 것 같다며 남편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그러자 남편도 아내에게 자신의 몫도 못 챙기는 등신이라고 비난했던 자신의 말이 심했다며 사과하더라고 했다.
아무튼 그 이후 그녀는 부모님에게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하며, 부모가 아들만 챙기니까 남편 보기에 민망해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단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자녀들이 학원에도 가지 못하는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부모님도 마음이 동하는지 아들만큼은 아니어도 딸들에게도 다만 얼마씩이라도 배분하겠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행 상황을 전해 들었던 나는 이상과 현실 간에 충돌이 있을 때, 더 비중 두어야 할 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했다. 현실은 실재적인 삶이 영위되는 현장으로 특히 일반인에게는 그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저 높은 가치를 추구하며 표리부동하게 사는 태도를 보이곤 한다. 뭐든지 자기 수준에 맞아야지 과도하게 이상이 크면 겉돌거나 비현실적이 되고 만다. 즉, 실질적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그것을 표현할 용기를 지니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첫댓글 "이상과 현실 간에 충돌이 있을 때, 더 비중 두어야 할 것이 현실"
좋은 상담 사례
감사해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