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준원 미카엘 신부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2티모테오 1,1-8 루카 10,1-9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 일흔 두명을 지명하시어 당신에 앞서 전도 여행을 보내십니다.
그러시면서 제자들에게 돈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장을 가볍게 하여 받기 보다는 주는 사람이 되어라는 말씀이며,
길에서 사소한 일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하는 말씀입니다.
오로지 하느님께 의탁하며 정성껏 부지런히 하느님 말씀을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 교우들이 방문을 할 때 늘 하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실 때도 수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 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느님에 의한 평화가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이 세상에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인간을 만드시고(창세1,26),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창세2,7).
말하자면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고, 그 영혼은 하느님으로부터 왔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자체가 하느님으로부터 왔으므로 내 마음이 하느님을 향하고,
하느님을 묵상할 때 가장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성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는 ‘꽃들이 태양을 향해 자라는 것처럼
인간의 내적 갈망은 하느님을 향해 있다’라고 말씀하시며,
‘내 마음이 당신 곧 하느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 까지 내게 참 평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느님과 함께 하고 하느님 안에 있어야 참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늘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처럼 너희들을 보낸다고’하셨습니다.
여러분, 이리떼와 양들이 비교가 됩니까? 양들은 바로 잡아 먹혀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양들이 자신만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간다면 이리 떼를 이길 수 있습니다.
보내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보내시는 분이 보내실 때는 이 일을 책임지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며 지켜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시편에서는 우리가 어둠의 골짜기를 가거나, 재앙을 당할지라도 주님께서 함께 계시어
당신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지켜 주신다 (시편23,4)고 하셨고,
예수님께서도 총독이나 임금들 앞에서 다른 민족들에게 주님을 증언할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말라,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10,19-20)하셨고,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28,20)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끝까지 함께 하시고 지켜 주심으로 제자들은 담대하게 온 세상에 나가서
주님의 평화, 사랑, 진리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기에 앞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하시며 먼저 기도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다른 때도 일꾼이 필요하지만 수확할 때는 더욱 일꾼이 필요합니다.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제자들이고, 또 모두 수확을 위해서 주님으로부터 파견받은 일꾼들입니다.
교회에 좋은 성직자, 좋은 수도자 일꾼뿐만 아니라
좋은 평신도 일꾼도 많이 보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 부산교구 윤준원 미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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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혁 신부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2티모테오 1,1-8 루카 10,1-9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성 티모테오와 티토 주교 축일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아 이 두 분에 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이 두 분은 그 업적으로 알려지기보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을 통해서 더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이 두 분 주교는 바오로 사도의 협력자로서 바오로와 함께 전교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새로 형성된 공동체를 맡아 감독으로써 봉사를 하였습니다.
티모테오라는 이름은 ‘하느님을 공경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티모테오는 성실하고 신앙이 두터운 바오로의 협력자로서, 사도행전 16장 1절에 보면
리스트라에 있는 제자의 한 사람으로 처음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그를 참 믿음의
아들로 여겨, 아들처럼 사랑하고 신뢰하여 여러 가지 충고와 권면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는 바오로 사도가 리스트라에서 설교할 때 그의 제자가 되었으며,
그 후 바오로의 친구이자 오른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말썽을 방지하기 위해서 할례를 받은 후, 바오로의 제 2차 전교 여행을 수행하였습니다.
바오로가 유대인의 적개심 때문에 베레아를 몰래 빠져나갈 때,
티모테오는 그대로 남아 있다가 테살로니카로 파견되어 그곳의 상황을 보고하고,
또 박해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였습니다.
58년, 티모테오와 에라스토스는 마케도니아로 파견되었으며,
그 후 코린토로 가서 바오로의 가르침을 명심하라는 권고를 하였습니다.
바오로가 체사레아에서 투옥되고 로마로 이감되었을 때 같이 있었고,
그 후 에페소로 가서 그 곳의 초대 주교로 봉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디아나를 공경하는 이교 축제를 공식적으로 반대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였습니다.
티모테오에게 보낸 서간의 내용을 보면, 교회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들은
봉사자로서의 올바른 행동과 자격을 갖추어야 하며 거짓 교사들과 이단에 대항하여
겸손한 태도를 지닐 것을 권고합니다.
1세기말 아시아 교회 전역에는 율법교사로 자처하면서도(1티모 1,7) 꾸민 이야기와 족보에
정신이 팔려(1,4) 결혼을 금하고 음식을 절제하며(4,3) 부활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2티모 2,18) 이들이 여기저기서 늘어났습니다.
다른 이들의 신앙까지도 뒤흔들어 놓는 교회의 암적인 존재들인 이들에 맞서,
바오로가 전해 준 그리스도교 사상만이 참된 삶의 길이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모두 선해서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사실(1티모 4,1-5)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되 각 사람의 형편에 맞추어 권면하라고 하면서
언제나 복음을 선포하라고 촉구하면서 마지막으로 자신이 받은 은사를 개발하고 성장시키는데도
소홀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티토 주교는 바오로에 의해 개종한 후, 그의 비서가 되어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티토는 바오로의 믿음의 아들이며, 그의 훌륭한 협력자였습니다.
다바오로는 그를 코린토로 파견하여 오류를 시정케 하면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신자들을 위한
헌금을 모금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바오로에 의해 크레타의 주교가 됩니다.
나중에 그는 달마시아를 방문한 뒤 크레타로 돌아와서 운명한 듯합니다.
법률가 제나가 쓴 "티토행전"에 그의 행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바오로가 티토에게 보낸 서간에서 보면 착한 목자가 지녀야 할 자질로,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고 자녀가 신앙인이어야 하며, 방탕하지 않고 순명하며,
술꾼이어서는 안 되고, 난폭하거나 탐욕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유다인들의 신화와 진리를 저버리는 인간들의 계명을 멀리 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 서간은 티모테오에게 보낸 서간과 함께 성직생활에 대한 많은 교훈을 담고 있어서
사목서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전교를 위해서 바오로 사도나 티모테오, 티토 주교와 같은 고생을
무릅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실상 더 쉬워지고 기회가 많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전교는 더 미미해 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신앙 안에서 우리 인생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과 늘 함께 하는 삶을 살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
/ 부산교구 박 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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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근 바오로 신부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2티모테오 1,1-8 루카 10,1-9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십니다.
열두 제자 외에도 제자들이 있었다는 표현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열두 제자에게 하신 말씀이 주어집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과는 인사도 나누지 뭇하게 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인지요?
아무것도 지니지 않아야 절박한 마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만 의탁하며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이 방해받을까 봐 사람들을 만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무의식중에 하소연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평화를 빌어 주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평화는 빌어 주는 사람에게 먼저 찾아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가 평화스럽지 못하면 기쁨의 전교가 될 수 없습니다.
마음에 평화가 있어야 기쁨의 주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언제라도 마음의 평화가 먼저입니다.
우리 삶이 평화를 만들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불화를 일으키고 있다면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과감히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평화는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 마산교구 신은근 바오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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