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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원씨"
"네"
"나이 29에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어디계시죠?"
"..."
"절도죄면 형량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
"변호사 안 부르나요?"
내 머리속은 백지상태였다. 경찰서라는 곳은 처음 와봤고 변호사를 부르라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았다. 내가 지금 통장에 가지고 있는 돈이라고 해봤자 겨우 100만원이 조금 넘을 뿐이였고,
조만간 월세를 내야하며, 내게 되면 100만원이 채 안될 수도 있었다.
"마트 측에서 합의금 2000만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네? 뭐라구요? 전 훔치지 않았는데요?"
"무슨 소리를 하는거에요. CCTV를 보았을 때 꾸준히 마트에 들렀던 거 같은데요. 왜 집에서 굳이 멀리까지 와서 이 마트를 이용한겁니까?"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마트 측에서 간간히 없어진 물건이 꽤 된다고 합니다. 생필품 위주로... 주원씨 전과 기록이 없지만 직업이 없고 원룸 생활에, 정황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는거 아시죠?"
"..."
"빨리 끝낼수도 있지만 최악은 교도소에 수감될 수도 있습니다."
"..."
"뭐...마트에서 그 동안 생필품들에 손댔다면 빨리 인정하고 합의금 내고 나가요."
"전 안 훔쳤어요."
"물론, 안 훔쳤겠지"
형사는 존대 표현을 갑자기 멈추었다.
"주원씨 당신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건대? 빨리 어머니 연락해서 돈 챙기고 합의금 내서 끝내요."
난 살인범을 쫒느라 미처 그 생각까지 하지 못했다는 말이 목구녕까지 넘어나왔다. 이런 취급을 받을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백수라는 위치가 이렇게 최악의 경우가 될 수 있는지도 몰랐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사는 소시민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될지 모르는 판국이었다.
"당신 조사하면 다 나와. 계속 이렇게 하면 서로 안좋아요. 전에는 운이 좋았더라도 지금은 아니야."
"빨리 끝내고 싶어 하시는 군요."
난 형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억울함은 둘째였다. 난 아무 힘도 없고, 돈도 없는 약자일 뿐 이였다. 여기서 난 절도범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이었다.
절도범이 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고 쉬웠다. 부정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콧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냥 모든 것을 생략하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지 우선은 이 상황만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형사의 눈은 정말 한심하다는 듯이 날 보고 있었고,
언제든 들고있는 수첩으로 내 머리를 내려칠 기세였다. 전과가 있었다면 진작에 내리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마치 영화에서 처럼...
그 날 하루는 유치장에 있어야만 했다.
핸드폰에는 아는 사람이라곤 수진이과 편의점 사장님 전화번호 정도 밖에 없었고, 기껏해야 연락안되는 친구들 뿐이였다.
검은 때까 바닥에 끼여있는 유치장과 손 때를 타 반질거리는 철창안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였다. 그러는 동안에 형사들은 편안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
난 구역질이 났다. 순두부 찌개의 냄새가 내 위장속을 뒤흔들어 놓아 난 변기에 오바이트를 한 껏 해댔다. 기껏해야 나오는 것은 아침에 먹을 짜짜로니 같은 면발들이었다.
어김없이 어느 새 검었던 하늘이 새파랗게 밝아오고 있었다. 난 곰곰히 생각했다. 나에게 변화는 없을것이다. 나가게 된다 해도 기껏해야 백수이거나 운전수나 내가 원했고 갈망했던 것들은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곳에 소속되기 위해 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았을 때, 그곳이 교도소가 되건 사회가 되건 나에겐 의미없는 일이었다. 내가 밖에서 100만원이 조금 넘는 잔고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내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수진이한테 전화한번 해볼까?'
난 경찰관에게 전화를 요청했다. 다행히 경찰관이 수락했다.
난 수진이에게 전화를 해서 본의아니게 마트에서 물건을 가지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물론 내가 그런 험악한 일을 경험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었다.
어차피 수진이도 믿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고, 여기 경찰서에서 그런 말을 했다간 살인 혐의까지 뒤집어 쓸 판이었다. 난 말을 하면서 내 목소리가 유난히 떨렸었고,
내가 왜 수진이에게 이런말을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수진이와 대화를 하는 도중 난 행여나 수진이에게 합의금 정도의 금액이 있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수진이 역시 형편이 매우 어려운 상태였고, 아마 간신히 대학을 졸업할 정도 밖에 안될 것이다.
"전 형이 그런 짓 하지 않았다고 믿어요. 아마 착오가 있었을 거에요."
"수진아, 부탁이 있는데..."
"형, 제가 합의금 좀 구해볼까요?"
난 그럴 수 없었다. 우리에게 2000만원은 너무나도 큰 돈이고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실제로 밤을 새가면서 일을해도 벌기 힘든 돈이다.
"수진아, 그런 말 하려고 너에게 전화한거 아니야. 그냥 간단하게 변호사 찾아가서 자문만 좀 받아줄래.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
"형량이 혹시 정해지게 되면 내 신변 정리 좀 부탁해. 원룸이나 뭐 물건 같은거..."
갑자기 수진이가 전화기에 숨죽이고 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조용하고 나직하게 그리고 약간 거칠어 보이는 숨소리였다.
"형,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응, 고마워, 아마 내 생각에는 재판까지는 약간 여유가 있을거야. 내일 모레는 여기서 나갈 수도 있어."
"배고프진 않아요? 뭐 먹을거라도..."
"나 괜찮아. 너 일하러 가야 하잖아. 아무튼 고마워.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난 방치하기로 했다. 죽을 용기도 없었지만, 구태여 열심히 살 용기도 잃어버렸다. 아니 용기보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나에게 돈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편의점 사장님이 날 신뢰한다고는 하나 한갖 아르바이트생이었을 뿐이고, 절도죄로 여기가지 왔다면 믿지 않을 것임이 뻔했다.
내가 쌍안경으로 그러한 일을 목격하여 이런 말도 안되는 누명을 뒤집어 썼다고 믿어줄 사람은 없다.
하루가 더 지나고 난 풀려났다. 도주의 우려도 없고, 변호사나 그 밖에 신변 정리할 게 있으면 하고, 재판 준비도 해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난 2틀만에 원룸에 와서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화장실의 타일 사이사이에 칫솔에 치약을 묻여 깔끔하게 때를 벗겨냈다. 세면대의 구멍에 옷걸이 철사를 집어넣어 모든 노폐물을 빼내고,
왁스를 뿌렸다. 난 잘못이 없다는 것을 청소로 증명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청소를 한 덕택에 이렇게 내 집이 이렇게 깨끗한지 처음 알게 되었다.
방안을 둘러보았을 때 참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북하고 수험책들은 수진이에게 주면 되겠구나.'
'수진이에게 넘기기 전에 이불도 빨아놔야겠다.'
'간만에 피죤으로 향기도 내보겠네.'
'그리고 옷도 겨울옷은 싸놔야 겠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 찔끔 눈물이 나오는 것을 애써 참았다.
한달 후 재판이 시작되었다. 마트 측에서는 내가 기존에 여러번 마트를 들렀었고, CCTV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집과 동떨어진 곳에서 물건을 샀던 점,
마트의 CCTV 역시 사각지대라 있다는 점에 대해 나를 고소하였다. 어떤 녀석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CCTV 사각지대를 잘 아는 녀석인지 잘도 2000만원 어치나 꾸준히 훔쳤던거 같다.
아마 마트 내 직원일 가능성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이에 별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말주변이 그렇게 좋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내가 자문을 했던 변호사 역시 날 믿지 못했고, 정황 자체가 불리하니 만큼 자백을 하고 최대한 형량을 줄이라고 권고 했다.
"혐의를 인정하십니까?"
"예"
"이주원씨는 형법 329~332조에 따라서 낮에 타인의 재물을 가져갔으므로, '단순절도죄'에 해당되겠습니다. 최소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이하 벌금이 선고되나,
직업이 없고, 기타 절도에 관한 이력이 없으며 자신의 허물에 대한 반성이 있기 때문에 징역 2년을 선고합니다."
간단하고 명료하였다. 거짓이 용인되지 말아야 할 곳에서는 의외로 쉽게 거짓이 용인되는 공간이었다. 나는 재판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2년, 남자에게 있어 군대 정도의 기간이었다.
생각보다 큰 형량에 난 잠시 후회스러웠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난 넘지말아야 할 선을 넘어 돌아올 수 없는 저편으로 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날 그래도 필요로한 존재로 봐준 수진이나 편의점 사장님이 떠올랐다.
죄가 없지만 난 왜 그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이 드는 것이었을까? 꿈만 같은 현실이었다.
수진이에게 문득 연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보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