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났습니다.(욥2:7) 살에 구더기가 슬었습니다.(욥7:5) 고통을 견딜 수 없습니다. 욥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은 병입니다.(욥2:7) 병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기도 하지요. 생명이 붙어있지 않다면 고통이 없을 터. 욥은 그래서 생명의 시작이었던 생일을 저주합니다.(욥3:1~16)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것은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을 저주하는 겁니다.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던 아내의 악다구니가 욥의 진심이 되었습니다.(욥2:9)
생일을 저주할 만큼 사는 것이 고통인 욥에게 영생보다 더 큰 징벌은 없습니다.(욥7:16) 욥은 노예가 일을 쉬는 저녁을 기다리듯,(욥7:2) 생명 너머의 죽음을 학수고대(鶴首苦待)합니다.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욥3:17~19) 욥은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고 싶습니다.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욥7:15)
선택할 수 있다면 욥은 죽고 싶습니다. 월급쟁이들이 월급날을 기다리듯이 욥은 죽음의 순간을 기다립니다.(욥7:2) 꿈틀거리는 구더기를 품고 사는 욥에게 죽음은, 노예가 기다리는 저녁그늘같이 편안한 것입니다. 욥에게 죽음은 품꾼의 삯같이 달콤한 것입니다. 욥에겐 죽음이야말로 편안하고 달콤한 유혹입니다.
욥은 죽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욥7:16) 욥은 하나님에게 그 편안하고 달콤한 죽음을 주시라 기도합니다.
죽여 달라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거절하십니다. 하나님의 육성이 들리진 않았지만 기도하는 중에 욥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욥7:19) 단말마 같은 고통 속에 ‘나를 놓아 달라’ 기도했지만, 욥은 ‘침을 삼킬 동안도 놓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깨닫습니다. 깨달음이 고통을 감해주는 건 아닙니다. 깨달음은 오히려 고통의 뿌리를 직시하게 합니다.
양 칠천 마리, 낙타 삼천 마리, 소 오백 겨리, 암나귀 오백 마리를 소유하고 있었을 때라면,(욥1:2~3) ‘침을 삼킬 동안도 놓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분명 찬양의 대상이지만, 셀 수 없는 구더기 떼만 소유한 지금, 욥은 하나님의 손길이 닿는 게 끔찍하고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것도 싫습니다. 하나님의 손길도 눈길도 다 고통만 주는 ‘전능자의 화살’ 같습니다.(욥6:4)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욥7:20) 욥은 기도하기를, 제발 자신에게 관심 갖지 말아 달라 요청합니다.
욥의 기도에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저주 섞인 불평을 듣지 않으시고,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욥을 보고만 계십니다. 욥의 저주와 불평에도 하나님의 침묵은 깨지지 않습니다. 고통당하는 사람 앞에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야속합니다. ‘한 말씀만 하소서’울며 기도해도 하나님은 왜 말씀하지 않으실까요?
욥의 소식을 듣고 멀리서 친구들이 왔습니다.(욥2:11)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이 욥의 형편을 보고는 ‘겉옷을 찢고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며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욥2:13)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 침묵은, 욥의 고통을 마주한 친구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이었습니다. 지혜로운 장광설로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현자보다, 침묵 속에 몸속을 파고드는 구더기를 집어내는 손이 귀합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닙니다. 내 고통을 슬퍼해주는 사람들의 인기척입니다. 함께 슬퍼하는 사람들의 인기척을 느낄 때, 친구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욥의 불평을 듣고는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이 발끈하여 잔소리 해대기 시작하는데, 정작 욕먹는 하나님은 침묵을 깨뜨리지 않으십니다.(욥4:2;8:2) 침묵하시는 하나님은 어쩌면, 참 무능하십니다. 욥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침묵은 분명 무능한 것입니다. 침묵이 지속되며 하나님의 전능에 대한 의혹도 증폭되지만 우정은 여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무능하다는 오해를 받으며, 고통당하는 사람과의 우정을 지키십니다.
아직 침묵하시는 하나님은, 여전히 변함없는 친구이십니다.
첫댓글 현재의 제사정에 비추어볼때 너무나 공감이
갑니다 ''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저도 듣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