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던 출판사 직영 북카페가 홍대로 진출했다. 2년 사이 홍대 인근 안에만 10여 곳이 생기며 ‘출판사 북카페 시장엔 불황이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출판사가 홍대에 있는 사옥 공간을 활용해 임대료 부담 없이 카페를 운영하면서 출판사 북카페 돌풍을 이어나가고 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유행처럼 번지던 북카페 열풍은 사라진지 오래다. 커피 한잔 시켜 놓고 장시간 책을 보거나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어려웠던 것. 하지만 출판사 북카페의 성격은 조금 다르다. 출판사는 오프라인에서 자사 책을 홍보하는, 일종의 쇼룸 개념으로 카페를 활용한다. 카페 운영이 수지타산에 안 맞더라도 카페를 통해 책을 홍보하고 판매하면 된다.

▲ 출판사 '문학동네'의 '카페 꼼마' 입구.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유동 인구가 많고 트렌드 세터들의 활동 무대라는 홍대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이는 출판 시장에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온라인에서 책을 상품으로 소비한다면, 오프라인에서는 책을 문화로 소비하는 경향이 크다. 동네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이 사라지고 온라인 서점 위주로 재편된 출판 시장에서, 출판사 북카페는 오프라인 서점에 다시 힘을 싣는 좋은 문화적 기반이 될 수 있다.
기자는 토요일 오후, 요즘 가장 ‘핫'하다는 출판사 직영 북카페 네 곳을 방문했다. 출판사 북카페 열풍을 증명이라도 하듯 카페는 다양한 손님으로 북적였다. 카페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며, 은은한 종이 냄새와 진한 커피 향을 동시에 전했다는 출판사 북카페, ‘신(新) 문화의 공간’으로 지금 여러분을 초대한다.

▲ 출판사 '후마니타스'의 '후마니타스 책다방'
2011년도에 오픈한 ‘후마니타스 책다방’은 홍대 인근에 위치한 출판사 직영 북카페의 원조다. ‘후마니타스’는 인문학을 뜻하는 라틴어로, 사회성이 강한 책을 만드는 출판사. 사회성 있는 책을 만드는 것처럼, 책을 만드는 과정과 결과에도 사회성을 부여하고자 북카페를 만들었단다.
카페 관계자의 말이다. “보통 출판사 사람들은 칸막이 쳐진 자신만의 공간에서 온종일 원고와 씨름한다. 출판사와 북카페가 공존하는 사회적 공간에서 재미있게 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카페를 오픈하게 됐다.”

▲ 카페 안에 위치한 출판사 영업부와 대표 사무실
이러한 이유에서 후마니타스 책다방에는 출판사가 통째로 들어와 있다. 카페의 문을 열면 벽면을 가득 채운 책과 통유리로 된 방이 가장 먼저 보인다. 언뜻 보기에 흡연실처럼 보이는 이곳은 출판사의 ‘엔진’과도 같은 편집부다. 편집자는 그 안에서 자료를 찾고 원고를 본다. 편집부 건너편 통로에는 영업부와 대표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카페인지, 출판사인지 분간이 안 간다.
손님은 저마다 바쁘다. 노트북을 놓고 작업하는 사람, 책을 보는 사람, 이곳저곳 구경하는 사람 등 소리 없는 활기가 넘친다. 구석 테이블에서는 편집자와 표지 디자이너의 미팅도 진행되고 있었다. 이렇듯 한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던 이곳, 후마니타스가 진정으로 바랐던 이상향이 아닐까.
후마니타스 주소&전화번호 : 서울 마포구 합정동 413-7 1층, 070-4010-7737

▲ '꼼마'의 자랑인 15단 책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학동네’에서 운영하는 ‘카페 꼼마(Cafe Comma)’는 가장 성공한 북카페로 평가받는다. 1호점의 성공에 힘입어 더 넓게 지어진 2호점은 조금만 늦게 가도 앉을 자리가 없다. 특히 카페 명당으로 꼽히는 위쪽 소파 자리와 1인 좌석 자리는 오픈 시간인 7시 40분부터 부지런한 손님으로 꽉꽉 채워진다. 하루 평균 400~500명이 방문하는 명소답다.
꼼마의 매력은 15단 책장의 위용에서 드러난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15단 책장은 웬만한 건물 2층 높이에 가로 길이는 16m에 육박한다. 한쪽 면은 책장, 나머지 삼면은 통유리로 이루어진 꼼마는 한눈에 보기에도 예쁘다. 특히 지난해 SBS 드라마 <드라마의 제왕>과 올해 <결혼의 여신> 촬영 장소로 등장하며 북카페 끝판왕으로 자리매김했다.

▲ 높은 곳에 꽂혀 있는 책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꺼내면 된다
책장에 꽂힌 모든 책은 5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문학동네 책뿐만 아니라 계열사 책까지 만나볼 수 있어 종류 또한 풍부하다. 신간은 10%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데, 출간되고 두 달이 지나면 역시 50% 할인된 가격으로 만나 볼 수 있다. 책장에서 이뤄지는 매출만 매달 2000만 원 정도니, 커피를 많이 팔지 않아도 남는 장사다.
꼼마를 주 3회 이상 방문한다는 회사원 김준익(34) 씨는 이곳에서 구입한 김영하 소설을 보여주며 말했다. “예전에는 북카페라고 하면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분위기를 상상했는데, 여기는 보다 자유롭다. 특히 책을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게 참 좋다. 굳이 서점에서 제값 주고 책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 꼼마의 다양한 공간
꼼마는 지난달, 서울시의 일환으로 추진됐던 <시(詩)의 도시 서울 프로젝트>의 ‘시가 있는 카페’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유안진 시인과 이승하 시인을 초대하여 독자와 시인과의 만남, 시와 음악이 있는 공연 등을 통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앞으로 출판사 북카페의 선봉에서 활약할 꼼마의 모습이 더욱 기대된다.
카페 꼼마 1호점 주소&전화번호 : 서울 마포구 서교동 408-27 1층, 02-323-8555
카페 꼼마 2호점 주소&전화번호 : 서울 마포구 동교동 155-27 1층, 02-326-0965

▲ '다산북스'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中
‘다산북스’에서 오픈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하 나나흰)’에 들어서니 벽면 크게 써져 있는 백석 시인의 동명 시가 눈에 띈다. 시를 차차 읽어 내려가니 이 겨울에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눈길을 옆으로 돌리니 노트북으로 작업 중인 손님이 유독 많아 보인다. 자리마다 콘센트가 설치돼 있는 1인 좌석 덕분이다. 콘센트에 고픈 우리네에게 카페 중앙에 배치돼 있는 1인 좌석은 오아시스와도 같다.
다산북스 관계자는 “무명의 빈털터리 작가인 조앤 K. 롤링이 <해리포터>를 쓴 곳도. 생텍쥐베리가 <어린왕자>를 쓴 곳도 집 앞 작은 카페였다”며 “우리 카페에도 글을 쓰는 분들이 많이 찾는다. 그분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테이블마다 콘센트를 설치했고, 오랜 시간에도 눈이 피로하지 않도록 조명에도 신경 썼다”고 전했다.
▲ '다산북스'의 책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나나흰이 특별한 이유는 출판사 북카페 중 최초로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이다. 열심히 과제를 하던 중 카페가 문 닫을 시간이 돼서 부랴부랴 나왔던 기억이 있다면 이곳을 방문해보자.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밤새 책을 읽고 싶을 때 방문하는 것도 오케이. 20~50% 할인된 가격에 다산북스 책 구입도 가능하다. 단, 매주 일요일 밤 12시부터 월요일 오전 7시까지는 휴무라니 방문 시 주의하자.
나나흰 주소&전화번호 : 서울 마포구 서교동 395-27 다산빌딩 2층, 070-4820-4811

▲ '혜원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1984'
평범한 북카페를 생각하고 이곳을 방문했다면 처음엔 당황함을 금치 못할 것이다. 책보다는 각종 예술 문화 상품이 더 많은 까닭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영향을 받아 동명으로 오픈된 이곳은 문화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문화적 자생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혜원출판사’의 의지를 담은 공간이다.
복합문화공간의 모습을 띠는 1984는 이색적인 매력으로 가득하다. 1984에서는 예술, 음악, 패션, 라이프를 기반으로 문화 요소와 관련된 콘텐츠 생산 및 판매가 이뤄진다. 브랜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문화적 소통을 하는 것이 1984의 희망. 이 때문에 책을 읽으러 온 손님보다는 이곳의 문화 자체를 즐기러 온 손님이 더 많다.

▲ '1984' 직원 김서원(21) 씨
지난달 우리나라를 방문한 영국 주요 문학출판사 편집장단은 1984에서 '현대 영국문학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듣는다'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올해 10월에는 ‘한국 힙합 사진 전시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카페 직원 김서원 씨는 “작년 9월에 오픈한 1984는 복합문화 라이프를 지향하는 공간이다. 앞으로 홍대의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1984 주소&전화번호 : 서울 마포구 동교동 158-24 혜원빌딩 1층, 02-325-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