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존중사상은 사회와 인류를 위하는 길이며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지요
노자의 삼보가 생각납니다
자연을 자애롭게 대하고
검약하므로 자원을 아껴쓰고
겸허하게 사는 것이니
노자께서는 ‘나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어
그것을 지니고 보존하고 있다
그 하나는 자애(慈愛)라(67)’
이것은 결국 석가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의 합성어로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찌 착하게 않겠나
‘그 둘은 검약(儉約)이라(67)’
사람이 생활을 검소하고 절약하면 남을 것이고
남는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 도울 수 있다
‘그 셋은 감히 천하보다 앞서는 일을 하지 않는다(67)’
이 말은 다른 표현으로 하면 겸비(兼備)하여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즐겨 있으니
다른 일이 없을 것이고
다투지 않으니 남은 해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석가의 뜻은 아니라고 보지만
불교의 삼보는 무엇인가
불은 부처를 섬기고
법은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며
불교의 조직인 종단을 숭상하라고 전하는데
과연 이것이 석가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td bgcolor="white"><p><font face="굴림" size="2" color="black"><!-- Cut here -->[함석헌탄생100돌] 생명의 씨앗이여 온전하게 자라나라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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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은 일평생 씨앗을 사상적 화두로 삼았다. 스스로 싹트고 자라
삶의 주인으로 서는 씨앗을 즐겨 민중에 비유하며 정립한 그의 씨ㅇㆍㄹ사상론은 어떤 강압으로도 바꿀 수 없는 생명질서에 대한 경외심을 근본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씨앗 한 알 속에 과거의 생명이 집약되고, 또 여기서 꽃과 열매, 줄기가 자연의 조건과 어우러져 생장한다는 생명현상의 신비는 역사를 움직이는 씨ㅇㆍㄹ, 즉 민중의 자주적 힘과 연결되는 개념이라고 그는 보았다. “씨앗이 흙에 떨어져
대지의 주인이 되듯 민중은 스스로 바닥에 섬으로써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통찰은 곧 민중적 삶에 대한 생태학적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집자<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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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낱 공장이나 <br>
대기 오염따위가 <br>
씨ㅇ.ㄹ의 텃밭을<br>
더럽히는 원흉이 아니라 <br>
제국주의<br>
독재체제<br>
기계만능주의<br>
노동자 탄압을<br>
근본원인으로 꼽았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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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선생의 이름 뒤에 가장 어울리는 존칭은 옹(翁)이었다. 제대로 된 '어른'이 없었던 시대, 변절과 망령으로 존경할 '영감'이 사라졌던 시대에 그는 이름 석자 뒤에 어떤 감투나 권위로 포장된 수식어보다도 '옹'자를 독점할 자격을 갖춘 분이었다. 함옹은 언제나 머리·수염·두루마기·고무신의 네가지 흰 차림(4白)에다, 눈동자·목소리·피부·마음의 네가지 맑음(4淸)을 지니고 등장했다. 이 4백4청 자체가 분노와 선동과 위안과 희망이었다. 함옹에게도 청년시대가 있었겠지.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일찍부터 '옹'이었다. 아니다. 그는 생명을 들판으로 돌려보내는 순간까지도 젊었다. 그는 '영감'이면서 영원한 청년이었다. 아니다. 청년이면서 언제나 '영감'이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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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독립투사였고, 민주화 운동가요 통일일꾼이었다. 그는 종교가요 사상가며 학자에다 시인이었다. 우리 민족사상 이렇게 모든 분야에 걸쳐 활동했던 '통 사람'(함옹은 예수를 통사람이라 불렀다), 남의 나라 쓰레기 이론의 앵무새가 아닌 독창적인 들새의 목소리로 노래할 줄 알았던 '옹'이 대체 몇이나 있었던가. 원효, 다산, 단재를 잇는 민족사에 나타난 '들 사람 얼'의 계승자로서 함옹은 분단시대의
단 한 분 '영감'으로 자리매김 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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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옹 사상의 알맹이는 '들 사람'이다. 그의 들 사람 얼의 뿌리는 “밖으로부터 온 지배자들과 결탁 동화하여 한 귀족계급을 이룬 부족”의 상징으로서 곰의 삶이 아니라,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면서도 잔인하지도, 음험하지도, 구구하지도, 끈덕지지도 않는, 그리고 변화막측(莫測), 자유자재, 대범 과감한” 민중적 삶의 표상으로서의 호랑이에 있다. “상놈이 호랑이다. 범(凡)이 범이다”(<백두산 호랑이>). 바로 민중, 씨ㅇㆍㄹ, 생명사상의 바탕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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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복자 알렉산더가 아니라 디오게네스, 이성계보다 최영, 이방원이 아닌 정몽주, 세조 보다 김시습, 예수, 석가, 공자, 노자, 장자,
간디에 가까이 다가간 들사람이었다. “들사람은 시골 사람, 두메
사람이다…야인은 또 벼슬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으로도 쓴다”“예언자란 거의 다 야인이다”. 그릇된 권력과 문명으로 나라나 인류가
멸망해 갈 때면 “소수의 들사람이 나타나서 썩어가는 백성을 책망하여 마음 속에 잃어버린 야성을 도로 찾도록 부르짖는다. 그 말을
들으면 살아났고 아니 들으면 죽었다” “이 세상이 보기에는 문명인의 세상 같지만 사실은 들사람이 있으므로 되어간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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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사람은 곧 소금이었다. 모든 악의 근원인 잘못된 문명(文明)과는
달리 야(野)는 “무늬에 대한 바탈”, 곧 “질소(質素)”로 보았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들사람이다”(<들사람이여,
오라>)고 빈 들에서 씨ㅇㆍㄹ로 외롭게 외쳤던 단 하나의 참 들사람이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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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그에게 "자연과 사람, 흙과 생각, 육과 영, 개체와 전체가 하나로 되어 있는 삶"을 영위하는 텃밭이자 “나남이 없고, 네 것 내 것이
없고, 다스림 다스림 받음이 없고, 잘 나고 못 남”(<압록강>)이 없는 '고향'으로 인류가 영원히 추구하는 이상향이기도하다. 이 들판,
환경 생태계 모두가 태평스럽게 함께 해야 할 조화를 깨뜨리는 원흉으로 그는 문명을 들었다. “하늘이 준 제 바탈을 망가쳐”(<네가 개전의 정을 보여라>)버린 문명이야말로 현대 환경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본 그는 “노골적인 이욕(利慾)주의”(<새 윤리>)인 자본주의 개발 독재 체제가 바로 이를 꼬드기는 배후세력이라 배격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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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옹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환경 생태계 보존이란 광활한 고향 들판에 생명의 씨ㅇㆍㄹ을 묻어 온전하게 자라나 열매를 맺도록 보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에게 생명이란 “무생물이라 부르는 것에서부터 인격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상을 지배하는 원리이다. 그 생명은 자유와 통일을 바탕하며, 진화·폭발·저항하며, 선택·협조·투쟁·부활한다. “생명의 근본 원리는 스스로 함이다. 대신하지도
않고 대신해 줌을 받을 수도 없는 것이 인권이요, 공권이다"고 본 그는 이를 바로 씨ㅇㆍㄹ사상으로 승화시켰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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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ㅇㆍㄹ은 맨 사람 곧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제 바탈을 잃어버린 것이 없다” 씨ㅇㆍㄹ은 생각하는 힘이
있어 불에도 타지 않으며 칼로도 쪼갤 수 없는, 유전인자가 없어져도 그 자손이 끊이지 않는 우주의 본체로 영글게 익으면 들판에 떨어져 뿌리 내려 고향을 만드는 것으로, 들판에 떨어지지 않는 쭈그렁 밤송이는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씨ㅇㆍㄹ에 다름 아니라고
보았다. 죽은 씨ㅇㆍㄹ은 얼과 기가 없으며 설사 들판에 떨어진대도
뿌리 내려 고향을 건설하지 못한다. 온전한 씨ㅇㆍㄹ일지라도 죽은
들판에 떨어지면 역시 뿌리 내리지 못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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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죽은 씨ㅇㆍㄹ과 죽은 들판을 환경 생태계의 파괴, 곧 이상향의 침입자로 보았다. 그는 한낱 공장이나 대기 오염 따위가 씨ㅇㆍㄹ의 텃밭을 더럽히는 원흉이 아니라 제국주의, 독재체제, 근대화,
기계만능주의, 노동자 탄압을 그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공해문제란
곧 더러움으로 “세력 있고 잘 사는 사람들이 남 생각은 아니하고
저만 잘 살겠다고 욕심대로 한 결과로 나온 찌꺼기”라는 게 그의
소견이다. 그는 분재와 조롱 속의 새를 산 생명이 없다고 가엽게 여겼는데 바로 들을 떠난 씨ㅇㆍㄹ의 설움에 다름 아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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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ㅇㆍㄹ의 삶의 터전인 국토에 대하여 그는 바람직한 건설과 개발
예찬론자였기에 박 정권에 대하여 단 한 번 잘한다고 상찬했던 대목도 환경보존 운동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박정희 개발 독재에
찬성한 게 아니라 병 주고 약 주는 정책으로 결국은 씨앗 가꿀 들을
오염시킨 생태계의 파괴자로 보았다(<병 주고, 약 준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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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환경 생태계의 궁극적인 보존을 위해서는 세계 평화운동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대기를 마시고 가스를 뱉으니 평화요,
먹을 것을 먹고 마실 것을 마시고 속에 담긴 찌꺼기를 내보내니 평화요, 햇빛을 보고 웃고 바람을 쐬고 죽지를 펴니 평화다”(<평화운동을 일으키자>)라고 썼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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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의식이 유난히 강했던 함옹은 환경 생태계 사상에서 민족주의를 그대로 반영시켜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의 흙을 먹고 그 물을 마시고 그 바람을 숨쉬고 그 햇빛을 받고 그 풀, 그 나무를 다 재료로 삼아서 피로 되고 살로 되고 뼈로 되고 신경으로 된 것이 이 가슴 아닌가? 이 강산이 살아난 것, 생명화·정신화한 것이 이 가슴이다…그러므로 몸과 나라가 서로 딴 것이 아니다. 내 몸 곧 살아있는
나라이고, 나라 땅이 곧 내 몸이다”(<새나라 꿈틀거림>).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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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참 들 사람에게 환경 생태계란 씨ㅇㆍㄹ의 삶과 보존과 대이음을
원활히 이룩하는 조건만이 아니라 평화와 민주주의가 보장된 사회체제에다 들 사람 얼까지 깨어 있는 온전한 사람 사는 세상을 뜻한다. 글(임헌영교수) <br></font></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