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센스 코미디 [긴급조치 19호]는 웃자고 만든 영화다. 관객들은 웃고 서세원은 돈을 벌고. 직업 영화배우들은 거의 출연하지 않는 [긴급조치 19호]는 가수들을 데리고 만든 영화다. 김장훈 홍경민 투 톱 시스템에 핑클 클릭비 신화 등등 대중가요 아이돌 스타가 화면을 빼곡히 채운다. 부녀 관계로 나오는 공효진과 노주현 정도가 알만한 배우들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뭐가 잘못되었다고 시비거는 것은 아니다.
[조폭 마누라]와 [4발가락]을 거치면서 난 서세원표 코미디에 가혹한 비판적 시선을 보냈다. [4발가락]이야 세원프로덕션에서 배급에 주력한 것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서세원표 작품은 [긴급조치 19호]가 그 두번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난 뒤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 하면, 뭐 답답한 세상에 이렇게 숨통 틔우는 것 하나 있어도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긴급조치 19호]류의 쌈마이 코미디를 선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일반 시사가 있는 극장 앞에 밤 늦게 나와 인사를 하는 서세원을 보며 참 정성이 지극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충무로 기존 영화인들은 쳐다 보지도 않던 이런 류의 영화를 그래도 서세원이니까 만들어내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사실 [긴급조치 19호]의 원안은 충무로를 떠돌아 다니다가 제작자를 못만난 영화였었다.
도대체 상식적으로는 말이나 되는가? 미국에서는 마이클 잭슨이 대통령이 되고 마돈나를 부통령에 지명하고, 영국 프랑스에서도 가수들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위기를 느낀 한국 정부에서 가수들을 투옥하고 노래를 금지시키는 긴급조치 19호를 발동한다는 아이디어는, 녹슨 머리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넌센스 코미디의 황당무계한 시나리오다.
그런데 그럴듯하게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켰으니, 크게 나쁘지 않다. 여전히 욕설이 난무하는 것은 귀에 거슬렸지만(도대체 왜 영화 속에서 그렇게 욕설을 퍼부어 대면서 관객들에게 대리배설의 만족을 주려고 노력하는가? 세상 사람들을 욕하는 사람과 욕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눈다면 욕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을텐데. 나는 아무렇게나 쉽게 쌍욕을 내뱉는게 너무나 싫다) 권력과 맞장뜨는 가수들의 모습이 어느 정도 속을 시원하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영화는 그러나 권력의 본질에 대한 깊은 풍자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이것은 서세원이 원하는 바도 아니었을 것이다. 가수들과 기획사 팬클럽 그리고 그 뒤의 거대한 권력의 오밀조밀한 통로에는 접근도 하지 못한다. 대신 가족의 화해, 오만한 권력의 후퇴 등이 상식선에서 마무리된다. 그냥 잠깐 동안 웃자는 것이었으니까. 농담이었으니까.
날림으로 너무 쉽게 찍은 티가 나는 화면이, 온 정성을 다해 찍은 다른 영화들과 비교되었고, 목숨 걸고 연기하는 배우들에 비해 일요화가처럼 여기로 연기하는 가수들의 모습이 여전히 겉돌았다는 것은, 이 영화 제작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해보면 당연하게도 생각된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