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댁이 멀지 않으니 형님(75)과 숙모님(90) 찾아뵙는 것이 좋겠다. 어머님 돌아가신 후로 더욱 소원해지면서 어느새 12년이 훌쩍...
광주로 올라가 부안행 찾다가 출발대기중인 고창행으로 달려간다. 장성 지나 고개 넘어가니 수박으로 유명한 고창인데 부안행은 1시간반을 기다려야 한다.
고창 시가지 살펴보다 재래시장에 들러 설렁탕으로..
역시 호남의 먹거리는 정갈하고 맛있다. 나홀로 손님이지만 어인 일이냐며 전통 식혜도 주시고...
외가댁 가는 중인데 식혜맛이 어머님 해주시던 바로 그 맛이네요. 엿기름이 좋아야 향긋하고 부드러운 단맛이 난다 하셨는데...
두세 사람 테우고 곰소 지나 부안인데 출발대기중인 마을버스만큼은 고령의 아줌마분들로 떠들썩하다. 영원마을 가는 버스에 올라 거룡리 여쭈니 모두가 내집 손님처럼 이 차를 타도 걸어갈 수 있다고...
예전에 없던 신설도로가 들판을 가로 지를 뿐 더이상 물어볼 자도 없다. 옛이야기속의 길을 찾아 가는데 낯설지라도 낯설지 않고 외할머님, 외삼촌, 그리고 어머님과 함께 하는 것 같다.
농경시대 남존여비 사상은 안타까운 사연도 많았던 것 같다. 출가외인은 글도 못 배우게 하고 농사일만 거들도록 했다니....
더욱이 혼사도 어른들이 결정하는데로.... 강요된 출가로 고생길이 막급했다면 마음속에 아물 수 없는 상처가 됨은 당연하리라.
왜놈에 주권을 빼앗겼으니 농산물 약탈과 부역에 시달렸을 것이다. 아버님은 일본으로 끌려갔으니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어미만 바라보고 울어대는 자식들 어떻게?
외할머니도 일찍이 홀로 되어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 많으셨다는데... 형님은 할머니 시키는데로 쌀을 지고 농수로 따라 멀리 정읍까지 남몰래 쌀을 져 나르셨으니 ... 녹초가 되신 할머님은 텟마루에 걸터 앉자마자 긴 한숨 내 쉬며 담배연기를....
이런 모습 보는 순간 그 누구에게 말못할 울분이 복받쳤을 것이다. 간곡한 호소를 짓밟아 놓고 이제와서 무엇이 안타깝다고? 화풀이하듯 마구 쏟아내는 불평에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외할머님... 어미 마음 몰라 주는 것 같아 밉기도 하지만 심히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으리라.
아버님은 곤궁할지라도 술과 노래를 좋아하시며 낙천적이고 한량이신지라 남에겐 좋아보이지만... 가진 것이 없다면 어린자식 품고 살아가는 어미의 고생은 말이 아닐 것이다.
아껴 쓰며 미래를 대비하는 마음이 강하셨던 어머님인데... 아버님은 모아 둔 것 알기만 하면 어떻게든 빼내어 주막집으로 향하셨다니..... 마음씨 고운 우리 아버님이 젊은 시절에 왜 그러하셨는지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다.
서울에서 어쩌다 오빠집에 내려가시면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한많은 이야기로 눈물만 흘리셨으리라. 어머님보다 10년 연하이신 숙모님도 듣고 계셨을테니 구걸하러 왔나 하는 의심도 받았으리라.
외삼촌 논일 가신 사이 갑자기 떠나 오셨을 것이다. 논 일하다 떠났음을 알자마자 빈손으로 보낼 수 없다며 허겁지겁 뒤쫒아 가며 소리 높혀 불러 보지만... 어머님은 손만 흔들고 더 이상 돌아보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워낙 냉정하셨으니....
그때 그 시절 역사의 현장은 광활한 들판 저편으로 오늘도 변함없는 듯하다.
외할머님과 외삼촌 고생 많으셨습니다. 형님 또한 무거운 쌀 지고 먼 길 오르락 내리락 고생 많으셨습니다. 숙모님은 말할 것도 없이 마음 고생 많으셨지요. 참으로 한많은 시대였으니 누굴 탓할 수 있겠는지요
이른 저녁 들면서 이런 저런 안부 외엔 할말이 없다. 요즘 농사가 어떠냐고 여쭈니 갈수록 추곡 수매량이 줄어 처분도 어렵다 하신다.
첨단제품(텔레비젼, 스마트폰) 하나만 팔아도 쌀을 몇가마 살 수 있다지만 세계적인 기상이변이 닥치면 수입 중단은 시간문제이리라.
공산품처럼 거래된다하여 먹거리도 동일시 하는지? 먹거리의 근본은 풀이요 풀의 씨앗임에는 영원 불변이리라. 극히 단순해 보일지라도 첨단기술제품보다 소중할 때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식량위기는 천재지변에서 비롯된다 할 것이다. 초근목피로도 살아남을 자는 살아남을 것인데 특이사항까지 상정하여 경쟁력 없는 것으로 식량자립기반 고집할 이유 있겠나?
위기상황이 닥치면 끼리끼리 협력하는 수밖에 없을텐데 경제속국인들 어쩌랴? 세상만사 강자가 있고 약자가 있는 법인데... 위정자간에 이 같은 생각이 지배적인지?
심히 안타까운 현실 앞에 무엇으로 위로해 드려야 할지.... 자고 가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떠날 사정이 있다니 부안까지 테워 주신다.
월출산 가려면 또다시 광주나 목포로 나가야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가까이 국립공원 변산이 있지 않은가..
전주로 나가 한옥스파에서 하룻밤 보내고 다시 부안으로 달려가 군내버스로 줄포 거쳐 내소사다.
주능선 따라 여기 저기 불거진 암봉들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좌측이 직소폭포라면 우측 능선으로 올라 직소폭포로 하산하면 좋겠다.
새봉 지나 두리뭉실한 바위길 오르락 내리락 하니 관음봉이다.
해저 퇴적암이 융기되었는지 암질에 결이 많아 보인다.
재배기고개에서 직소폭포 가는 길은 내소사와는 반대방향인가 보다.
폭포 가는 길에 계곡에 발 담그고 쉬는데 물고기가 떼지어 이동한다. 폭포 상류인데 어떻게 올라 왔는지?
완만하고 평퍼짐한 계곡이 움푹 꺼지면서 물소리 들려 온다. 직소폭포라는데 낙차가 상당한 것 같다.
선녀탕 주변엔 주상절리같은 용암의 흔적도 느껴지고....
계곡물은 저수지에 모여 부안군 고창군민의 식수원으로 쓰이는 것 같다.
관리사무소 나오자마자 버스정류장인데 30분후에 도착된단다. 기다리는 시간에 직소천 따라 걷고 싶다.
한적한 산간도로 호기심에 구경하며 걷다보니 중계교 지나 청림이다.
내려오는 버스에 올라 부안으로 가서 또다시 전주 한옥스파로....
[위기의 쌀농가] 들판은 누렇게 익고 농심은 까맣게 탄다
세종시 장군면 추수 현장 르포
국민일보|세종|입력2014.11.08
"농사짓는 건 바보짓이여. 돈만 생각하면 못할 일이지. 20∼30년 전만 해도 200마지기(4만평) 쌀농사면유, 소작농 포함해서 10가구가 처자식 먹여 살리는 것은 물론이고 자식새끼 대학교육까지 시키고 시집장가도 보냈어유. 인자는 먹고살기도 벅차네유."
지난 6일 세종시 장군면 추수 현장에서 만난 전업농 손복현(67)씨는 "쌀농사엔 희망이 없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손씨는 대부분이 쌀농사를 짓는 100가구 남짓한 이 마을의 '지주' 격이다. 쌀농사를 짓는 4만평 중 2만평은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다. 3월부터 11월까지 1년의 3분의 2 기간을 쌀농사에 전력을 쏟아붓고 손씨가 손에 쥐는 소득은 연간 9000만원 수준이다. 마을 주민 대다수는 평균 1만평 수준의 땅을 빌려 짓는 임차농으로 연간 소득은 손씨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 손복현씨가 지난 6일 세종시 장군면에 있는 본인 소유의 논에서 콤바인으로 추수하고 있다. 손씨는 쌀값은 떨어지는데 인건비와 농기계 가격은 올라 쌀농사에 희망이 없어지고 있다고 푸념했다. 세종=구성찬 기자
"쌀농사가 기계화돼서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이지만 대다수가 '목구멍이 포도청' 수준이야. 풍년이라고? 올해 손에 쥐는 돈은 더 적어졌는데?"
지난해 5만5500원이었던 공주농협 미곡처리장(RPC)의 80㎏ 기준 벼 수매가는 올해 5만3000원으로 떨어졌다. 농협이 100% 수매할 수 없어 수확량의 절반 이상은 민간유통업자에게 넘기는데 그 시세는 5만원으로 떨어진 상태다. 그나마 민간업자들은 쌀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 예상하며 쌀을 사들이지 않고 관망하고 있다.
쌀값은 떨어지고 있는데 인건비, 농기계 가격은 해마다 오르고 있다. 손씨가 11월 넘어 뒤늦은 추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5년 전 5500만원을 주고 산 콤바인 기계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300만원의 수리비도 수리비지만 부품이 없다는 이유로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콤바인 가격은 해마다 100만원씩 올라 지금은 6000만원이 넘는다.
손씨네 옆 논 주인인 백승순(55·여)씨는 "농사 지어 먹고 살만 하시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남편이 3년 전 퇴직한 뒤 전업농으로 변신해 5000평 규모에 멜론·검은콩·쌀농사를 섞어서 하고 있지만 연간 소득은 500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백씨는 "농기계가 없으니 기계 임차해야지, 추수 때 사람 빌려야지, 2000평 쌀농사 지어서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 정도"라며 "땅 놀리기 싫어 쌀농사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손씨는 농민이 출자해 만든 농협이 좀 더 높은 수매가를 매겨야 민간유통업자도 가격을 올린다며 농협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직후 만난 '고맛나루 공주시 RPC' 이한석(46) 대표 역시 "풍년이 괴롭다"고 말했다. 올해 1만2000t을 수매할 예정인데, 이것을 되팔 거래처 확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고맛나루'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수익을 내려 애쓰고 있지만 출범 이후 3년 내내 적자를 겨우 면할 정도다. 이 대표는 "우리는 5만3000원으로 수매가를 잡았지만 남부지방 농협 RPC들은 5만원으로 잡고 있다"며 "쌀 수요는 줄어드는데 풍년이 되면 농민도 농협도 모두 힘들다"고 털어놨다. 이런 상황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쌀시장 개방 파고가 농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손씨는 그래도 쌀농사는 포기할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우리 농업에서 쌀은 중군(中軍·진영 한가운데 자리 잡은 중심부대)이여. 중군이 중심을 못 잡으면 농업이 무너져. 정부와 농민, 농협이 지혜를 모아 어떻게든 지금보다 나아져야지."》관련기사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