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7년 12월, '발레' 신부가 세상을 떠나자 '비안네'신부는 새 사목지로 떠났다. 인구 230명의 가난한 농촌 마을 아르스에 있는 성당으로 '비안네'신부를 파견한 '쿨롱'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그 본당은 하느님을 별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신부님께서 그곳에 하느님의 사랑을 심어주십시오.” '발레' 신부의 유품인 장서를 싣고 1818년 2월 11일 아르스 성당에 도착한 '비안네' 신부의 눈에 아르스의 상황은 너무도 열악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것은 물론이요 신앙상태도 엉망이었다. 젊은이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신앙생활에 관심이 없었고, 기본적인 교리 지식도 없었으며, 쉬는 신자들도 많았고, 더욱이 거의 매일 밤마다 술과 춤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비안네'신부를 특히 경악하게 만든 것은 아르스 성당의 주보성인인 '성 식스토'의 축일을 비롯한 축일마다 춤을 추며 질탕하게 노는 것이었다. 성당 역시 낡고 초라했지만 성당에 비해 사제관은 화려했다. 이를 견딜 수 없었던 '비안네'신부는 가장 먼저 사제관의 의자, 침대, 식탁, 이불과 베개 등 거의 모든 물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발레' 신부의 유품인 낡은 나무 침대와 책과 누더기나 다름없는 옷가지만 남겨두었다. 그는 딱딱한 침대에 짚을 깔아 사용했고 그것 마저도 조금씩 덜어내며 가난과 극기의 삶을 실행했다. 이에 신자들이 몰래 짚을 채워넣으면 '비안네'신부는 계속 빼내어 불 속에 던져넣곤 했다.
생전의 '비안네'신부의 체구는 매우 작고 볼품 없을 정도였다. 헌신적인 사목활동과 거친 음식을 통한 단식과
절식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소외된 이들에게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편한 사제였고, 부자와 배운이들
에게는 존경의 대상으로 각인되었다.
'비안네' 신부는 매일 성체 앞에서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경건하게 미사를 봉헌했으며, “세상의 훌륭한 일을 전부 모아도 미사성제에 비견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미사는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면서 매일마다 미사에 참례하여 영성체할 것을 촉구했다. 신자들도 “이보다 더 훌륭한 예배란 찾아보기 힘듭니다.” 라고 하면서 '비안네'신부가 집전하는 미사에 감탄했다.
'비안네'신부는 감자나 거친 빵으로 식사하였고, 자주 금식했으며, 매일 긴 시간 동안 성체 앞에서 기도하면서 사목의 힘을 얻었고, 본당 공동체의 쇄신과 성화를 간구했다. '비안네'신부는 새벽이 되기도 전에 성당으로 들어가서 제대 앞에 엎드려 울부짖었다. “저의 하느님, 저희 본당의 회개를 허락해주소서. 저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고통을 일생 동안 참을 각오가 되어있나이다.” 그러면서 신자들에게도 기도를 촉구했고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은 몇 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천국을 미리 맛보게 해줍니다. 좋은 기도는 많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감실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 우리 마음을 활짝 열고 그분의 거룩한 현존 안에서 기뻐합시다. 이것이 최상의 기도입니다.”
이런 본당신부를 보면서 마을의 신자들은 처음에 “잠시 저러다 말겠지.” 하며 시큰둥해 하거나, 너무 엄격하다며 온갖 비난을 퍼부었지만, 차츰 감동을 받았고, 몇 년 후 아르스 성당은 그가 부임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사람들은 “저기에 우리 성인 신부님이 가십니다.” 하며 본당 신부를 크게 존경하였으며, 저녁기도 시간을 알리는 교회종이 울리면 성당은 금방 신자들로 가득 찼고, 성당에 가지 못한 신자들은 일터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르스 마을의 기록에 의하면, 1834년 한 해 동안만 해도 이 작은 시골 마을을 찾아온 순례자가 30,000명에 달했다. 그가 고해소를 나갈 때는 그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려고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보호를 받아야 할 지경이었다. 결국 1840년부터는 아르스와 리옹 간의 역마차 왕래 횟수를 늘려야 했고, 아르스 성당 순례자는 100,000명~120,000명까지 늘어났다. 언젠가 '비안네'신부가 형제 사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비결을 말하자면, 나는 죄인들에게 작은 보속을 주고 그 나머지는 내가 대신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