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연 시인의 시집 [엎드려 별을 보다]가
2011년 11월, 책만드는집에서 나왔다.
김일연 시인은
대구 출생으로 1980년 [시조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시집 [빈들의 집], [서역 가는 길], [저 혼자 꽃이 필 때에], [달집 태우기], [명창]을
출간하였다.
다음은 '시인의 말' 전문이다.
"꿈꾸는 그 동안만이 살아볼 만한 현실이다."
다음은 이경철 문학평론가의 해설 '그리움의 순정한 속살로 터져나는 이미지와 운율'에서 따온 내용이다.
"2011년 여름밤 백담사 만해마을. 세계적 문인들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만해축전 유심작품상 시상식. 김일연 시인이 시조 부문 작품상을 수상하며 밝힌 소감에
문인들은 숙연했다. 등단 30년을 넘긴 시인이
매양 초심으로 이 메마른 시대 시의 순수와 그리움을 지켜내겠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조목조목 행한 수상 소감에 설악산 여름밤도 서늘해졌다.
"정(情)과 경(景)과 운율이 긴장되게 조응하며 독자의 가슴속에 파고드는
자신만의 진정한 목소리와 가락을 가진 시인"이란 게 유심작품상 시상 이유.
시인과 대상이 진정으로 교감하는 선명한 이미지,
그런 이미지와 시조의 정형율에서 우러나는 긴장되면서도 자연스런 리듬, 그리고
최첨단이면서도 정련된 시적 형태로 그리움의 정한을 끝 간 데 없이 길어 올리며
한 경지에 이르고 있는 시인이 김일연이다.
... 어떠신가. 무릎 깨지고 넘어지며, 살도 뼈도 다 녹이며 이른 그 지경의 생피 흘리는
인간의 한과 원은? 도저한 비극적 인식에서 길어 올린 그 깊이. 참 한스럽고도 아름답지 않으신가."
... 그렇다면 시는 어디서 나왔는가. 우주의 탄생과 같은 쓸쓸함, 그리움이 시를 낳지 않았던가.
합치될 수 없는 너와 나의 안타까운 거리, 그 죽음보다 두려운 사람의 쓸쓸함이 시를 낳고 있지 않은가.
우주 삼라만상과 온몸으로 교융하며 다시 하나 되고픈 간절함이 오늘도
시를 쓰게 하지 않는가. 그러매 시인과 샤먼은 본디부터 한 혈육.
독자와 우주 삼라만상은 물론 귀신과도 감읍(感泣),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부리는 시인.
그런 무로서의 시인의 여전한 본분을 나는 김일연 시인의 이번 시집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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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달빛 / 김일연
뒤울안 헛간 위로 물고기가 날던 집
불타는 개 한 마리 뛰어 들어온 그 밤
담장에 목을 내놓고 피 흘리던 목련 달빛
깊푸른 우물 속에 칠면조가 잠든 집
살쾡이 눈초리가 훑고 간 마루 밑에
아기를 뱃속에 품고 숨죽이던 별빛 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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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잘못 / 김일연
땅의 노고 바람의 노고 비의 노고 해의 노고를
말하기 좋다 하고 함부로 하였는가
대낮에 빈둥댄 내가 서른 명을 매몰시켰다
칼과 도마 분쇄기 꼬챙이에 피 묻히고
새파란 가스 불꽃에 살 뭉치를 튀기던
그 순간 비행기가 폭발해 삼백 명이 찢겨 나갔다
원래 내 것이었던 진흙 같은 울음소리
망각의 수증기로 잃어가던 늦은 밤
뼈저린 내 죄를 대신하여 수만 명이 수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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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근원 / 김일연
우주 먼지 알갱이가 만들어내는 별빛
못난 돌멩이들이 만들어내는 물소리
이 밤의 아름다움의 근원은
돌멩이다
먼지다
세상 등불이 꺼진 깜깜한 어둠이라도
난 그런 돌멩이
그런 먼지다 생각하면
사랑도 혼자 가는 길도
아프지 않다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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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별을 보다 / 김일연
예쁜 네가 보고 싶어 어깨를 수그린다
허리를 구부린다
무릎을 접는다
봄풀은 하늘땅 바닥에
별꽃 무더기를 피운다
두꺼운 안경을 벗고 마이너스 디옵터의 시력으로
별을 엎드려 보는
나는 행복하다
우주와 맨눈으로 맞춘 초점
가장 낮게
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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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강 / 김일연
극락강 가에 앉아
어머니와 나와
아기를 들쳐 업고 기저귀 보따리 안고
가난한 어린 엄마가
앉아 울던 그 강가에
옛이야기 나누며
어머니와 나와
한참을 울다 돌아가 다시 살던 타관 땅
강 너머
극락을 가는
구름 가마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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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별을 본 적 있는가?
맨눈에 보일 때까지 다가가야 하여서
바닥에 붙어 핀 풀꽃 같은 인생을 들여다보려고
무릎을 꿇어도 안되어서 엎드려, 오체투지로,
무정한 삶과
눈을 맞춰본 적 있는가!
참 다감하기도 하여라.
서러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껴안아버리고
하나도
'아프지 않다'
'외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참 많이 아프고 외로웠으리라.
<극락강> 주변에서,
그곳이 '타관'이기에 울며 울며 살았나보다.
'극락강'에 나도 울음을 띄워 보낸 적 있다.
타관이란 마음의 거리...
극락강은 무등산과는 멀고 멀어서....
지금 같으면, 씩씩하게 잘 견뎠을 두려움에 떨면서......
'이 메마른 시대 시의 순수와 그리움을 지켜내겠다'는 시인의
각오는 이 시집에서 분명코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