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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을 졸업(1975)하고 함부르크 국립 조형미술학교에서 사진 디자인을 전공(1985, 디플롬 디자인 취득)하였다. 서울·도쿄·함부르크 등지에서 9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COLOR 2인전(1982, 함부르크 시립미술관 초대) 일본·미국에서 개최된 세계 보도사진가 100인 초대전(1985, 86) 미국 로체스터 대학 초청 2인전(1990) 11월전-한국사진의 수평전(1991, 장흥 토탈미술관) 미술과 사진전(1992, 예술의 전당) 등 다수의 그룹전에 출품하였다. 함부르크 예술공예박물관, 오사카 포토인터폼, 브리즈번 퀸즈랜드미술관, 한마당 사진전시장, 갤러리 서미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
내용출처 : 구본창 홈
PROFILE>
1953 서울 출생
1975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 졸업
1979 독일 함부르크 유학
1985 함부르크 국립 조형미술대학교 사진 디자인 전공, 디플롬
1992 함부르크에서 개최된 국제미술 아카데미 (Pentiment) 초청 교수
1997 런던 킹스턴大, 스탠리피커 갤러리, International Fellowship
1999 런던 세인트 마틴 스쿨 초청교수
2000 이명동 사진상 수상
1999-2001 계원조형예술대학 사진전공 교수 역임
개인전
1983 서울, 파인힐 화랑
1984 독일, 함부르크, 포토게네스 화랑
1985 서울, 한마당 화랑, "열두번의 한숨" 외 컬러 사진전
1987 일본, 동경 와이드 갤러리 및 오사카 포토 인터폼 "일분간의 독백"
1988 갤러리 부산, "긴 오후의 미행"
1990 서울, 서미 갤러리, "생각의 바다"
1993 서울, 서미 갤러리, "Good-Bye Paradise"
1995 일본, 교토 Ississ 갤러리, "In The Beginning"
서울, 서미 갤러리, "숨"
1999 서울, 원화랑, "흐름"
2000 뉴욕, Ricco Maresca 갤러리, "White"
덴마크 아루스, 갤러리 이미지, "Good-Bye Paradise"+
2001 교토, Prinz Gallery
동경, Base 갤러리
서울, 로댕 갤러리, "구본창 사진전"
2002 샌디애고, 모파, "Fragile Tremors"
피바디 에섹스 뮤지엄, "Masterworks of Contemporary Korean Photography"
동경, 샤데이 갤러리, "In The Beginning"
그룹전
1987 서울, 한마당 화랑, "죽은 듯 엎드려 실눈 뜨고"
서울, 공간미술관, "다른 컬러 이미지 셋"
1988 서울, 워커힐 미술관, "사진 새 시좌"
1990 미국, 로체스타 대학 초청 2인
서울, 금호 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 기획, "Mixed Media"
대만 타이페이, Sunny - Gate 화랑
1991 서울, 토탈 미술관
1992 서울, 자하문 미술관, "아! 대한민국"
서울, 과천 현대미술관, "젊은 모색전"
1993 호주, 브리스베인, 아시아 태평양 지역 현대미술 트리에날레
1994 미국, Arizona, Tucson, Pima 대학 전시장
독일 Ursula Blickle Prize 참가
서울, 공평 아트 센타, "한국 사진의 수평전"
1995 광주현대미술관, 광주비엔날레, "한국 현대미술의 오늘"
경주, 선재미술관, "사진, 오늘의 위상"
서울, 갤러리 눈, "신체 또는 성"
1996 서울시립미술관, "도시와 영상"
미국, 산타페, A.O.I.갤러리, "In The Beginning Series"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사진-새로운 시각"
서울, 금호미술관, "한국 모더니즘의 전개"
서울, COEX, "SIAF"
서울, 서미 갤러리, "Art, At Home"
1997 런던, 킹스턴 대학, Stanley Picker Gallery,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 3인전"
1998 스웨덴, 스톡홀름, Ostasiatiska 뮤지움, "Landscape and Man"
미국, 시카고, 현대 사진 박물관, "Alienation and Assimilation"
대전, 한림 미술관, "몸과 사진"
서울, 호암미술관, "시간"
1999 샌프란시스코, 앤젤 아담스 센터, "Phenomena"
일본, 동경 국제 사진 비엔날레 "다큐먼트와 기억의 조각들"
2000 덴마크, Odense Foto Triennale, "Standing on the Threshold of Time"
미국, 뉴욕, The Center for Photography at Woodstock,?Moonlight Becomes You - A Thousand and One Nights of Peace on Earth?
미국, 휴스톤, FotoFest 2000, "Contemporary Korean Photographers"
2001 호주, 시드니, Australian Centre for Photography "Awakening"
서울, 가나 아트센터, "Photo Festival 2000"
2002 미국, 산타페, Photo-Eye Gallery "Two Korean Photographers"
서울, 가나 아트센터 "Now, What is Photo"
일본, 사이타마현대미술관, 센다이 미디어테크,"Korean Contemporary
photography"
프랑스, 몽펠리에, La Galerie Photo, "Photographie Contemporaine Coreenne"
덴마크, Art Center Silkeborg Bad,"Floating"
샌프란시스코, Camera work, "Everyman : A Search for the Male Form"
서울, 금호박물관, 3인전
서울, 갤러리 라메르, "2002 Asia Photo Biennale - Living in a City"
소 장
샌프란시스코 , 뮤지엄 오브 모던 아트
휴스턴, 뮤지엄 오브 파인 아트
뉴욕, Henry Buhl Collection
독일, 함부르크 예술공예 박물관
호주, 브리스 베인 퀸즈랜드 아트 갤러리
아이슬랜드, 레이캬빅 사진 박물관
도쿄, 샤데이 갤러리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
경주, 선재미술관
저서 및 출판 목록
밝은 방 1,2,3,4. 열화당 1988,1989,1991,1992
생각의 바다. 행림출판사 1992
Deja-Vu. 일본, 동경 1993
Korean 30 Artist. 가나아트 (페이지 44-55) 1993
Art Vivant. 시공사 1994
Fotofest 2000. 미국 휴스턴 2000
Art Magazine Wolgan Missool. 2001.05
KUNSTFORUM 156. (페이지 468-470) 2001
hysteric Nine,bonchangkoo, HYSTERIC GLAMOUR,
일본, 동경 2003
수상
2000 이명동 사진상 수상
<INTERVIEW>
가장 바쁜 사진가라는 얘기입니다만,
가만히 앉아 있기에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아이디어를 짜내고 실험하고 새로운 사진을 만들어 내는 일, 빈틈없이 긴장된 시간 속에서 억압된 내면의 욕구를 분출시키는 일이야말로 자유를 얻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도 가장 성공한 사진가의 한사람이라는 얘기도,
그 성취도에 대해서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부족하다고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의 창조적 활동은 경제적인 가치와는 무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피해야 할 일도 부끄러운 일도 아닙니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 진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예술적 재능과 노력과 인간적인 성실성과 같은 그 자부심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자신의 예술적인 능력이 사회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정당하게 평가된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지요.
어떤 이름으로 불리우길 원합니까, 사진가? 예술가? 아니면?
어떤 이름으로 불리우거나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대상이나 사고하는 내용에 대해서 이름을 붙이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나는 스튜디오에서는 뛰어난 사진가이길 원하고, 사진에 대해서 구상할 때는 사려 깊은 철학자가 되길 원합니다. 또 학생들을 지도할 때는 교육자로,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유능한 비즈니스맨이 되고자 합니다. 꼭 이름이 필요하다면 사진가로 불리우는 것이 타당하겠지요. 사진이 현실적인 생활의 바탕이 되고 있으니까요.
사진을 언제 처음 시작했습니까?
중학교 때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카메라를 처음 손에 든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첫 번째 사진은 동생에게 찍도록 한 나 자신의 셀프포트레이트였습니다. 자신의 배경과 포즈를 정하고 동생에게 셔터를 누르도록 시킨 것이었지요. 이 스타트는 나에게 있어서는 운명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지금 내 자신이 파인더를 들여다보며 무엇인가를 찍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렌즈의 저쪽에 있는 세계를 관찰하거나 기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나에게 있어서 카메라는 나의 안쪽을 들여다보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찍혀 있건 결국은 사진이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사진적 태도를 결정하게 된 것은 혹 생활환경이나 체험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섬유회사에 다니시던 아버지는 모든 면에서 내가 모범적이기를 바라셨지요. 나는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마치 천을 이루는 섬유와도 같은 규칙 바른 역할을 해내야 했습니다. 나는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그 일을 잘 해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범생으로서 기대받는 소년에게 요구되는 것과는 다른 일들, 말하자면 공상에 빠지거나 하루종일 방에 틀어박혀 그림책을 들추어보거나 하며 혼자의 시간을 보내는 일로 중학시절의 남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생활을 통해서 나는 적어도 교과서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정서적인 감수성을 기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구본창씨의 사진에 나타나는 현실과 비현실이라는 이중적인 구조는 이미 그 당시 배태되었던 거군요.
소년시절의 나는 내 자신이 어떤 일에 관심이 있고 그 일을 얼마쯤 해낼 수 있는지에 관해서 아무런 확신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비난받는 것이 두려웠고, 그 두렵다는 사실조차도 밖으로 내보이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터무니없이 비합리적인 공상의 세계를 어떤 형태로든 표현해 보고 싶다는 안쪽으로부터의 열정이 강하게 일면, 그럴수록 더욱 모범적인 태도로 자신을 연기해 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은 물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안쪽으로 감추기 위한 일종의 위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만일 자신의 일상생활과 내면세계를 잇는 그림이라는 매개체가 없었다면 나는 언제나 현실과 껍질 속에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감추어 두고자 하는, 소심하고 현실에 불만을 가진 성격으로 굳어져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그렸던 그림은 어떤 그림이었습니까?
일정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인상파들의 묘사가 많았지만, 디자인적인 구성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캘린더의 사진이나 그림을 좋다고 해서 벽에 붙여 놓기도 했습니다. 어 쨌든 중·고등학교 시절을 통해서 자신이 얘기할 수 있는 성격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물건-작은 돌멩이, 나뭇조각, 녹슨 경첩이나 잡지에 실린 사진 같은 잡다한 것-들을 모으거나, 그들을 어떤 다른 질서로 재구성하는 일에 유별나게 집착했다는 점입니다.
대학은 어땠습니까?
물론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전공을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가족회의였습니다. 경영학과에 들어가긴 했으나 곧 후회했습니다. 당시 나 자신이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그 전공 분야가 자신이 평생동안 해야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학교는 다만 시간을 뺏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맑스도 엥겔스도 나에게는 무의미했고 정신보다 근육을 사용해야 하는 모든 종류의 운동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학교를 쉬거나 집어치워 버릴 용기도 없었습니다.
일류기업이라는 곳에 취직했지요?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남다른 성격으로 주위에서 눈총을 받곤 했습니다.그러나 나는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일에 흥미를 가지고 그들이 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대기업의 조직에 뛰어든 것도 그것이 나 자신을 집단양식에 동화시키고 안정시킬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내가 얻은 것은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위화감과 고독과 소외감이었습니다.
외국으로의 탈출은 필연적인 것이었군요.
경쟁과 긴장, 숨막힐 듯한 직장분위기 이런 생활에 대한 인내가 한계점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곳이 되었건 무턱대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대, 어느 상사에서 독일 주재원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함부르크 공항에 내려선 것이 1979년, 봄을 눈앞에 둔 3월이었습니다.
어땠습니까?
맨 먼저 가슴깊이 들이쉰 것은 자유라는 공기였습니다. 그곳에는 무엇을 해도, 또 하지 않아도 좋은 자유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함부르크는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이 유서 깊은 유럽의 전통적인 도시는 나에게 더 없는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휴일이면 스페인,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도시들을 여행하는 동안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내성적인 성격과 그런 성격으로 인해서 지금까지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체험들이 어쩌면 결점이 아니라 장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면 그때는 제외한 다른 시기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선택은 잘된 것이었나요?
함부르크의 국립 조형미술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했을 때 왜 좀 더 일찍 사진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갖지 못했는가가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나의 가슴은 아직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미지의 방들로 가득 차 있고, 그 방들이 매일처럼 하나씩 새로운 물을 열어 안쪽에서 빛나는 보석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그것은 일류기업의 샐러리맨으로서의 안정된 생활과 부모의 기대와 그때까지 쌓아온 학문적인 축적과 그 밖의 내가 할 수 있는 미래의 모든 나이 몫과 맞바꾸어도 좋을 만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진로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어떤 아티스트들을 좋아합니까?
수틴의 세계를 좋아합니다. 한 마리의 황소가 식육으로 분해되는 과정을 그린 그의 그림에서는 죽음에 대한 파괴적인 이미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일상의 주변에서 마주치는 것을 모아 엮은 요셉 보이스의 데생이나 오브제, 사춘기의 소년 소녀를 에로틱하게 그리는 발튀스 초현실적인 만 레이의 작품들, 죽음과 성, 무의식의 세계를 다루는 조엘 피터 윗킨, 랠프 깁슨, 듀안 마이클로스로부터도 많은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대부분 한가지의 주제를 복수의 사진으로 구성하지요?
나의 사진은 '감정적인 순간'의 반대편에 놓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의 분신으로서의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전체를 구성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우연히 선택된 것이 아니라, 나라고 하는 하나의 인격체를 이루는 요소들로서 그들 자신 자업적이고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무의식의 수준에서 존재하는 이런 요소들이 모여서 나라고 하는 집단적 성격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사진은 외계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을 기록하거나 미적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장치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한 도구로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요소의 집합에 의한 구성 방법은 필연적인 귀결점이라 생각합니다.
사진을 오려 붙이거나 실로 깁거나 생채기를 내는 일에 저항감을 느끼지 않습니까?
만일 그것을 주저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그것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겠지요 다른 조형예술에 비해서 사진의 역사가 짧고, 또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진 과학적 성질과 자동성으로 인해 지금은 사진이 가공되는 일을 부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나 자신은 가령 회화가 감정표현을 위해서 거친 붓의 터치를 구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사진의 표면에 상처를 내는 일이 있습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의 그 외면적인 구조와 형태를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작품의 외면적 형태로 인해 내가 저항을 느껴야 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어떤 감상자에게는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요?
지금까지의 사진의 가장 큰 메리트는 그곳에 찍혀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한눈에 알 수 있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대상의 이름 이상의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한 장의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진가들이 고안해내는 영상어법에 관해서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한 사진가의 작품 속에 그러한 어법들이 필연성를 가지고 적절하게 구사되어 있다면 그것을 풀어가는 일은 스릴 있는 일이 되겠지요.
플라스틱, 천같은 이물질이나 또는 서로 다른 곳에서 찍혀진 이질적인 소재들로 구성된 작품이 많지요?
몽타주는 그곳에서 사용되는 소재들이 현실세계에서 가지고 있는 원래의 속성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현실세계에서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새로운 성질을 부여받는 일을 의미합니다. 내가 작품 속에 자주 인용하는 빛 바랜 가족 사진이나 해변에서 주워온 나무토막, 부서진 낡은 의자, 나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인형 따위의 잡동사니들은 이미 죽어버린 과거의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발견될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터무니없이 무의미한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시간, 소멸, 망각……이런 것들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는 이질적인 소재의 풍물에서 생길지도 모르는 우연의 결과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몽타주의 소재들은 불안이나 환상과 같은 어떤 심리적인 상태를 유발시키도록 치밀하게 선택되고 계산된 것들입니다.
리얼리티란 어떤 것입니까?
일반적으로는 개인의 감각이 미치는 세계의 물리적인 현상을 말합니다만, 나의 경우는 반드시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기억이나 꿈, 환상과 같은 현상도 현실로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현실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들 현재적인 지각과의 확실한 관계를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지금의 감정을 지배하고 있거나 꿈이나 환상과 같은 가설이 작품 위에 어떤 구체적인 형태로서 실현되어 있을 때, 나는 그러한 상태를 리얼리티라고 부릅니다.
오리지널리티에 관해서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모험은 카메라를 둘러메고 미지의 거리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안쪽을 찾아 나서는 일입니다. 현실세계는 어떤 사람에게는 진부하고 공허하고 싫증나는 세계입니다. 그곳에는 아무런 개성도 독창성도 없습니다. 그런 외부세계에 비해 개인의 정신 내면이나 의식의 심층세계에 대한 탐험에서 발견되는 것은 다른 아무도 경험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행위는 바로 나 자신의 공유성을 찾는 내면의 탐구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실 대상밖에 찍을 수 없는 사진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기술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라는 매체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때에는 특별한 다른 방법으로 그 일을 해내야 하겠지요. 나의 경우에는 스트레이트한 사진의 방법을 버리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현실 대상과 카메라의 자동적인 프로세스와 사진가의 눈물 일직선으로 연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전통적인 사진의 교리 등에 등을 돌릴 수 있는 사진가라면, 그에게 금기로서 지켜져야 할 이 단적인 사진의 방법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가령 시간과 우주, 생명을 주제로 한 작품군의 기호화된 인체의 형태는, 그러한 육체와 정신의 에센스로서 바꾸어 말하면, 물질에 있어서의 원자와 같은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서 상징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상징성은 예술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표현매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은?
그 얘기 나올 줄 알았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고 있는 것은 자신이 불완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배우자와의 약속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의무감도, 바쁜 생활도, 타인과 함께 평생을 지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일지 모릅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나를 세속적인 이기주의자라 불러도 그것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일에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그 일을 성취시키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은 마지막 방법입니까?
사진은 분명 지난 10여 년 간 나를 매료시켰고, 지금도 끊임없이 흥분과 인스피레이션을 주는 표현매체이지만, 맨 마지막 방법은 아닙니다. 나의 가슴은 언제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평면이 아닌 입체, 정지가 아닌 움직임, 소리나 빛과 같은 매체 또는 그들의 복합적인 표현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 생활하는 동안 인간은 자유로워야 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고, 나에게 있어서 자유는 지금도 여전히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최고의 가치입니다./interviewer 사진평론가 김승곤
<ARTICLE>
작품에 대한 변
작품 제작 시 관심이 있었던 것은 눈에 익숙했던 대상물을 클로즈업하거나, 다른 상황에 던져 보여주어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도록 유도하고, 그 대상물의 새로운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틀에 박힌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 이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재인식하고 싶다.
대상물들은 마치 무작위적이며 권태로운 듯 나열된 것들이며 대체로 뒤편에서 소외당한 것들, 또는 사라져버림 운명의 것들이다. 이러한 대상물은 당시 나의 심경을 대변해 주며 또한 이 시대에 잊혀질 수 없는 우리의 삶이 일부라 생각된다.
사진은 대부분 흑백필름 코닥 Trix400으로 촬영되었으며, 컬러로 촬영된 것은 편집을 위해 흑백으로 처리하였다.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소형 자동카메라를 사용하였으며, 이는 인물이나 대상물이 카메라를 의식하기 이전에 순간적으로 포착하기 위한 것이며, 우연히 마주치는 상황에 가장 신속히 반응하기 위한 것이다.
한 장이 아닌 여러 장의 사진을 한 페이지에서 보여주는 것은 한 장의 사진이 가질 수 없는 시각적인 이미지 상호간의 연상작용을 의도하려는 것이다. 의도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사진보다는 수수께끼 같은, 또한 각자가 시간적 공간적 확대를 꾀하여, 새로운 보는 방법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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