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대사보다는
춤과 음악 위주의 뮤지컬로 브로드웨이의 화제가 되었던 인기작을 우리나라에 들여왔다는
그 용기를 사는 쪽과 아직은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분분한 작품이다.
어차피 외국의 작품을 들여왔으니 오리지날에 버금가는걸 혹은 그 이상의 무엇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까 보다
이게 과연 뮤지컬이냐 하는 논란에서부터 다소 선정적인 춤사위들이
난무하고 3개의 에피소드들이 따로 국밥처럼 뭔가 안 맞는 듯 하지만
김주원의 노란드레스 그녀가 주는 몸으로 전하는 춤의 향연 그 자체로 소름이 돋을 정도다
정말 멋진 그녀, 선이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피에르 보나르의 노란 꽃이 내내 연상되었고, 그 꽃들이 노란 나비들이 살아서 팔랑팔랑 무대위를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녀의 춤을 본 것 만으로도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어쨌거나 세가지 주제로 각기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역시나 나에겐 관련된
장면과 스토리에 어울리는 미술작품들로 또다른 흥미진진 리뷰 들어간다.
Episodeㅣ. Swing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그네(THE SWING) 캔버스에 유채 81 x 64 cm 1767
첫번째는 'SWING'이라는 프라고나르의 그림 '그네'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이야기 구성 자체가 그림으로 출발한다.
그래 특이하게도 극장안에 들어서면 대부분 그저 무대커튼을 만나기 나름인데
친절한 복선으로 작품 시작전까지 프라고나르의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서 정말 기분 좋았다.
프라고나르는 로코코미술의 대표작가로서 프랑수아 부셰의 제자이기도 하며 섬세하고 쾌락주의적 작품으로 유명하다.
전에 읽은 루팽의 추리소설에서 도둑이 귀족의 집에서 프라고나르의 작품을 훔쳐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그림의 해석에서도 '주교와 애인이다, 남편과 정부다'의견이 분분하다.
오른편에 그네 뒷편에는 보기만해도 기력이 다한 백발의 칙칙한 노인네가 그네를 밀고 있다.
그 앞 숲속에서는 제법 잘 차려입은 부잣집 도련님같은 젊은 사내가 손을 뻗치고 있다.
그 손끝을 따라가자니 그네에 뛰어 오른 성춘향처럼 잔뜩 업덴 젊은 처녀가 촉촉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다리를 벌려 은밀한 곳까지 보여주는 과감한 유혹의 발길질을 하고 있다. 바라보는 두 남녀의 연정은 하늘로 치켜올라간
신발짝 하나로 절정을 맞은 것 같다. 신데렐라의 남겨진 유리구두의 내숭일랑은 벗어버린지 오래다.
당장 저 신발을 들고 침대로 쳐들어갈 기세다.
암튼 극에서는 귀족들의 퇴폐하고 문란한 성생활을 나타냄은 그대로 가지고 가되 원작의 노인네는 사라지고
추노의 쵸콜릿근육의 짐승남 버금가는 두남자들이 양쪽에서 등장한다. 원작과는 다른 반전을 꾀하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뮤지컬 상에서는 극적 효과가 떨어지고 다소 지루하며 반전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는 못했으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고 나름의 상상력을 가미하며 제법 퇴폐분위기를 잘 자아냈다는 점에서 약간의 재미는 있었다.
Episode ll . Did you move?
st, Breakfast 1886-1887, Kröller-Müller Museum, Otterlo, The Netherlands
두번째 이야기는 항상 아내를 깔보며 무시하는 폭력적인 남편과 그럴때마다 자신만의 상상 속 세계에서 발레리나가 되어
대리만족을 얻는 다소 수다쟁이 부인이 나온다.
어느날 부부는 동네 어귀의 이탈리안 뷔페를 찾아가고, 음식을 가지러 가기 전 남편은 험상궂은 얼굴로 '시발'이란 욕을 조사처럼
날리며 빵을 가져오지 않는다며 온갖 짜증을 부린다. 두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시발대왕' 남자때문에 많이 짜증게이지가 올라간다.
상상속의 살인이 나름의 반전인 것 같은데 역시나 조금 어딘가 모르게 어설프고 몇프로 모자란 느낌.
떠올려진 그림은 신인상주의자인 폴시냐크(Paul Signac)의 'Breakfast'다.
쇠라가 죽은 뒤에는 시냐크가 그 대변자가 되었고, 1886년 인상주의 마지막 전람회에서 쇠라와 함께 발표함으로써
신인상주의를 선포했던 폴시냐크의 그림인데 배경이 붐비는 이탈리아 식당은 아니지만 웬지 숨막히고 융통성 없는 남자의 표정과
거의 공포로 다가오는 식탁의 혐오감이 딱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Episode lll . Contact!
피에르 보나르 미모사가 피어있는 아틀리에
뉴욕 광고 업계에서 성공한 전형적인 독신 남성 마이클 와일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비버리힐즈 고급저택에서 사회적인 명망과 화려한 솔로로서 부족함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으나 실은
외로움과 우울증으로 여러번 자살을 시도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그러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게
우연히 재즈바에 들어서게 되고, 춤으로만 대화하는 이상한 그곳에서 그야말로 환상적인 여인을 발견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김주원의 노란드레스는 그녀를 위한 역으로 부족함이 없었고 봄날 피에르보나르의 화실에 핀
미모사꽃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림을 그렸다.
그밖에도 마티스의 노란옷의 오달리스크 ,드가의 무대위의 무희 ,고흐의 노란집까지 노란색이
들어간 운동감 있는 그림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무대위의 무희 58 x 42cm, 종이 파스텔,1878
앙리 마티스, 노란 옷의 오달리스크, 캔버스에 유채, 55.2x46cm, 1937
그네처럼 왔다갔다 흔들리는 수많은 관계들의 가벼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무례함과 흔들리지 않는 대화의 부재,
물질만능의 시대 현대인의 고독함으로 진정한 친구와 사랑의 언어가 부족한 이 때
그런 힘겨움과 현실의 끈을 이어주는 조그만 희망으로
마지막 장면에서는 뜬금없이 윗집남자 아랫층 여자의 어설픈 댄스가 이어진다.
Dance, Oil on canvas, 8’ 5⅝” x 12’ 9½, 1910
춤은 두 남녀가 추지만 그 의미는 마티스의 'DANCE'와 다를 바 없다.
중요한 건 모든 가식을 집어 던지고 그저 몸으로 진실되게 말하는 거라는 거
그게 CONTACT 다.
첫댓글 가장 좋아하는 색이지만 옷장 안에 가장 없는 색이기도 한 노란색!
끌리는군요. 보고 싶어지는데요?
이거 고양에선 아마 끝났을거예요, 난 빨간색이 옷이 하나도 없는데
알뜰하게 설명을 잘 해 주셔서 느낌이 팍 와 닿네요~
뮤지컬의 내용과 전개와는 관계없이 그림과 연관시켜서 제 식으로 다시보기 한거예요,
느낌이 확 오셨다면 마리아님도 미술매니아^^
아마 제가 4번이나 클릭한 것 같네요,,또 읽고 난 뮤지컬에 이런 그림들이 나왔나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표현을 했을까 그 극중에 붙인 어떤 전개를 위한 암시의 그림인가..
2번째에서야 느꼈지요,,
그 장면의 순간에 박하님이 느낀 그림들이라고
대단하십니다 박하님
뮤지컬을 통해서 또 다른 그림으로 해석해 낼 줄 아는
그리고 그 이상의 해석과 또한 감정처리도 하지않는..
그래서 전 박하님의 리뷰를 사랑합니다
ㅎㅎ 과찬의 말씀, 첫번째 에피소드는 진짜 프라고나르 그림을 아예 전제로 한 거였구요,나머지 장면은 제가 보면서 떠오르는 걸 갖다 붙힌거구요. 사실 잠깐 졸기도 했어요ㅋ
ㅎㅎ 프라고나르의 그림 해석에서..웃겨 죽는 줄 알았습니다...가끔 박하님 지르는 도발적 발언 나름 귀엽습니다. ^^ 마지막 마티스의 댄스 와 contact.... 참 깔끔하네요.
음...저의 팬들의 열화같은 성원에 힘입어 담번엔 좀더 수위를 높혀볼까요? '19세금'으루다가.사실 그림이라는게 마냥 고상하고 품위있는것만 아닌데요
일산에서 했군요. 이런 공연과는 친하지 못했지만 만약 박하 님 리뷰를 보고 공연이 계속 했다면 분명 가서 봤을 것 같네요. 여전한 글솜씨, 정말 여전하시네요. 솔직히 제 생각으론 공연보다 글이 훨씬 좋아서 공연 보고 실망했을 것만 같네요. ^^
오랜만이세요,미술관련 글을 쓴다고 했으나 공연,전시분야로 분류가 된 파워블로거 덕에 공연쪽에서 고맙게도 관람기회들을 주시네요,제글보고 공연에 실망하실 거란 얘기 ㅎㅎ 감사합니다. 못뵌지 오래네요, 봄되면 좋은 전시에서 뵈어요, 겨울엔 통 볼 전시가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