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셋째주 화요일 10시, 군포시 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만남.
올해 마지막 모임은 12월 20일(화) 10시에 '치매인과 가족을 마주한 상담'으로 나눔.
마침 12/10(토)에 (사)치매케어학회에서 여는 19회 치매케어 아카데미에서 발표한 글을 살핌.
내년 23년에도 매월하기로 함. 다음 모임은 1/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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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인과 가족을 마주한 상담
1. 인생 나들이의 동반
1.1. 지난 2014년 5월 1일부터 나들이데이케어센터에서 치매 케어 중이다. 낯선 도시로 옮겨와, 노동의 의미를 떠올리면서, 처음의 이용 정원 22명은 여전히 같은데 창립기념일의 선물로 직원을 차츰 늘려 이젠 12명이다. 마침 이런 발제의 계기로 ‘그 사이’의 공명을 간직한다.
1.2. 센터의 마무리 프로그램인 <명상> 중 희망한다. “오늘 집으로 잘 돌아가길 바라며, 언젠가 그 집으로 돌아갈 날 생명을 주신 분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기도하는 이런 읊조림에는, 풋풋한 시절 간직한 시(詩) 귀천의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울림이 배어있었다. 그리고 여러 선택의 자리에서 읽었던 헨리 나웬의 책 <탕자의 귀향><집으로 돌아가는 길><두려움을 떠나 사랑의 집으로> 등이 얽혀있었다. 저 자신이 명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짜인 삶의 이야기에서 ‘나들이’로 모였구나!
1.3. 상담(相談). 이 기회에 용기를 내서, 센터의 책꽂이에 묵혀둔 채준호의 <마음과 영혼의 동반자>를 살폈다. “상담은 어떠한 이유로든 억압했거나 감추어 두었거나 파묻어 두었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자신의 한 부분을 발견하여 합당한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부분을 자유롭게 해주며, 그것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과정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 자신을 개방할 힘이 약해 거부에 대한 두려움, 흑백·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이분법 아래 있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여기에 자신이 행복할 가치가 없다고 믿는 ‘행복에 대한 두려움’을 읽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진정, 행복을 원하는가!’
2. 수치심과 회복력
2.1.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커트 톰슨의 <영혼의 해부학>에 꽂혔다. “앎(knowing)은 권력과 영향력을 가져온다. 궁극적으로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참으로 만족을 주는 것은 알려짐(being known)이다. 알려짐은 스스로 수치심과 죄책감이 치유를 위해 드러나도록 허용한다는 뜻이다.” 뇌가 배선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비록 자기 이야기의 사건들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이야기를 경험하는 방식을 바꿀 수는 있다. 즉 과거의 사실들을 달라지게 하지는 않겠지만, 과거에 대한 당신의 기억은 달라지게 할 수 있다.
2.2. 알 듯 모를 듯해서 커트 톰슨의 <수치심>도 폈다. “수치심은 느낌으로 먼저 경험된다. 부족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나는 이 순간 혹은 상황을 견뎌 내는 데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느낌으로 체험된 감각(the felt sense)이다. 우리는 기억 속에 자신이 수치스러운 존재라는 감각을 지니고 있다. 내가 감지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나 자신이 그것에 반응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래서 예외 없이 고립으로 이어진다.”
2.3. 요즘 제러미 리프킨은 인류의 새로운 키워드는 진보가 아니라 회복력(적응·어우러짐·생명애) 시대라고 항변한다. 그래선지 류페이쉬안의 <회복력 수업>이 산뜻하게 다가왔다. “다음 7개의 동사를 천천히 살펴보고 각각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 ‘ 요구하다 가져가다 주다 받다 나누다 거절하다 놀다 혹은 상상하다.’ 7개의 동사를 읽으면서 무엇을 관찰했는가?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떠올랐는가? 나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동사는 무엇인가? 또 낯설고 불편한 동사는 무엇인가? 7개의 동사는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갈라진 틈으로 밝은 빛을 받아들여 문제를 확인하고 대면할 기회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 ‘틈이 있어야 햇빛이 들어올 수 있다(루미).’
3. 치매 케어의 정보
3.1. 다른 지역에 사는 장남이 찾아와, 센터 이용을 위한 초기 상담. 80대 노부부만 사시는데, 아버지는 혈관성 치매와 난청 등으로 의사 소통이 여의치 않다. 아버지가 목수로 건축 일을 하셨는데, 간간이 밖에 나가 여러 물건을 수집하고, 해가 지면 불안한 양상을 보인다. 한편 더욱 부부 갈등이 심해졌고, 어머니도 허리 다치셔서 관계 악화상태다. 이제 질문을 한다. 혈관성 치매의 흐름과 더불어 “혹시 아버지가 어머니를 바람피운다고 하지 않으세요?” 아들이 드러내진 않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오전에 나가는 노인 일자리를 부정(不貞) 망상의 확증으로 여기며, 어머니를 의심하면서 주도권을 잡으려 하는 양상이다. 이제 돌아가는 아들에 당부한다. “아버지가 주워 온 물건을 모두 치우면 안됩니다. 아버지의 활동 자체를 거부당한다고 여길 수 있기에요. 앞쪽에 있는 것은 그대로 두고, 뒤쪽의 것만 치워 청결을 유지해 주세요.”
3.2. 센터 이용 중. 이용자는 오전에 배회(수집) 및 근처 복지관에서 점심을 하고, 오후에는 칩거해 누워 계셨다. 따라서 쉼과 활동을 유지하도록 고려한다. 틈틈이 산책 및 끽연하려 하면 동행하면서 욕구 만족도를 넓히고 안정 조성(눈높이)을 높인다. 더불어 과거의 사고로 머리와 다리를 다쳐 수술한 기억으로 ‘낫지 못함’을 원통하며 부정감을 반복 표현하는 걸 감안해, 물리치료로 대응한다. 따라서 치료를 받아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좋아졌다고 고마워하고, 센터에선 안정적 활동을 한다. 그러나 귀가하면 아내에 부정감을 쏟아낸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서, 센터 이용을 쉬시는 날에 좋아하시는 간식을 마련해 가서 인사하며 친밀감을 형성하고, 근처 카페에 가서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며 정겨운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센터 이용으로 저녁에 부부가 서로 속상하는 일상이 더욱 고조되는 분위기라, 당분간 중지하기로 한다.
3.3. 휘프 바이선의 <치매의 모든 것>은, 네덜란드 임상 심리학자가 30년 연구를 축적해선지 간결하지만 살뜰하다. “버리지 마! 나중에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실망과 실존적 공포에 대처하기 위해, 쇠락해 가는 자신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앞으로 닥칠 어려운 시간에 나름대로 대비한다. 이런 물건 수집은 안전을 상징한다.
4. 치매인과 마주하기
4.1. 부드럽게 진정성을 전달하는 휴머니튜드는 ‘눈맞춤, 대화, 손길, 기립’으로 돌봄의 문화를 형성한다. 그러면서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다”라고 맞울림한다. 그러나 교육 후 지속이 없으면 태도가 옛 걸로 되돌아가 버린다. 무엇보다도 휴머니튜드를 ‘이미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바라보기를 간과한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종용하는 등 치매인을 의존적인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휴머니튜드는 한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모든 직원이 팀을 이루는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하다(2022 휴머니튜드 국제 세미나, 인천광역시, 22-11-21 中).
4.2. 직원과 함께 분기별로 책 나눔을 가지려 한다. 이번에 선정한 책은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치매 환자가 들려주는 치매 이야기>다. 저자인 웬디 미첼은 자신의 삶으로 <내가 알던 그 사람>에 이어 두 번째 출판했다. “치매인을 바르게 이해하면 모든 사람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사회적 환경과 물리적 환경 모두 제대로 갖추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치매로 인해 우리 앞에 놓인 난관이 무엇이든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고, 비판하지 않으며, 공유하고, 보살피고, 도와주기 위해 존재한다. “치매 덕분에 행복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내고, 순간적으로 만족감을 느낀다. 행복이나 흥분은 여름에 정원에서 펄럭펄럭 날아가는 나비와 같아서 도저히 잡을 수 없다. 그러나 만족감은 손바닥 안에 쥐고 들여다보면서 볼 때마다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4.3. 마침 건강보험공단 직원이 센터를 방문해 점검하고 포스터 한 장을 주고 간다. “이런 행동은 안됩니다! 어르신을 차별 대우 또는 무시하는 태도 친밀감을 이유로 유아어, 반말 등 사용 개인 비밀, 사생활을 내외부 발설 학대 및 폭력행위, 물질적 보상 요구.” 그래서 <치매의 모든 것>에 실린 내용을 공유했다. “치매인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 오늘 점심에 뭐 드셨어요? 이 블라우스 새로 샀어요? 내가 누군지 아세요? 뭐 하고 싶으세요? 그저 저번에도 말씀하셨어요.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이해가 안 되네. 왜 물으세요? 머리 깎으셨어요? 지금 몇 시예요? 오늘 뭐 하셨어요? 그 드라마(특정 프로그램) 보실래요?” 더불어 “치매인에게 할 수 있는 말. 블라우스 예쁘다. 처음 봤네. 아빠, 아빠 뵈니까 너무 반가워요. 산책 갈까요? 재밌네. 난 물랐어요.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흥미로운 질문이에요. 얼굴이 좋아 보여요! 몸은 좀 어떠세요? TV에 볼 만한 거 있나 한 번 틀어 볼까요?”
4.4. <치매의 모든 것> 중, ‘치매로 잃지 않는 것’. “심장은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 달라진 것은 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메시지 뒤에 숨은 감정을 읽어야 한다.” 전체 이미지에 집중하는 직관으로 상대의 마음을 잘 읽으며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다. 자존심, 단것과 쓰담쓰담을 즐기며, 강요에 대한 저항으로 자기 인생을 주도하려 하며, 가치 있는 존재로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기억하는 ‘사실 기억’과 습득한 ‘능력 기억’ 중간에 ‘리듬 기억’이 자리한다. 지금 우리가 아는 것은 소리를 처리하는 뇌 부위와 감정을 담당하는 부위가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음악은 큰 감정을 금방 불러일으킬 수 있다.
4.5. 그렇다. 동화책 <우리 할머니는 나를 모릅니다>의 이미지가 울린다. 페트라와 엄마 엠마는 할머니를 만나러 갔는데, 할머니는 딸과 손녀를 정말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린 페트라가 노래를 하자, 할머니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묻는다. “어디서 그 노래를 배웠니?” 그러자 엄마가 대답해요. “나한테 가르쳐 주셨잖아요. 엄마. 그래서 내가 페트라한테 가르쳐 줬고요.” 페트라는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자, 할머니가 다가와 딸과 손녀를 안아준다. “엠마야, 우리 엠마.”
이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엄마와 딸은 땅거미가 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엄마, 이다음에 내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면요, 내 아이도 엄마를 찾아가서 노래를 불러 줄 거예요.”
5. 가족의 치매 케어 이야기 모임
5.1. 센터에서 나누고 싶은 시간 리듬은 ‘어버이날, 크리스마스’다. 설날과 추석은 친척이 오가니, 자연스레 이뤄질 걸로 보여 가족에게 넘긴다. 어버이날 맞아 카네이션과 선물꾸러미를 나누고, 가족지지모임을 월 중에 3~5회기 정도 연다. 서로 하소연하면서 위로를 받고, 구체적인 고민에 대한 질문을 서로 응답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으며 관련 책을 안내하던지 다음 모임에 정리해서 가져가면서 소통한다. 매년 이어지다가, 어느 해는 방향을 바꿔 에니어그램으로 주보호자인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성찰도 나눴다. MBTI와 다르게, 에니어그램은 의식과 무의식의 접점을 건들면서 역동을 보도록 돕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의 속살은 닮았다.
5.2. 지난 9월부터 기존 ‘가족지지모임’을 넘어서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참여하길 바라는 ‘치매 케어 이야기 모임’으로 진행 중이다(매월 셋째 주 화요일 10~12시, 군포시공익활동지원센터). 지난 11월 모임 중 가족에게 ‘바라는 게’ 뭔지 여쭸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는 현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감당하지 못하는 감정. 나 자신의 치매 예상을 10~20년 미룰 가이드를 전해 주면 좋겠다.”
5.3. 웬디 미첼은 “병이 아니라 먼저 그 사람 자체를 봐야 한다. 준비가 되었는지 아닌지의 차이가 치매인과 간병인 모두의 삶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치매인이 스카이다이빙으로 모험하며 속으로 조용히 부르짖는다. “도대체 왜 멈춰야 하는가?” 치매는 ‘지금’에 더욱 집중한다. “그 모든 일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그래 뭐, 다른 것보다는 낫지.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얼마든 있으니까. 남편이 전보다 더 깜빡깜빡한다 해도 여전히 마음 저 깊은 곳에선 온전히 그 사람일 것이다. 어쩌면 두 번째 유년기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 사람의 유년기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상태가 아주 나빠져서 그가 나를 못 알아본다 해도 나는 그를 알아볼 것이다. 영원히. 그거면 됐다(치매의 모든 것 中).”
5.4. 우리가 이야기를 만들지만, 크게 보면 이야기 아래에 살아간다. 책의 한 글귀가 울린다. “간병이 행복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 처음의 슬픔에서 내가 적어도 아내를 보살필 수 있다는 기쁨이 탄생했으니 말이다(치매의 모든 것 中).” 이번 달 치매 케어 이야기 모임에선, 뇌과학을 바탕으로 수치심의 느낌을 다루면서 그래도 건강하게 사는 방식을 정리해 가야 할 듯하다. 그러다 보면 ‘울림과 어울림’으로 이야기가 오가며 우리의 인생을 도반(道伴)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