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지혜 (3월 15일) - CBS 방송원고
요즘 저는 수도사들의 삶에 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들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침묵 가운데 오로지 말씀을 읽고
기도생활에 전념하였습니다.
가난과 정결과 순명이라는 세 가지 덕목을 지키며 고독하게 살았던 것이죠.
그것도 일반 수도원이 아닌 사막으로 나가서 지낸 수도사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매우 척박하였고 굶주림과 추위의 공포에 직면하며 살았습니다.
19세 성공회 수도원 개혁가였던 벤슨(R.M. Bemson)은 평범한 삶릏 포기한 채
사막으로 나가서 고독한 수도생활을 하던 수도사들의 마음가짐과 고백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짧게 정리 하였는데요. 그것은,
“나를 향해서는 차가운 마음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따뜻한 마음을,
주님을 위해서는 타오르는 마음을”이라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비록 사막에서의 고독한 수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일상 가운데에서도 수덕의 삶을 살 수 있는 모토가 되지 않겠습니까?
사막의 수도사들은 철저하게 고독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고독을 수도생활의 가장 큰 목표이자 덕목으로 삼았고, 고독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의 가장 우선의 관심과 가치는 ’공동체‘였습니다.
사막에서의 고도한 삶을 살았지만, 별 수 없이 그들 역시 무리를 이루어 살아야 했고
더불어 살아야만 하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3세기 중엽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를 피해 안락한 삶을 떠나
삭막한 사막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박해가 끝난 후에도 사막에 머물며 기도생활에 전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염세적이거나 육적인 이 세상을 온통 증오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섞여 사는 것을 포기한 것이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거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소위 경건하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 애착이 강한지
그래서 교만이라는 죄에 얼마나 쉽게 넘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습성을 늘 경계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는 삶에 대해 일반인들은 우려하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존경과 존중을 표합니다.
지극한 존경이 때론 수도자들을 자만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경계를
늘 잊지 않고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죠.
사막 수도자의 대표 인물로 여겨지는 안토니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죽음은 이웃과 더불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얻으면 하느님을 얻지만,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그리스도를 거슬러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형제로 얻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죽어야만 합니다.
진정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처절하게
깨닫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고독한 사막에서 함께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집을 위에서 아래로 짓지 못하고, 기초부터 쌓아 올려야 하듯이
집을 짓는 기초가 바로 우리 이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바탕이 바로 하느님을 향한 불타오르는 열정이었습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라야
다른 이들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법이죠.
그때 다른 이들 안에 계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를 우리 일상생활로 가져와 봅니다.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신 말씀에 다름 아니죠.
나를 향해서는 차가운 마음을 가지라는 벤슨의 말은 자기혐오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존중을 통해 하느님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 너무 너그럽지 말고, 다른 이들 안에 계신 하느님을 볼 수 있으며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것.
사막의 수도자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덕목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