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화순교육청에서는 초 중 고 학부모 각 1명, 지역민 대표 1명, 초 중 고 교사 5명, 교장 교감 각 1명, 전문직 2명, 행정직 2명, 언론인 2명 등 총 17명으로 구성된‘교민(敎民)합동연수단’을 조직하여, 화순과 비슷한 일본의 농촌지역 학교를 직접 방문해서, 그 지방의 교육환경과 학교운영 실상을 보고, 화순의 교육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공동 대처 방안을 모색하고자 본 연수를 계획하였다.
따라서, 연수주제를 '일본 교육 문화의 비교 체험을 통한 화순교육 발전 방안 모색'으로 정하고, 일본의 학교경영 및 교육관련 우수사례를 수집하기 위하여 2003년 10월 29일부터 11월 4일까지 총 6박 7일 동안 일본의 간사이[關西, 관서]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연수단이 출범하였다.
□ 제 1일 (10월 29일, 수요일)
○ 화순을 떠나며
첫날, 새벽 5시 반의 차가운 날씨에도 화순교육청 앞은 분주하기만 하다. 기다리고 있는 관광버스의 불빛 속으로 모여드는 일행들의 모습이 활기차 보인다. 모두들 동광주 톨 게이트로 이동하여 나머지 일행들이 탑승하자 김해공항을 향하여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 다. 가이드는 전기전압, 날씨, 환전 등 일본에 대한 사전 지식을 설명하지만, 여행을 앞둔 설렘으로 잠이 부족한 일행들은 눈을 붙이느라 잠시 정적이 흐른다. 점점 차창 밖의 햇살이 눈부셔져 유리창의 성애를 닦아내니 누렇게 변한 들녘이 보 인다. 출발한 시간이 멀어질수록 목적지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은 어쩔 수 없이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남해고속도로의‘장유 휴게소’에서 준비해 간 찰밥, 김, 된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하 고 커피 한잔을 곁들이니 조찬이 훌륭하다. 9시 30분 즈음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출국수속을 하고 11시 KE 731편 대한항공에 몸을 싣고 김해공항을 이륙하였다.
○ 간사이국제공항[關西國際空港, 관서국제공항]
기내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지 1시간 30분쯤 지나자, 창 밖으로 짙고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 흰색 사각형 모양의 섬 하나가 시야에 들어오고 그 끝에 기다란 다리 하나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눈을 뗄 수 없고,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기 대와 흥분이 한층 더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간사이 공항 | 시차가 없는 12시 40분에 가깝고도 먼 이국 땅 오사카[大阪, 대판] 간사이공항에 도착 하였다. 간사이공항은 고베[神戶 신호]의 아와이 땅을 판 흙으로 바닷가를 매립하여 만든 인 공 섬에 90조엔을 투입하여 완공되었으며, 1994년 9월4일 개항하였다고 한다.
△ 간사이 공항의 내부 모습 |
△ 간사이 공항의 천정 | 기다리고 있는 전용버스에 탑승하면서 우리나라와 좌우가 다른 운전석과 자동차문 의 위치는 생소하기 그지없고, 도로를 달리면서도 시야의 적응이 필요했다. 공항과 오사카 시내를 연결하는 '하늘 문'십리 다리(3.75km)를 통과하며, 일본에서의 6박 7일의 일정은 시 작되었다.
△ 간사이 공항의 승강장 |
△ 간사이 공항에서 본 '하늘 문'십리 다리 - 공항에서 오사카로 통하는 다리이다. 그 다리 끝에 오사카의 '젠니쿠 게이트타워 호텔'이 보인다. | ○ 간사이[關西, 관서]지역
일본은 본토 중앙에 위치한 후지산을 중심으로 그 동쪽을 간토[關東, 관동], 서쪽을 간사이[關西, 관서]지역이라 부르고 있다. 따라서, 일본에도 지역감정이 있어, 도쿄에서는 오사카인들의 자유분방한 상인 기질을 경망스럽다고 비웃는가 하면, 반면에 오사카인들은 도쿄사람을 잘난 체하고 점잔빼는 사람들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 연원을 살펴보면 지역적인 거리와 풍토에서 비롯되었겠지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를 통일하고 통일 일본의 중심이 교토에서 오사카로 정해졌다가, 그가 사망하자 에도를 중심으로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東軍)과 '히데요리'를 내세운 '토요토미 히데요시' 의 가신그룹인 서군(西軍)과의 동서전쟁이 지금의 나고야 근교인 세키가하라에서 벌어지고, 그 전투에서 도쿠가와군의 승리로 종결되고, 통일 일본의 중심은 오사카에서 도쿄로 옮겨졌 다.
그 후 도쿄는 일본 수도로서 끊임없이 발전해오고, 오사카는 오사카대로 진취적 기 상을 지닌 상인들이 모여 수로와 강을 개척하고, 수많은 다리를 놓아 바다를 향해 넓혀온 상업도시로서 발전하여 오고있다. 간사이공항이 바다에 건설된 것도 오사카에서만 볼 수 있 을 것이다. 비록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일세를 풍미했던 토요토미 히데요시.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의 원흉으로서 통한의 아픔을 안겨줬지만, 오사카인들의 가슴속에는 나니와[難波 =오사카의 옛 지명]의 영화(榮華)와 함께 영원히 살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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